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과달끼비르
“내 말이 길어졌군. 미안하오. 그래, 베라끄루스에서 세비야까지의 여정은 어떠했소?”
“아참, 제가 베라크루스에서 스페인 배를 탄 것까지 말씀드리다가 말았군요.
네, 저희들은 1614년 9월 30일 스페인의 까디스에 도착했고, 거기서 해안을 타고 위로 거슬러 올라, 10월 5일 산 루까르 데 바라메다라는 바닷가 마을에 닿았습니다. 말하자면 내륙의 세비야까지 가기 위해 과달끼비르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당도한 것입니다. 이어, 한참 강을 따라가다 1614년 10월 21일에는 세비야에 도착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도 벌써 100년이 훨씬 넘어, 이제 스페인과 아메리카 간의 항로는 그야말로 엄청 분주해졌다고 들었소.
베라끄루스는 콜럼버스가 처음 개척한 곳이라, 특히 그곳에서 세비야까지는 왕래가 아주 많아 졌겠군. 처음에 비하면, 배의 속도도 빨라졌으니, 출발하면 금방 도착하게 된다고 말하더군. 세상 참 많이 발전했소.”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직접 배를 운항할 필요도 없었으니, 이동하는데 꼭 필요한 최소 인력만으로 일행의 수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베라크루스에 오기까지 사망한 사람들이 있었고, 중간에 남고자 했던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한편, 세비야에서 마드리드까지 사절단 일행 17명은 일반 수레 두 대와 침대를 갖춘 수레 두 대, 그리고 짐을 옮길 수 있도록 말 오십 마리를 데리고 이동했습니다.”
저희들은 11월 25일 세비야를 출발, 먼저 꼬르도바에 닿았는데, 거기서도 큰 환대를 받으며 며칠 간을 머물렀습니다.”
“꼬르도바, 그래 거기서는 뭘 봤소?”
“네, 이슬람 사원인 메스끼따를 방문했습니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스페인 땅에 뿌리 내린 이슬람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먼 곳에서 와서, 수백 년 동안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았던….”
“그렇소. 사실 우리는 처음 이 땅에 살았던 그 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소. 여러 민족이 여기를 거쳐 갔고, 정착을 했소. 우리 혈통 역시, 유대인으로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던 시기에 이미 이 땅에 들어와 있었소. 말하자면, 이 땅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기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땅의 주인이라 생각하오.
그러나, 유대인을 쫓아내고, 이슬람을 내몰면서 정치적, 종교적인 강제가 심했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 다시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던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억지로 개종하여, 이렇게 우리 집안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나는 개종한 기독교인 집안의 사람으로서, 신앙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고, 이렇게 손이 다치고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고생 만하고 있으니, 이 사회에 대해 반감도 많소.
사실, 역사에는 흑백이 있어서, 기독교가 국토를 회복하면서 이슬람을 쫓아낸 곳이 이곳이라면,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독교도인들이 패퇴하여 이슬람에 넘겨준 것이니, 서로는 이겼다고 말하지만, 어찌 보면 비긴 것으로 봐야할 것이오.
나는 역사를 그렇게 보고 싶소. 공평하게….”
“아, 그렇군요.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니, 스페인의 역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쪽의 입장에서 만 볼 게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도 보는 역사 인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세비야에 아직도 살고 있다면, 내 성격에 사절단을 분명 동행했을 것 같소. 그랬다면, 그대 일행이 돈키호테와 산초를 만나게 했을 것이고, 아주 희한한 전투를 치렀을 것 같소. 하하하.”
그는 말을 바꿨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작품과 현실을 오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세르반테스는 말을 이어갔다.
“일행도 크지만, 일본인들의 모습 또한 기괴할 것이니, 돈키호테의 호기심이 그냥 지나치지 못 했을 것이오. 특히, 침대를 갖춘 수레에 동양에서 온 아름다운 공주가 들어있을 것이란 상상이 가미되었다면, 멋진 전투가 벌어졌을텐데….
서양의 기사와 동양의 사무라이가 벌이는 진기한 전투! 풍차와의 전투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기사들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모험이 있었을 텐데…. 하하하.”
엉뚱한 말에, 머쓱해진 얼굴을 한 석희를 바라보고도, 그는 계속 현실과 작품을 왔다 갔다 했다. 그의 모습이 마치, 작품 속 돈키호테와 한 몸 같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까따이에서 온 앙헬리까 공주 이야기로 이미 세상을 떠난 기사들과 그들의 이야기로 흥분했던 독자들도 무덤에서 나와 지켜볼 일이지만, 더욱이 독자들이 엄청나게 만들어질 모험담이 될 것인데…. 하하하.”
세르반테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석희는 그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세계에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희들의 모습은 가는 곳마다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마을 밖까지 계속 따라왔답니다. 저희들이 스페인의 이곳 저곳의 이것 저것을 신기하게 바라본 것 이상으로, 여기 사람들은 저희들에 대해 참으로 신기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