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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죽이고 싶은 자들
작가 : hisei
작품등록일 : 2022.1.21

VIP연쇄살인이 벌어진다. 그러나 왜 VIP가 죽어 나가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던 중 과거 일본에서도 VIP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 걸 알고 조사차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조직을 배신한 야마모토라는 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 데...

 
21. 전쟁의서막
작성일 : 22-01-21 19:07     조회 : 175     추천 : 0     분량 : 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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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오랜만에 게이샤 전담 미용사였던 모리(森)의 손길로 오이란으로 치장한 호림은 방구석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상자를 꺼냈다. 일본에서 마지막 오이란도추를 하던 날 아침에 재성이 그녀에게 찾아와 선물한 거였다. 오늘이 마지막 오이란도추의 날이 될 거라는 생각에 호림은 모리에게 장식을 건넸다.

 “이게 아직도 있었어?”

 “귀한 건데 당연하죠.”

 모리가 마지막 장식을 머리에 꽂아주고, 호림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상을 갖춘 조음도 어느새 거실 문 앞에 서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다>

 조음의 수화에 호림은 환하게 웃었다.

 “가자.”

 호림은 무거운 옷을 끌어안고 조음이 챙겨준 낮은 나막신을 신고 집을 빠져나갔다.

 “역시 내가 키운 오이란이야.”

 유리코와 타로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코도 게이코로 치장을 마친 후였다.

 “오늘도 아름다운데~”

 “언니 손길로 더 아름다워져야 하는 데 오늘은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양보했어요.”

 “어때, 오늘 특별히 더 아름답게 했어. 자, 그럼 오늘 즐기고 와. 이 집은 나에게 맡겨두고~”

 “부탁드려요.”

 유리코와 모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계속 유리코를 노려보고 있던 호림은 모리와 상중의 도움으로 유리코가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말이 없는 네사람. 긴 정적을 깬 건 호림이었다.

 “사쿠라(櫻)는 안 오는 거 아니었나요?”

 “어린아이들이 내 일을 망칠까 봐 걱정 되서.”

 “망치지 않아요.”

 “그건 봐야 아는 거고.”

 호림이 한 번 더 따지려 하자 조음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림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벚꽃이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아름다워서 슬픈 날이었다.

 

 *

 기계실에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성은 오이란 장신구에 비친 유리코와 타로의 모습을 보고 안심을 했다. 그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이 라스트 파티를 기획한 사람이 늘 못 미더워했던 자들에게 전부를 맡길 리 없었다. 분명 그들은 재성이 경찰과 붙었다는 걸 눈치채고 혼선을 주기 위해 프로그램 명단을 교체하는 술수를 쓴 것이다.

 “머리는 내가 네들보다 한 수 위라는 걸 보여주지. 유리코, 타로.”

 

 연회장 파티는 절정에 이르렀다. 남자 성악가의 노래가 끝나고 MC가 무대 위에 올라와 분위기를 주도했다.

 “우리의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이때 무엇을 해야죠?”

 “사카즈키고토(盃事)!”

 모든 정당원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MC는 기다렸다는 듯 하벅교수를 무대 위로 올라오게 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그는 거의 게이샤를 끌어안고 무대 위로 올랐다. 몇 명의 웨이터들이 진짜 독사가 들어있는 독사사케(毒蛇酒)를 무대 위에 올리고, 나머지 웨이터들은 하벅을 포함한 정당원 각자의 테이블에 작은 사케병과 사케잔, 알약이 담긴 트레이를 가져다주었다. 모든당원들은 늘 치르는 행사처럼 MC가 순서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머리 위로 독사주가 담긴 사케잔을 들고, 나머지 한 손엔 알약을 든 당원들은 MC의 멘트를 기다렸다.

 “하벅교수님이 일만(日満)을 선창하시면 모두가 일체(一体)를 후창 합니다. 하벅교수님이 선창합니다.”

 “일만!”

 “일체!”

