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겐 아주 어색한 당신 (3)
돋아난 풀은 산등성이를 타고 외딴 기슭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규호와 주아, 그리고 앤드류는 한참을 풀을 따라 걸었다.
“생각보다 멀리서 걸어 왔네.”
주아는 돋아난 풀을 보며 중얼거렸다. 족히 몇 킬로미터는 걸어왔다. 물론 거래하는 물건이 물건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는 일은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길도 험하고 거리도 멀었다. 대체 이 길을 지나 어떻게 시체를 날랐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멈춰 봐.”
갑자기 앤드류가 신호를 줬다. 그러자 규호와 주아는 재빨리 몸을 낮췄다. 앤드류는 몇 번인가 코를 킁킁 거리더니, 산 저편을 가리켰다.
“피 냄새가 난다.”
앤드류가 가리킨 곳에는 수풀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진 천막이 있었다. 주아는 신속하게 은탄환을 장전하며 말했다.
“아주 꽁꽁 숨겨 놨네.”
“둘 다 조심해요. 무슨 조치가 있을지 모릅니다.”
규호는 둘에게 경고했다. 셋은 발걸음을 죽이며 천막 근처로 접근했다. 천막 아래는 작은 트럭이 있었는데, 녹슨 드럼통이 잔뜩 쌓여 있었다.
“설마 이게……?”
규호는 드럼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앤드류는 코를 몇 번 킁킁 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맞을걸.”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통 너머로 전해지는 냄새와 싸늘한 냉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저 안에는 분명 거래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상품’이 있을 게 분명했다.
“크흐흑……그극…그르르르륵.”
그들이 다가가자 갑자기 드럼통 안에서 무언가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가는 이가 안간힘을 써서 숨을 내뱉을 때의 꺽꺽거림과 같았다. 앤드류는 그걸 듣자마자 주위를 살폈다. 그런 그의 눈에 드럼통 입구 쪽에 그려진 복잡한 마술 수식이 들어왔다.
그는 그걸 보자마자 빠르게 경고했다.
“물러서! 사자 소생 술식이야!”
곧 드럼통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뚜껑을 거칠게 열리며, 안에서 썩어 가는 시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르르륵.”
시체는 입가에 머금고 있던 피를 게워내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뱉어냈다. 이제 막 20살 정도 되었을까. 머리가 반쯤 뭉게진 긴 머리의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시체의 눈은 방향 모를 원한으로 충혈 되어 있었다.
- 탕!
“안전장치는 확실히 해놨네!”
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정확히 시체의 얼굴을 가격했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처럼 드럼통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륵……커컥……크그극.”
“꺽꺽……크르륵……컥.”
“그으윽……커억……그르륵,”
드럼통 안에서 각기 다른 굉음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드럼통 문이 열리며 시체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시체들은 다 썩어 문들어진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눈앞의 존재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어디서!”
앤드류는 분노에 찬 얼굴로 달려들던 시체의 머리를 단숨에 부쉈다. 그러자 피와 살점이 그의 옷가지로 튀었다. 앤드류의 얼굴에는 곧 짜증과 분노가 차올랐다.
“심장이나 머리를 날려. 사령술로 되살렸다면, 중심부를 완전히 파괴시키지 않는 한 다시 달려 들 거야.”
주아는 은탄환으로 시체들을 하나씩 가격하며 충고했다. 앤드류는 손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피 좀 줄래? 지난 번 처럼 한 번에 해치워줄게.”
“시끄러워. 그때는 어쩔 수 없어서 준 것 뿐이거든?”
“왜 그래, 특식. 네 피를 내가 한두 번 먹은 것도 아니잖아.”
“너, 내가 한 번만 더 특식이라고 부르면 죽여 버린 댔지?”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 하고 있을 무렵, 규호는 침착하게 주머니에서 씨앗 한 줌을 꺼냈다. 그리고 여전히 움직이는 시체들을 보면서 주문을 영창했다.
“<오가는 객은 여기에 머무소서. 가시는 객은 저기로 떠나소서. 미련은 땅 깊은 곳에, 바람은 하늘 아득히 높은 곳에. 무거운 모든 것은 훌훌 벗어 가시는 걸음걸음 두고 가시고…….>”
그리고 씨앗을 시체들에게 뿌리며 짧게 덧붙였다.
“<그러하오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씨앗은 바람에 날려 시체들에게로 쏟아졌다.
곧 씨앗에서는 싹이 트더니, 빠른 속도로 자라나 시체들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씨앗에서 돋아난 뿌리와 잎사귀가 시체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시체들의 움직임 역시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자라난 줄기와 꽃이 완전히 시체들을 칭칭 휘감아 땅에 고정시켰다. 이제 멀리서 보면 꼭 사람 형태를 한 화분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춘 시체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편안했다.
