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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악마와 싸우는 안티히어로

 
전장(戰場)의 한가운데서...
작성일 : 24-06-03 09:12     조회 : 11     추천 : 0     분량 : 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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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화

 전장(戰場)의 한가운데서...

 

  자기랑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선이 가늘지만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전형적인 동양의 미인이었다. 주위를 압도하고 장악하는 기세(氣勢)는 김궤 가족

 못지않았다.

 

 - 왜 귀여운 대로를 놀리냐, 따찌...

 - 모진 누나, 내가 왜 귀여워? 대장부답지...

 - 그래? 대장부는 그 깐 일로 징징대면 안 되는데, 어쩌지?...

 - 씨, 누나는 수로 형만 좋아해, 앞으로 난 전쟁만 할 거야!

 

 모두 웃었다.

 대로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진, 그러다가 마노를 쳐다봤다.

 

 - 모진 누나, 이 여인은 앞으로 벽로와 말로 돌볼 보모, 그 눈빛은 뭐지? 이런 색목인 미녀는 처음 보지? 마노, 우리 모진 누나다, 당신보다 예쁘지? 인사를 드리게.

 

 수로가 자기를 미녀라고 한 말에 마노는 감격했고 당신이라는 말에 전율을 느꼈다.

 

 - 안녕하십니까, 마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자 다들 식사하시지요?

 

 모두, 긴 나무 의자에서 일어났다.

 

 - 아버지, 누나가 살짝 긴장한 거 같습니다.

 - 그래? 내 눈에도 그래 보이네.

 

 앞장서던 김궤가 수로의 장난에 맞장구쳤다.

 

 - 경쟁심 이런 건가?

 

 김궤 뒤를 따라가던 수로가 모진을 놀렸다.

 

 - 뭐?! 주군, 수로가 또 절 놀립니다.

 

 수로의 말에 모진 누나가 투정 섞인 말을 했다.

 마노는 속으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감히 수로 장군을 수로라고 하다니, 그리고 주군 김궤 앞에서 투정을 부리다니, 엄숙한 자리에서 갑자기 가벼운 농담이 오고 갈 정도니, 마노는 이 여인이 이 집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돈지 감지할 수 있었다. 무조건 모진이라는 이 여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 미녀는 미녀를 인정하지 않는답니다.

 - 그런가? 음려화는 왜 네 엄마 앞에서 기가 죽냐?

 - 아버지 또 엄마 자랑을, 팔불출입니다.

 - 그래 되냐? 으하하하하!

 

 고로 말에 김궤는 기분 좋게 웃었다.

 낙빈 앞에서는 쑥스러워 제대로 감정 표현도

 못하고 헛기침만 하는 김궤이지만,

 낙빈이 없는 데서는 제법 은근히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 피하세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노가 창을 통해 김궤와 수로를 향해 날아오는 표창을, 한쪽 발로 길다란 나무 의자의 끝을 질끈 밟아 들어 올려 막았다. 별 모양 표창 두 개가 나무 의자에 깊숙이 박혔다. 어느새 회의에 참석했던 장수들과 장교들이 김궤와 5형제를 둘러쌌다. 아로는 등창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에 주위를 둘러보고 이상이 없자 모두 경계를 풀었다. 칼을 빼든 호위병들이 일시에 밖으로 몰려나갔다.

 

 그런데 분위기는 싸하지 않고 무덤덤했다. 모두 긴장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반응이었다. 흔히 있는 일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근데 대로가 보이지 않았다.

 마노는 본의 아니게 혼자 호들갑을 떤 거 같아 민망했다. 왜냐하면 표창이 날아오면서 내는 독특한 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김궤의 부하들이 김궤와 수로를 에워쌌던 거였다.

 모두 식당에 들어가 앉는데 그때, 대로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 사내의 잘린 머리를 들고 들어왔다.

 표창이 날아와 나무 의자에 박힐 때, 동시에 대로가 창을 통해 날아가 첩자를 찾았던 거였다. 등을 보이고 돌아서서 기마대 말 죽을 쑤고 있는 자 옆에 대로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자의 손을 덥썩 잡아 냄새를 맡았다.

 

 - 왜, 왜... 그러십니까, 장군?

 

 그자는 벌벌 떨며 말했다. 그자는 공손술 잔당이었는데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전향(轉向)해서 김궤 부대 산하 보급부대에서 잡일을 맡고 있었다.

 

 - 너지?

 - 네?

 - 이실직고해라.

 - 뭘 말입니까?

 - 표창은 특유의 쇠냄새가 있지... 정향(丁香) 나무의 빨간 꽃봉오리를 따서 말려 기름을 짠 정향유(丁香油)로 쇠를 녹이기 때문에 쇠에 정향이 배여 있지, 그 쇠로 표창을 만들었으니까, 빈철(鑌鐵)...

 

 대로의 말이 끝나기 전에 들켰다고 생각한 그자가 옷섶에 숨긴 표창을 꺼냈다.

 동시에 대로가 그자의 목을 쳤다. 그자의 목은 두부 잘릴 듯이 잘려 나갔다.

