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제 얼굴 보기도 질리는군.”
알버트가 어김없이 방문한 글리터 부자를 맞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글리터 공작이 계속된 야근으로 초췌한 몰골로 섬뜩하게 미소 지었다.
“어허, 알버트.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빌어먹을 케니스, 거울은 보고 사는 건가?”
“그러엄. 매일같이 감탄 중이지.”
“수척하게 늘어진 다크써클이 감탄스럽긴 하군.”
글리터 공작은 떳떳하게 고개를 추켜 올렸지만 제 행색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 듯 빳빳한 동작에 멋쩍음이 서렸다. 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심각하게 피곤했으니까! 단지, 그가 위급한 피곤함을 무릅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새아기는?”
바로, 아실리 지니어스와의 인연이었다.
“헛소리 작작,” 알버트가 에드워드를 인식하고 멈칫했다. “하.” 늘어가는 건 한숨뿐이었다. 저 쓸데없는 소리에 대꾸할 힘도 없었다.
글리터 공작은 최근 들어 점점 야위었다. 지속된 노동을 조건으로 원하는 명령을 얻어내니 응당한 수순이었다.
알버트도 황제에게 숱하게 건의해보았다. 나도 야근하겠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니 이상한 친서 좀 그만 내려라. 그러나 돌아가는 형국에 톡톡히 재미 들린 황제에게 씨알도 안 먹힌 애원이었다. 알버트는 친구 복도, 황제 복도, 나라 복도 없다며 괴로워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았나? 그래도 가족 복은 있으니 족했다. 가족들 지키려고 나라 팔았나 보지, 뭐.
“오늘은 무슨 내용인가?”
알버트가 반쯤 포기한 채로 물었다. 황제의 친서는 매번 내용이 달라졌다. 수학을 가르치라는 커다란 틀은 유지하되 세부적인 사항에 변동이 생겼다.
수학 가르치기, 일명 수학 지옥. 알버트가 글리터에게 유일하게 내릴 수 있는 제일 고통스러운 복수였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꿀 같은 휴일에 수학 수업이라는 더럽고 치사한 명령을 따라야 하는데, 이 정도 복수는 타당했다.
[알버트 지니어스는 케니스 글리터에게 수학을 가르쳐라. 모크니 수도의 지니어스 백작저에서. 그리고 너무 화내지 말라, 알버트. 조만간 휴가 줄게. 아, 이번 주제는 방정식 어떠한가? 힘내게, 케니스.]
이번 친서도 역시. 서식도, 형식도, 말투도, 최소한의 범절도 지키지 않는 제멋대로였다. 그나마 휴가 준다는 구절이 알버트의 분노를 다소 잠재웠다.
사주 전에는 도형, 이주 전에는 확률에 이어서 오늘은 방정식이었다. 알버트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친서를 함께 확인한 글리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시 보니 ‘힘내게, 케니스.’가 유독 유쾌하게 눌러 쓰여 있었다. 방정식이랑 함수는 건들지 않기로 확인했잖아, 폐하 자식아……!
“그제 야근한 보람이 있군.”
“알버트, 자네가……!”
글리터 공작이 망연자실하게 알버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알버트는 흘끗 애처로운 손가락을 보는가 하더니 먼지 털 듯 털어냈다. 글리터를 계속 보낼 거라면 차라리 방정식으로 해달라는 청탁이 잘 먹힌 듯했다. 하하! 방정식이라면 심화를 건드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었다.
“알버트, 무언가 착오가 있던 모양이야. 우리 저번에 못 다한 확률을…….”
“이런, 케니스. 폐하의 명을 따르지 않을 셈인가? 만약 여기서 나간다면 기꺼이 눈 감아줄 의향이 있네만.”
“그럴, 리가.”
글리터 공작이라고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곧바로 내내 야근하면서 천금 같은 휴일을 이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처량한 기색이 잘 나타내주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와 아실리가 다정하게 대화하거나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실리와의 일을 한껏 들떠 이야기해주는 에드워드를 보면, 마지막으로 아실리가 글리터의 일원이 되는 때를 상상하면 오, 없던 힘도 불끈 솟는 듯했다.
공작이 재차 아실리의 자취를 묻고, 알버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공부하는 중인 건가?”
“아마도.”
“좋군. 에디, 오늘도 아실리와 공부 잘하고 오려무나.”
에드워드가 염려스럽게 공작을 살피다가 이내 해맑게 아실리의 방으로 올라갔다. 크, 좋을 때다. 공작의 중얼거림을 들은 알버트가 악독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속 편한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따라오게. 방정식의 모든 것을 알려주지.”
“하, 하하. 알버트, 핼쑥해진 친구 얼굴이 보이지 않나? 살살해주게, 살살.”