막 드럼통에서 나왔을 때처럼 원한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긴 후, 그대로 성불이라도 해버린 것 같았다.
“도술이라는 거, 대단한데?”
앤드류는 순식간에 해결된 상황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규호는 짧게 웃기만 했다.
“그냥 잔재주일 뿐입니다.”
그때, 주아가 무언가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뭐지?”
주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체의 목 부분이었다.
시체들은 성별이나 외형은 전부 달랐지만 가만 보니 목에 하나 같이 이상하게 생긴 부적을 차고 있었다. 동물의 뼈와 새의 깃털, 금속을 조합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은 물건이었다.
“나도 이건 처음 보는데.”
앤드류 역시 생소한지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멀쩡한 물건처럼 보이진 않군요.”
규호 역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앤드류는 부적을 뜯어보면서 주아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연합에 이런 쪽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 없어?”
“아니, 나나 규호 선배가 모른다면, 연합에서도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주아는 부적을 살피다가, 가만히 눈을 빛냈다.
“이런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을만한 사람은 따로 있지.”
* * * * *
“야, 이세륜! 나 왔다!”
주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세륜은 까무러치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아악! 또 왜 오셨습니까? 설마 이번에 인터넷으로 내다 판 고춧가루 때문은 아니겠지요? 제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기 했지만, 엄연히 그것은 국산 고춧가루…….”
“무슨 개소리야.”
주아는 식겁한 세륜에게 아까 발견한 부적을 내밀었다. 세륜은 플라스크 너머로 부적을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빛냈다.
“흐음, 흥미로운 걸 가져오셨군요.”
“이게 뭔지 알겠냐?”
“당연하죠. 저는 이래 뵈도 키메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천재 중의 천재니까요. 제가 모르는 분야는 없답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요. 우후후후.”
주아의 질문에 세륜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주아는 그런 세륜이 영 꺼림칙했지만, 단서를 잡았다는 생각에 바로 밀어 붙였다.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네. 아는 걸 다 불어.”
“혹시 이 부적이 지난번에 말씀하신 시체와 관련이 있나요?”
“더 이상 묻지 마.”
그녀는 인상을 쓰며 단번에 말을 잘랐다. 하지만 세륜은 이미 알아 챈 얼굴이었다.
“흠흠, 저도 나름 눈치가 있답니다. 명색이 천재인걸요.”
그러면서 그는 플라스크 아래로 기계 팔을 꺼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일단 안에 들어와서 말씀하시지요. 자료를 보고 설명드립죠. 오늘 손님은 지난번의 귀족 나으리와 또…….
세륜은 주아와 앤드류를 보다가, 오늘 초면인 규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곧 그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세륜은 들리락말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참 사람도 아닌 걸 왜 이렇게 덕지덕지 데리고 다닌데?”
무심코 그 말을 들은 앤드류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작게 속삭이듯 하는 말이라서 주아나 규호는 미처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앤드류는 잠시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뭐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방 안에 들어가자 세륜은 능숙하게 낡은 책 하나를 꺼냈다. 책에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문구와 함께 사람과 동물의 모습이 뒤엉킨 기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륜은 기계팔로 그림을 툭툭 치면서 설명했다.
“일단 이건 아메리카 원주민의 부적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나바호족의 나알들루시(naaldlooshii) 부적이죠.”
“스킨 워커(Skin Walke)를 말하는 건가?”
세륜의 설명을 들은 앤드류가 지적했다. 세륜은 가볍게 긍정을 표했다.
“네. 잘 알고 계시군요.”
“옛날에 싸워본 적 있거든. 하지만 이런 부적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당연하죠.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 부적을 만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세륜은 책을 넘기며 설명을 이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와 무릎을 꿇은 채 깃털을 모으고 있는 사람의 모슴이 그려져 있었다.
“나바호족의 주술사들은 독수리를 물질세계와 정령 세계를 연결해주는 존재라고 신성시 했어요. 그래서 독수리를 해치거나 죽이는 것을 금기시 했죠. 주술을 위해 독수리 깃털을 사용했을 때도 오직 자연스럽게 떨어진 것만 주워서 했을 정도로…….”
“요약해서 용건만 말해. 용건만!”
긴 설명이 지겨웠던 주아가 지적했다. 세륜은 한숨을 쉬고는 짧게 정리했다.
“이 부적은 나알들루시를 조롱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부적이에요. 어린 독수리 새끼의 뼈와 강제로 잡아 뜯은 독수리 깃털로 만든 거거든요.”
“만약 그 부적을 보면 어떻게 되는데?”
주아의 물음에 세륜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일단 보자마자 두 세계의 매개체가 모욕당해 죽었다는 사실에 미친 듯이 분노해서 달려들었겠죠. 그리고 만약 자신의 몸에 억지로라도 그걸 채우면 더 분노했을 거고요.”
