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귀望鄕鬼
: 돌아가지 못 한 곳
그런 소문이 돌았다. 죽은 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야산을 걸어다닌다는 소문. 휘청휘청, 걷는 양이 술에 취한 자와도 같아 말을 걸려 다가가면 온전히 말을 할 수가 없고 바로 서지도 못하는 산송장과 마주치게 된다는 소문이.
“에이, 아무렴 그런 일이 정말로 있을까.”
화공은 그림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것은 나그네의 묵직한 눈동자였다.
“설마, 있다고?”
“추이꾼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의심하지 않는 법일세.”
“추이꾼도 피곤하겠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믿어야 하고.”
“자네는 나나 자네가 겪은 일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나.”
화공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화공의 지기인 나그네는 일명 추이꾼이라 불리는 자로,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나 일들을 쫓는 이였다. 화공은 그런 나그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물의 형상을 그려 기록에 남기는 자요, 그러한 연유로 평범한 이들보다 이물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또한 화공은 실제로 이물을 겪은 바가 있는 자요, 그러니 더더욱 그는 반푼이 추이꾼에 가까웠다.
“알았네, 내가 잘못했어. 허면, 자네가 보기에 그것은 무엇인가.”
“마주해보아야 알 테지만 그것은 꼭 귀의 형상이 아닌가.”
귀라. 화공이 짧게 숨을 뱉었다.
이물은 또 크게 둘로 나뉘어지는데 귀鬼와 이異이다. 이는 기이하고도 신묘하며 무해한 것들을 일컫는 것이고 귀는 사람이나 짐승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이 또한 사람을 해치게 되는 일도 있으나 그것은 아주 드문 일이고, 귀는 항시 그 생장 과정이나 삶을 통하여 다른 생명을 해하는 것이 이와 다르다.
“산송장이라 하면 몇 가지가 있네.”
제 자신이 죽은 줄을 모르고 구천을 떠도는 것이 있고, 이루지 못한 것이 있어 저승차사를 피해 떠도는 것이 있으며, 원한을 가지고 억지로 엉겨 붙은 것이 있지. 그런 것들이 송장에 깃들어 음기가 강한 밤이 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성큼성큼 돌아다닌다네.
“꼭 도깨비 같군.”
“진짜 도깨비가 들으면 기함할 걸세.”
화공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제 벗은 꼴에 추이꾼이라고 도깨비를 만나는 일은 예사도 아니었다. 그러니 도깨비와 산송장이 다르다면 그 말이 옳을 터였다.
“허면 그 산송장은 그 중 무엇인가.”
“그것이야 겪어보아야 알 수 있지.”
나그네의 눈빛이 은근하였다. 설마. 불길한 생각이 화공의 머릿속을 스쳤다.
“싫어. 난 싫네. 절대로 싫어. 가려거든 혼자 가시게.”
“이번에 내 좋은 종이를 좀 얻어왔는데…….”
“……도깨비 같은 놈.”
나그네는 웃었다. 글쎄 진짜 도깨비가 들으면 기함한대도.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초봄의 서리가 내린 새벽은 뼈마디가 시릴 정도로 매섭다. 파랗게 가라앉은 공기 사이로 흰 숨이 흩어졌다. 줄곧 투덜대며 싫은 소리를 하던 화공은 저만치 흐리게 보이는 무덤가를 알아채자마자 숨을 멈추었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조차 선명하게 귓가에 닿았다.
“저기인가.”
“소문에 의하면 그렇네.”
조심스레 몸을 움츠리는 화공의 꼴이 우스워 나그네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이 겁 많은 양반 같으니. 새벽이 짙은 와중의 무덤가는 생기 없이 눅눅하였다. 하여, 그 산송장은 언제쯤 볼 수 있나. 화공의 물음에 나그네는 답하였다.
“나도 모르지.”
“이 개자식이.”
그걸 알면 내가 자리를 깔았지 추이꾼을 하겠나. 나그네의 말에 화공은 한숨을 포옥 뱉었다. 저 치를 믿은 내가 바보 천치로다.
