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가 엔토니와의 내기에서 이긴 덕택에, 아실리는 처음으로 글리터 공작저를 찾았다.

　 “우리 집에 와줘서 기뻐. 환영해, 아실리.”

　 “우와. 나야말로, 초대해줘서 기뻐. 고마워, 에드워드. 근데 정말 멋있다!”

　 아실리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모크니 제국의 역사에 비견되도록 축적된 공작 가문의 위용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 뒤편에서 에드워드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도토리숲을 찾은 다람쥐를 보는 듯했다. 그러니까, 귀여워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는 글리터 공작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오, 글리터 공작은 아이들의 순애를 너무나 귀엽게 또는 가볍게 취급하곤 했다. 아직 아이들이니까,로 포용될 수 있는 범위는 따로 있는 법이다.

　 뭐, 어떠하든 에드워드와 아실리가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지닌 것은 참말이었다. 공작은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또래보다 성숙한 엔토니에 익숙해진 건지 다른 아이와 무난히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기에 아실리와 인연을 이어준 것인데, 이렇게 지니어스 가에 완전히 녹아든 이상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케니스 글리터, 그도 과거에 그러했으니까. 아무쪼록 에드워드가 아실리와 좋은 사이를 이어갔으면 했다.

　 “그런데 웬일로 엔토니가 안 왔네? 무조건 따라올 줄 알았는데.”

　 “으응. 오라버니는 아침에 마탑으로 갔어. 잘 다녀오라라면서.”

　 “엔토니가? 잘 다녀오라고 했다고?”

　 에드워드에게 지고 난 후, 엔토니는 동생을 마수의 소굴에 보내게 했다는 데 상심에 빠져 초췌하게 방에 틀어박혔다. 의외로 알버트는 그에게 별말을 건네지 않았는데, 다만 나날이 늘어가는 찌푸림과 험악해지는 인상이 그의 심정을 추정케 했다. 참된 어른 알버트는 이것이 시기상의 문제이지 엔토니의 잘못이 아님을 알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난감할 뿐이었다. 평생 우리딸 끼고서 살고 싶은데 도움 되는 것들이 하나 없었다.

　 엔토니는 한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다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인지, 오늘 아침 아실리에게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건네고 마탑으로 이동했다. 친구놈이 내 동생한테 집적거려서 짜증 난 것도 그러하지만, 실은 나만 빼고 내가 모르는 새에 둘이서만 친해진 게 서운했던 거였다. 그래서 심술부린 건데 조금 과했나 싶고, 어린애같이 떼 쓴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아홉 살 엔토니는 어린애가 맞았다━, 탐탁지 않지만 에드워드가 못된 놈은 아니고, 둘이 친구 하고 싶다는데 훼방 놓는 것도 한심해 보이고, ……. 멋진 친구이자 멋진 오빠 엔토니 지니어스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주 멋있게 오늘만은 양보하기로 했다. 다음에 같이 놀면 되니까!

　 “아들, 아실리, 나는 이만 다녀오마. 어여쁜 시간 보내렴.”

　 글리터 공작은 친우가 기다리는 황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놀고 싶다. 나는 왜 어른인 걸까? 이건 야속한 세월을 추궁해봐야 할 난제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흘러가는 시간은 인간들의 사정을 인정사정없이 봐주지 않았다.

　 이미 황궁에는 알버트 지니어스가 꼼짝달싹 못하고 서류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알버트의 직책이 직책이다보니 최종적으로 승인을 기다리는 서류들이 다수였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알버트 기준으로) 무능한 관리들 때문에 처음부터 검토해봐야 했다. 얘네는 어떻게 관리가 된 거지? 어떻게 이 머리로 살아가고 있는 거지?

　 글리터 공작은 사랑해 마지않는 친우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발걸음이 한편 가벼워졌다.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그는 조금 더 활기차게 황궁으로 향했다.

　 “갈까, 아실리?”

　 에드워드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본래 가家에 손님이 오면 집안의 주인 내외나 하다못해 집사가 그를 챙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글리터 공작은 방금 일터로 나갔고, 공작부인은 안타깝게도 에드워드를 낳으며 세상을 떴다.

　 “응! 그런데 우리 둘뿐이야?”

　 지니어스 백작 영애가 손님맞이 예절을 모를 리 없었다. 집사의 부재가 의아해 둘러보자 엔토니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그, 집사는 내가 물렸어. 직접 소개해주고 싶어서.”

