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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새 세상
작가 : 지니0
작품등록일 : 2022.2.13

'새 세상'은 핵전쟁 이후. 지구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두 세계, 화이트마타와 그레이마타. 그 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기적 문명의 실체를 그린 SF스릴러 작품이다. 인간 안에 내재된 자유와 존엄에 대한 갈망,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신인류의 음울한 단면 그리고 우생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선별해 종의 영속성을 추구한 설계자가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 그려보았다.

 
제 13 화
작성일 : 22-02-18 17:12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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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라와 드레아

 

 [파리에탈 지역구. 제1집단보육원]

 

 젤라가 조심스럽게 약품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 창으로 스며든 희미한 불빛 속에서 냉장 보관중인 약품들이 보였다. 젤라는 보관함 문을 열어 허겁지겁 약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동생 이 중에 레아를 살릴 수 있는 약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자이러스 마을 주민들에게 언젠가 꼭 필요한 약들이었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젤라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빠른 시간안에 최대한 주워담아야 한다.

 그때 분주하게 오가던 그녀의 손길이 멈칫했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젤라가 재빨리 돌아 보려는데 누군가 말했다.

 "움직이지 마. 양손은 머리 위로."

 남자였다. 그녀의 뒤통수에 딱딱한 물체를 겨누고 있었다. 젤라가 양손을 들었다.

 "넌 누구지?"

 어둠 속 목소리가 물었다.

 "…"

 "뒤돌아."

 젤라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앞에 빛을 등지고 선 자가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었다. 구석에서 또다른 인기척도 느껴졌다. 둘? 아니 셋인가?

 "누구냐고 물었어."

 야구모자가 말했다.

 "…"

 젤라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상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앳된 얼굴의 사내아이였다. 드레아보다 어려보였다. 젤라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호기심 삼아 보육원을 휘젓고 다니는 말썽꾸러기들? 아니면 약을 훔치러 온 자들?

 젤라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꿀릴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뭐가됐든 한밤중에 숨어다닌다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는 증거였으니까.

 "혹시 화이트마타라고 들어봤어?"

 "저 바깥? 거긴 병신들만 산다고 들었는데?"

 "맞아. 병신들, 온갖 질병에 달고 사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으윽."

 구석에 여드름 투성이 얼굴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는 거울도 안보나.

 "어서 신고해버리자. 바리어스를 옮길지도 모르잖아."

 "잠깐 기다려봐. 그런데 화이트마타 사람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다시 야구모자였다. 날선 호기심이 느껴졌다. 젤라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내 동생이 너희 그레이마타인들이 설치해 놓은 폭탄에 맞아 다쳤어."

 "폭탄?"

 "생명이 위급해. 니오븀 광산에서 일하다 지뢰를 밟았거든."

 젤라는 최대한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치료해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너희들은 원래 얼마 못산다고 들었는데?"

 여드름이 말했다.

 "맞아. 오래 못살아. 하지만 고작 7살 밖에 안되었는데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아."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젤라의 얘기에 어린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침묵하고 있던 덩치가 물었다. 그러자 여드름이 끼어들었다.

 "어쩌면 약을 훔쳐다 암시장에 팔려는 건지도 몰라. 화이트마타인들은 공기 빼고 뭐든지 훔친다잖아. 그냥 신고하자."

 "아니면 하이포피시스 사에서 나온 첩자인지도 모르고."

 덩치가 말했다. 그의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이포피시스인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신고하면? 저 여자를 어떻게 찾았다고 말할래?"

 야구모자가 여드름에게 따지는 듯했다.

 "그야… "

 "요노한테 데려가자. 요노라면 이 여자가 첩자인지, 진짜 화이트마타에서 온 자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덩치가 말했다.

 그때 방 안에 적색 경고등이 켜지더니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생겼나봐."

 창문으로 복도를 기웃거리던 여드름이 말했다.

 "사람들이 오고 있어. 어서 나가야 해."