벗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무모한 것인지 만용을 부리는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용기가 어디서 샘솟아나는 것인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위험한 일이라도 앞뒤 가리지를 않고 달려드는 성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제 호기심이 우선이었으며 기이한 일만 생기면 그것이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가리지를 않고 찾아가 제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것이다. 그런 벗을 두었으니 화공은 영 안심이 되지를 않았다. 꼴에 그것도 벗이라고 혹 나쁜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위험한 일을 겪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이었다. 마음을 접어두고 신경을 끄려고 해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던 막역한 지기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연이 아닌 터라 화공은 늘 나그네의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화공은 나그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눈빛이 호기심에 가득 차있었다. 화공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마치 죽은 이의 얼굴과도 같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나그네가 처음으로 생기를 얻었을 적의 표정이 딱 그와 같았다. 그러니 화공은 나그네에게 추이꾼을 그만두라 할 수도 없었다. 나그네는 추이꾼으로 있을 적에나 꼭 살아있는 사람 같았던 탓이다.
시각이 한참을 흐르도록 그 산송장이라는 것은 코빼기도 뵈질 않았다. 화공이 지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나그네가 화공을 툭 쳤다. 일어나보시게.
눈을 뜨자 무덤가 한 켠에서 비틀비틀 걸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나그네와 화공은 풀숲 깊숙이 몸을 감추었다. 가까워지는 인영은 가만 보아하니 아이의 것이었다. 대여섯 살 쯤을 먹었을까. 하여튼간에 작고 어린 아이임은 분명했다.
“저 아이인가.”
“아마도.”
달빛이 어두워 나무 그늘에 인영의 모습이 분명치 않았다. 나그네와 화공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에 선 순간이었다.
“헙.”
화공은 저도 모르게 새나가는 소리에 입을 틀어막았다.
바로 그 산송장이었다. 혼이 없는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입가는 핏자국인지 흙자욱인지 알 수 없는 거무튀튀한 것이 묻어 있었다. 비척비척 걷는 두 다리는 부러질 것처럼 얇아 간신히 서 있는 것이 전부였으며 발은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었다. 온 몸이 흙먼지로 꾀죄죄하였는데, 배 한 쪽에 구멍이 뻥 뚫린 것이 무언가에 찔린 듯하였다. 시꺼멓게 흙인지 무언지가 묻은 손은 참혹하였다. 손톱이 죄 빠지고 손가락 끝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닳아 있었다. 아이의 송장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대었는데, 그 발음이 선명치를 않아 나그네와 화공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마……엄, 엄마……엄…마…….”
낡은 목소리가 기괴하게 갈라진 채로 흘러나왔다. 나그네는 곧바로 알 수가 있었다. 저 아이는.
“아해야.”
나그네는 몸을 일으켜 송장에게 다가갔다. 저, 저, 저 미친놈이! 화공이 그를 뜯어말릴 새도 없었다. 나그네는 성큼성큼 아이의 송장 앞에 가 서더니 말했다. 아이고, 나는 모른다. 저 치가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몰라. 화공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네 어미를 찾고 있느냐.”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그네를 보았다. 허연 그 눈깔이 나그네를 향하였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그네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그네는 몸을 낮추어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이가 낮게 그르렁 대었다. 마치 짐승의 울음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 야생의 들짐승 같은 것을 어찌 구워삶으려고. 화공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제 지기는 추이꾼이었다. 이물을 다루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온 일이니 무언가 방도가 있어도 있을 터였다. 그리 믿고 마음을 놓는 순간이었다.
콰직.
아이가 입을 벌려 나그네의 팔을 물었다.
“야 이 천치야!”
저도 모르게 화공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나그네는 침착하게 아이의 입을 벌려 떼어내고는 화공을 등지고 말했다. 제 벗은 지켜주고자 하는 최소한의 도리였다. 나그네의 목소리는 참으로 나직하였다.
“어미에게 데려가주마.”
그 순간,
“……거짓말.”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골이 선득해지는 선명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추이꾼은 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것처럼 느껴졌다. 핏줄이 죄 터져서 벌개진 두 눈이 나그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너를 이리 만들었느냐.”
아이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였다.
“추이꾼.”
“괜찮냐.”
