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모두 갑판에 모여 가까워지고 있는 가마의 행렬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붉은 홍등이 수면에 반사되어 오이란팀의 등장이 더욱 빛이 났다. 쇼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오이란의 머리장식이 바람에 날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윈드차임바가 아름다운 빛깔의 소리를 냈다. 곧이어 게이코 사쿠라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며 여러 나룻배가 여우, 사자, 신비동물 ‘갓파’ 등의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을 싣고 등장했다. 그들은 화려한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채 각자의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 중심에 게이코 사쿠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커다란 쇠막대기를 든 타로의 호위를 받으며, 아름다운 곡조와 함께 춤사위를 펼쳤다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춤도 아름다워 나룻배의 홍등이 그녀만을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등장에 갑판 위의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뒤로 타로와 동일한 호위무사로 분장을 한 남장 여자 테코마이(手古舞)들이 들어서고, 그 뒤로 가장 높고 가장 화려한 가마가 가장 많은 홍등을 달고 등장한다. 배의 선두(船頭)에 어린 카무로(禿)들이 담배 키세르(キセル)와 재떨이 타바코봉(たばこ盆)을 들고 서 있고, 가마의 가장 높은 곳에 우메(梅)가 가장 화려하고 요염한 자태로 연죽을 피고 있었다. 그 뒤로 조음이 그의 몸만큼 큰 우산을 들고 서 있다.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기면은 오이란의 연죽과 그 뒤에 서 있는 남자의 풍채를 확인하고, 그들이 네 번째 다섯 번째 사건의 범인임을 확신했다.
‘너희들이구나.’
갑판 위에선 오이란의 화려한 등장에 취해 환호성을 질렀다.
“우메다! 우메! 일본 최고 오이란 우메가 왔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도쿄만을 감싸고 있는 동안 배들은 점차 크루즈 가까이 정박을 했다. 행렬이 멈춰서자 츠쿠모(太藺)가 사쿠라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못 온다면서 사쿠라~! 우메는 또 어떻게 온 거야?”
“깜짝 이벤트로 준비했습니다, 나으리. 어떠신가요?”
“멋져! 아주 멋져! 역시 사쿠라야!”
그 사이 정당원이 하벅교수를 데리고 와 가마 가장 위쪽을 가리키며 그에게 우메를 가리켰다.
“오늘 진짜 교수님을 모시게 될 오이란입니다. 어떠십니까!”
하벅은 가마 위의 아름다운 오이란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어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하야쿠! 하야쿠!> 하고 소리쳤다. 그런 그를 보고 미소를 짓던 사쿠라가 하늘 위로 손을 뻗자 북소리가 쿵쿵쿵 울렸고, 배들이 흩어져 크루주에 바짝 선체를 대었다. 그러자 미리 선체와 선체를 연결할 준비를 하고 있던 수사관들이 선체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오이란의 배에 크루즈를 연결했다. 연결다리로 행렬의 선두에 있던 자들부터 순서대로 배에 올랐고, 요염하게 가마에 누워 있던 호림도 오이란도추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비장한 그녀의 목소리에 조음은 자신의 어깨에 그녀의 손을 올리며 그의 옆에서 발맞추어 걸었다. 호림은 바람과 바다의 출렁임에 연결된 다리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전혀 미동도 없이 20cm가 넘는 나막신을 신고 8자를 그리며 요염하게 크루즈를 향해 걸어들어왔다. 그 모습에 하벅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앞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당원들이 그를 진정시키며 그녀가 크루즈 위에 올라서길 기다렸다.
그 광경을 조타실에서 지켜보고 있는 재성은 마치 마지막을 준비한 듯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호림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만큼은 지켜주리라고.
“오이란이 연회장으로 향한다. 대기하라.”
요네쿠라의 무전에 수사관들이 폭탄제거를 위해 미세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성도 노트북을 열어 수사관들에게 나누어 준 손전등 카메라 영상을 켰다. 이제 요네쿠라의 무전만 기다리면 됐다.
“연회장이 모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 없도록 연회장 내부 감시를 한다.”
“라저”
“폭탄제거팀 출격한다.”
