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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드나드는 낡은 나무로된 위안소는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일본군들의 고함소리가 잔뜩 뒤섞여 지옥과도 같다. 문밖은 “하야쿠(빨리)”를 외치며 안에 있는 놈을 재촉하기도 하고, 참다못해 끝나지도 않은 방의 문을 열어 안에 있는 놈을 끄집어내 싸우기도 하고, 싸우고 있는 놈을 비집고 자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다 같이 개싸움을 하기도 한다. 문 안의 4장짜리 비좁은 다다미방은 더 지옥이다. 앞에 놈에게 당해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 여자아이를 끌어다 자신의 아랫도리를 박는 데 정신이 없다. 영혼도 기운도 모두 빼앗긴 아이는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삿쿠(콘돔), 삿쿠” 외치지만 미친개한테는 들리지 않는 듯 그는 자신의 더러운 정자만 배출하기 바쁘다. 아이는 죽은 듯 남자가 이리 돌리면 이렇게 철퍼덕 저리 돌리면 저리로 철퍼덕하며 인형인지 사체인지도 모르게 그저 그놈의 욕망의 도구로만 이용한다. 육체만 남고 영도 혼도 사라져간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입에선 여전히 “삿쿠, 삿쿠”만이 맴돌 뿐이다.
잠에서 깬 유월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꿈이었지만 그녀의 모든 감각기관이 기억하는 꿈이었다. 고통만 있었던, 죽음도 허락되지 않았던 지옥의 경험은 그녀의 삶을 아직도 짓밟고 있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않은 정신 속에서 현실을 자각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들어보았다. 검은 옷과 장갑에 싸여 있던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장갑을 벗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녹아내린 그녀의 손은 여전히 흉측했으나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제야 눈을 돌려 방안을 둘러봤다.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임전보 구락부(臨戰報 俱樂部) 뒤에 숨겨진 방안이었다. 몸이 고단해 아이들이 오기 전에 잠시 누워있으려고 방에 누웠는데 잠이 든 것 같았다. 늘 현실의 기억을 되뇌게 하는 꿈을 꾸기 싫어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잠은 고작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정도의 잠깐의 시간인데, 그 순간에도 그녀의 꿈은 그녀를 옥죄었다. 언제쯤 편안히 잘 수 있는 것일까 늘 되묻지만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년 평안하지 않았다.
“마마~!”
방문이 열리며 문 반대편에 위치한 창가의 빛이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빛을 등진 호림은 그림자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는 숨길 수 없었다. 그런 호림을 바라보던 유월이 몸을 일으켜 두 팔을 벌리자 호림이 뛰어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유월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본 가는 문제 때문에 온 거예요?”
“겸사겸사.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문제도 있어서 왔다.”
“마마가 직접? 우리에게 맡겨요. 우리가 있잖아.”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는 호림을 바라보며 유월은 호림의 손을 토닥였다. 그런 유월의 손을 바라보던 호림은 유월이 벗어놓았던 장갑을 집어 유월의 손에 입혀주었다. 그녀가 처음 유월의 손을 본 건 그녀를 구하러 왔던 10살 무렵이었다. 매춘을 하지 않겠다고 발악했다 흠씬 두드려맞고 열흘이나 보일러실에 갖혀 지내다 죽을 각오로 5층에서 뛰어내렸을 때였다.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여인이 긴 천으로 그녀를 받아줬고, 그녀가 호림을 땅에 내려놓고 벗어놓았던 장갑을 황급히 낄 때 그 손을 봤다. 그렇게 징그러운 손을 본 적이 없었으나 호림은 놀라지 않고 그녀의 손에 떨어진 장갑을 주워 끼워줬다. 그리고 다음 날 긴 천의 여인이 덩치 큰 남자를 데려와 아버지를 죽이고, 그녀를 데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10년의 오이란 수업 후 그녀가 마마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이번 일은 죄송해요. 이미 눈치를 채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제 불찰입니다.”
“너라면 조금만 더 살폈어도 알았을 텐데, 스스로를 너무 믿었던 거 같구나.”
“연속으로 성공하다보니 자만했던 거 같아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을 위해서는 당연히 그래야지.”
호림과 유월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음이 창가의 빛을 가리며 열려 있는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유월은 조음을 방으로 들어오게 시켰다.