묻는 목소리에 나그네는 대답 없이 웃었다. 아이에게 물린 자리는 어찌 된 영문인지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잇자국이 선명한 그 흉이 멍자욱인가 하여 손을 대어보았더니 온기를 느낄 수가 없이 냉골처럼 차가웠다. 화공은 흉진 자리 위를 단단히 동여매고는 독을 빨아내듯 그 차가운 피를 빨아내 뱉었다. 그제야 팔에 푸른 기가 가셨다.
“망향귀일세.”
그것도 귀라고 이름이 붙었나. 영 탐탁찮은 표정의 화공을 보고 나그네는 그를 달래듯 자못 다정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고향을 잃은, 잊은, 가여운 귀일세.”
귀에도 가여운 것이 다 있단 말인가. 화공의 음성은 제법 퉁명스러웠다. 어찌 없겠나. 인간의 삶에도 가엽고 억울한 일들이 그리 많은데. 아니, 내 말은 자네가 누구를 가엽다 하는 것이……. 화공은 말을 하려다 말고는 입을 다물었다. 에이, 되었네.
“추이꾼이 저를 그리 만들었다 하였네.”
무언가 짚이는 것이라도 있나. 화공의 말에 나그네는 잠시 눈을 감았다. 흐으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있네.
“정녕 추이꾼인가.”
추이꾼이 학술적인 목적 외의 일을 하는 것은 들어본 일이 없네. 사람을 해하는 추이꾼이라니, 그것이 정녕 추이꾼인가. 그리도 설파하는 화공의 이야기가 퍽이나 딱하고 안쓰럽던지 나그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것이 정녕 추이꾼이냐 물었나.”
아무렴. 그런 추이꾼도 있는 법일세.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자네는 추이꾼이 아주 선하고 도덕적인 이들의 집합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허나 추이꾼들도 사람일세. 사람의 세계에도 이물의 세계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한낱 사람일 뿐이야.”
자네는 내가 정녕 선한 추이꾼이라 생각하는가. 나그네의 물음에 화공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이물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한 일도 있고, 내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했던 이들에게 등을 돌린 일도 있네. 나는 그들에게 달리 악행을 행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하여 좋은 일을 하지도 않았지. 허면 자네에게 나는, 선한 추이꾼인가.”
화공은 마찬가지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그네는 웃었다.
“추이꾼은 추이꾼일세. 추이꾼에 선하고 악한 것은 구분되지 않아.”
“허나 그이는 사람을 해쳤네. 마을 하나를 죽였고 아직 한참 어린 아이 하나를 송장이 되어 구천을 헤매게 만들었어.”
“그것을 악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추이꾼이 아닌 이들 뿐이라네.”
화공은 떨리는 눈동자로 나그네를 보았다. 나그네는 그조차도 이미 예감했던 일인 양 태연하였다. 나붓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추이꾼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존재들일세. 자네의 친우인 나조차도 사람이 아니라 여기는 것이 좋을 걸세. 우리는 이물과 사람 사이에 선 자이고 때문에 사람에도 이물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자가 인면수심의 죄를 지었다 한들 무엇이 문제겠나. 사람이 아닌 자가 사람이 아닌 자의 행동을 하였는데. 추이꾼은 선한 이들이 아닐세. 나 또한, 자네의 벗일 뿐 선한 ‘사람’은 아닐세. 이물을 어찌 사용하는지는, 이물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연구를 하는지는, 모두 추이꾼 개인의 방식일세. 어쩌면 그 추이꾼이라는 자는 망향귀에 대해 연구를 하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네. 자네, 추이꾼을 믿지 마시게나. 나 또한 하나의 추이꾼일 뿐이니.”
화공은 순간 울컥하여 무어라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나그네의 눈은 아주 기묘한 빛깔을 하고 있었다. 화공은 때때로 나그네가 그런 눈빛을 할 적이면 두려워지곤 하였다. 정말로 나그네는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저 멀리 이물들의 세계로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은 탓이었다. 그는 참으로 기이하고도 묘한 존재였다. 몇 년이나 곁에 붙어있었으면서도 화공은 그를 다 안다 장담할 수가 없었다. 세상 그 누가 그이를 다 알 수가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제 벗은 유독 더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추이꾼이라는 것이 모두 그러한 존재인가. 화공은 겪어본 일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다만 제 벗이 이물과 너무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닐까 이따금은 두려웠다. 이물과 너무 가깝고, 또한 가까워지다가, 나중에는 사람인 줄도 잊을까 하여 겁이 났다. 화공에게 나그네는 이제 떼어놓을 수가 없는 절친한 벗인데 그 생각조차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 하여 초조하기만 하였다. 그 초조함을 감추자니 화공은 애써 웃음을 지어야만 했고 애써 태연한 척을 해야만 했다. 하여 화공은 화를 내는 대신 물음을 하였다.