　 곳곳에 애중한 추억이 스민 장소이니만큼 손수 안내하고 싶었다. 첫 친구 엔토니가 처음 공작저를 찾았을 때도 그러했다. 엔토니는 안내 따위는 무시하고 이리저리 나다녔지만.

　 “좋아. 인도 부탁드려요, 에드워드군.”

　 아실리가 고고한 귀부인처럼 턱을 들어 올리곤 뻣뻣한 손을 새침하게 얹었다. 느닷없는 상황극에 에드워드는 풋,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맞닿은 손을 살포시 힘주어 잡았다.

　 “영광입니다, 영애.”

　*

　 아실리와 에드워드는 공작저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출출한 배를 장난스럽게 쥐어 잡고서 점심을 먹은 뒤, 주인을 닮아 정결한 방 안에서 놀다가 마지막으로 정원으로 나섰다. 아, 점심을 먹은 직후에 소화할 겸 훈련장을 둘러 걷기도 했다. 에드워드와 엔토니가 종종 함께 대련하는 곳이었다. 본래 기사들 전용이던 장소를, 엔토니를 배려하여 공작이 마법 연무장의 겸용으로 마련해 놓았다.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글리터 가문이니, 훈련장 하나 만들고 바꾸는 것 정도야 간단했다.

　 “와, 아름다워!”

　 “하하. 오늘, 너와 만난 이래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인 것 같아.”

　 “식상해도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에드워드. 정말 아름다운 걸 어떡해?”

　 “오, 잠시만. 내가 언제 식상하다고 그랬어?”

　 에드워드가 결백하다는 듯 양팔을 들어 올렸다. 아실리는 잔망스럽게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접어 빵야, 쏘는 시늉을 했다. 그걸 또, 착한 에드워드는 으으윽 가슴을 움켜잡으며 받아주었다.

　 이 세계에는 총이 없었다.

　 “에드워드, 연기를 너무 못하는 거 아니야?”

　 “거기서 가만히 있었으면 분위기 파악을 너무 못하는 거고?”

　 아실리가 꺄르륵 웃으며 에드워드의 팔을 가볍게 쳤다. 정답이었다.

　 지나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조금 전 자연스럽게 지나갔지만, 알 수 없는 소년과 소녀는 분위기에 취해 돌아 살피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누군가의 되짚음 속에서 경악스럽게 떠오를 깨달음이었다.

　 글리터 가의 정원은 굉장히 화려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지니어스 가의 정원과는 또 다른 감상을 주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눈길을 휘어잡아 도무지 돌릴 틈이 없었다.

　 분명 오전에 방문했건만, 어느새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히비스커스 군락에 내려앉았다.

　 아실리가 정신없이 정원을 둘러보고, 에드워드는 이상하게 허술한 그녀가 어디 잘못 걸려 넘어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면서도 새삼스레 모든 게 꿈같아 마냥 웃었다.

　 “에드워드!”

　 요정인가? 꽃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맑게 제 이름을 부르는 아실리가 곱다 못해 요정 같았다. 오글거려도 어쩔 수 없다. 치킨과 맥주, 퇴사와 알코올처럼 세상에는 넘볼 수 없는 조합이 있는데, 아이는 모든 조합의 균형을 깨버리는 변칙이었다. 세상이 자애롭게 인정한 절대 변칙이었다. 가령, 아이와 강아지, 아이와 놀이터, 아이와 책. 뭐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로웠다. 그리고 여기, 특히 예쁜 아이와 화원이 있었다. 더 설명할 필요 없었다. 본디 울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요정이었다.

　 또, 몇 번째 말하지만 에드워드는 귀여운 거에 약했다. 오, 혹시 몰라 덧붙이자면 그는 로리콤이 아니었다. 진짜로 변명이 아니라. 너무 귀여운 걸 보면 넋 놓게 되잖아. 혹은 꽉 껴안고서 마구 뽀뽀해주고 싶거나. 아니라면 당신이 냉혈한이지, 에드워드는 정상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아실리의 부름에 간략히 응답하곤, 이내 꽃밭에 쪼그려 앉아 정성스레 꽃팔찌를 제작했다. 이런 거라도 만들면서 집중해야지. 자칫 잘못하다간 엔토니 지니어스에게 죽임을 당할지 몰랐다.

