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우리 딸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아시리의 첫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옷매무새를 다듬던 도중, 다이애나가 아실리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뒤따라 알버트가 여봐라 듯이 다이애나와 아실리에게 볼뽀뽀를 남기고, 도망가려는 엔토니를 잡아 장난스레 마구 뽀뽀세례를 날랐다. 아악! 알버트의 품 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던 엔토니가 치장이 흐트러진다는 쓴소리를 듣고 토라졌다. 만날 나한테만 그러지, 나한테만. 오늘도 억울한 엔토니와 즐거운 알버트의 환장이었다.
하지만 토라짐도 얼마 안 가 아실리의 다독임에 녹았다.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지니어스 남매는 반할 것 같다느니, 요정 같다느니, 정말 멋있다느니 칭찬 릴레이를 시작했다. 한켠에서 공상적으로 낭만적인 지니어스 부부는 오붓하게 입맞춤을 주고받았다.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똑똑이 남매가 다이애나의 볼록한 배에 잠깐 시선을 두더니 이내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아실리도, 엔토니도 두 달 전에 알게 된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에게 동생이 생겼다! 알버트의 알뜰한━극심한━ 정성과 점점 부르는 배를 보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직접 들어 확인을 받는 것은 감회가 색달랐다. 처음에는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에 속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모크니 제국에서는 임신 초기에는 유산 확률이 높아 언급을 자제하고 안정기에 들어설 때쯤에 주변에 알리는 게 관례라고 한다.
얼추 날짜를 헤아려보면, 현재 임신 5개월이라 하니 저를 낳고 7개월만에 또……. 오, 그만. 생각의 나래는 그 정도로 하고, 아실리가 엔토니의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그게 또 좋아서 엔토니가 티 없이 순진하게 웃었다.
깜찍한 한 살과 깜찍하지 않고 싶은 다섯 살이 정답게 손잡고서 종종 걷는 모습은, 다른 의미로 주변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엔토니는 최대한 신경을 기울이며 동생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려 노력했다. 그 노심초사가 몽땅 드러난다는 게 깜찍한 이변이었다.
홀 안은 시끌벌적했다. 친분 있는 자들만 초대한 작은 파티였음에도 하하호호 이야깃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별다른 사족을 달가워하지 않는 알버트는 짧은 인사로 오프닝을 마쳤다. 우리에게 알버트 지니어스는 얄미운 세 살배기이자 주접쟁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인정사정없는 목석 인간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달변가 다이애나가 음성증폭기를 넘겨받아 오늘 파티의 주요 행사를 소개했다.
“사랑하는 딸아이의 첫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이니만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보았답니다. ‘돌잡이’라는 동대륙의 문화를 아시나요? 돌잡이란 깃펜, 검집, 금화, 실 등을 펼쳐놓고 아이가 집는 물건을 통하여 아이의 장래를 점쳐보는 의식입니다.”
돌잡이? 아실리가 번뜩 고개를 올려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전 세상과 생활 양식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익숙한 문화를 접할 줄은 상상도 못했더랬다. 친밀한 회상 위에 새로운 추억이 덧대어졌다. 이미 한가득 선물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대륙이라면 남대륙, 특히 우리 모크니 제국에서 너무 멀어 교류도 거의 끊겼다고 알고 있는데…….”
“오, 흥미로운 의식이네요.”
“지니어스 영애라면 깃펜을 잡지 않을까요?”
아실리는 어떻게 하면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물건을 집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을 선택해야 하지? 팔을 뻗을 때 조금 머뭇거려야 하나? 그때, 알버트가 생각에 잠긴 아실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이대로 똑같이 따라 하면 지니어스라고 할 수 없지, 안 그러니?
“돌잡이를 그대로 진행하기에는 심심할 듯하여 조금 변형을 주려 합니다. 먼저, 선물 확인 절차에 흔쾌히 승낙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살펴본 바로는 선물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더군요. 여타 파티와 같은 증정식이 어려움을 감안하여 선물잡이를 고안해보았습니다. 물론 참여는 자유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홀 곳곳에 자리한 마법사들에게 선물을 건네주시길 바랍니다. 선물 포장을 임의로 훼손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삼십 분여 뒤, 파티홀 내 온갖 물건들이 떠오르고 은은한 오색 물결이 사이사이를 타고 다녔다. 대륙 너머의 진귀한 서적, 눈의 피로를 경감시키는 마법안경 등 값진 선물들이 무성하게 메운 장관이었다.
우와. 감탄하는 아실리를 보채듯 몇몇 보석이 가까이 날라와 부근을 맴돌았다━저 멀리, 자신들의 선물이 선택받도록 마법사에게 청탁하고 있는 군상들이 엿보였다.━ 아실리가 반짝반짝 배회하는 선물들을 툭툭 건들며 까르르 웃었다.
“아실리, 뭘 고를 거야?”
나였으면 저기 『마법의 역학; 경이로운 법칙을 파헤치며』를 집었을 거야. 마법 지망생 엔토니가 은근슬쩍 종용했다. 방금 전까지 마법의 향연에 매료되어 감탄을 일삼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희망 사항을 내비치는 모양이었다. 마법에 별 흥미가 없는 아실리가 순순히 넘어가지 않자 이제는 마법의 가치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법의 역학; 경이로운 법칙을 파헤치며』를 가져온 알버트가 엔토니에게 건네며 동생 꾀어내지 말라며 작게 나무랐다. 아버지! 깜찍한 엔토니는 이럴 때만 알버트에게 사랑스럽게 안겼다.
파티가 충분히 무르익어 모두 찬연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제, 아실리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알버트가 다독였다.
“굳이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괜찮단다. 어차피 이 모든 게 네 것이니.”
선물잡이라는 행사는 명분일 뿐이었다. 아실리 지니어스는 사랑받는 아이이며, 아실리 지니어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다는━혹은 쥐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자식 사랑이 아주 지극하군요.”
“지니어스는 늘 상상을 초월해, 안 그런가?”
선물잡이의 의도를 눈치챈 귀족들이 너털거렸다. 당초 친밀한 내빈들만 참석한 파티였으니 망정이지, 지니어스의 남다른 가족애를 일찍이 알던 자들은 지니어스답다며 웃고 말았다.
한동안 골똘히 고민하던 아실리가 두 손뼉을 소리 나게 마주쳤다. 드디어 선물잡이의 클라이맥스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자 아실리가 옆에 있던 알버트를 안았다. 아빠! 그리고 엔토니에게 연달아 포옹하며, 오빠! 마지막으로 저쪽에서 걸어오는 다이애나에게 달려가, 엄마! 우리 가족이 최고의 선물이야!
다소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알아듣지 못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빌어먹을. 누군가 나직이 읊조렸다. 다이애나 지니어스가 그 누군가를 찾으려 매섭게 좌중을 훑자, 한 남성이 자진하며 사과했다. 오, 미안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탓에 실언을 했군요. 그리곤 겸연쩍은 낯으로 조심스레 아실리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지니어스 영애.
아실리가 기꺼이 사과를 받아들이고, 동생의 포옹과 애교에 연타를 맞은 엔토니가 어지럽게 날뛰고, 아들을 말리긴커녕 부자가 함께 아실리의 귀여움을 힘주어 쏟아내고, 오늘도 다이애나는 머리를 짚으며…… 아실리 지니어스의 첫 생일파티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