“하? 아까는 뺀질한 얼굴 들이밀더니?”
“……잘못했네.”
글리터 공작이 쩔쩔매며 뒤를 따랐다. 알버트의 코웃음이 백작저를 울리듯 널찍하게 퍼졌다.
*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하려나.”
에드워드가 내딛는 걸음걸음에 흥겨움이 묻어났다. 지니어스 백작저가 제 집마냥 익숙해진 에드워드에게 아실리의 방쯤은 이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엔토니가 없었다. 오랜만에 아실리와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정갈하게 떠돌았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에드워드는 다시 한번 똑똑, 노크했다. 분명 방에 있다고 했는데, 문 너머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으음. 아실리, 들어갈게.”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낸 에드워드는 곧 머리를 짚었다. 방 안에는 모크니 제국어, 이웃 나라 세피어닉 제국어, 대륙의 경제, 초자연적 마법, 실생활 수학, 과거와 역사 등 여러 서적이 중구난방 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아실리는 책들 틈에서 『연립방정식은 행복하다』를 읽는 중이었다.
어지럽히는 건지 공부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게 책들을 펼쳐놓고,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누가 업어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누구와 같은 공부 스타일이었다.
에드워드는 주먹 쥔 손에 힘을 풀어내며 후, 심호흡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비슷해서 연상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한 번 그렇게 인식하고 나니 단일한 방향으로밖에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 듯했다. 전생의 죄를 모질게 지은 업보이려니, 에드워드는 공작과의 지방 출정에서 마음먹은 생각을 굳건히 했다.
“아실리.”
“…….”
에드워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크게 그녀를 불렀다.
“아실리, 나 왔어.”
그제야 아실리가 책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해. 집중하느라 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괜찮아. 수학 공부하고 있던 거야?”
에드워드가 숫자와 미지수가 현란하게 쓰인 종이를 한 번, 방바닥을 정신없이 가득 메운 책들을 한 번 훑었다. 아실리가 겸연쩍게 웃으면서 다 읽은 책들을 하나둘 집었다. 에드워드가 자연스럽게 그녀가 들던 책들을 가져가 정리를 도왔다.
“줘, 내가 들게.”
“아, 응. 고마워, 에드워드.”
“네가 수학도 잘하는 줄은 몰랐는데.”
“잘하지는 않아. 그냥 재밌어서 읽고 있던 거야.”
세간에서는 그걸 잘한다고 해, 아실리. 에드워드는 제 앞의 천재를 이해하길 포기했다. 지니어스는 언제나 상식 밖의 존재였기에 이해하려면 피곤했다. 혹은 불가능하거나.
“에드워드는 연립방정식 잘 알아?”
“……방정식이 연립, 되어 있는 거겠지?”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이번 글리터들에게 수학은 쥐약이었다. 수학은 악순환의 표본 같은 과목이었는데, 알지 못하니 진도가 다음으로 나가지 않았고, 계속 더디게 정체되니 성취감이 들 리 없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싫어지고, 싫으면 더 하기 싫은 데다가, 그러니 진척이 되지 않고, …… 결국 수학을 포기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글리터가 예전 주입식 국가에서 학생일 적에 밟았던 수순이었다. 그가 이번 삶에서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상위 열 개에 수학과 과학의 하향평준화가 있을 터였다.
“흠. 혹시 가감법과 대입법이 뭔지 알아?”
“더하기빼기와 넣기…?”
“틀린 말은 아닌데…… 좋아! 오늘은 연립방정식 공부하자. 마침 여기에 흥미로운 문제들이 나오더라고.”
아실리가 『연립방정식은 행복하다』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래층에서 지니어스 대왕에게 털리고 있는 아버지의 낯처럼, 에드워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아실리와 에드워드의 수학천국 또는 수학지옥이 열렸다.
“미지수가 두 개인 연립일차방정식은 미지수가 두 개인 일차방정식 두 개를 한 쌍으로 묶어 놓은 거야. 여기 나오는 연립일차방적식의 해는 두 일차방정식을 모두 만족하는 x, y의 값 또는 순서쌍 (x, y)을 말해.”
에드워드가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아실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었다. 그러자 아실리가 수학을 일일이 적으면서 외우는 과목이 아니라며, 이해만 하면 된다고 그를 말렸다.
‘이해가 안 되니까 적는 거야, 아실리…….’
정말이지, 지니어스들은 너무했다.
“연립방정식의 풀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우선 첫째는 가감법. 연립방정식을 풀 때, 두 방정식을 변끼리 더하거나 빼서, 한 미지수를 없애서 해를 구하는 방법이야. 예를 들면……”
아실리가 책의 어느 페이지를 가리키며 어떤 연립방정식 하나를 가감법을 이용해 풀어냈다. 에드워드가 아, 탄성을 질렀다.
