155화
이시하라 유우가 우는 이유.
김해 공항 건달이 내 정수리를 향해 쇠 파이프를 내려쳤다. 나는 피할 수 없어 왼손을 올려 막았다. 쇠파이프가 엿가락처럼 내 손에 감기듯 휘어졌다. 나도 놀라고 김해 공항 건달도 놀랐다. 건달들은 얼마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 굳어졌다. 용천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눈앞에 있는 조폭들이 이제는 가소로웠다. 대가리 수를 따지지 말고 얼마든지 덤벼라! 속으로 외치며 정신나간 김해 공항 건달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턱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김해 공항 건달은 저만치 날아가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턱을 싸안고 뒹굴었다. 정신이 돌아왔는지 떼거리로 깍두기들이 덤볐다. 활극 영화처럼 격투가 벌어졌다. 두 번도 아니고 한 방에 내지른 내 주먹에 조폭들은 점프하 듯 뛰어올라 떨어졌다. 정강이 뼈가 으스러지거나 갈비뼈, 콧뼈, 턱뼈 등이 부서졌다. 삽시간에 바닥에 나뒹군 깍두기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었다.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싶은지 깍두기들이 일어나 줄행랑을 놓았다. 신기했다. 나는 왼손을 쳐다봤다. 경이로웠다. 용천이 손에 쥐어졌다.
내가 휘두른 주먹에 여기저기 담벼락이 파이고 금이 가고 구멍이 났다. 깍두기들이 내뱉은 침은 피로 가득했고 그 속에 허연 이빨 서너 개가 드러났다.
나는 파손된 담벼락 보상하라고 할까 봐 급히 그곳을 벗어나며 용천을 직호문녹각제도장구에 꽂았다. 그리고 든든함에 가슴을 두세 번 두드렸다.
나는 나 스스로 대견해하며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학교 부근 할머니 집으로 갈까 하다가 마침 김해 방향의 버스가 와서 올라탔다.
* * *
자리에 앉아 차창을 내다봤다. 멀리 높은 산에 빙 둘러 자리 잡은 장씨 왕조라 일컫는 민암 사학재단이 눈에 들어왔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버스로 한 참 왔는데도 돌아보면 장씨 왕조의 성채가 보였다. 불쾌했다. 세월이 흘러도 저놈의 철옹성은 더 견고해지기만 하니... 진정 난공불락인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가 민교 얼굴과 김수로 형제가 누나라는 모진의 얼굴과 다분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 민교로부터 카톡이 왔다.
- 거머리는 성제가 손 썼어 나온 거 같아요.
- 괜찮아?
- 밖에서 싸우고 있어요, 거머리...
- 무슨 말이야?
- 거머리가 칼로 죽인 보스 애들이랑 싸우는 거 같아요.
- 넌?
- 차 안에 있어요, 밖을 보니 재밌네요, 날고뛰고 받고 지랄발광을 해요.
- 도망가.
- 한 놈이 지키고 있어요, 도망가도 갈 데도 없고...
- 어떡할 건데?
-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나한텐 함부로 못 해요, 내가 아킬레스 건이니까...
- 무슨 소리야?
- 그런 게 있어요, 성제 새끼가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대요.
- 그래서?
-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내 입장이면 니가 그런 말 할 수 있냐 했더니 알겠다고 했어요...
- 잘했다, 그럼 집에 데려다준대?
-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당분간 학교에서만 봐야겠어요.
- 그건 좋은 생각이다, 아마 그렇게 될거야...
- 무슨 말이에요?
- 경찰 안 왔니?
- 왔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 그리로 지나가고 있다, 어쩐지 멧돼지 냄새가 나더라, 큭
- 죽는다!
버스가 경고등을 울리며 서 있는 여러 대의 경찰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검은 벤츠를 비롯한 여러 대의 검은 고급 차가 서 있고, 쓸데없이 비대한 깍두기들이 위압감을 주기 위해 자기 옷을 찢거나 옷을 벗어 던져 몸에 도배한 문신을 드러냈다. 경찰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보며 삿대질을 하고 침을 뱉고 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깍두기는 보도블록 빼내려고 하다가 비대한 몸을 가누지 못해 제풀에 지쳐 앉아서 씩씩 대기도 했다. 경찰들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양쪽을 달래기만 했다.
성제, 썬디... 개새끼... 이 새끼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내 인생에 쪽 발을 들이밀고 쑥대밭을 만든 새끼...
(E) 빵, 빵!