　 그가 희고 푸른 꽃을 골라 부지런히 엮었다. 아실리의 은발과 청안을 연상시키는 색상이었다.

　 “화관……”

　 은 안 되겠지……. 검술에 온 스탯을 쏟아부은 그의 딱한 손재주로는 무리였다. 에드워드는 깔끔하게, 하지만 미약한 미련을 끌어안고 화관을 포기했다. 사실 꽃팔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솜이가 여기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서 다른 줄기를 끼우면 된다고 했는데. 너스레 부리며 그에게 방법을 알려줘 놓곤 정작 그녀 자신은 처참한 팔찌를 만들어냈던 게, 그 기억이 거짓말처럼 불려왔다. 아, 그때 표정이 진짜 귀여웠는데.

　 “아.”

　 그가 머리를 휘익휘익 저으며 지난날의 그림자를 쫓아냈다. 꽃팔찌 만드는 법을 처음 알게 된 때를 떠올리다 보니 불가항력이었다고 애써 말해본다.

　 에드워드 글리터는 잠시 손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 ‘에드워드 글리터’가 고개를 올렸다. 그는 그답게, 다시 말해 에드워드 글리터답게 행동해야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잔재를 저인 것마냥 뒤집어쓰는 게 아니라.

　 망가져버린 꽃팔찌를 저편으로 치우고, 에드워드는 다시 집중하여 새로운 제작에 들어갔다.

　 세상사는 야속하기 그지없어, 열중했다고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걸 만들었다고?’

　 저편의 기억까지 빌려와 힘들게 완성해 놓았더니, 시들하게 쳐진 꽃들이 참 인상적이긴 했다. 그냥 던져버리긴 들인 노력이 아깝고, 그렇다고 아실리에게 전해주자니 미안해 고뇌할 적에, 마음의 저울이 전자로 기울어진다 싶을 쯤에,

　 “어때? 잘 어울려?”

　 어느 틈에 다가온 아실리가 꽃팔찌를 낚아채 손목에 끼웠다.

　 “음, 팔찌가 너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반대 아니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으휴, 말은 잘하지. 내가 에드워드 것도 만들어줄게!”

　 아실리가 에드워드 곁에 나란히 앉아서 꽃 몇 개를 꺾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러다 아차 하며,

　 “으, 미안해.”

　 꽃들에게 사과한 다음에야 몇 개를 꺾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차원을 거슬러, 한 삼십 년 전?━ 이어진 습관이었다. 식물을 해치거나 제멋대로 이용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해서 시작되던 것인데, 한 번 굳어지니 고치기도 어려워 놔두었다. 이를 지니어스 가 정원에서 목도한 알버트는 우리 딸은 어쩜 마음도 곱냐며 칭찬 일색의 언사를 펼쳤더랬다.

　 “뭐라고?”

　 “아, 그냥 버릇 같은 거야. 함부로 꺾자니 왠지 미안하잖아.”

　 멋쩍게 웃는 아실리를 아득하게 쳐다보며, 에드워드는 또다시 아득한 저편을 떠올렸다. 아까 꽃팔찌를 만드는 기억과 자연스럽게 묶이면서, 이제는 흐릿해져버린 그녀의 얼굴이 기억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대지에 뿌리내린 나무가 마땅히 하늘로 가지를 뻗듯, 그는 그녀로부터 혹은 그녀를 향해 알싸한 추억과 감정을 뻗어냈다.

　 꽃을 꺾기 전에 꽃에게 사과하는 사람이 과연 흔한가? 이 세계의 감성이 유별날 수도.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유별나거나. 에드워드는 의문을 멈출 수 없었다.

　 오늘만 이걸로 몇 번째지? 이쯤 되면 세계가 나를 두고 농간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어도 합당했다. 제목은 그래, 에드워드쇼가 적당하려나.

　 ‘만약, 정말 만약에… 아실리가 다솜이라면? 나처럼 다시 태어난……’

　 맙소사, 메드라여. 망상이 과했다. 게다가 정도가 지나쳤다. 아실리 지니어스는 아실리 지니어스이지, 멋대로 다른 사람을 빗대어 보는 건 옳지 못했다. 아실리에게는 물론, 제게도, 나아가 다솜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아실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의 한심하고 나약한 꼴을 보지 못해 다행이었다.