“호림은 가서 영업 준비하거라, 난 음이랑 할 말이 있다.”
호림은 빠져나가고 조음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켰다. 그리 밝지 않은 전구의 빛이 방을 은은하게 밝혔다. 유월은 조음이 자신의 앞에 앉자 그제야 품 안에 숨겨두었던 사진 한 장을 꺼내 조음에게 건넸다. 사진 속엔 중년의 여자가 군용베레모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누군지 유월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신문에서 자주 보았던 여자였다. 나라에 크고 작은 문제에 나서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여자라 더욱 기억했다. 최근엔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천황에게 사죄를 한다며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도 났었다. 조음은 그 때문인가 싶어 유월을 봤다. 유월은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결정한 부분이라 오늘 처리할 생각이다.”
유월의 날카로워진 눈빛은 오랜만이었다.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처단자를 직접 처단할 때도 이런 눈빛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조음이 기억하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분노를 느꼈던 때는 호림을 만났을 때였다. 조음이 곁에 있었음에도 유월이 직접 그 놈을 갈기 갈기 찢어 놓았다. 조음이 기억하는 한 그 가녀린 몸에서 엄청난 분노의 에너지가 폭발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때 조음이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을 때 유월은 대답했었다. 나를 보아서 화가 났다고. 자신의 친아버지한테 욕정쓰레기통으로 이용 당한 호림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보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유월은 분노한 적이 없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단 한 번도 이유를 물은 적 없던 조음이 조심스럽게 수화로 그녀에게 물었다. 유월은 말없이 명령에만 따랐던 그가 오랜만에 던진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라고 물은 게 20년만인가?”
조음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너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아이라 내 마음을 읽어서 묻는 거겠지.”
이후 유월은 한참을 말없다 입을 열었다.
“너가 처단할 것이니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겠지.”
그렇게 말하고도 한참을 침묵하던 유월은 겨우 입을 열어 조음의 질문에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었다. 우중충한 날씨만큼 뉴스에 나오는 소식도 우중충했었지.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유리코(百合子)가 집에 찾아왔었다. 잘 찾아오지 않는 아이가 아침부터 찾아왔다는 건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
3층 다다미방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유월. 그녀가 생각에 빠진 사이 라디오를 통해 CNN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명문대학에서 발표된 논문이 역사왜곡을 했다는 보도였다. 유월은 뉴스를 들으며 비 내리는 거리 속 사람들을 지켜보다 익숙한 모양의 우산이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문이 열리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여자의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유월은 처음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뼛속 깊이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여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인사를 했다. 유월은 그런 그녀의 인사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단 한 순간도 유월의 말을 들었던 아이가 아니었다.
- 나나오 유리코(七尾 百合子)
-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그년는 게이샤들이 쓰는 독특한 일본어로 말했다. 유월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다다미방 중앙에 놓인 테이블 앞 좌석을 권하며 자신도 테이블 앞 좌석에 가 앉았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유리코는 라디오를 끄고 유월이 앉아 있던 창가로 갔다.
- 마마 차를 옮겨 드릴까요?
유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 앉으라고 다시 권했다. 그제야 유리코는 유월 앞에 앉았다.
- 어쩐 일이냐?
결사단 활동을 하면서 유리코와 유월은 만나는 접점을 만들지 않았었다. 만나더라도 서로 다른 일행인 것처럼 따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건 거의 30년만이었다. 둘은 꽤 긴 정적의 시간 동안 서로의 얼굴만 마주 보았다.
-타마신(玉脣)을 죽여주세요.
유리코 입에서 나온 말은 매우 놀라웠다. 정확하게는 그 말을 하며 유월을 바라보는 그 눈매가 놀라웠다. 유리코를 만난 그날 이후 40년만에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분노가 쌓이고 쌓여 괴물의 눈을 하고 있던 그때의 그 눈. 어린시절 자신의 눈과 너무 닮아 한 번 보고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그 눈을 유월은 또렷이 기억했다.
- 많이 아프구나.