“너라면, 자네라면 그 추이꾼과 같은 행동을 하였을까.”
나그네는 웃었다.
“그것 또한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 나는 그렇게까지 사람에 흥미가 많지를 않네.”
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한 감정이 치미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나 화공은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런 말을 입술 밖으로 내는 나그네의 속이 더 안 좋을 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그네의 속을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일도 태반이지만 화공은 참아내었다. 그것이 벗이 된 자의 도리일 터라 그리 생각하였다.
“허면 그 아이는 어찌할 셈인가.”
“망향귀 말이지.”
“이젠 그 어린 것마저 귀 취급인가.”
“귀이니 귀라 부르는 것이지.”
“가엽네 어쩌네 할 때는 언제고.”
그럴 때 보면 참으로 냉혈한 같은 양반이었다. 여기저기 데인 곳이 많아 그리도 날이 선 것은 당연하였다. 허나 화공이 보기에 나그네는 사람과 이물의 가운데 선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발을 걸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귀 주제에 이름이 있네 어쩌네 한 것은 자네였네.”
“그래도 아이인데.”
“귀는 그저 귀일세. 가여운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귀는 귀일세.”
그 목소리가 자못 처연하였다.
이미 한 차례 만난 귀를 다시 찾는 것은 어렵지를 않았다. 나그네는 아이의 송장을 앞에 붙잡아두고 나직한 음성으로 속살대었다. 아해야, 집으로 돌아가자. 네 어미가 너를 찾느라 어찌나 눈물을 쏟았는지 알고 있느냐. 네가 추이꾼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백 번 천 번을 이해하지만 네 어미 가슴에 못을 박을 필요는 없질 않느냐.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어찌 또 추이꾼을 믿습니까.”
낮게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또렷하게도 귓가에 박혀왔다.
“너를 해한 추이꾼은 이미 네 손으로 해하지 않았느냐.”
아이는 대답을 않았다.
“나는 그 추이꾼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았다. 네가 온 살점을 씹어삼켜 뼈밖에 남지 않은 그 시신을 보았다. 그러니 아해야, 네 원한을 이해는 하나 더는 예서 헤맬 필요가 없다.”
“정말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까.”
“내가 너를 속여 무엇 하겠느냐.”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마지못한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나를 속이거든 아저씨도 그와 똑같이 될 겁니다. 그런 말을 경고처럼 뱉어두었다. 나그네는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하였거든 내 살점을 갈가리 찢어삼켜도 좋으니. 그렇게 나그네는 아이의 귀와 길을 동행하게 되었다.
화공이 그 길을 탐탁치 않게 여긴 것은 당연지사였다. 혼자 떠도는 길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데 그 길에 사람을 씹어삼킨 귀를 동행시키자니 영 마음이 내키지를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제 벗이고 지기였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어련히 제가 알아서 하련만은.
“정말로 같이 가야하나.”
“저 아이를 그대로 두고 가거든 피해자는 끊임없이 나올 걸세. 자네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 테고.”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더니.”
“허나 자네가 원하질 않나.”
벗이 원하는 것을 외면할 정도로 냉혈한은 아닐세. 내가 할 수 없는 일 또한 아니고. 그리 말하는 나그네의 모양이 낯설지만 가슴에 닿아 화공은 게서 다른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어깨를 토닥이며 다치지 말라, 무사히 돌아오라, 그리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망향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나.”
“어렴풋이는.”
“내가 정말로 자네를 믿어도 될까.”
“믿기 싫으면 말게.”
