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고 며칠 후,
연습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지나있는 시점이었고
드디어 자신들의 첫 무대가 준비되어지자 멤버들은 점점 연습 때 말수가 적어졌다.
영배가 운전하는 밴을 타고 생방송이 진행될 방송국으로 이동하는 속에서도
어제 밤잠을 설쳤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청하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금요일에 진행되는 뮤직카운트는 자리에 가득 찬 팬들의 열기로 가득했고
가수 한 명 한 명이 화면에 호명될 때마다 환호성이 공개홀을 울리게 만들었다.
대기실에서 선배 가수들에게 찾아다니며 인사를 마치고 나서
<진격소년단> 멤버들은 각자 몸을 풀기 시작했다.
숀은 긴장했는지 자꾸 헛기침을 했고
건은 발목이 잘못 될세라 아대를 착용했다 벗었다 하며 긴장했다.
하람도 마찬가지였다.
첫무대라는 것, 첫 자가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긴장되고 설레게 하는 법이다.
그는 눈을 감으며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윽고 MC의 멘트가 나오자 모두 긴장한 모습은 더 역력해졌다.
“자, 이제 다음 순서는 J.J가 야심차게 준비한 신성들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수많은 아이돌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분명 다를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는데요.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신인그룹! 그 이름만으로 모두를 압도할 그 이름! <진격소년단>!”
무대감독의 안내에 따라 한 명 한 명 무대로 올라가 포지션을 잡고는 준비를 마쳤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하루를 일 년처럼 준비한 춤과 노래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람은 내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지만 조명으로 인해 관중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인다고 해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중간에 몇 번 실수가 있었지만
멤버들 누구도 내색도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었다.
특히, 숀은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춤까지 추면서도
그동안의 연습 덕인지 힘들어 하지 않았고
건 역시 매번 꼬이던 랩 부분에서도 부드럽게 넘어갔다.
마침내,
무대를 마치고 마무리 포즈를 취했을 때
관중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말소리들도 들려왔다.
‘잘한다!’에서부터 어떤 소녀들은 하람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아마도 <강철의 용사들>에 출연한 하람을 알아보는 듯 했다.
땀에 젖어 돌아온 멤버들을 강실장이 맞이했다.
“대단하다! 사람들 반응 좋다! 너희들도 들었지? 기집애들 입 딱 벌리고 있는 것 봤냐?”
강실장은 흥분해서 평소 하지 않던 표현까지 쓰며 들떠 있었다.
“리더도 안정해진 상태인데 너희들 너무 잘 해줬다.
대표님도 만족스러우시다고 전화로 좋아하시더라.
하람아, 시현(션의 본명)아, 건아, 피터랑 준호! 모두 멋지다! 자식들!”
그러고는 하람에게 말했다.
“군대에서 훈련받는 것만큼 힘들었지?”
하람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실은 더 힘든 거 같았습니다.”
강실장이 껄껄 웃었다.
“야, 우리 <진격소년단>댄스가 대단하긴 하다.
강철용사인 하람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영배가 대기실로 들어오자
멤버들은 영배에게 환호를 하며 안기도 하고 악수도 하며 좋아하고
코디와 그 외 소속사 스텝들과도 기쁨을 한껏 누렸다.
숙소에서도 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무도 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로 ‘무대에서 누구는 이랬네저랬네’하며 이야기꽃은 시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람은 몇 개월 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난 줄을 엄마가 왜 이때까지 몰랐을까?”
“잘나기는 뭐가요. 엄마, 이제 시작이에요. 제가 엄마 고생 그만 하게 해 드릴께.”
“엄마는 아무 것도 안하고 미안해서 어쩌니. 우리 하람이한테 엄마가 면목이 없어서 어째...”
“엄마는 왜 자꾸 이상한 말 해?
그러지 마요.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엄마랑 누나 모실께요.”
“엄마는 네가 그런 말 할때마다 미안하고 맘 아파.
아무 것도 못해줬는데 하람이한테 받기만 하는 거 같아서... 흐흑”
“엄마......”
서로 말없이 전화기를 잡은 채로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멤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하람이 전화를 거는 방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며
유튜브에서도 조회수는 무섭게 올라갔다.
한 달 정도 지나면서
몇 번의 무대를 뛰자 음원사이트와 연예취재 프로그램에서 반응은 점점 뜨거워졌다.
금,토,일에 있는 모든 음악방송에서 연이어 출연을 하게 되었고
팬클럽이 만들어져 삼일 만에 일만 명 정도가 국내에서 가입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멤버들은 음악방송과 행사초청, 예능섭외 등 강행군에도 지친 기색없이 임했고
뒤늦게 강실장은 하람을 그룹의 리더로 지목했다.
멤버들은 토요일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을 출연하려
밴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었다.
보안팀들에 의해 방송국 내부가 철저히 통제된 탓에 팬들은 환호만 할 뿐이었다.
각 멤버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대기실로 들어와서 퍼포먼스를 맞추고 있는데 밖에서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었다.
밖에서 영배의 목소리와 낯선 남자들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아, 그런 사람 없다구요! 들어가면 안되요! 아저씨!”
영배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이 세차게 열리며
누가 봐도 건달인 듯한 외양의 사내 둘이 대기실로 들어섰다.
당황한 영배는 보안팀을 부른다며 뛰어갔고
멤버들은 놀라 그 남자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 남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이렇게 제 발로 있는 곳을 알려주니 다행이여. 그것도 방송에까지 나와서 말여.”
피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누구? 혹시 코리안 갱스터?”
다른 사내가 숀의 어깨부분을 잡아채며 협박하듯 말했다.
“그동안도 이자가 불었어. 알제? 느그 에비는 이번엔 어디로 날렀냐? 응!”