유월의 말에 유리코는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유곽에서 탈출을 감행했던 날이었고, 늘 그랬듯 10살짜리 꼬마아이를 잡겠다고 유곽의 남자들이 쫓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6살 무렵 아빠에게 팔려 유곽에 처음 발을 들인 날부터 4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이 지겨운 짓을 지속해와서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당연하게 다시 유곽으로 향할 거라 생각했던 평범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검은 천으로 온 몸을 덮은 사람이 도망치는 그녀를 낚아채 자신의 옷 속으로 숨겼고, 그렇게 그녀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유리코에게 그 어떤 말도 묻지 않고 그녀가 묵고 있는 숙소로 데려가 밥을 챙겨주고, 씻겨주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게 도와줬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녀가 한 말은 <많이 아프구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리코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많이 아프다고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묵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리코는 침묵해서는 안 되었다. 유리코는 고개를 들어 다시 유월을 봤다.
- 타마신이 흑사회(黑蛇會)에 돈을 받고 유학생들을 대동아대학에 보낸다고 합니다.
- 이미 짐작한 일 아니냐? 극우세력을 세계에 퍼트리기위한 방법으로 대동아대학을 설립했으니 각 나라에 협조자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극우세력을 늘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 무슨 말이냐?
- 극우파의 정계 진출용 접대부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유리코의 말에 유월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언제부터 알았던 거냐?
- 어제 저녁 현양장(玄釀場)에 다카타 나오키(高田 尚樹)가 찾아왔습니다.
현양장은 아무나 오는 술집이 아니었다. VVIP만 올 수 있는 고급 술집으로 출입조차 조건이 맞아야 하고 유리코가 허가를 해야지만 가능했다. 다카타 나오키는 이미 조건에도 맞지 않는 자로 현양장 근처에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인물이었다.
- 당(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들어올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
- 1억엔을 가지고 왔습니다.
유월이 놀라 유리코를 봤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현양장을 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1억엔을 내고 가입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원은 이름난 정계와 재계 사람들이어서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다카타 나오키가 1억엔을 가지고 왔다는 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현양장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였다.
- 일본수상이 목표구나.
유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 장학금 지원을 핑계로 사람을 모으고, 유학생들을 접대부로 만들어 VIP 성노예로 쓰고 있었습니다.
유월은 분노했다. 그가 어린 시절에도 VIP들은 똑똑하고 처녀인 여자를 좋아해 가장 어리고 똑부러지는 아이를 군부대 안으로 불러 전용 섹스도구로 사용했다. 유월은 그때의 지옥같던 기억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유리코는 그런 유월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깊이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 그래서 다카타와 타마신을 함께 죽여야 합니다.
- 타마신 말고 다른 연계자들도 있을 텐데?
- 어제 다카타가 데리고 온 아이 말로는 현재 접대부로 다니는 아이는 전부 타마신이 연계한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집이 가난해서 유학은 생각도 못하는 아이들이 타마신을 통해 대동아대학에 입학하게 되는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려면 흑사회가 시키는 교육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유월은 유리코의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뼛속 깊은 곳에 묻어둔 분노가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킨 것 같았다. 유월은 최대한 자신의 분노를 누르기 위해 쥐고 있던 주먹을 더 세게 쥐었다.
- 언제 처리할 생각이냐?
- 다카타가 나흘 후에 예약을 했습니다. 그때 처리할 생각입니다.
- 그때까지 타마신에게 접근하라는 이야기구나.
- 네. 나흘이면 짧은 시간이라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경계가 심한 여자입니다.
- 멍청하지 않으니 그런 일들을 저지르겠지. 알겠다. 돌아가거라.
유리코는 자리에서 물러나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유리코가 떠난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있던 유월은 아직도 분노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곧장 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월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음은 재성이 오래전부터 유월의 입국을 알고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보았던 재성의 서랍 속 일본 여권도 어쩌면 이번 일 때문에 챙겨 놓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미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재성을 통해 확인해 보니 타마신(玉脣) 그 여자는 엄마들에게는 극우활동을 열심히 하면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가 모두 해결된다고 말하며 극우활동을 강요했더구나. 아이들과 통하는 모든 연락망과 금융 거래도 그 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만들어 아이들을 완전히 고립상태로 만들었어..”
유월은 분노해 더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조음은 유월이 자신의 과거와 닮아 있는 이 상황에 그 어떤 상황보다 가장 분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몇 시에 처리하실 겁니까?>
“아주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