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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적을 농락하다
작성일 : 24-06-04 18:07     조회 : 10     추천 : 0     분량 : 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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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화

 적을 농락하다.

 

  마노가 양털로 만든 이불을 둘에게 덮어주었다.

 어서어서 잠들라고 토닥였다. 그래야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거 같아서다.

 

 - 벌써 자라고?

 - 네, 칼은 옆에 꼭 껴안고 자세요, 엄마처럼...

 - 응, 벽로 형은 그 칼을 누나라고 생각하고 자, 좋겠다, 킥킥

 - 이게 형을 놀리고 있어...

 

 호롱불을 잘 껐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당무가 된 내 얼굴을 보고 왜 얼굴이 발개졌냐고 호기심 많은 말로가 물고 늘어졌을 텐데 마땅히 대응할 말이 없어서 그랬다.

 

 벽로와 말로가 어둠 속에서 서로 발을 차며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팔 구세지만 워낙 덩치가 크고 훈련으로 다져진 몸이라 주고받고 차고 막고 돌려주고 하는 소리가 꼭 어른들끼리 짓궂은 장난치는 거처럼 우렁찼다.

 

 찬 기운을 막기 위해 바닥은 기산(基山)에 산다는 9개의 꼬리, 4개의 귀, 척추에 2개의 눈이 박힌 양처럼 생긴 박이(猼訑)라는 괴수 털가죽을 깔았다. 박이 털이나 가죽을 가지고 있으면 용기가 살아나 놀라움이나 두려움 없이 대장부답게 휘젓고 다닌다는 아주 귀한 털가죽이었다. 그러나 벽로나 말로는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고도 용감무쌍한 대장부였다.

 

 나란히 누운 벽로와 말로가 티격태격하더니 금세 잠이 들어 새근거렸다.

 시간이 흐르자 짙어진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벽로와 말로의 티없이 맑은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신독(인도) 아유디아에서 헤어진 동생들이 생각나 울컥했다.

 눈물이 덜어졌다. 얼른 손바닥으로 받았다. 그리고 마노는 미소를 지었다.

 

 마노는 또 한 번 불을 잘 껐다고 생각했다. 벽로와 말로의 여과 없이 내뱉는 말에

 앞으로가 걱정이 됐다. 절대로 표정 관리가 중요했다.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특히 수로 장군이 앞에서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이 가문의 순수한 젊은 피들의 세 치 혀에 뒤통수를 맞고 실신할 줄 모르니까, 큭...

 

 천막과 조금 떨어진 곳에 병사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마노는 천막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말 안장에 기대어 눈을 붙였다.

 나무의 잎사귀 소리가 잔바람에 사각거렸다. 벽로와 말로가 피곤했던지

 새근새근 코까지 골았다.

 

 보초가 담배를 피웠다. 특유의 잎담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때, 불규칙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풀 밟는 소리가 귀를 쫑긋하게 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당했다. 적병에 의해 보초가 쓰러졌다.

 마노는 칼을 꺼내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속하게 천막을 갈랐다.

 피 비린내가 훅 끼쳤다.

 그리고 벽로와 말로 입을 막고 깨웠다. 훈련이 된 벽로와 말로는 남달랐다. 금방 눈빛이 초롱해졌다. 손짓으로 적의 침입이니 자기를 따라 나오라고 했다.

 벽로와 말로는 초롱한 눈으로 알겠다고 했다.

 

 마노를 따라 벽로 말로가 칼을 들고 갈라진 천막 사이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마노가 손짓으로 가운데 적은 내가, 좌우의 적은 벽로와 말로가 맡으라고 하자 벽로와 말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닥불 빛에 언뜻 상기한 얼굴이 비쳤다.

 바짝 엎드려 있는데 적병(敵兵) 셋이 최대한 소리를 줄이고 재빠르게 천막 안으로 침입했다. 동시에 칼을 세워 베개로 위장한 잠자리를 향해 꽂았다.

 

 (E) 쿡, 쿡!~

 

 적병들은 칼끝에 전해 오는 느낌이 이상했다. 담요를 걷자 위장을 알아차렸다.

 섬뜩했다. 셋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잽싸게 천막 밖으로 나왔다.

 마노와 맞닥뜨렸다. 벽로와 말로는 천막 입구 양옆에 서서 몸을 숨겨 보이지 않았다.

 마노 혼자 서 있자 적병 셋은 안심했다. 그것도 여자 혼자...

 안도가 되었다.

 마노가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웃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병 셋은 칼 든 손에 힘이 불끈 넣었다.

 찰나였다.

 마노는 중앙에 선 적병의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를 향해 빗금으로 칼을

 내려쳤다.

 동시에 벽로와 말로는 천막 양옆에 숨어 있다가 나오며 좌우(左右)에 선 적병 목젖을 향해 칼을 힘껏 휘둘렀다.

