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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은 상중과 박형사를 교통과에 보내 위조된 차량이 한강 주차장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를 내리고, 그는 옥순(玉脣)의 사체를 확인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옥순의 사체는 조훈과 동일한 방법으로 처리해 피부와 근육조직이 찢어진 모양이 동일했었다. 얼굴에 남은 족흔과 손가락 흔적 역시 대략적인 크기가 비슷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와 그녀는 이전 세 사건과 드르게 독살하지 않았던 것인가. 증거도 많이 남고 처리하기도 번잡스러운 이 방법을 왜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일본에 죽은 그 남자는 무엇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면은 자리에 앉자마자 옥순과 일본에서 죽은 다카타 나오키(高田 尚樹)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둘이 접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선배,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확인은 했어?”
“네. 근데 몽동아파트단지에 들어간 거는 확인이 됐는데, 나오는 장면이 잡히질 않아서 박형사님 혼자 확인하러 가셨습니다. 전 아까 카페에서 확인한 거 전달드리라고 있으라고 해서 왔습니다.”
“카페에서 건진 거라도 있어?”
“조준 말입니다. 그 카페 주인 오이란이랑 만나는 거 같습니다.”
“증거는?”
“일본에서 온 진짜 오이란이고요. 10년 전에 카페가 열렸고, 그 여자가 연죽(煙竹)으로 담배를 핍니다.”
“담뱃잎이 뭔지 확인했어?”
“그게... 문이 안 열려서요. 11시 오픈인데 10시인데도 문을 안 열었더라고요.”
“쉬는 날이 아닌데도?”
“이건 제 생각인데요. 혹시 그 여자가 일본에 가서 다카타 나오키를 처리하러 간 거 아닐까요? 여긴 다른 놈이 처리하고요.”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여자라면 남자를 죽일 때 색기와 독극물이 든 주사기만 있으면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처리했을 수도 있다. 옥순 쪽은 처리해야 할 사람이 두 명이고, 거대한 남자가 가서 조훈과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조훈의 경우, 독살하려다 실패를 해 남자가 2차로 처리해 그런 끔찍한 광경이 남은 게 분명했다.
“한과장님도 잠깐 만났는데, 조훈의 시트에서 미량의 독극물이 들어있긴 했다더군.”
“실패해서 괴물 같은 놈이 달려든 거네요.”
“범인은 3명 이상인 거는 확실하네.”
“3명이요?”
“한강 CCTV를 조작했더라고.”
“그전에는 그런 건 발견이 안 됐잖아요.”
“치밀한 놈인데 이번엔.....”
기면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전 사건은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철저하게 흔적도 없이 처리했는데 이번 조훈 사건부터는 마치 보란 듯 증거를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걸까?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네?”
기면의 혼잣말에 상중이 되물었지만 기면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방일보 비서실장한테 전화해서 혹시 조준이 그 여자 만났는지 물어봐봐.”
“예, 알겠습니다.”
상중이 비서실장과 통화를 하는 동안 기면은 다카타 나오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1-2년 전 정당을 만들어 정계로 진출했고, 현재까지도 극우파인 흑사회(黑蛇會)의 회장이었다. 그는 위안부를 창녀 접대부라고 비하하고 떠들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위안부 문제인가....”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타깃이라면 지금까지 피살자들의 연결고리는 연결되었다. 하지만, VIP들은 이미 과거 선조의 일이고, 옥순과 정훈은 최근 일인데, 그냥 과거 현재 상관 없이 위안부 문제이면 타깃이 되는 걸까 의문이었다.
“선배, 여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어제 아니 정확히 오늘 새벽에 만났다고 합니다.”
“그럼 다카타는 누가 죽인 거지?”
“저....”
상중이 답지 않게 주저했다.
“왜? 숨기는 거 있어?”
“그게....”
“숨겼다 들키면 과장님한테 더 깨지는 거 알지?”
“숨긴 건 아니에요. 이게 관련이 없는 줄 알았는 데 돌아가는 판이 어째 비슷한 거 같기도 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것 뿐이예요.....”
당당한 척 했지만 상중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빨리 말해.”
“이미 일본에서 비슷한 VIP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비슷하다는 이유는?”
“전범 기업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보 출처는?”
“아버지가 VIP파티에 불참하신다고 해서 얼마 전에 갔다 왔거든요. 그 3번째 죽고 좀 잠잠 했잖아요. 그때요. 그때 VIP들끼리 수다 떠는 거로 들었습니다. 걔들 사이에서 퍼진 입소문이라도 거의 80프로 진실이라 VIP사건이 벌어진 건 사실일 겁니다.”
기면은 상중을 불러 일본 기사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한글로 일본 기사를 검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중은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자판 모드를 일본어로 바꾸고 일본어로 VIP사건 관련한 걸 검색하기 시작했다. 기면은 그가 검색하는 동안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사건이 벌어진 때는 알고 있어?”
“정확히는 모르고요. 거기서 사건이 끝나고 여기서 사건이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불안했다. 일본에서 사건을 벌인 놈이 한국으로 넘어와 이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규모가 커지는 사건이었다.
“범인은?”
“그건 못 들어서 몰라요. 어? 기사 찾았어요. 이게..... 그나마 최근 기사인 거 같아요.”
기면은 상중과 함께 기사를 읽어나갔다. 일본 최고의 선박회사 회장이 자신의 크루즈에서 독살당하여 죽었다는 기사였다. 그는 피를 토하고 굉장히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체를 정확하게 봐야 알겠지만 기사 내용상으로는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독살당했을 때 모습이 비슷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오래전 거는?”
상중은 기사를 더 검색했다. 한 참 페이지를 넘겨서야 기사 하나를 찾았는데 그건 의외의 내용이었다.
“전소(全燒)?”
기면과 상중은 서로 마주 봤다.
“어떻게 사체만 태우죠?”
“그러게...”
“이건 저희랑 다른데요?”
“그러게...”
기면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뭔가 찝찝했다. 왠지 가서 직접 확인해야 답이 연결될 것만 같았다. 여기서는 한계가 있었다. 기면은 한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과장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는 말에 한과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본 경시청에 협조 요청하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기면은 한과장과 통화를 끊고 외투를 챙겨 곽과장에게 향했다. 반드시 오늘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