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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9화 의외인데... 소공작
작성일 : 22-01-28 14:13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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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티나가 시간에 맞추어 식당으로 들어가 식탁 가까이에 가니 마르켈이 소공작과 가까운 곳에 의자를 빼주었다.

 원래는 백작부인의 자리였으나 소공작과 자신의 딸을 가까운 곳에 앉히고 싶은 어미가 명한 것이리라.

 백작의 수더분한 대화로 식전주를 들며 그들의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아르디안 가주님께서는 평안하십니까? 용의 산맥에서 드라코 의식을 치루신다 들었습니다. 소공작 님께서도 동행하십니까?”

 “시국이 좋지 않으니까요. 전 저택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산맥과 해안 절벽으로 고립되어 있어 지형적 불리함이 큰 아르디안 공작가가 황권에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제국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드라코 덕분이다.

 이 의식을 치루고 나면 드래곤이 그들을 지켜준다는 일말의 희망이 제국민들에게 전해지는 모양이다.

 

 “아르디안 공작이 ‘드라코라디안!’이라고 외치니까 그 거대한 폭포수를 줄어들면서 동굴이 나오지 않습니까?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같이 간 백작 중에선 엉덩방아 찧던 이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건 아르디안 혈통만이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요, 부인. 나는 레너드 아르디안 선대가주께서 하신 것도 보았습니다. 진 소공작님의 모습도 꼭 한번 보고 싶군요.”

 

 백작의 말에 곁에 있던 마르켈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전 어렸을 때 소공작님께서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함께 동굴에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군요. 그렇지 않은가, 프란츠?”

 

 에멘탈 치즈를 한입 먹고 있던 프란츠가 쓴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고 진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 이후로 영양가 없는 대화들조차 뜸해져 어색한 분위기가 흐를 때 쯤 그들 앞으로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송아지 스테이크와 가니쉬가 나왔다.

 

 달그락 달그락

 

 오고가는 대화 하나 없이 식기들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고기를 썰던 소공작이 무심코 고개를 들자 식사 시간 내내 그 만을 보고 있던 유스티나의 눈과 딱 마주쳤다.

 그런 의미 없는 눈맞춤에도 마음이 설레었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황급히 물 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 했다.

 가라앉은 식사 분위기를 띄어보고자 프란츠가 맞은편에 있는 유스티나에게 말을 건넸다.

 

 “유스티나 영애는 몸이 다 회복되신 겁니까? 소백작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 나았어요. 감사해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소공작을 보는데 그는 그녀에게 관심 없는 듯 시선을 고기에만 고정하여 먹고 있는 모습에 풀이 죽었다.

 그는 백작저에 온 이래로 예의 상이라도 잘 지냈냐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서운해졌다.

 유스티나가 시무룩해진 모습을 본 마르켈이 말을 꺼냈다.

 

 “일개 하녀가 어찌 그런 귀한 약을 알고 있었는지 들을 때마다 신기하네요.”

 “무슨 약이었나? 몇 달 동안 시름시름 앓던 사람을 번쩍 일어나게 하는 약이라니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군요.”

 

 소후작이 먹고 있던 빵도 마다하고 질문하자 백작 부인이 대답했다.

 

 “정말 명약입니다. 제가 불면증이 심한데 유스티나의 약을 먹고 꽤 호전되었어요. 필요하시다면 하녀에게 물어 구해다 드리지요.”

 “저도 요즘 두통이 심한데 그 하녀에게 조언을 좀 구해야겠군요.”

 

 오랜만에 나온 소공작의 발언에 백작이 고개를 돌려 반응했다.

 

 “이런. 두통이 있으십니까? 이런. 의원이 필요하실까요?”

 

 그 말을 들은 소공작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와 프란츠 경이 이번 리드버에 침투한 마수들을 잡느라고 졸업 시험을 놓쳤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르켈은 시험을 잘 쳤는지 다른 지역의 영식들을 제치고 수석 졸업 하여 제가 퍽 기분이 좋았지요.

 요즘 같은 불안한 시국에 이리 든든한 수재가 아르디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가 마수 사냥을 할 동안 당신 아들은 편안하게 시험 보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산타하 백작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듀켈 군에서 마수 떼거지를 아르디안 쪽으로 몰이 사냥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요즘 부쩍 마음이 불편합니다.

 

 같은 제국 아래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개탄을 금치 못하겠군요.

 그래서 두통이 심한 것이니 저도 하녀에게 그 명약에 대해 좀 물어봐야겠습니다.”

 

 백작의 눈치를 보던 마르켈이 말을 꺼냈다.

 

 “그래도 소공작님의 발 빠른 대처에 실로 감탄했습니다. 리드버에 몰려 온 마수 떼거지를 삽시간에 제압했다는 소문이 아카데미 안에 쫙 깔렸었습니다.

 

 평소보다 3배는 많은 양이라 마을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일절 피해를 본 곳이 없었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공작이 와인 잔을 살살 돌리다가 탁 소리가 날 만큼 조금은 거칠게 내려놓았다.