 적병 셋은 칼을 들 겨를도 없이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적병 하나는 몸이 비스듬하게 두 동강 났고, 적병 둘은 목이 두 동강 났다.

 적병 셋은 절단(切斷)된 채로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을 끔뻑이다가

 피를 흩뿌리며 절명했다. 이렇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무참히 당할 줄을 몰라기에

 황당했다.

 창졸간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목전(目前)에서 생전 처음으로 경험한 어린 벽로와 말로였다. 칼에 맞거나 화살에 맞아 죽은 적군의 시체는 봤지만, 직접 자기 손으로 적의 목을 쳤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원치 않았지만, 어느새 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아주 잠깐 둘은 넋이 나갔다.

 

 - 역시 사내 대장부는 다르군요?

 

 마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봤다.

 적병의 핏방울이 칼 끝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둘은 이성적으로 원치 않았지만, 몸은 자연 굳어졌다.

 대장부가 이 정도 일에...

 벽로와 말로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 마노의 속삭이듯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이 자들은 적의 척후병(斥候兵)들입니다. 적이 야밤에 기습(奇襲)을 노리는 거

  같습니다.

 - 잘됐네, 우리가 기다렸다가 쳐부수자.

 - 내가 앞장설게.

 

  마노의 말에 벽로와 말로는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하려다가 앞뒤 재지 않고 오히려 성급하게 싸울 생각만 드러냈다. 그러나 마노는 어린애나 다름없는 벽로와 말로가 보인 담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상황이면 기절할 각인데도 말이다.

 

 - 그게 우선이 아닙니다, 빨리 수로 장군과 주군께 이 사실을 알리세요,

  저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오겠습니다.

 

 마노가 소리 죽여 또박또박 힘을 주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벽로와 말로도 거역할 수 없는 뭔가 있다고 느꼈고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벽로와 말로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해도 가슴이 터질 듯 들떴다.

 

 벽로는 차라리 내가 적의 동태를 살필 테니 누나가 아버지와 수로 형에게 보고하라고 할까 하다가 경거망동으로 비칠 것 같아 꾹 참았다. 나 혼자 30명, 말로와 함께라면 50명 정도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데... 어떻게 아녀자 혼자 적진에 뛰어들게 할 수가 있나, 사나이 대장부가... 이런 자괴감마저 들었지만 마노 누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마노 누나의 무예도 수준급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봤기에...

 

 - 누나 조심해.

 - 누나 조심해.

 

 벽로가 말하자 말로가 따라 말했다.

 마노는 이 어린애들이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진정 생각해주니 고마웠다.

 가슴이 먹먹해진 마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안았다.

 벽로와 말로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몸에 전해졌다.

 등을 쓰다듬으며 둘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벽로와 말로가 울먹이는 것을 보이기 싫어 쏜살같이 뛰어갔다.

 마노는 울컥해진 마음을 달래며 바람처럼 숲속으로 달려갔다.

 

  * * *

 

 깜깜한 밤이라 초승달이 더욱 선명했다. 별이 더욱 빛났다.

 그들의 행적을 뒤쫓는 이글거리는 맥의 눈이 호기심에 불탔다.

 마노는 최대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아주 잽싸게 숲속을 달렸다.

 아름드리나무와 나무 사이 뒤에 몸을 숨겨가며 깊숙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맥도 눈에 불을 켜고 아름드리나무를 곡예하듯 훌쩍 뛰어넘으며 따라갔다.

 갑자기 마노가 너도밤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조금 있으니까 사각사각 풀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적군의 선발대였다.

 선발대가 앞서면 그 뒤는 적군의 본대가 나타날 것이다.

 마노는 최대한 기도비닉(企圖秘匿) 하며 선발대에 가까이 스며들었다.

 기회를 엿봤다. 눈치 못 채게 적병들의 걸음에 맞춰 걸었다.

 일곱 여덟은 됐다. 혼자서 처리하기엔 숫자가 많다.

 계속 미행할 것인가? 해치울 것인가? 마노는 고심했다.

 적의 선발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무리 속의 하나가 손을 들었기에 그렇다.

 마노는 조용히 엎드렸다.

 

 - 왜?

 - 무슨 소리가 들렸어...

 - 지랄, 이 깊은 산속에 온갖 것들이 다 사는데 들리는 게 당연하지...

 - 그런가?...

 

 그때였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엎드린 자기를 덮치고 비명도 지르기 전에 입을 막았다.

 몸을 짓누른 큰 바위 같은 무게에 꼼짝달싹도 못 했다. 땅에 박힌 채 땅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허둥댈수록 늪 속에 빠져들어 갔다. 근데 이건 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코끝을 스치는 냄새 때문이었다. 코에 익었다.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늘어졌다. 아무리 몸에 힘을

 가하려고 해도 생각만 있을 뿐 몸은 녹아내렸다. 코끝에 스치는 수컷의 냄새가

 그렇게 만들었다. 목이 탔다. 혼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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