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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노트맨
작가 : happydwarf
작품등록일 : 2022.1.30

눈을 뜨니 이 넓은 서울에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가 알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4
작성일 : 22-01-30 18:16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4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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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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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싸움이라고 해봤자 서로 솜방망이 주먹질을 여기저기 주고받는 건데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둘 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고야와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유치하게 느껴져서 그냥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만하자! 후..."

 

 "야! 이기남! 그놈의 성질머리는 여전하네. 그런데 나라고 이런 상황이 좋기만 하겠냐? 그래도 어떡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디에서든 살아남아야지, 안 그래?"

 

 녀석은 갑자기 몸을 격하게 움직여 속이 안좋아 보였지만 참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고?"

 

 또 한번 허튼소리를 하면 이번엔 레슬링 기술을 넣으려고 마음을 먹고 물었지만 다행히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획 세우기 전에 배고픈데 밥부터 먹으러 가자. 응?"

 

 "그래. 이번에는 네가 요리해라! 나한테 해달라고 하지 말고."

 

 "알았어. 기남이 네가 운전해. 나 아까 넘어지면서 발목이 좀 삐었나 봐. 무식한 새끼. 아파 죽겠네."

 

 진짜 아픈 것인지 고야는 절뚝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미안하다. 의사도 없는 곳에서 다치게 해서."

 

 "맘에도 없는 소리는 됐고. 가자!"

 

 나는 좀 전에 고야를 밀쳐 넘어뜨리면서 들었던 비명소리가 엄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곳에 본인도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텐데 나를 만나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다시 도심으로 향하면서 고야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마트에서 소고기를 가져다가 스테이크를 해 먹을지 아니면 파스타 면을 사다가 토마토나 크림파스타를 해 먹을지 그것도 아니면 찌개용 밀키트로 간편하게 해장을 할지에 대하여 나름 심도 있는 회의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고야와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밥과 스팸 조각, 그리고 컵라면 및 생수 한 병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야... 좀 심하지 않냐? 아까 그렇게 이것저것 말하더니 기껏 편의점이냐?"

 

 나의 비난에 고야는 미안해 하였다.

 

 "어제 너무 과음했나 봐. 도저히 뭘 만들 상태가 아니야. 일단 아점으로 대충 때우고 이따 저녁에 맛있는 요리 해줄게. 진짜 약속!"

 

 "새끼손가락 부러뜨리기 전에 치워!"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세우며 약속하자는데 가라앉던 숙취가 다시 올라와 짜증이 났다.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오면서 고야는 몇 번이나 속이 안 좋다 하였는데 그때마다 차를 세워주긴 하였다. 차에서 내려서 전봇대를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며 그냥 버려두고 가버릴까도 잠깐 상상해 보았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후르릅! 크아~ 역시 우리나라 컵라면이 최고다. 아, 좋다."

 

 고등학생때에도 컵라면은 싸구려 음식이라고 쳐다도 안보던 녀석이 지금 상태가 안좋기는 안좋은가 보다고 생각하며 민망하지 않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 맛있네."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고야는 잠시 웃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이제 다시 혼자가 될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갑자기 고야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분명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이며 내가 살던 동네고 내가 익히 알던 서울이었지만 이곳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지난 34일 동안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게 다가와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나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존재에 의해서 우리가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혹시 옛날 영화중에 그 매트릭스 같은 거 아니야?"

 

 나의 말에 고야는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 매트릭스? 그게 뭔데?"

 

 '그런 명작을 안보다니 무식한 녀석'이라는 나의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낸 채 설명을 간단히 하였다.

 

 "너 안 봤구나? 그거 1999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암튼 미래의 AI가 지배하는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야. 거기에서 가상현실시스템이 지금 여기처럼 말도 안 되게 진짜 현실 같다고 나오거든? 아마도 이곳도 혹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나의 말에 고야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풉. 야, 오늘이 정확히 2051년 6월 4일이야.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온 그 영화에서는 어떤 상상력으로 그런 이야기를 지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AI 개발에 뒤쳐진지도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어. 재작년인가 전 세계에서 다시한번 AI관련 선두를 달리겠다고 미국이 초월인공지능이란 거 만들어서 가상현실 게임 지원한다고 뉴스 나왔었는데 얼마 전에 그 시제품 체험한 학생들이 그냥 좀 더 실감 나는 VR 수준이라고 아주 대놓고 혹평을 했더라고. 그런 현실에 가상현실은 무슨. 그리고 만약 가상현실이 맞다고 하더라도 십년이나 뒤쳐진 우리나라가 이런 기술을 숨기고 있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너와 내가 실험자로 선택되었을까? 혹시... 너도 나처럼 형님들한테 쫓기고 있냐?"

 

 잊을만하면 시덥잖은 소리를 하는통에 기분이 깨지지만 이제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아니, 내가 너냐? 아무튼 여기가 가상현실이 아니라면 뭐하는 곳일까? 그냥 지구에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서울외에 모든 땅이 없어졌다는 것 보다야 우리가 이상한 곳으로 넘어온 것이 타당한 생각인 것 같은데... 아! 혹시? 이거 평행우주 뭐 그런 거 아닐까?"

 

 평행우주이론은 이곳에 떨어진지 하루도 안되어서 생각한 여러가지 가설중에 하나였지만 지금 생각난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런 나를 고야는 무슨 하등한 생명체를 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평행우주? 야! 이딴 평행우주가 어디 있어? 평행우주라면 서울 말고 다른 지역도 다 있어야지! 사람들도 있고! 이건 그냥... 아... 갑자기 머리 아프네. 기남아, 우리 조금만 이따가 생각하면 안 될까?"

 

 고야는 정말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양 검지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사실 나도 머리가 아팠다. 알 수 없는 어떤 인물에 의해서 꽁꽁 숨겨왔던 가상세계의 생체실험을 위하여 우리가 선택된 것이라면 어째서 동의도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인지 너무도 알고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실제 내 몸은 어느 실험실에 감금되어 있는 것일까? 이 세계를 만든 사이코 박사가 사람이든 아니면 AI든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아직도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는 고야에게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고야는 본인 집이 편하다고 했는데 노원구에서 강남까지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전화나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지금 연락할 방법이 없기에 한 집을 선택해 움직여야 했다. 잘못 헤어졌다가는 또 엇갈려서 며칠간 헤매다 만날지도 몰랐다. 결국 내가 양보했다. 우리 집은 좀 작기도 했고 무엇보다 녀석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체취를 빼앗을 것 같아 두려웠다. 고야네 집은 고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가 아니었다. 거기는 몇 년 전에 세를 주고 본인은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신축 고급빌라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집은 아버지의 명의라 본인은 그냥 빌려 쓰는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부동산에 관련된 일은 자신의 주장이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도 나름 아픔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측은하게 보거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야네 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한집에 화장실이 4개에 방이 6개가 있을 수 있음에 놀랐다. 방 크기도 가장 작은 방이 우리 집 안방만 한 것 같다. 화장실이 우리 집 작은방보다 큰 것 같기도 하였는데 역시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여자에 빠져 그렇게 망가지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야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름대로 긴장이 풀렸는지 곧 잠에 들었고 나는 거품이 나오는 욕조를 이용해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가볍게 샤워만 하고 손님방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기쁨도 잠시, 두 눈을 감았는데 아내와 애들이 또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우야, 우리야, 나라야... 오늘따라 정말 보고 싶다."

 

 아내와 쌍둥이 아들딸 이름을 부르니 그렇게 많이 흘리고도 또 눈물이 남았는지 오늘도 울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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