‘조금씩 기억나는 것 같다. 엄청 예전에 배웠던 내용 같은데.’
에드워드가 저편의 기억을 가까스로 끌고 와 아실리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시공간을 거슬러, 에드워드가 에드워드가 아닐 적, 아마 중학교 시절에 배웠던 기본적인 개념이었다. 다행히도 그때까지는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포기했었나?
“두 번째는 대입법이 있어. 한 방정식을 한 미지수에 대하여 푼 후에 그걸 다른 방정식에 대입해서 해를 구하는 방법이야. 한 방정식을 y=(x에 대한 일차식) 또는 x=(y에 대한 일차식)의 꼴로 바꾸고, 그 식을 다른 방정식의 y 또는 x에 대입하는 거야. 자, 여길 봐봐.”
조금 전 가감법을 이용해 풀었던 식을, 아실리가 대입법으로 다시 풀었다. 정연한 풀이를 통해 에드워드의 머리가 데굴데굴 이해에 박차를 가했다.
“응, 이해돼.”
“정말?”
“왜, 못 믿겠어?”
“아니, 아니, 아무리 기본 수학이라지만 바로 이해한다니 신기해서. 원래도 방정식을 좋아했어?”
“그럴 리가.”
에드워드가 해맑은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왠지 뼈가 있는 듯한 해맑음이었다. 아실리의 ‘기본 수학’ 표현에 상처 입은 탓이었다. 언제부터 방정식이 수학의 기본이 되었지? 기본이라 함은 더하기와 빼기, 많이 쳐줘야 간단한 곱셈과 나눗셈 아닌가? 아무리 지니어스 가문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하다지만, 엔토니 지니어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마법에 관하여 유달리 두각을 보였지, 다른 분야에서는 일반인들과 똑같이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아실리 지니어스는 역사에 능통한 줄 여겼건만, 수학도 그렇고 아주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다. 삶을 한 번 더 살고 있는 그보다도.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에드워드? 내 말 듣고 있어?”
“어? 어어. 잘 듣고 있지.”
아실리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에드워드가 슬쩍 피했다. 차라리 사실대로 안 듣고 있었다고 대답할걸. 눈치챘나?
“그러면 두 일차방정식을 변형했을 때, 미지수의 계수와 상수항이 각각 같거나 미지수의 계수는 같아도 상수항이 다른 경우에는 해가 어떻게 돼?”
물론 눈치챘다. 아실리는 에드워드가 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거라 예상하고 그를 기다렸다.
“전자는 해가 무수히 많고, 후자는 해가 없겠지. 맞아?”
그가 여유로움을 가장하고 답변을 돌려주었다. 예전 기억을 헤집어보면 저런 말도 안 되는 경우들은 둘 중 하나였다. 해가 많거나 없거나. 50%의 확률이었다. 앞뒤만 잘 찍었으면 되는데.
아실리의 놀란 표정을 보아하니 정답인가 보다. 에드워드는 그제야 진정으로 여유로운 낯을 지었다.
“정말 듣고 있었구나. 오해해서 미안. 허공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네가 다른 생각하는 줄 알고… 괜히 심술부렸네.”
“괜찮아. 내가 좀… 원래 너무 경청하면 종종 허공을 쳐다봐. 충분히 오해할 수 있어.”
입에 침도 안 바른 거짓부렁이었다.
“신기하네.”
순진한 아실리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책장을 넘겼다. 연립방정식에 관한 일차적인 개념들은 모두 살폈다. 하지만 웰컴투수학나라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수학은 작은 개념을 큰 문제에 응용하는 데서 짜릿한 매력을 안겨다 주는 학문이었다. 즉, 문제를 풀어볼 차례였다.
에드워드가 불안하게 떨리는 다리를 움켜잡았다. 기초 문제는 이미 개념을 훑으며 함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다음에 푸는 문제라면, 경험상 활용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정작 실생활에서는 하나도 쓰이지 않으면서, 얼토당토않는 ‘활용’ 수식어로 수많은 학생을 괴롭히던.
“아, 이거 재밌다. 구미호는 머리가 하나에 꼬리가 아홉 개 달려있어. 붕조는 머리가 아홉 개에 꼬리가 한 개 있어. 이 두 동물을 우리 안에 넣었더니 머리가 72개이고, 꼬리가 88개였다고 해. 구미호와 붕조는 각각 몇 마리였을까? 아, 여기서 구미호와 붕조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상 속의 몬스터야.”
