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골짜기가 점차 가까워졌다.
알파를 선두로 한 가디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이시스가 손짓했다.
에단이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크르르~
아니발 왕국의 국경선을 넘어오는 오크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서 30여 마리 수준의 소규모 부대였다.
알파를 포함한 가디언들이 녀석들의 뒤로 돌아 들어갔고 이시스가 앞을 가로막으며 등장했다.
이시스와 오크 한 마리의 눈이 마주쳤고 화살이 녀석의 머리를 관통했다.
크악!
오크들이 이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게 달려가던 오크들 두 마리가 다시 날아온 이시스의 화살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알파와 나머지 가디언들이 뒤에서 나타났다.
오크들의 시선이 흔들렸고 가디언들은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서걱!
챙!!!
순식간에 가디언들의 압살이 시작되었고 오크들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에단!!!”
숲으로 도망가는 몇몇 오크들을 발견한 이시스가 외쳤다.
풀숲에서 숨어있던 에단과 훈련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비드! 들어 올려!!!”
오크가 달려가던 길목에서 팽팽한 줄 하나가 튀어 올라왔고 녀석은 바닥에 엎어졌다.
“핀!”
핀이 창으로 마무리 지었다.
에단은 오크가 휘두르는 검을 몸을 숙여서 피해내고 반동을 이용해 녀석의 몸을 사선으로 베었다.
“얘들아! 모여!!!”
에단의 명령대로 훈련생들이 각자 방패를 들고 몰려들었다.
그와 동료들은 오크들을 가디언들 가운데로 점점 몰아갔다.
“이 버릇 없는 오크들아! 이곳을 지나려면 우리에게 허락을 맡고 가야지!”
가야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오크들을 무참히 베어나가고 있었다.
마치 살육에 미친 미치광이 같았다.
알파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크 무리를 마법을 이용해 옆으로 밀어버리고는 자신의 검을 던져 이시스의 뒤로 다가가는 오크를 명중시켰다.
이시스는 엘프 특유의 유연함을 이용해 놈들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의 화살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에단이 승기를 잡은 듯 보이자 오크들 사이로 달려갔다.
나머지 일행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빠르게 에단의 뒤를 따라갔다.
“이야앗!!!”
가디언들과 훈련생들에 의해 오크 부대는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을 무렵 마지막까지 숨어있던 오크가 알파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알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푸른빛의 검이 날아왔다.
알파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오크가 머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부르르 떨고 있었고 검이 옆 나무에 박혀있었다.
에단의 눈에 백발의 보라색 눈동자, 앨리슨이 들어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앨리슨 뒤편으로 말을 타고 천천히 합류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빗세라와 에드가였다.
“앨리슨!!! 살아계셨군요!”
알파를 비롯한 가디언들이 그를 반겼다.
앨리슨은 가디언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백전노장이자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알파, 이시스, 다들 무사했군.”
앨리슨이 가디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던 중 숨을 고르고 있던 에단과 눈이 마주쳤다.
“에단 아르테스?”
앨리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당신이 왜 여기있나.”
“가디언이 되고 싶답니다.”
이시스가 끼어들며 말했다.
앨리슨의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에단을 몇 초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하지드’가 부활했다. 내 뒤에 저분들은 마지막 남은 마법사들이다. 우린 이제 저들과 함께 ‘하지드’에게 맞서야 해.”
가디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은 나무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고 고대어 글씨가 보였다.
‘이걸 여전히 가지고 있군.’
“앨리슨, 이 검 당신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 이건 인간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이라고도 했지.”
앨리슨이 에단의 손에서 검을 다시 받아 갔다.
에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빗세라와 에드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나머지 마법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오?”
“모두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단의 질문에 빗세라가 참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베일리로 마찬가지요? 그는 내 왕국의 자문관으로 있었소!”
“...”
빗세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입술을 깨물며 주먹으로 나무 기둥을 한 차례 가격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마법사 사무엘이 우리를 배신했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 같더구나.”
앨리슨이 사무엘의 배신 소식을 전하자 가디언들이 웅성거렸다.
“이제 우린 혼자다. 가디언 스스로를 지켜야 해.”
“아니, 엘프들과 드워프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과 함께 연합하면...”
“그들과의 연합이 큰 도움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들 덕분에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쇠약해지고 몰락했으니. 하지만, 그들도 조만간 ‘하지드’에 대항하기 시작하긴 하겠지... 무너지고 있는 인간 왕국을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슨이 에단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앨리슨,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떡합니까?”
“우리는 놈들이 ‘후시 화산’의 산맥을 넘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
.
