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이 그의 눈을 찔렀다.
그는 요상하게 생긴 자루에 싸인 채 작은 수레에 실려 가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으윽.”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하려 했지만, 자루에 담긴 몸이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의 생물이 수레를 끌고 있었다.
“하나가 아닌데?”
그는 수레 주위에 그것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고 비쩍 마른 몸에 뾰족한 귀.
모두 비슷한 생김새였다.
‘저건 또 뭐야?!!’
에단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자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이거 풀어!!! 날 놔줘. 제발!”
뜻대로 자루에서 벗어날 수 없자. 녀석들에게 애원했다.
그러자 놈들은 에단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다시 주변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나무 잎사귀들과 맑은 하늘뿐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에단은 다시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친구들?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도라도 알려줄 수 있을까?”
그 순간, 수레가 거칠게 멈춰 섰고 에단은 수레에서 굴러떨어졌다.
“크헙!”
그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채 하늘만 바라봐야 했다.
“이게 무슨?!!”
그의 눈앞에 한 녀석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야 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뾰족한 귀, 더러운 피부,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
그 짐승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리더니 또 다른 자루로 에단의 머리를 덮어버렸다.
‘젠장...’
뾰족한 귀의 짐승들이 그가 담긴 자루를 질질 끌고 갔다.
서로 재잘거리던 녀석들은 자루를 바위틈의 구멍으로 굴려 넣었다.
“악!”
“욱!”
“앗!”
울퉁불퉁한 곳을 굴러 내려갔다.
한참을 구르다가 푹신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에단은 숨을 몰아쉬었다.
.
.
.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번에도 그의 눈앞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으악!!!”
놀란 나머지 손을 강하게 뻗으며 그 형체를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놨다.
“으아아악! 같은 사람이오. 사람!”
그 형체도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웬 거지꼴의 비쩍 마른 남자가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여기는 대체 어디요? 당신이 날 데려왔소?”
“내가? 흐흐흐흐 내가 말이오?”
에단의 질문에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게 젊은이, 여긴 감옥이야! 감옥!!! 나도 당신과 같이 갇힌 신세라고. 흐흐흐흐.”
거지꼴의 그 사람이 이번에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옥?”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로 된 창살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창살 밖에는 횃불이 늘어선 복도가 보였다.
감옥치고는 너무 대충 지은 것 같았다. 에단이 갇힌 곳은 마치 땅굴을 파다가 멈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혹시 칼라덴의 감옥이오?”
에단의 질문에 그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아니, 그곳보다 더 한 곳이지! 아직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나?”
“그게 무슨 소리..”
쿵!
“끄아아!!! 이거 놔!”
복도 끝에서 웬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에단이 창살 가까이 다가가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칼라덴 왕국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무언가에 끌려 나가고 있었다.
“여긴 식당이야. 식당! 맛있는 식당.”
라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어갔다.
분명히 그는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미친것이 틀림없었다.
“친구~, 나도 배가 고파. 아주 많이!”
그가 입맛을 다셨다.
“저기 끌려간 병사는 대체 뭐지? 어떻게 되는 거야! 여기는 대체 어디냐고!!!”
에단이 목소리를 높였다.
“요리...”
남자가 그의 눈치를 봤다.
“하...”
에단은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래, 미친 사람한테 말 걸어서 뭐 하냐...’
온몸이 쑤셨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졸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고개가 몇 번 떨구어졌다가 올라왔다가를 반복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거지꼴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 보였다.
“뭐.. 뭐요?!”
그가 과도하게 가까이 다가오자 무릎을 당겨서 앉았다.
여전히 그는 에단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오.”
“살이 저보다 많이 찌셨군요. 잘 먹고 자랐나 봅니다?”
계속해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픈데...”
“...”
“당신의 그 살이 오른 발가락 하나만 먹어도 되겠소? 흐흐흐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자 에단은 소름이 돋았다.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야!”
남자가 점점 다가왔다.
“살려줘!!! 꺼지란 말이야!”
그를 밀쳐내고 무기로 삼을 것을 찾아보았지만 잡을 만한 것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다가오는 그를 발로 걷어찼다.
“으악, 흐흐흐흐. 배고프단 말이오. 배고파!!!”
에단은 그가 한 번만 더 다가오면 다리나 팔을 부러뜨릴 작정이었다.
그때, 창살이 벌컥 열리더니. 에단을 수레에 싣고 왔던 녀석과 똑같이 생긴 녀석 4마리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그들이 가지고 온 몽둥이로 남자의 다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끄아아!!! 아직 나 살 안 쪘단 말이야. 저 녀석을 데려가. 저 녀석을 데려가라고 난 먹히기 싫어!”
남자가 외쳤다.
하지만, 그의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녀석들은 그의 두 다리를 묶어서 끌고 나갔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형과 떨어진 것, 그리고 거대한 트롤을 피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젠장.. 대체 여긴 어디고 저건 정체가 뭐야!”
멀리서 남자의 마지막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안돼!”
다시 벽에 기대어 앉았다.