세륜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는 사람과 짐승의 그림이 엇갈려 그려져 있었다. 사람과 짐승의 몸은 교차되어 있었지만, 머리 부분만큼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온 상태였다.
“나알들루시들은 유럽의 늑대인간과 달라요. 계약을 통해 짐승 형태를 한 정령을 자신의 몸에 빙의시키는 거거든요. 그래서 인간이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알들루시는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주아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만약 누군가가 이 부적을 만들어 나알들루시가 인간일 때 몸에 채운다면…….”
“나알들루시의 인격이 깨어났을 때 미친 듯이 분노했을 거야. 누군가 그 상태로 죽여 버린 다면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가 만들어지는 거지.”
앤드류는 주아의 추리를 정리했다.
여기까지 오니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았다.
사람일 때 속이거나 협박해서 억지로 나알들루시를 조롱하는 부적을 채운다. 이후 나알들루시가 깨어나면 몸에 걸린 부적을 보고 분노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죽이면, 더할 나위 없는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가 완성된다.
다소 번거롭지만 확실하고 정확한 물품 공급이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번에도 규호가 지적하고 나섰다. 규호는 세륜이 펼친 책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알들루시가 사람에게 바로 죽임을 당할 만큼 약한가요?”
“그게 이상한 점이예요. 나알들루시는 결코 약하지 않거든요.”
세륜은 스킨 워커와 싸워 본 적 있다는 앤드류에게 질문했다.
“귀족 나으리, 지난번에 나알들루시랑 싸운 적 있다고 하셨지요? 그때 어떠셨습니까?”
그 말에 앤드류는 턱을 짚고 회상에 잠겼다.
“코요테로 변하는 녀석이었는데, 강하진 않지만 잽싼 놈이었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잡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겠지.”
규호는 거기에 의문을 더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왜 아메리카 원주민의 주술이 한국에서 일어났냐는 겁니다. 나알들루시 주술은 한국에서는 굉장히 생소해요. 하지만 아까 봤을 때 피해자들은 전부 한국인이었습니다.”
세륜의 설명대로 나알들루시는 한국에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희귀한 주술이다.
강한 나알들루시를 죽이는 건 둘째 치더라도, 이걸 한국 한복판에서 버젓이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주아는 모든 감정이 이리저리 뒤엉킨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또 산 넘어 산이네.”
* * * * *
“하암.”
주아는 하품을 하면서 소파에 풀썩 몸을 뉘였다. 뒤따라오던 앤드류가 그를 타박했다.
“씻고 자. 냄새 나.”
하지만 주아는 피곤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앤드류는 그런 주아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무심코 그녀의 발뒷꿈치가 까져 있는 걸 발견했다. 피까지 벌겋게 베어나온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규호에게 잘 보인답시고 구두를 신은 상태에서 꽤나 먼 거리를 걸었다
발에 어떻게든 무리가 갔을 게 분명했다.
“야, 너 발에서 피난다.”
“오랜만에 구두 신고 걸어서 그런가.”
주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앤드류는 그 말을 듣고 툴툴댔다.
“아까운 피 흘리지 말고 몸 간수 잘해.”
그러자 주아는 피식 웃으며 발을 그에게 내밀며 장난조로 말했다.
“왜? 먹고 싶냐”
“치워. 네 피가 아무리 특식이어도 발을 핥아 먹진 않아.”
앤드류는 인상을 쓰며 그녀의 발을 툭 쳤다. 주아는 발을 힘없이 떨어트린 후 풀 죽은 어조로 탄식했다.
“뭔가 해결될 것 같으면서도 일이 쉽게 풀리지 않네.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일이 복잡하게 꼬여.”
“그래도 중간 쯤 왔잖아.”
앤드류의 말에 주아는 피식 웃었다.
“너 생각보다 낙천적이구나?”
“너도 몇 백 년 살아봐. 이런 삶은 낙천적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
앤드류는 아내의 복수를 위해 밀항까지 하면서 한국에 왔었다.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답답하고 힘들었겠지.
특히 수명이 긴 존재라면 더더욱.
여기까지 생각하자 주아는 애써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밝은 어조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그래도 실마리를 찾았잖아? 피해자 신원부터 확인하고, 부적에 쓰인 재료를 추적하면 그래도 사건이 어떻게든 풀리겠지.”
무엇보다 규호가 함께한다.
오늘 하루 종일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이 사실이 묘하게 주아에게 힘을 줬다.
“그나저나 규호 선배 어땠어?”
“실실 웃는 바보 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쓸 만 하던 걸?”
“아니, 날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어?”
주아의 질문에 앤드류는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전혀. 넌 그 와중에 그게 눈에 들어 오냐?”
앤드류는 타박했지만, 주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꿈에 젖어 말했다.
“뭐, 앞으로 쭉 함께 할 테니 조금만 더 노력해봐야지.”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앤드류는 그런 주아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앞으로 당분간은 발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