내 뒤차가 신경질적으로 크락숀을 눌렀다. 나는 깜짝 놀라 상념에서 깨어났다.
내 앞차가 저만치 벗어나 있었다. 내 뒤에서 빵빵대던 차가 앞질러 가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겨워서 픽 웃었다. 당하기만 했던 내가 시원하진 않았지만 성제에게 복수를 했다는 일말의 짜릿함인가...
상습정체 구역을 벗어나자 늦은 시각이라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이 잘 뚫렸다.
- 엄마 우리 라면 끓여 먹을까? 아버지 한 잔 더 안 하시려우?
- 싫어, 그 좋은 일품요리를 먹었는데 라면으로 위를 더럽히고 싶지 않아...
배가 출출해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내가 말하자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 별일 없을까?
아버지가 거실 바닥에 올라서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보셨잖아요, 여차하면 상대하려는 베아트리체 엄마를 둘러싼 사람들을... 그래서 저도 안심을 했어요.
- 하긴, 나도 그것을 읽었어,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 특유의 촉이 있는지 불안해했다.
- 그래도, 성제 일당들이 보통 인간들이야, 악질 중에 악질이잖아.
엄마도 아버자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지 아버지 말에 힘을 더했다.
- 뭐 컨벤션효과? 내 나라 내 백성? 놀고 자빠졌네, 장제갈이 그 입만 산 게 대통령 되면 우리나라 절딴나겠네, 이민 가든가 해야지...
엄마는 성제집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거 하곤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소두(小頭)에
쓸 왕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왕관을 지탱할 머리도 안되면서 한 나라를 통치하겠냐, 였다. 그렇다고 인간성이나 좋냐,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인간들...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인간들... 거실 탁자에 앉을 때까지 엄마는 저주를 퍼붓듯 계속 중얼거렸다.
* * *
선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양발에 신은 신발을 아무렇게 던져버리고
자기 방으로 넘어질 듯이 급히 들어갔다.
아마 성제의 CD를 틀거나 이시하라 유우의 웹툰을 다시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유우는 현관에서 들어오지 않고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 딸 선의가 그린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보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갔다. 몸을 부르르 떠는 것처럼 보였다.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발가락 사이 때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유우를 바라봤다.
깜짝 놀랐다.
유우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 엄마, 엄마...
내가 조용하게 엄마를 불렀다.
- 나는 라면 안 먹는다니까 그러네...
- 아니, 저기... 가서 달래줘요... 나는 그렇잖아요...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안방에서 일상복을 갈아입고 나오던 엄마가 유우를 보고 놀라더니 스프링 튀듯이 뛰어가 눈물을 흘리는 유우를 살포시 안았다.
엄마도 영문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알고 싶은 이유는 나중이고 먼저 유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자식을 안아 쓰다듬는 엄마의 마음으로 보드랍게 그래, 그래 하며 쓰다듬고 토닥였다.
- 야, 몽대야, 유우한테 또 뭐라고 했니?
나지막하지만 힘이 실린 엄마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뜻으로 두 손을 벌리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아닙니다, 어머니... 그림이...
- 그래? 그림이 슬퍼?
유우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 그럼, 웃겨서?
- 큭, 아뇨. 있어요...
엄마의 농담에 유우가 웃었다.
뭐? 그럼, 그림에 감명을 받아서 운다고? 아 알 수 없는 비범한 인간들...
아무리 내 딸 선의가 잭슨 폴락을 잇는 뛰어난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그렸다손치더라
도 감명을 받아 눈물까지 흘리는 것은 범인(凡人)인 우리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갈수록 유우가 대단하다고 아니 비범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 인물이 선의의 그림을 감명을 받아 운다면 저 그림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그 가치는 그림값을 말한다. 나야 세속적인 인간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급한 인간이든 고급진 인간이든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건 매한가지일걸? 그래야 빨리 머리 회전이 돌아가니까, 런던 소더비(Sothby’s)나 뉴욕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장이 있는 이유도 그렇지 않을까? 팔면 얼마나 줄까? 이시하라 그룹에서 살까? 에라이 인간아, 니가 인간이야 딸 그림을 팔아서 먹을 생각하다니, 공양미 삼백 석도 아니고...
벗은 양말로 발가락 사이를 닦고 갑자기 나도 유우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심이 아니라 순수한 위로 차원에서... 엄마가 유우를 안고 있는 현관문 쪽으로 갔다.
내가 엄마 등을 콕콕 찔러 교대하자고 마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