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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후귀환 : 미친 황후가 돌아왔다.
작가 : 회색수달
작품등록일 : 2022.2.27

"이젠 그만 나를 놓아줘." 버둥 거리는 내 발을 보며 평생을 함께한 남편이 한 말은 자기를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모자라 그는 나를 죽였다. 다시 깨어나 보니 어느 영애의 몸. 신이 내 마지막 기도를 들어준 것이 분명하다. 난 새로 얻게 된 이 삶으로 나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3. 나는 황후였어
작성일 : 22-02-27 15:55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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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무잡잡한 손바닥이 눈 앞에서 흔들거렸다.

 

 아델린이 손을 휘휘 흔들고 있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나도 모르게 눈 동그랗게 뜨인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황후였던 시절, 그렇게 혼나던 퍽 순수한 눈빛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믿을 만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델린을 믿을 수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델린. 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엘렌! 장난 치지마! 하나도 재미 없거든?”

 

 “정말이야. 나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아델린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버지! 아버지! 큰일났어요!”

 

 아델린이 아버지를 찾으며 방을 뛰쳐나갔다.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렌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 * *

 

 분위기는 더 없이 무거웠다.

 

 찬 공기가 충분히 들어왔는데도.

 

 “엘렌, 아델린의 말이 사실이니?”

 

 “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아무것도.”

 

 아델린이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할말을 다 뱉어내는 아델린이었다.

 

 “어쩐지. 네가 헛소리를 왜 그렇게 하나 했... 악! 아버지! 아프다구요.”

 

 아버지가 아델린의 어깨를 잡은 탓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것 처럼 보였는데 제법 악력이 좋은가보다.

 

 아델린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넌 언니에게 ‘너’가 뭐니? 그리고, 언닌 지금 사고 충격으로 아픈데 그렇게 놀려야겠어?”

 

 “아버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야 기억을 더 빨리 찾지 않을까요?”

 

 아델린의 말도 안되는 논리적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다정하게 구는 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구요!”

 

 이어지는 마지막 말에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심각한 상황에 웃으면 안됐지만 말이다.

 

 아델린의 그 말 만으로도 이 몸의 주인인 엘렌과 아델린의 사이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평소 둘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엘렌’이 언니이기는 하지만, 자매 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이 더 강했으리라.

 

 아델린이 ‘야, 너’라고 부르는 것도 아마 ‘엘렌’의 허락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또한 그것을 나무라기는 하지만 크게 타박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이 가족은 처음 느낌 그대로 아주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이 분명했다.

 

 아델린은 사근사근하기 보다는 조금 거칠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성격이리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입가에 웃음이 떠오를 때 즈음 투박한 손이 엘렌의 이마에 닿았다.

 

 “다행히 열은 없구나.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아프지는 않니?”

 

 사랑이 담뿍 담긴 눈을 한 모리스가 물어왔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기억만 없을 뿐이에요.”

 

 엘렌의 옆에 앉아 책을 뒤적거리던 모리스가 말을 이어갔다.

 

 “사고 후유증이라는 구나. 큰 사고가 난 후에는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깨어난다 하더라도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구나.”

 

 “얘는 기억을 완전히 잃은 거로 봐서는 사고의 충격이 꽤 컸나봐요.”

 

 책의 아랫부분을 가리킨 아델린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모리스의 표정이 조금전과 달리 이번에는 더 엄해졌다.

 

 “아니, 언니 말이에요. 엘렌 언니가 기억을 다 잃었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죠. 여기를 보세요. 여기 여기!”

 

 얼른 말을 바꾼 아델린이 급기야는 아예 책을 집어 들고는 또박또박 힘주어 읽기 시작했다.

 

 “사고의 후유증 중 하나는 기억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잃었던 기억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괜찮을 것 같아요. 기억이 다시 되돌아 온다 잖아요.”

 

 두꺼운 책이 무거웠던지 내 옆에 내려놓으며 아델린이 쾌활하게 말했다.

 

 ‘아버지’ 또한 안도의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엘렌. 너무 조급해…”

 

 “물론,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책 페이지를 넘긴 엘렌이 이어지는 내용을 낭독했다.

 

 “그럴 땐 어쩔 도리가 없다. 새로운 인생이 다시 주어졌다 생각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정 불안하면 의사를 찾아가봐도 된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내 낭랑한 목소리에 방안이 싸하게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내가 깨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려던 아델린도 눈이 동그래졌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아버지였다.

 

 “엘렌, 우리 마지막 희망을 놓지 말자꾸나. 의사를 불러와야겠어.”

 

 * * *

 

 쾅쾅!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려댔다.

 

 하지만 닫힌 문은 열릴 줄 몰랐다.

 

 “티에리! 안에 있는가? 티에리!”

 

 “누가 이렇게 세게 문을 두드리는 거야? 모리스? 무슨 일이야?”

 

 “미안하네 티에리. 우리 집에 같이 좀 가줘야겠어.”

 

 문을 두드린 이는 엘렌의 아버지 모리스였다.

 

 모리스의 얼굴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다급한 얼굴은 피에리로 하여금 차마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리스의 집을 찾은 후에야, 더 정확하게는 엘렌을 보고 난 후에야 티에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엘레오노르. 내가 누군지 알겠니?”