 모두 구호를 외치고 알약을 입에 넣고 사케와 함께 알약을 넘겼다. 다 마신 사케잔을 바닥에 깬 당원들은 하벅교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벅은 신이 나서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곁에 있는 게이샤에게 키스를 했다. MC가 웃으며 말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입만 그를 만류했다.

 “하벅교수님, 게이샤에게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벅교수님만을 위해 A급 오이란을 불렀습니다. 즐기셔도 됩니다!”

 호스트이자 당원의 수장인 츠쿠모(太藺)가 소리 지르자 당원들이 “즐겨라!”라고 소리치며 환호를 보냈다. 하벅은 더 신이 나서 오이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고, 당원들은 더 큰 환호성을 부르며 그를 부추겼다. 그 모습을 연회장 가장 뒤에서 바라보던 상중은 불쾌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공연이 뭐가 중요하다고!”

 위험한 장소에서 제인이 공연을 강행하겠다고 한 것도 불쾌한 데, 점점 난잡해지다 못해 지저분해져 가는 자리에 흥을 돋우는 도구로 자신의 엄마가 이용당하는 것에 그는 더 화가 났다. 무전기에서 도쿄만 중앙에 도착했다는 선장의 말이 들려왔고, 수사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라저(roger)를 외쳤다. 그 사이 MC가 올라와 하벅교수를 자리로 돌려보내고 제인을 소개하는 멘트를 날렸다. 그러자 그녀의 등장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고, 제인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하벅교수는 오랜 펜이었던 제인을 보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Ti amo(띠아모/ 사랑해)”를 연신 외쳤다. 제인은 그런 하벅교수를 향해 눈인사를 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상중은 오랜만에 듣는 제인의 노래를 들으며 잠시 전시상황을 잊고 싶었지만, 미친개가 된 하벅교수의 행동이 거슬려 그를 계속 노려봤다. 지금은 다가올 폭탄보다 저 놈이 더 위험하다고 상중은 확신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좌중을 매료시키는 사이, 화려한 빛을 내며 거대한 가마가 작은 가마들 사이에 둘러싸여 미끄러지듯 도쿄만 중심으로 흘러들어왔다. 마치 기온마츠리(祇園祭)를 바다 위에 옮겨 놓은 듯한 장관이 펼쳐졌지만, 갑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면과 요네쿠라는 긴장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

 카메라를 통해 자신들이 탑승한 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재성은 폭탄을 제거하고 호림과 조음을 어떻게 대피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이란의 복장으로는 탈출이 쉽지 않았지만 방법은 찾아야 했다.

 “오이란팀 들어옵니다.”

 무전기에서 들리는 기면의 목소리를 듣고 재성은 준비하겠다고 답하며, 폭탄 설계도를 화면에 띄웠다. 그가 직접 설계한 폭탄이긴 하지만, 타로가 그것을 변형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최대의 변수를 생각하며 설계도를 다시 살펴보았다. 타로는 그에게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두뇌와 기술, 힘이 적절하게 잘 배합된 최고의 전투병기 같은 놈이었다. 그에게 힘도 싸움기술도 이길 수 없지만 두뇌만큼 그를 이기리라 재성은 거듭 다짐하며, 배들이 정박하기를 기다렸다.

 

 갑판에서 요네쿠라와 기면, 웨이터와 상중을 제외한 수사관들이 갑판에 나와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방송으로 선장이 오이란팀이 오고 있다며 모두 갑판으로 나와달라는 방송을 했다.

 “여러분! 일본의 자랑! 꽃 중의 꽃, 게이샤 사쿠라(櫻)와 오이란 우메(梅)가 이곳 고자부네 아타케마루(御座船 安宅丸)로 도착합니다! 모두 갑판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계획대로 제인의 2번째 노래가 끝난 상황에 선장의 방송이 나오자, 그 소리를 듣고 당원들은 초 흥분상태가 되었다.

 “사쿠라랑 우메가 온다고? 교체했다더니 온 거야?”

 “하벅교수! 우리 일본 최고의 게이샤들이 옵니다!”