하여간 조금 예쁘게 볼라 치면 도통 예쁜 구석이 없다. 허나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화공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무렴은 그래도 십 년 남짓을 함께 한 지기이다. 그 속내가 안 보아도 뻔한 것을. 하여 화공은 나그네의 봇짐을 단단히 어깨에 둘러주었다.
“조심히 다녀오게.”
“서신 하겠네.”
나그네는 그렇게 돌아섰다. 멀어지는 걸음이 유난히 눈에 박혔다. 화공은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섰다.
나그네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붙잡았다. 손톱이 다 벗겨진 벌건 손이 쓰리지도 않는지 아이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를 않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런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를 않았다. 기묘한 동행이었다. 나그네는 벌써 이런 식의 동행이 몇 차례인지도 몰랐다.
추이꾼은 정말로 다양한 군상의 집합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그네는 제법 독특한 추이꾼에 속했다. 추이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온전히 끊어내는 것은 쉽지를 않다. 추이꾼이 사람이나 사람이 아닌 탓이다. 어쨌거나 추이꾼은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사람의 일과 완전히 연을 떼어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는 유독 사람의 일과 추이꾼의 일을 칼처럼 잘라내는 추이꾼이었다. 그런 나그네를 보고 추이꾼들은 태생부터 타고난 추이꾼이라 말하기도 했다.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어쩌면 이물과 사람 사이에 태어나 추이꾼으로 자란, 그래서 사람의 일에도 이물의 일에도 연을 두지 않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낭설처럼 맴돌았다.
나그네는 이물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동행을 했다. 그 또한 추이꾼들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추이꾼은 대개가 이물과 깊이 얽히지 않았다. 이물에게 얽히면 그 순간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이물에 딸려 그들의 세계에 엉키기 십상이었다. 허나 나그네는 달랐다. 언제고 그 세계에 딸려 들어가도 상관이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물들과 동행하고 이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인 양 굴었다. 마치 이쪽의 세계에도, 저쪽의 세계에도 미련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한참을 걸었을 적에 아이가 지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얼마나 더 가야 어머니를 만날 수가 있습니까. 나그네는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서 온 만큼을 더 가야 만날 수가 있다. 아이는 한숨을 포옥 뱉었다. 그 살아있는 송장에게 태연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아마 흔치 않을 터였다. 나그네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그네의 말대로 딱 왔던 만치를 더 걸었을 때, 저 멀리서 여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이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제 어미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오셨습니까.”
여인이 나그네에게 말을 붙여왔다.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나그네의 뒤에 몸을 숨기고는 잔뜩 경계하는 모양새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거짓말을 하였구나. 이 나그네가 거짓말을 하였어. 그런 배신감이 아이를 휘감았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안다. 허나 아해야, 저 너머를 보려무나. 이곳이 바로 네가 살던 고향이다.”
“어찌하여 어머니는 여기 없습니까.”
“너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눈빛이 선연히 흔들렸다. 그 멍한 눈에도 눈빛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이는 정녕 이곳에, 제 어미의 품에 닿기를 원한 것이다. 허나 나그네는 선선히 그리 해 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죽은 자였다. 자신이 그리 느끼지 못한 대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속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헌데 속이셨습니다.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어찌 이럴 수가 있냐는 말입니다!”
아이의 격앙된 목소리가 허공에 찢어졌다. 산송장이라 하여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로구나. 건조한 눈을 한 것은 외려 이물이 아니라 사람인 나그네였다. 아이는 씩씩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아이의 앞에 나선 것이 바로 여인이었다. 여인은 아이의 앞에 서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가.”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는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마치 제 어머니와도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제 어머니와도 같은 품이었다.
“우리는 너를 돕고자 한단다. 이 아줌마도 아이를 잃은 일이 있어 너희 어머니의 심경을 이해할 수가 있어. 너희 어머니를 곧 만나게 해주마. 그러니 아가, 화를 참아주지 않으련.”
아이는 아무런 말을 않았다. 그저 여인의 토닥이는 손길에 가만히 기댈 뿐이었다. 아이에게서는 죽은 자의 냄새가 났다. 퀴퀴한 송장 냄새조차 아무렇지 않은 듯, 여인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나그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제 것도 아닌 남의 아이요, 제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썩 가까운 이의 일이냐 하면 오롯이 생면부지인 남의 일이건만, 여인은 어찌 그리도 살가운 마음으로 아이를 안던지 그 생각이며 감정을 당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저를 어찌 도울 수 있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여인은 살갑게 웃었다.