“라저”
요네쿠라의 무전과 함께 폭탄제거팀들이 하나 둘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에 불이 들어오자 재성의 노트북 화면 속 영상도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영상을 통해 수사관들의 침투과정을 지켜보던 재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폭탄의 연결선이 이미 끊어져 있었다. “메인선이 끊어져 있습니다.”라는 무전이 연속해서 울리는데, 재성은 그에 답할 정신이 없었다. 배가 처음 서 있던 선착장의 모습을 확인해야 했다.
“야마모토!”
조타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기면이 조타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 그를 불렀다. 하지만 재성은 당황한 기색으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기면은 그에게 따지려다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무전을 했다.
“야마모토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라저.”
요네쿠라의 답을 듣고, 기면은 재성의 곁으로 가 그가 보고 있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그는 오이란팀이 선착장을 출발하기 전 장면을 돌려보고 있었다. 한참을 같은 장면을 돌리고 또 돌려보던 그가 갑자기 화면을 멈추었다. 재성이 멈춘 화면엔 수명의 오이란도추 공연팀이 공연진행 상황을 사쿠라에게 전해 듣는 장면이었다.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기면이 그에게 물었다. 재성은 긴말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사쿠라 뒤에 있는 타로를 가리켰다. 타로는 평소 같지 않게 사쿠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착장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성은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손을 이동했다. 그 시선의 끝에 화면에 잘렸지만 검은 그림자와 같은 형체가 기둥 뒤에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진짜 헤드.”
재성의 말에 기면은 영상을 자세히 봤다. 그림자라 생각했지만, 분명 바람에 천이 날리는 것 같이 보였다. 한강 사건에서 천에 쓸린 자국이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이 자가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까?”
재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자 때문에 계획이 바뀐 겁니까?”
“그런 거 같아.”
“대체 뭐가 바뀐 겁니까?”
“몰라. 나도 모르겠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재성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기면을 봤다. 기면은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아 생각해 내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난 기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중에게 방법을 찾으라고 말하고 조타실을 빠져나갔다. 기면은 조타실 벽에 기대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력으로 버틸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
폭발물이 작동하지 않음을 확인했지만, 요네쿠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폭발물을 제거해 이미 준비해둔 보트를 태워 보낸 후, 계획대로 이미 공연이 끝난 출연진을 2차로 크루즈에서 내보냈다. 요네쿠라는 남은 보트의 개수를 확인하고, 연회장에 있는 수사관에게 무전을 했다.
“마츠모토 거기 어떤가?”
“게이코 사쿠라와 오이란 우메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박직원이랑 요리사 중 꼭 필요한 인력 빼고 나머지는 탈출시킨다. 절대 그들의 탈출이 드러나면 안 된다.”
“라저.”
요네쿠라가 3번째 탈출을 지시하는 사이, 기면이 그에게 다가왔다.
“방법은 찾았습니까?”
기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금방 찾아서 무전 준다고 했습니다. 그보다 진짜 헤드가 선착장에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선착장에 있는 형사들에게 체포하라고 하겠습니다.”
“검은 천을 덮은 사람입니다.”
“그게 답니까?”
“온몸을 덮었을 겁니다. 땅에 끌릴 정도로요.”
“너무 튀는 거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튀지 않고 당연한 일상복이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기면이 이리저리 검색하며 찾아낸 부르카 의상을 보여줬다. 요네쿠라는 사진을 보고 놀라서 그를 봤다.
“이 옷이면 평소에 다닐 때 이상하지도 않고,”
“얼굴 본 사람도 없겠죠.”
“중간에 사람이 바뀌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네요.”
“헤드가 중간에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면의 질문에 요네쿠라는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다.
“글쎄요. 한 가지만 확신이 드네요. 선착장에 있는 동일 복장에 인간을 잡아도 그 사람이 이 사건은 주요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거는요.”
요네쿠라는 전화를 걸어 선착장에 배치된 형사에게 부르카를 입은 여인을 모두 잡으라고 명령했다. 그도 기면도 확신이 없는 체포를 명령하며 더 착잡해졌다. 그때 재성이 노트북을 들고 갑판으로 뛰어나왔다.
“김형사, 한강에서 죽은 사람 사체가 어떻게 됐어?”
기면은 그의 말에 이상한 듯 그를 봤다. CCTV를 조작한 사람이 그라면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태도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전혀 모르는 거야?”
“화면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 보지 못했어. 어떻게 처리됐어?”