　 “다 됐다. 에드워드, 팔 좀 줘봐.”

　 에드워드가 화들짝 팔을 올려 아실리에게 건넸다. 살살 끼워지는 팔찌는 엉성하고 못난 모양이었다. 에드워드가 팔찌의 지독한 몰골을 보고 얼핏 흐느끼듯 웃었다.

　 “……손이 작아서 세밀하게 작업하지 못한 거야. 크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어.”

　 “누, 큼, 누가 뭐래?”

　 “웃었잖아!”

　 “들켰네.”

　 “에드워드 글리터!”

　 아실리가 에드워드의 어깨를 팡팡 쳤다. 솜으로 주먹을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더 아프겠다. 현명한 에드워드는 그 말까지는 꺼내지 않고 얌전히 응징을 감내했다. 풀네임이 나온 이상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게 해답이었다.

　 제풀에 지친 아실리가 솜방망이질을 멈추고, 에드워드의 팔을 끌고 와 서로의 팔찌를 비교했다.

　 “이렇게 보니까, 연인끼리 팔찌 나눠 낀 것 같다. 그렇지 않아?”

　 “아실리,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데?”

　 “너무해. 순순히 놀림 받는 법이 없네, 에드워드는.”

　 “의도가 불순해, 아실리.”

　 연인이라. 웃어넘겼지만 에드워드는 글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소 폐쇄적인 지니어스와 다르게, 글리터는 직책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많은 이들을 만나보았다. 에드워드 글리터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또래의 영애·영작들을 더러 마주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엔토니, 이제는 아실리에게도 익숙해지고 나니 다른 꼬맹이들은 영 못 만나겠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도 버거웠다. 오, 지니어스가 그의 사회생활을 몽땅 망쳐 놓았다. 천재 가문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는데, 이 세계 지니어스 가문의 존재는 행운이었다. 그 사람들이 엔토니와 아실리여서 더 좋았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보모 노릇하며 유년 생활을 보낼 뻔했다.

　 지금은 그도, 아실리도 아직 너무 어리지만 이다음에 누군가와 이어져야 한다면. 아실리 지니어스라면, 그녀만 괜찮다면.

　 “에드워드.”

　 불쑥 낯익은 부름이 그의 상념을 깨고 들어왔다. 응. 그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우리 나중에 결혼하려나?”

　 콜록. 에드워드가 사레들린 듯 마른기침을 터뜨렸다. 예상보다 과한 반응에 오히려 아실리가 당황하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괜찮아?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말했나?”

　 “아니, 콜록, 아니야.”

　 글리터와 지니어스의 결합을 상상하고 있다가 놀랐노라 실토할 수는 없었다.

　 흐음. 아실리가 의문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 잔디 바닥에 사뿐히 앉았다. 아실리, 큼, 잠시만. 에드워드가 제 겉옷을 벗어 바닥에 깔아준 뒤 그는 아무렇게나 따라 앉았다. 슬슬 잔기침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어쩌다가 나눠 낀 팔찌에서 결혼까지 가게 된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한데…… 그냥, 어릴 때부터 약혼하는 가문들도 많잖아. 꼭 그게 아니더라도 크면 누군가와 결혼하게 될 테고.”

　 모크니 제국에서는 영애·영작들이 정략혼이 허다했다. 어린아이들도 가문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엮이곤 했다. 부모님 성격상 제게 부득불 짝을 이어주진 않겠지만,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에드워드와 하지 않을까━알버트가 안다면 경을 칠 생각이었다━. 부모님 간 친분도 두텁고, 신분도 비슷하고.

　 “……네가 좋다면.”

　 “응?”

　 “네가 좋다면 나도 괜찮다고.”

　 “그게 뭐야. 에드워드는 상관없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황녀전하도 계시네. 에드워드는 공작이 될 테니까 전하와━”

　 “너라서.”

　 에드워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황녀에 관하여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아실리를 막았다.

　 “너라서 상관없는 거야.”

　 바보 같은 아실리 지니어스. 제 앞에서 놀란 듯 휘둥그레진 애가 천재라니 말도 안 됐다.

　 조잘거리던 아실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왜인지 따라 민망해진 에드워드도 가만히 뜨끈한 얼굴을 식혔다.

　 괜스레 홧홧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 센스 좋은 붉은 노을이 슬그머니 둘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