준호가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아저씨, 우리 형한테 뭐하는 거에요? 안 놔?”
준호를 뿌리친 사내가 준호를 내리치려고 손을 올리자 뒤에서 단호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람이었다.
“나가시죠. 방송 직전입니다.”
멤버들이 놀라며 돌아보자 첫 번째 사내가 하람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뭐, 보험이라도 들어놨냐? 간이 배 밖에 있나보네. 잉?”
하람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죽고 싶어?”
하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을 듣고 놀란 것은
행패를 부리던 사내들이 아니라 영배와 멤버들이었다.
평소에 늘 젠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하람이 내뱉은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첫 번째 사내는 비웃듯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네가 지금 나한테 뒈져 불고 싶냐고 묻는 것이지라?
잉, 그려 한번 죽여 보더라구! 잉!”
사내는 하람의 가슴팍을 머리가 받으며 더욱 고압적인 태도로 위협했다.
그러자, 이번엔 하람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점잖은 태도로 바꿨다.
“이러지 마시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건 행패잖습니까?”
두 번째 사내가 나섰다.
“행패? 아니, 돈을 빌려주고 다시 받겠다는 것이 어찌 행패라냐?
이놈의 자식 애비 애미가 우리를 쌩 까서 우리가 결국엔 이 자식 놈을 찾아온 것이 아녀! 우리는 피해자여!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라 이거여!”
이렇게 말하는 가운데
첫 번째 사내가 숀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 했다.
건과 준호가 말리려 했지만 사내들은 막무가내였다.
“그 손 놔!”
대기실에 하람의 소리가 울렸다.
평소 그의 톤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멤버들은 다시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 손 놔. 안 그럼 진짜......”
두 번째 사내가 하람의 멱살을 잡으며 밀어 붙였다.
“근디, 이 쌍 놈의 시키가! 너가 한번 뒤져 볼라냐?!”
-퍽!
사내가 나뒹굴었다.
멤버들의 눈이 너나 할 것 없이 커졌다.
어떻게 친 건지 제대로 본 사람도 없었다.
첫 번째 사내도 달려들었다.
“이런 우라질! 네가 환장을 혔냐!”
하람이 아금손으로 사내의 목 가운데를 질러 쳤다.
사내가 뒤로 물어나며 휘청거리자 하람은 그의 발등을 밟으며
목의 옆 부분을 손날로 후려쳤다.
첫 번째 사내도 힘없이 쓰러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을 움켜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때 가까스로 일어난 두 번째 사내가 옆에 있던 접이식 의자를 집어들었다.
하늘로 치켜들며 내리치려는 찰나,
하람이 오른다리를 높이 들었다 뒤꿈치로 의자의 엉덩판 부분을 내리 찍자
사내는 자신이 의자에 부딪히며 다시 넘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멤버들과 영배는 앞에서 보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사내들은 다시 일어날 듯 보이지 않았고 마침 신고를 받고 경찰들이 들어왔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무슨 일이죠?”
방송국 보안요원 두 사람도 따라 들어왔다.
영배가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을 가리켰다.
“네, 저 아저씨들이 우리 회사 가수한테 막 협박 같은 말을 하고 목도 잡고 했는데... 허... 지금 상황은요...”
영배는 사내들이 정말 피해자가 돼버린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 했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러고 있습니까? 폭행당했나요?”
멤버들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릴 때 하람이 나왔다.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 멤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 같아서
제가 방어를 한다는 게 지나쳤습니다.”
경찰이 물었다.
“그 쪽 분이 폭행을 하신 건 맞아요? 그럼,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영배가 막아섰다.
“아! 아니! 우리 하람형은 동생이 험한 꼴 당할까봐 보호한다고...”
하람이 영배를 제지했다.
“괜찮아. 영배야. 저, 죄송하지만 곧 무대가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경찰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가수이신 거죠? 기다리는 건... 참, 이런 경우는 어쩌지?”
그때,
강실장이 대기실로 들어와 영배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뒤,
경찰들을 따로 불러 몇 마디 나누더니 경찰들이 다시 대답을 했다.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무대가 끝나면 바로 협조 부탁드립니다.”
멤버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대는 역시 좋은 반응 속에 끝났다.
방송국 바깥에 경찰차가 와 있고 하람도 두 명의 사내들과 함께 경찰차에 탔다.
방송국 울타리에서 모여 있던 무리들 중
<진격소년단>의 몇몇 팬들이 그 상황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하고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다행히 서로 합의가 되어 나온 하람이 사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제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운좋은 줄 알더라구! 이것은 엄연한 영업방해인디 오늘 우덜이 바빠서 그냥 가니께
다음엔 방행하덜 말그라! 알겄냐?”
“불법추심인거 아시죠?
다신 그런 식으로 저희 동생한테 협박하시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하람도 지지 않았다.
사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지만 한편으론 어느 정도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그들이 택시에 타고 사라진 뒤, 하람은 다시 강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참았어야 하는데 말썸을 일으켜서...... 면목 없습니다.”
강실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연예인을 공인이라고들 하지?
너도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 공인이라는 소리 듣는 입장이다.
경솔했어. 대표님한테 우선 찾아뵙자. 걱정하시겠다.“
“네...”
그때,
옆에 있던 연예부 기자가 강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무슨 일이에요? <진격아이돌>의 하람 맞죠? 폭행사건인가요?”
“아닙니다. 오해로 빚어진 일입니다. 혹시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 있음 할 테지만
잘 마무리 되었으니 추측성으로 이상한 말 안 쓰심 좋겠습니다.”
강실장은 하람을 데리고 얼른 주차장으로 갔고
따라오던 연예부 기자는 한건 물었다는 생각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