그는 잠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기면의 대답에 답이 있다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여자는 조훈처럼 목과 몸통이 분리돼서 한강에 버려졌고, 남자는 목을 제외한 몸통 전체가 산산이 부서졌어. 부서졌다고 하는 게 맞아.”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기면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확인한 요네쿠라가 재성의 팔을 잡고 그의 눈을 봤다.
“지금 그 폭탄으로 죽이려는 거야?”
“확인해줘. 사람들이 알약을 먹었는지.”
“약 이름이 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무언가 삼키게 만든 거면 돼.”
재성의 다급함에 기면이 상중에게 무전을 했다.
“강형사, 혹시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 알약 먹었어?”
“네. 사카즈키고토(盃事)하면서 독사사케와 함께 마셨습니다. 해독제라는 거 같던데요? 왜 그러십니까?”
“혹시 몇 명이 먹었나?”
“사카즈키고토가 의형제 맺는 그런 의식 같은 거라, 당원 전체랑 하벅교수만 먹었습니다.”
상중의 무전을 듣고 재성은 바로 노트북을 켜 자신이 만들었던 폭탄프로그램을 노트북에서 실행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기면은 남은 약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하고 하고 조리실로 뛰어갔고, 요네쿠라는 아까 명령했던 세 번째 탈출을 제지 시키기 위해 무전을 했다.
“탈출진행팀, 3번째 탈출 진행했네.”
“네. 마지막 그룹 방금 떠났습니다.”
무전기에 들려오는 대답에 요네쿠라는 선체에서 멀어지는 보트를 보고 놀라 선착장에 있는 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탈출한 요리사들 다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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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조리실에 있는 미들쉐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면.
“그럼 알약은 이쪽에서 준비했다는 겁니까?”
“네. 독사주와 알약을 예쁘게 세팅해서 나가는 것만 했습니다. 별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 오늘 처음 온 친구에게 시켰고요.”
“오늘 처음 온 친구요? 오늘 같이 큰 행사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도 데리고 오나요?”
“원래는 안 데리고 오는데, 저희와 오기로 한 친구가 여기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대신할 사람을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그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업무 변경하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해독제가 안 들어서 배앓이를 하시는 분이 있어서요. 확인해달라고 해서 절차만 밟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
기면은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가 다시 그에게 새로 온 친구의 이름을 물어보려 돌아서다 순간 정신을 놓고 주저앉았다.
‘안 돼, 김기면!’
조리실에 있던 쉐프들이 놀라 그를 붙잡아 줬고, 기면은 죄송하다고 말하며 여전히 풀린 동공을 하고 조리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앞에 상주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기면을 바라봤다.
“괜찮으십니까?”
“한계야.”
“분장실에서 쉬십시오.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이대로 쓰러지면 못 일어나.”
“일본 경찰들 앞에서 쓰러지면 과장님이 화내실겁니다. 한일전 경기에서 진 것처럼요.”
상중의 농담에 기면이 웃었다.
“주무시지 말고 저희 어머니와 계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중이 기면에게 인사를 하고 갑판으로 나갔다. 기면은 그가 사라진 후에도 벽에 기대어있었다. 그의 귀에 연회가 막바지를 알리는 MC의 멘트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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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구석에 숨어 오래전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드디어 작동시킨 재성은 프로그램에서 신호를 받은 폭탄들이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리저리 암호를 넣어 보았지만, 그의 명령을 듣지를 않았다. 그때,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마지막 폭죽쇼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들 사이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호림과 그 곁은 지키고 있는 조음이 보였고, 모든 일행 가장 뒤에 유리코와 타로가 있었다. MC가 폭죽의 신호를 알리는 멘트와 함께 첫 번째 폭죽이 터지자 모두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리코와 타로가 조심스럽게 일행 사이에서 벗어나 도망가는 것을 보고 재성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사이 호림은 옷 소매에 감춰두었던 폭탄의 리모컨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당황해서 조음을 봤다. 조음은 하얗게 질린 그녀의 표정을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눈에 도망가는 유리코와 타로, 그 뒤를 따르는 재성의 모습을 보고 일이 단단히 잘못됨을 감진한 그는 들고 있던 거대한 우산을 하벅교수 머리에 가져다 댔다. 호림의 몸을 어떻게든 만지려고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하벅이 우산의 끝이 자신을 향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총알이 날아와 그의 머리통을 날렸다.