 그자는 김궤와 수로를 노리는 공손술 잔당의 고도로 훈련된 암살조였다.

 목이 잘린 그자의 몸은 몇 발자국 비틀거리며 걷다가 고꾸라졌다.

 

  * * *

 

 아버지 김궤는 대로가 불뚝 성질을 참지 못하고 경거망동할까 봐 항상 걱정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무조건 그자의 목을 칠 게 아니라 대로의 무술 실력이면 죽이지 않고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표창을 던져야만 했는지 그 연유를 물어보고 죄를 물어도 될 텐데, 김궤는 안타까웠다. 닥치고 공격하고 무조건 칼을 휘두르는 건 지도자의 덕목이 아닌데... 대로가 염려스러웠다. 물론 대로의 방식도 때론 필요할 때도 있었다. 김궤는 그걸 가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김궤는 식사 자리에서 정식으로 장수와 장교들에게 마노를 소개했다. 마노는 포로도 아니고 특히 전리품도 아니며 우리 가족이다. 수로의 비호 아래 벽로와 말로를 돌보니 마노에 대한 언행(言行)과 태도에 각별히 주의하기를 바란다고 훈시를 했다. 덧붙여 조금 전에 마노가 보여 준 살신성인(殺身成仁)에 감사를 표했다. 수로와 5형제들도 일어나 고맙다고 마노에게 예의를 표했다. 마노는 황송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모진이 마노를 부드럽게 안았다. 마노는 하찮은 신분에 지나지 않은 자신을 우리 가족이라는 김궤의 말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식사 시간이 끝났다.

 

  * * *

 

 칠흑 밤이 깊었다.

 초승달만 선명하게 빛났다.

 별들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별똥별들이 수시로 밤하늘을 가르며 긴꼬리를 달고 날았다.

 풀벌레 소리와 부엉이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 누나 우리하고 같이 잘 거야?

 - 그래야죠, 말로 도련님.

 - 한 이불 속에 같이 자는 건 아니지?

 

 벽로가 사색(死色)이 돼서 물었다.

 벽로와 말로는 본부에 마련한 침실에 자라고 해도 전쟁터에 출전한 장수가 편안한 잠

 자리는 부하들에게도 본보기가 아니며 솔선수범의 역행이라며 한사코 거절하고 야외

 천막에 거처를 마련했다. 전쟁놀이 중에 백미(白眉)는 밖에 천막치고 노는 건데 그 즐

 거움을 빼앗기는 건 그 둘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벽로가 아홉 살, 말로가 여덟 살이지만 덩치는 산(山) 만 했다.

 수로가 9척 장신인데 동생들도 기골이 장대했다. 수로만큼 크지는 않지만, 아버지 김궤가 8척 정도, 아로와 대로, 고로는 8척을 너끈히 넘겼다. 비록 벽로와 말로가 어려

 애들 몸이지만 웬만한 성인만 했다. 이 여섯 형제의 성장은 과연 어디 까질까?

 상상만 해도 마노는 가슴이 벅찼다. 그때까지 만이라도 함께해야 할텐데...

 갑자기 슬퍼졌다.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할까 봐서다.

 마노는 죽어도 꼭, 반드시 김궤 가족을 위해 죽고 싶었다. 그렇게 신에게 빌었다.

 

 - 당연하죠, 벽로 도련님... 도련님들은 대장붑니다, 대장부는 여자를 멀리해야 합니

  다. 그래야 대장부 소릴 듣습니다.

 

 마노의 말속에 약간의 울음 끼가 섞여 떨렸다.

 

 - 엄마는?...

 

 말로가 시무룩해져 물었다.

 

 - 엄마는 다르지요, 엄마는 대장부를 낳은 여장부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 야호, 신난다, 봐 형, 내 말 맞잖아?

 - 왜, 신나요?

 - 엄마 젖을 만지고 잘 수 있어서... 말로는 아직 어린애라서 그래.

 - 치, 형하고 나하고 한 살 차이야, 형도 어린애면서...

 - 난, 아니지, 난 엄마 젖 안 만지고도 자.

 - 내가 다 차지하고 자니까, 샘이 나서 그러지, 누가 모르는 줄 알아?

 - 너, 자꾸 그러면 맞는다.

 - 나 보고 엄마 젖 한쪽만 만지라고 했잖아? 한쪽은 형이 만진다고, 그래야 공평하다

  고, 내가 싫다고 하니까 형이 지금 심술부리는 거잖아?

 - 내가 언제? 사내 대장부를 졸장부로 만들고 있어, 콱~

 - 좋아, 형은 누나 젖 만지고 자, 내가 양보할게, 헤~

 

 마노는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벽로와 말로가 이 누나 왜 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 자, 자, 어서 주무세요, 내일도 전투를 치르려면 잠을 푹 자야 적군의 목을 칠 수

  있어요, 적군이 더 많이 자고 나오면 큰일 나요...

 

 마노가 너무 당황해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했다.

 

 - 와, 누나 젖은 엄마 젖보다 더 큰 거 같다, 형은 좋겠다~

 

 마노는 말로의 천진난만함에 도저히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얼른 호롱불을 입바람으로 후 불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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