 그러자 덩치가 물었다.

 "그럼 저 여자는?"

 망설이다 야구모자가 말했다.

 "일단 데려 가자."

 

 

 :::

 

 

 드레아는 칼시토가 일러준 약을 챙겨 복도로 나섰다. 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핀 후 걸음을 서둘렀다. 복도 중간쯤 가고 있는데 사무실로 보이는 문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뙤창으로 알록달록 조명 불빛도 새어나오고 있었다. 드레아는 무시하기로 하고 그 앞을 지나쳤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문 가까이 다가갔다.

 손잡이를 살짝 돌려보니 의외로 쉽게 문이 열렸다. 저 안에 흰 가운을 입은 어떤 남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게 보였다. 사방에서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커플로 보이는 한 쌍이 행복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사무실 안은 잔잔한 음악소리 뿐 모든 것이 잠잠했다. 남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자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드레아는 그냥 무시하고 다시 복도로 나가서 젤라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두 다리는 움직일 줄 몰랐다. 오히려 자꾸만 남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윽고 드레아는 남자 옆에 섰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무언가에 놀란 듯 허공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탁한 눈동자와 창백한 피부, 입술 주변에 남은 하얀 거품 자국.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남자가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레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 제 발에 걸려 바닥에 넘어졌다. 겁에 질린 드레아는 곧장 패닉 상태에 빠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네 발로 복도로 기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때 반대편 복도를 지나가던 직원이 소리쳤다.

 "거기 누구야!"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란 드레아가 건물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복도 끝까지 달려 모퉁이를 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팔 하나가 튀어나와 그의 입을 막고 어느 방안으로 잡아넣었다.

 드레아는 미친놈처럼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광포한 손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으라고!"

 드레아가 몸부림을 멈추었다.

 "젤라?"

 "그래, 나야, 이 멍청아."

 돌아보니 젤라가 그의 뒤에 있었다. 드레아에게 한 방 맞았는지 턱을 받치고 있었다.

 "또라이 새끼. 여기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제, 젤라. 저, 저기 시체가 있어."

 "헛소리나 지껄이고. 내가 널 가만 두지 않는다. 기필코."

 "아니, 아니야. 진짜라고. 저기 어떤 남자가 죽어 있다니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잔데?"

 돌아보니 젤라 말고 여럿이 있었다. 변성기에 접어든 사내아이들이었다.

 "시체, 시체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이렇게 입을 벌리고 죽어 있었다니까."

 루저회 아이들이 놀라 물었다.

 "당신,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라니까!"

 "서, 설마…"

 아이들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하이포피시스 놈들 짓이 분명해."

 젤라가 한쪽 눈썹을 치켜 뜨고 물었다.

 "하이포피시스가 뭐야?"

 "제약회사. 거기 우두머리가 애들한테 이상한 약을 먹여."

 "애들을?"

 "그래. 현자라고 있어. 아무튼 그레이마타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야."

 "그 자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당연하지. 그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어. 살인자야. 몹쓸 약을 만들어서 보육원 아이들한테 먹이고, 그 방침에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야구모자가 드레아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봤다는 시체… 여기 보육원 직원이야. 하이포피시스 놈들 몰래 우리를 도와주던 사람이고."

 "요노라는 남자…?"

 젤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아. 현자의 부하들이 요노까지 죽였어. 다음엔 우리 차례인지도 몰라."

 여드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드름 뿐이 아니었다. 야구모자, 덩치 모두 겁에 질렸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루저회 아이들에게 화이트마타 계집 따위는 이제 관심 밖이었다.

 젤라는 지금이 동생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그냥 떠나서는 안될 것 같았다. 몸만 웃자랐을 뿐 아직 여리고 순진한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게 영 꺼림칙했다.

 젤라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우릴 하이포피시스로 데려다 줘. 아, 그 전에 장난감 파는 곳을 아니? 밟으면 펑 하고 터지는 장난감 말이야."

 그 말을 하는 젤라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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