“…….”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 걸까? 말이 너무 휘리릭 지나가 알아듣지 못했다. 기억나는 거라곤 구미호, 머리, 꼬리,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상 속 몬스터뿐이다. 원래 마지막을 가장 잘 듣는 법이었다. 요컨대, 에드워드는 아실리가 낸 문제를 이해하긴커녕 제대로 잡아채지도 못했다.
“여, 여기에다 좀 써줄래……?”
아실리가 흔쾌히 종이와 펜을 받아들고 문제를 적었다. 술술 적혀 내려가는 문제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아실리, 너는 정답 알고 있어?”
“응. 읽으면서 풀었어.”
그렇구나……. 에드워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문제를 건네받았다. 지니어스와 인연을 맺은 이상, 그에 걸맞은 의연함을 마땅히 갖추어야 했다.
구미호와 붕조, 머리와 꼬리라. 에드워드가 새로운 종이를 빌려 풀이를 써 내려갔다. 말로 옮기니 까다롭게 들렸던 것이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렵지도 않았다.
“구미호 아홉 마리, 붕조 일곱 마리. 맞지?”
정답이라는 확신이 깃든 되물음이었다. 아실리가 맞다며 장황한 칭찬을 잔뜩 꺼내려는 걸 말리고, 다음 문제를 재촉하듯 물었다. 연립방정식 별거 아니네. 어느 정도 수학에 자신감이 붙어, 어떤 문제이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에드워드의 크나큰 착각이었는데.
“아니! 소금물의 농도는, 소금물의 양분의 소금의 양 곱하기 100이라니까?”
“하지만 아실리, 소금의 양을 모르잖━”
“오, 에드워드. 우리 조금 전까지 얘기했잖아. 소금의 양은, 100분의 소금물의 농도 곱하기 소금물의 양이라고!”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에드워드가 도망가려는 제정신을 겨우겨우 붙들어 잡았다. 소금, 소금, 지긋지긋한 소금! 다 같은 소금인데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
“아실리,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그런데 우리가 소금물의 농도를 모르잖아. 이거 문제가 이상한 것 같아.”
“그러니까!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해?”
“포…기……?”
“에드워드, 재미없는 농담이었어.”
애당초 농담이 아니니 재미있을 리 없었다. 『연립방정식은 행복하다』? 오, 에드워드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앞의 선생님이 너무나 열정적이라 잘 수도 없는 수업이었다.
“우리가 소금물의 농도를 모르니까 바로 그걸 미지수로 삼아야지!”
“아, 들… 그만 집에 가자…….”
때마침 글리터 공작이 방문을 열었다. 서너 시간 사이에 폭삭 늙은 듯했다. 그의 눈에, 극한으로 머리를 싸매는 에드워드와 수학이라는 매로 그를 때리는 아실리가 들어왔다. 불과 십여 분 전 그와 알버트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 아버지…….”
부쩍 해쓱해진 글리터 부자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아실리의 아쉬운 시선이 등 너머로 맹렬히 느껴졌다. 동변상련 글리터들을 보고 알버트가 만족스럽게 씨익 웃었다. 역시 내 딸이야.
“벌써 가는 거야, 에드워드? 아쉽다. 아직 공부할 게 많이 남았는데.”
“오, 아실리. 아쉬운 마음은 알겠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더구나. 다음에 또, 또, 또 오마.”
에드워드 이상으로 고통받은 글리터 공작이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차마 멀쩡한 정신으로 다음에 또 오겠다고 흔연히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에드워드, 시간 괜찮으면 내일도 와. 내일은 오늘 못한 거 마치고, 함수를 다뤄보자.”
함, 수……? 다음번에는 반드시 엔토니가 있을 때 방문해야겠다. 피하지 못해 부딪혀야만 한다면,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인 편이 나았다.
“으, 응. 잘 있어, 아실리. 다음에 또, 또 올게.”
“내일 오라니까?”
“…….”
글리터 부자가 휘청거리며 지니어스 소굴에서 벗어났다. 에드워드는 다시는 수학을 공부하는 아실리를 건드리지 않기로 다짐했고, 글리터 공작은 인연 쌓기 프로젝트에 대하여 재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꼭 야근으로 따낸 황제의 친서가 아니더라도 지니어스와 글리터의 인연은 두터웠다. 이후에도 에드워드가 백작저에 방문할 때면, 공부하던 지니어스들에게 사로잡혀 활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엔토니가 있다면 마법을, 아서가 있다면 제국어 혹은 외국어를 더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마냥 힘겨웠던 공부도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이 되더라. 증명하건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았다.
덕분에 검술 순애보 에드워드 글리터는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역사, 마법, 언어, 수학, 전술 등 다방면에서 우수한 인재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