“예서 조금만 기다리거든, 너희 어머니를 불러오마. 그때까지 나으리와 함께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니?”
아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여인은 그리 속삭이고는 아이를 품에서 놓았다. 아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나그네를 올려다 보았다. 영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여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주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건만 나그네는 꾹 참았다.
“다녀오겠어요.”
여인이 말했다. 나그네와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여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한텐 아까워요.”
“무어가.”
“저 분이요.”
“헛소리는.”
나그네는 한숨을 포옥 뱉으며 나무 그루터기에 주저앉았다. 아이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그네의 곁에 앉았다. 가만히 턱을 괴고는 제가 살았던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웅얼대는 듯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뗀 아이는 조곤조곤 저가 살았던 마을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좋은 마을이에요.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고요. 엄청 크고 부유한 마을은 아니지만 이웃들이 전부 가족처럼 서로를 염려하는 마을이에요. 저는 그런 곳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랐어요. 이웃들도 모두가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어요. 형제는 없었지만 형제와도 같은 친구들이 정말로 많았어요. 그래서 남을 돕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남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네 잘못이 아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는걸요.”
“너는…….”
나그네는 채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저만치서 여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 탓이다. 몸을 일으켜 손을 흔들자 여인의 뒤를 따라오는 다른 여인이 보였다. 아이의 어미였다. 아이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노아야!”
어미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리고 아이를 안으려던 순간이었다.
“너, 대체…….”
어미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 굳었다. 그럴 법도 하였다. 아이의 입가와 옷에는 핏자욱이 선명하였고 아이는 혈색 없이 파리하게 말라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이미 죽은 자이다. 아이의 어미가 안아주기에는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다.
“너는…….”
“어머니?”
어미는 두 발이 묶인 듯이 자리에 선 채였다. 외려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자세가 위태로웠다.
“나, 나는 네 어미가 아니다. 우리 노아, 우리 아가는 어디에 있누. 아가야, 아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어미의 모습에 아이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어미는 비명을 지르며 여인의 뒤에 숨었고,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듯 자리에 멈추어 섰다가 그대로 달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어찌 여기 오셨어요.”
기운이 빠진 목소리였다. 나그네는 가만히 아이의 곁에 앉았다. 네 어미가 너를 거부하여 마음이 상하였느냐. 묻는 목소리에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실은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타는 듯한 갈증에도, 사람만 보면 일렁이는 허기에도 다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제가 곁에 있다면 어머니가 위험해질 테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위험한 일에 빠지는 것이니까요.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들도, 형제처럼 가까운 벗들도 모두가 위험해질 테니까요. 아이의 말에 나그네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아주 드물게, 너 같은 존재가 있다.”
몸은 죽었으나 혼은 살아있는 존재들. 죽어도 죽지 못하여 구천을 맴돌며 고향을 찾는 존재들. 억울하게 죽어 제가 죽은 것조차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리하여 죽어버린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이승을 하염없이 떠도는 존재들.
“우리 추이꾼들은 그런 존재를 망향귀라 부르지.”
“망향귀요.”
“고향을 바라지만, 고향을 잊어야만 하는 존재들.”
“가엽네요. 저처럼.”
“망향귀는 으레 자신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고 떠도는 자들이다. 허나 너는 이제 알겠지. 네가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곧 저승차사가 너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선선히 그 뒤를 따를 준비가 되었느냐.”
아이는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가 되었어요. 그 말에 나그네는 잘 생각 하였다, 짧은 칭찬을 해 주었다.
“아저씨, 저는 사실은요.”
아이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목소리는 가느랗게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사실은요…….
“…죽고 싶지 않았어요.”
먹먹하게 물기에 젖은 음성이 띄엄띄엄 새어나왔다. 간신히 울음을 삼키려는 양, 그렇게도 푹 젖은 목소리였다. 투둑, 툭. 눈물방울이 마른 풀잎 위로 떨어졌다. 아저씨, 저는요. 저는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