 “최고의 여인을 맞이하러 가셔야죠, 뭐하십니까? 모두 갑판으로 향합시다.”

 MC의 멘트에 기다렸다는 듯 모든 사람들이 사쿠라와 우메의 이름을 부르며 갑판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상중의 귓가에 요네쿠라의 무전이 들려왔다.

 “각자 위치로.”

 요네쿠라의 말에 연회장 안팎의 수사관들이 빠르게 배치된 위치로 이동을 해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상중은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제인에게 다가갔다.

 “빨리 짐 챙겨 탈출하는 거 도와줄게.”

 “다른 사람들이나 도와. 아마 따로 마련된 식당에서 식사 중 일 거야. 이야기해서 내보내. 난 아직 한 곳 남았어.”

 “아빠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그런 거면 직접 가서 들려줘. 아니다, 엄마 설득할 생각 없어 그냥 따라 나와.”

 상중이 거칠게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 하자 제인은 그의 손을 물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상중은 아픈 손보다 제인의 반응에 더 가슴이 아팠다.

 “제인!”

 “내 자식이라도 무대에 방해 되는 행동하면 받아줄 생각 없어.”

 “어차피 저 자식들 좋아하지도 않아 그 노래.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이 만든 곡을 저들이 좋아하겠어? 뼛속까지 자기 나라 우상화에 심취한 새끼들의 소굴인데?”

 “안 본 사이에 많이 거칠어졌네, 우리 아들?”

 “짜증 나니까 그러지! 저 자식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짜증나고, 위험하다는 데도 무대를 고집하는 행동도 짜증 나고, 다 짜증 나! 엄마가 저 새끼들 인형도 아니고, 술 접대부도 아닌 데 왜 여기에 있으려고 하는 거야!”

 상중이 더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의 고함에도 흔들림 없는 제인의 표정을 보고 상중은 숨을 고르며 그녀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들로서 부탁하는 거야. 아니, 경찰 명령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제발 여기서 나가줘.”

 그때 게이샤의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제인은 고조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게이샤 공연 보고 싶었는데, 가서 같이 볼까?”

 “엄마!”

 제인은 상중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머뭇거리며 깊숙이 숨겨둔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난 수선을 참 많이 사랑했어. 그가 쓰는 글도 좋고 다정하게 말하는 말투도 좋고, 그 말투 속에 섞인 나를 이해하는 그 말들도 좋았았어. 그의 따뜻한 눈빛, 손짓, 걷는 걸음까지 모두가 좋았어. 근데 수선과 함께하려면 난 성공해야 했어. 세계 최고가 되어야 그와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래서 저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 간 쓸개 다 빼어놓고 저들의 비위를 맞췄어. 위로 올라갈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근데 나는 내가 그들을 이용한다 생각했는데 실은 저들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어. 내가 허락한 거였어. 저들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내가 허락한 거였어. 난 수선과 함께 하고 싶어. 그의 품 안에서 그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그러면 되잖아. 다 버리고 그러면 되잖아.”

 “이젠 못해. 너무 멀리 와서. 도망간다고, 다 버린다고, 하물며 오늘 저들이 다 죽어 없어진다 해도 난 수선에게 갈 수가 없어. 그래서 들려주려는 거야, 오늘. 저들이 내 인생을 얼마나 짓밟았는지 알려줘야지.”

 제인의 표정은 매우 확고하고 단호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가득한 눈물은 그녀가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상중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엄마가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행복해 보였고, 성공의 탄탄대로만 달리는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삶이 저들의 인형놀이에 불과했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상중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않던 상중은 결심한 듯 그녀를 바라봤다.

 “불러줘. 그 노래. 근데, 만약 저 개자식들이 안 죽고 엄마가 죽으면, 나 정말 엄마 용서 안 해.”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중을 끌고 갑판으로 향했다. 상중은 그녀와 함께 갑판으로 향하며 오이란팀이 저들을 다 죽여버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작가의 말
 

 본 소설은 픽션이며,

 특정 인물이나 단체, 지명, 종교, 기업, 사건, 조직 및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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