“아악!!!!!”
조음과 호림의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요네쿠라가 수사관들과 그들을 덮치려는 순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갑판 위에 혼란스럽게 흩어졌다. 조음은 그 순간 호림을 품에 안고 탈출하려 했으나, 이미 그들이 배 안팎으로 두 사람을 포위하고 있는 형사들을 보고 결정을 해야 했다. 조음은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고, 요네쿠라와 형사들은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형사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조음은 어깨에 맨 호림을 꽉 부여잡고 나머지 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우산으로 가까이 다가온 형사들을 가격해 날려버린 후 선두(船頭)를 향해 내달렸다.
*
정신없는 틈을 타 보트가 있는 쪽으로 도망치던 타로와 유리코를 재성이 달려와 막아섰다.
“내가 미국에서 만들고 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폭탄을 네들이 어떻게 알고 이걸 썼지?”
“네가 만든 폭탄이 뭔데?”
타로가 모른다는 듯 대답하자 재성이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이거 정말 몰라? 알약형 폭탄. 내가 개발 했지만 전쟁 무기 같아서 학교에 묻어두고 가지고 오질 않았던 이 폭탄. 네들이 찾아서 가져온 거 아니야?”
“네 입으로 얘기하고 있네. 미국 학교에 묻어 놨다고. 우린 미국에 간 적이 없는 데 네 폭탄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겠어?”
타로의 말에 재성은 놀라 멍해졌다. 이들이 폭탄을 몰랐다는 건 유월이 자신을 마마라 부르는 모두를 버린 것이었다.
“너희는 눈치챘지? 마마가 우릴 버린거?”
보트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타로와 유리코를 향해 재성이 소리쳤다. 유리코는 그런 재성에게 다가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마마가 우릴 버린 게 아니라, 우린 누구에게도 구조된 적이 없어.”
재성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봤다.
“울지 마. 네가 할 일이 있잖아? 그거 곧 터질텐데. 저 폭죽과 함께.”
유리코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재성은 하늘을 봤다. 마지막 폭죽이 터지기 직전에 정적이 흘렀다. 마지막 폭죽이 터지는 시간과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맞추어 놓은 상태라면 당장 멈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명령도 듣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도저히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시로(城)”
유리코가 보트에 오른 후 재성을 불렀다.
“우리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일까?”
“그게 무슨 소리야?”
재성이 유리코에게 물었지만 유리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보트를 타고 유유리 크루즈를 탈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재성은 생각했다. 끝과 다시 시작. 그는 말이 주문이라는 것처럼 계속 말을 반복하다 순간, 떠나기 직전 그가 걸어 놓은 비밀 암호가 생각났다. 폭탄 자체에 깔아놓은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로(0)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명령어.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 장소의 이름. .
재성은 암호를 작성해 컴퓨터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컴퓨터에 라는 질문이 나왔고, 그가 를 누르자 프로그램 가동 화면에 폭탄의 갯 수 만큼 완료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수없이 화면 위로 올라왔다.
조음과 형사들은 선두에서 여전히 대치 상태로 있었다.
“너희를 도와주게. 너희의 우두머리가 따로 있다는 거 알고 있어. 그자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면 너희가 원하는 데로 해줄게.”
요네쿠라는 조음과 딜을 하며 그를 진정시켰다. 그를 죽이는 것보다 그를 살려 우두머리를 잡는 게 훨씬 유용했다. 하지만 그들의 협상 시도는 조음에게 통하지 않았다.
“오빠...”
모든 걸 내려놓은 호림의 목소리는 오직 조음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이제 가자.”
조음은 호림의 말에 우산을 분리해 작은 총을 꺼냈다. 모두 그 모습이 놀라는 사이, 조음은 호림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 붙인 후, 자신의 머리통 방아쇠를 당겼다. 폭탄처리를 하고 갑판 위로 뛰어 올라온 재성은 자살한 조음과 호림을 보고 놀라 들고 있던 노트북을 떨어뜨렸다. 그는 정신이 나간 채로 형사들을 지나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조음과 호림을 본 재성은 구멍난 그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2층 갑판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제인이 오늘 파티의 마지막 곡이었던 <사의 찬미>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가 죽은 이들을 위로하듯 바람과 함께 바다 위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