 

 “……”

 

 엘렌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델린이요.”

 

 “네 아버지의 이름은?”

 

 “……”

 

 몇 가지의 질문이 끝났다.

 

 더 이상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티에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리스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져 나갔다.

 

 물론 이것을 엘렌에게도 아델린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엘렌도 아델린도 그의 표정을 읽은 후였다.

 

 “엘레오노르. 네 아버지의 이름은 모리스란다. 여긴 몽타르도란다. 크로이카의 남동쪽이지. 그리고 넌 황후…”

 

 “이봐, 티에리.”

 

 모리스가 다급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직접 이야기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를 알아챈 티에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오노르. 식사 잘 하고, 푹 쉬다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 있단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티에리가 안정적인 어조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더 정확히는 모리스를 안심시키는 이야기였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괜찮아. 새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너의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면 된단다.”

 

 하지만 뒤 이어 말 한 내용은 다시금 모리스를 절망에 빠뜨리는 이야기였다.

 

 책의 그것과 똑같았다.

 

 만약 기억이 돌아오리란 확신이 있다면 저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왕진가방을 챙긴 티에리가 작별인사를 하고는 따뜻한 방을 나섰다.

 

 “티에리 오늘 일은 말일세…”

 

 “모리스 걱정말게. “

 

 듬직한 티에리의 말에 모리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것은 마을 주민이자 친구이자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공감하는 것이었다.

 

 * * *

 

 모리스와 아델린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본 내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기억이 하나도 안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죠. 어쨌든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고, 아델린도 나를 지켜주고 있잖아.”

 

 당혹감이 가득했던 아버지의 얼굴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이내 그 눈에 눈물이 고이기 까지 했다.

 

 “엘렌! 그래. 이젠 이 아비가 너를 지켜주마. 넌 더 이상 희생하지 않아도 돼.”

 

 코를 훌쩍 거리던 아델린이 심퉁을 부렸다.

 

 “그래! 뭘 혼자 다 짊어지려고. 그리고 내가 언제 너를 지켜줬냐?”

 

 “난 다 알고 있어. 내가 이 방에 누워만 있을 때 네가 계속 문 앞을 지켰다는 것을 말이야.”

 

 화들짝 놀란 모리스와 아델린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내 누워있기만 한 ‘엘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까?

 

 그리고 이런 표정과 이런 말은, 사고가 나기 전 ‘엘렌’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변한다더니. 너 정말 죽다 살아난 게 맞구나!”

 

 “이 녀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심스럽게 내 이마를 짚고 손을 어루만지던 투박한 손이 아델린의 머리 위로 강하게 내려앉았다.

 

 “악! 아버지!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

 

 “이 녀석이! 그래도 언니에게! 겨우 깨어난 네 언니가 안쓰럽지도 않니? 그런데도 장난질이야!”

 

 이내 아델린은 좁은 방에서 모리스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렵하게 놀렸다.

 

 모리스는 어림 없다는 듯이 길고 두꺼운 팔을 휘두르며 아델린을 잡기 위해 쿵쿵 몸을 움직였다.

 

 도무지 환자가 있는 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아버지.”

 

 자그마한 소리에 소란스러운 몸짓이 순식간에 멈췄다.

 

 “아델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아무래도 기억을 찾는 데는 아델린과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역시 엘렌이…! 아니! 언니가 현명해! 그러니까 황후 후보까지 올라갔지!”

 

 “이 녀석! 엘레오노르. 이 녀석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

 

 기어코 아델린의 뒷덜미를 붙잡은 아버지가 이마에 ‘콩’ 소리가 나게 손을 퉁겼다.

 

 “이 아비와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 어떻겠니?”

 

 “아버지와는 조금 천천히요.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시면 저와 아델린 둘만 집에 남지 않았나요? 그럼 아델린과 보낸 시간이 더 많을 테니… 우리 둘이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이 아비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 하렴.”

 

 혹시라도 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들겠다고 할까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오노르. 그리고 아델린. 엘레오느르가 기억을 잃은 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꾸나. 혹시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호사가들의 입 방정에 놀아날 수도 있어. 그리고…”

 

 방을 나서던 아버지가 멈칫거리더니 당부했다.

 

 “네.”

 

 장난기 그득하던 아델린이 이번만은 엄숙하게 대답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 * *

 

 어색한 공기가 방안을 뒤덮었다.

 

 아델린과 서로 마주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작 둘만 남게 해달라고 말한 것은 나인데 어쩜 이렇게 어색한지.

 

 그럴 만도 했다.

 

 황후였을 때는 황후 궁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대화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곁을 지키던 시녀 마르가리타가 있었지만, 그녀는 대화 상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꼭 이야기를 해야할 때, 그러니까 내가 황후로써 위엄을 보이지 않을 때하는 잔소리가 전부였다.

 

 서로가 진지하게는 물론이고 농담을 해 본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나마 대화상대가 있었던 것은 샤를을 대신해 수업을 듣거나 마법군에 있을 때였지만, 그 마저도 너무 오래전이었다.

 

 이젠 대화하는 법도 다 잊었다.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이렇게 멀뚱멀뚱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기, 아델린.”

 

 “응?”

 

 “어… 사실… 나는 황후였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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