.
한편, 북부연합의 진영
아이작의 작전이 먹혀들고 몇 번의 전투가 더 거듭되었다.
파죽지세로 칼라덴의 군대를 몰아세웠고 평야 지대 밖으로 밀어내기 직전의 상황까지 도달했다.
“젊은 왕의 패기 넘치는 작전으로 놈들이 적잖이 당황한 것 같습니다!”
영주들 사이에서 아이작에 대한 호평이 오갔다.
하지만, 웃지 않고 있는 자가 한 명있었다.
“아이작의 도전적인 전략이 지금까진 잘 먹혀들었지만, 저들은 다시 힘을 모아서 진격해 올 겁니다.”
그레고리가 말하자 영주들이 그를 바라봤다.
“후속 병력이 들어오면 그땐 또 상황이 달라지겠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소. 그레고리?”
아이작이 그에게 물었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이번 작전에서 콜란 왕국이 앞장서는 일이 많았소. 그만큼 병사들이 지쳤고 피해도 컸고... 알다시피 놈들이 조금만 방향을 틀어 진격하면 여차하면 우리 본토요. 우린 확실한 동맹의 약속과 보답을 원하는 바입니다.”
아이작이 몸을 고쳐 앉으며 그레고리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 아이작의 리더쉽이 의심스럽소. 조금 더 전쟁 경험이 많은 이가 연합을 이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오.”
그레고리 편에 앉아있던 콜란 왕국의 영주가 말했다.
“지금의 승기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령관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가이오. 그레고리.”
램프티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영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누구를 세우길 원하오?”
아이작이 조용히 그 영주를 바라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영주가 그레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레고리 햄슨 폐하를 추천합니다. 그는 평야 지대에서의 전투와 갖은 전투에 능한 사령관입니다. 전쟁의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램프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막사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 그레고리가 입을 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신뢰를 주십시오. 최소한의 신뢰... 혼인 동맹을 요청합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아이작과 램프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당신에게는 결혼시킬 자식이 없지 않소?”
한동안 막사는 침묵이 흘렀다.
그레고리 햄슨은 아이작의 여동생, 필리아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이작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을 지금 이 급박한 전쟁 통에 해야 하오? 그리고 필리아 공주님은 고작 20살이오!”
그레고리의 나이는 66세를 넘기고 있었고 아직 부인과 자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납득할 수 없었던 램프티가 언성을 높이며 그레고리에게 다가가려 했다.
“램프티, 그만하게.”
아이작이 그의 팔로 램프티를 막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내용이라서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곧 닥칠 전투까지만 시간을 주게... 우선 자네에게 다가오는 전투의 전략을 맡기겠네.”
아이작이 고심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 턱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북부연합은 다시금 전투를 계획했다.
이번에는 야간 기습 작전을 할 생각이었다.
야심한 시각, 그레고리가 급습을 지휘했다.
“읍!!?”
램프티와 아이작이 이끄는 별동대는 칼라덴 진영의 보초병들을 제압했다.
램프티가 횃불을 가리켰고 별동대들이 칼라덴의 식량고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이야!!!”
“적군이다!!!”
칼라덴의 진영을 깨우는 요란한 나팔소리가 들렸다.
“지금이다! 공격하라!!!”
그레고리가 이끄는 기마대와 병사들이 칼라덴의 막사를 가로질렀다.
칼라덴의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에단과 램프티는 홀더 제이드가 있을 만한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홀더 제이드는 물론이거니와 헨리 호크만과 다른 영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막사 밖으로 나와서 그레고리를 불렀다.
“지휘부가 사라졌소. 그레고리!!!”
“뭐요?”
그때였다.
횃불로 밝혀진 칼라덴의 진영에 별안간 불화살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들리더니 다른 한쪽에서 처음 보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진영으로 뛰어 들어왔다.
맨 앞에서 하프 시구르드손이 용병들을 이끌고 있었다.
“놈들을 진영 밖으로 몰아내자!”
그의 지휘하에 용병들이 신속하게 전진했다.
경량화된 갑옷을 입은 덕분인지 용병들의 몸놀림이 가벼웠고 북부 연합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레고리! 후퇴 명령을 내리시오. 놈들의 후속 병력이오!!!”
그레고리가 상황을 살피고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후퇴하라!!!”
그레고리 휘하의 병사들이 진영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화르르륵!
끄아아악!!!
거대한 불길이 그들을 덮쳤다.
그레고리가 가까스로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서 산채로 화장되는 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 아서 나오게!!!”
아이작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레고리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불길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불길 뒤편으로 라드나가 그를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