‘여기서 나가야 해.’
탈출할 수 있는 환경인지 꼼꼼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감옥 안은 창문은 없고 온통 누런 흙들과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들뿐이었다.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지하구나.’
통로를 내다보니 외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창살 밖으로 어떻게든 나가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은 척을 해야 할까? 그럼 나를 밖으로 꺼내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창살을 부여잡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살아계실까? 전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눈이 감겼다.
덜컹!
에단의 눈이 다시 떠졌다.
‘아아..’
녀석들이 이번엔 5마리가 들어왔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그는 포기한 듯 몸을 축 늘어뜨리고 놈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좁고 긴 통로를 걸어갔다. 길 끝에서 다다르자 거대한 지하 광장이 보였다.
광장 가운데에는 전에 봤던 트롤과 같은 덩치의 또 다른 녀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살집이 있고 크기만 컸지, 자신을 끌고 가고 있는 녀석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놈들이 그의 무릎을 꿇렸다.
에단이 고개를 들어 덩치 큰 녀석을 쳐다봤다.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 왕이구나?’
에단의 팔은 발려져서 양쪽 기둥에 묶였다.
그의 상의는 반쯤 벗겨져 있었다.
눈앞에 기다란 나무통이 보였고 그것은 또 다른 작은 통로를 따라 밑으로 연결되어있었다.
피가 조금 고여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가 식탁.. 이구나.’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우당탕!
키야악!!!
녀석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 몇 차례 땅바닥에 내리꽂히더니 광장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녀석들이 시체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때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콰지직!!!
쿵!!!
소리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쿵! 쿵! 쿵!
통로 쪽에서 거대한 그림자 여러 개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들이 달려갔다.
키아악!!!
몇몇 놈들이 튕겨 올라오더니 땅바닥에 그대로 꼬라박았다.
“흐앗!!! 징그러운 벌레들아! 이곳에서 또 번식했구나!!! 이러니까 우리 집 지반이 흔들리지!”
우렁차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또 뭐야..’
에단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 콘라드님의 망치를 받으라!!!”
드워프였다.
키는 작았지만, 체구에서 나오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주황색 빛깔의 덥수룩한 수염이 아랫배까지 내려온 드워프가 가장 앞에 서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는 모든 것들이 날아들었던 방향으로 다시 날아갔다.
“콘라드! 저쪽 편에 고블린 여왕이 있어!”
또 다른 드워프가 소리쳤다.
‘고블린? 아, 이 녀석들이 고블린이구나.’
에단은 고블린이 땅속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묘사된 내용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자신의 앞에 침을 흘리면서 앉아있는 이 거대한 녀석이 여왕 고블린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끔찍한 걸..’
드워프들의 기습 공격에 놀란 다른 고블린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깡!
퍽!
에단은 묶인 상태에서 최대한 엎드린 자세를 만들려고 애썼다.
드워프들에게 얻어맞은 고블린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그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퍼억!!!
키아아아악!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고블린 여왕은 팔이 짧았던 탓인지. 버둥거리다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겼다.
고블린 여왕이 침을 흘리고 있던 자리에는 주황색 수염의 드워프가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여왕이 이렇게 약해서야... 마무리가 힘 빠지네.”
드워프가 혀를 차며 뒤로 돌아섰다.
“뭐야, 인간이야?”
에단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오오, 아직 숨이 붙어있군.”
“...”
“내가 풀어는 줄게 걱정하지 말라구. 대신 풀어줬는데, 깨물면 죽어 알겠지? 인간을 좋아하진 않지만, 특별히 한번 봐주도록 하지.”
혼잣말을 길게 중얼거리면서 양팔에 묶여있던 줄을 풀어주었다.
에단이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뭐, 뭐야, 인간! 인간!! 정신 차려 여기서 이러면 남은 고블린들의 먹이가 될 거라고.”
에단은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환장하겠네, 아주... 얘들아, 고블린 창고로 내려가서 반짝이는 것 좀 모아서 나가자!”
드워프가 그를 내버려 두고 떠나려 했다.
“데려..가..”
“응?”
드워프가 다시 돌아봤다.
에단이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불쌍한 인간... 내가 너의 마지막 유언을 듣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군.”
드워프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데려...가 줘... 아니발..”
“뭐? 아니발 왕국? 인간에게? 또 무슨 모욕적인 말을 들으려고 내가 그곳을 가겠나. 인간.”
“급해..”
“뭐가 급해 난 안 급해.”
에단이 힘이 없던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다.
“하지드, 하지드가 깨어... 날 것..”
“하지드가 깨어난다고?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만. 난 간다. 편히 잠드시게.”
드워프가 건성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떠나려 했다.
“... 제발.”
에단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아, 또 마음 아프게 하는군. 또 나의 여린 마음을 건드렸어.”
드워프가 못 이긴다는 듯 다시 돌아가서 쓰러진 에단을 번쩍 들어 업고는 외쳤다.
“가자, 모두 나가!!!”
드워프들은 고블린 창고에서 금품들을 쓸어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