 

 “헌데 마수 사냥을 하는 이 와중에 아르디안 공작령 소속 산타하 백작 님께서는 듀켈 공작을 만나고 오셨다 들었는데요...

 

 제 부친께서 백작 님의 그 적극적인 행보에 지극히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백작은 수도에서 비밀리에 듀켈 공작을 만나고 온 것을 알고 있는 소 공작에 깜짝 놀라 갈 곳 잃었던 눈동자를 그에게 돌렸다.

 나이가 들어 탄력이 사라진 눈매와 누런 눈동자가 지진처럼 흔들리는 그의 모습이 퍽 안쓰럽다.

 

 “그... 그걸 어떻게...”

 “아시다시피 듀켈 군과 아르디안 군 사이가 워낙 유별나 보는 눈이 많았을 뿐입니다.”

 “유스티나의 치료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치료제를 구하러 다녀온 것 뿐입니다. 그 이상 아무 의미 없는 형식적인 방문이었습니다.”

 

 백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소공작과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백작을 노려보며 자신 앞에 있던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던 그가 말을 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약은 구하셨습니까?”

 “네.. 뭐...”

 “아까 영애 치료에 좋았다던 하녀의 약은 극찬들을 하면서 백작께서 구해오신 약에 대해선 일절 말이 없네요.

 

 혹시... 약 말고 다른 걸 구해오신 건 아닐지 궁금해지네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자 마르켈이 집사를 쳐다보았다.

 그의 고갯짓 하나로 주인들의 식사에 시중을 들던 집사들이 우르르 식당을 빠져나갔고 그나마 흐르던 잡음조차 사라져 더욱 냉랭해진 공간 속에서 소공작이 말을 꺼냈다.

 

 “북부 요르딘 산맥의 구리 광산 채광권을 얻으셨더군요.”

 

 그 말에 놀란 백작의 안색이 흰 수염보다도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백작령 성인 남성의 10%가 듀켈 가르만 지역으로 이주했고, 맥주 수출량은 작년 대비 2배 이상 올랐지요.

 

 그런데 그 맥주를 만드는 소맥은 옥수수와 같이 병충해 피해가 심하다는 이유로 황궁에서 친히 이번 북부 지원 용 물자 징발에서 제외 시켜 주었네요.

 

 오.직. 산타하만.

 

 웃긴 건 뭔지 아십니까?

 산타하가 지원 못한 부족한 물량을 채워야 하니 황궁에서 리드버 지역의 건초, 포목을 대량 징발해 갔습니다.

 듀켈에서 마수 떼거지를 아르디안으로 몰아 보내기 하루 전날 말입니다.”

 

 소공작이 갑자기 주먹으로 식탁을 쾅 내리치는 바람에 식탁 앞에 앉아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공작님 대신 제가 온 것에 감사하셔야 할 겁니다.

 

 황실에서 이간질하려 대놓고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백작이 이리 쉽게 넘어가시면 곤란하죠, 안 그렇습니까?”

 

 그가 너무 세게 식탁을 내리치는 바람에 식탁 위에 있던 식기들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고 엎어진 물 컵으로 테이블이 엉망이 되었으나 그것을 치우려 할 만큼 용기 있는 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소공작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8살 때 마르켈과 검술 놀이로 심하게 다투어서 다시는 서로 안볼 것처럼 등을 돌리니 백작 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의란 한번 깨지면 도로 붙일 수 없는 법이니 깨기지 전부터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요.”

 

 

 소공작이 한때 삼촌처럼 따랐던 산타하 백작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를 숨기고 두려워 하는 모습이 여간 쓰라린 게 아니었다.

 

 “그동안 선대 산타하 백작들이 왜 아르디안에 충성했을까요.

 

 아르디안 가문이 실실 웃으며 너그러이 다 퍼주는 것 같아 보여도...”

 

 진은 팔을 테이블에 내리고 백작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드래곤이 선택한 가문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 이상 선 넘지 말라고, 같은 편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고 있는 그였다.

 아르디안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타하는 공작령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곡물의 유통망을 책임지고 있는 전략적 중심지이다.

 군사 전략 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에 전쟁 시 이곳이 뚫린다면 아르디안의 안위는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지안이 가져온 서류 덕에 백작과 듀켈과의 밀실 거래 증거를 찾아냈긴 했지만 그동안 충신이던 산타하 백작이 갑작스레 아르디안을 왜 배신하려 드는지, 그 뒤의 내막을 알아내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들의 뒤에는 분명 카를로스 듀켈 리암 황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켈 폰 산타하 소백작.”

 

 소공작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마르켈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그의 응답에 반응했다.

 

 “나는 ‘아직’ 그대와의 우정이 소중해. 그 신의가 깨지지 않도록 자네라도 노선 바로 서야 할 거야.”

 

 어느 순간부터 쥐 죽은 듯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불똥이 튈 새라 진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소공작은 다른 인사도 없이 거만하게 걸어 나가다가 디아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자네는 나를 좀 따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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