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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실의 끝맺음
작가 : allzero
작품등록일 : 2022.2.23

1930년, 경성. 나라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하던 그 날의 어디선가 만나 아무도 모르게 붉은 실로 얽힌 이들의 이야기.

 
#5. 공허한 사막 위를
작성일 : 22-02-25 17:02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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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연진: 하람이는?

 연진의 집안 일손1: 그게...아직 안..들어 오셨습니다.

 늦은 밤, 연진의 본가에서는 하람의 행방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해월관에서 일본 고위 대작들의 모임에 인사를 드리라고 보냈것만, 모임이 끝나고 한 시진이 지나도록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하람의 행동에 연진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덕분에 집안 일손들만 눈칫밥에 가시방석이였다. 그때,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집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신아에게 손수건을 주었던 그 사내였다. 연진의 아들 하람이였다. 하람의 모습에 일손 몇몇이 하람에게 달려갔다.

 연진 집압 일손 1: 하, 도련님. 도대체 어디 계시다가 지금 오십니까. 아까부터....

 고연진: 따라 들어와라.

 일손이 호들갑을 떨며 하람에게 하는 말을 가차 없이 끊고 낮은 어조로 하람을 부르고는 집안으로 들어가는 연진.

 고하람: 들어 가볼게. 걱정하지 말고.

 일손들이 화가 많이 난 연진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듯 하람을 쳐다보자 하람은 괜찮다는 듯 얕은 웃음을 보여주고 연진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고연진: 어딜 갔다 온 거니.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던 연진은 되려 차분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연진의 태도에 하람은 숨이 막혔다.

 고연진: 대답해!

 하람이 대답을 안 하자 그제서야 조금은 강압적인 말투로 하람을 다그치는 연진.

 고하람: 좀 걸었습니다.

 고연진: 해월관에는 왜 가지 않았고,

 고하람: 좀 걷는라 못 갔습니다.

 하람의 당당하고 무덤덤한 태도에 연진은 되려 어이가 없었다.

 고연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할아버지가 널 위해 만들어주신 자리였다. 혹여 오늘 일로 기분이 상하셨으...! 하아...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을 쏟아붓던 연진이 인상을 찡그리고 할 말을 멈추며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고연진: 하람아.

 고하람: 예 아버지.

 고연진: 다른 건 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할아버지 눈 밖에 날 짓은 하지 마라. 절대 그 분을 실망시키면 안돼. 절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고하람: 예...아버지.

 대답을 하는 하람의 목소리에 아무런 힘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냥 그저 예의 상 하는 대답이였을 뿐이다. 연진을 위해서.

 고연진: 그래. 오늘 일은 네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둘러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보거라.

 연진에게 작은 목례를 하고 방을 나오는 하람의 어깨가 무거운 듯 처져 있었다. 하람은 친일파 집안의 3대 독자였다. 조선 인이였지만 이 집에 태어난 이상 단 한 순간도 조선 인으로 살아 갈 수 없고 평생 일본인들에게 고개 숙이며 아양이나 떨어야 하는 게 하람이 살아가야 할 인생이였다. 친일파 집아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할 비난과 손가락질도 감수해야 했다. 하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키울 수도, 꿈꿀 수도 없는 넓고 외로운 집에서 그저 집안의 제일 어른인 만형의 뜻과 가르침대로 살아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어릴 적에는, 반항을 할 용기도 이유도 없었지만 이제는 가끔 숨이 막혔다. 하람은 그저 늘 공허했다. 자신이 사는 이유도, 어떤 걸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마치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크고 광활한 사막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였다. 하지만 하람의 할아버지인 만형의 욕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 만 갔고 그 욕심이 욕망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 순간 하람은 포기했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만형의 욕망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 마루에 걸터앉아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수건을 찾는 하람.

 고하람: 아 맞다....손수건....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이 태어나던 해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든 손수건이라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그리워할 추억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없었지만 하람은 가끔 생각했다. 자신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평생 하람이 느끼고 있는 이 공허한 기분도 조금은 괜찮았을까 하고. 연진에게 어머니에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때마다 연진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니 대답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런 기억도 없어서 슬퍼하지 못하는 하람과는 다르게 연진은 마치 어제 일처럼 하나하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기에 슬펐고 하람 앞에서는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을 피했다. 하람 또한 더 이상 연진에게 어머니 얘기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고 외로울 때 마다 기억 속에 있지도 않는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하람에게는 손수건이 어머니 대신이였고 자신에게도 남들처럼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아 매일 가지고 다녔던 손수건이였다. 그런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덥썩 남에게 줬다는 걸 연진 에게 들키면 잔소리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진의 잔소리는 둘째 치고 자신에게도 소중한 물건임에도 하람은 자신도 모르게 손수건을 냅다 신아에게 준 것에 그제서야 의문이 들었다. 그때는 그저 신아의 손에 있는 상처만이 보였고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신아 에게 손수건을 둘러주고 있었다.

 고하람: 하아....다시 만날 수 있긴 한 거냐. (자신의 손을 보며) 손수건.

 신아의 이름을 몰랐던 터라 신아를 손수건이라 지칭하며 자신의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으며 신아의 손에 손수건을 둘러줬던 순간을 떠올리는 하람. 같은 시간, 신아는 자신의 방 서랍장에 손수건을 잘 개서 놓아 놓고 서랍을 닫으려다 손수건을 다시 꺼내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람이 손수건을 찾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걱정하며 바랬다. 자신에게 준 손수건이 하람에게 소중한 물건이기를. 그래야 하람이 자신을 찾으러 올 테니까.

 
작가의 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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