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원장님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매년 그랬는데.”
“그래도… 최근에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더 나 혼자 가려는 거야. 생각정리도 할 겸… 이번에도 1월 초중순 즘에 돌아 올 거야. 그 때 보자.”
“네, 알겠어요.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그가 떠났다. 매년 이 시기에 그는 항상 여행을 가곤 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나는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그가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의 집에 들어가 현이가 말한 방의 정체를 알아낸 뒤 바로 그의 뒤를 쫓아가 모든 진실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의 면회를 갔다 온 뒤 바로 그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의 차에 위치추적기를 붙여 놨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와의 만남이후로 이런 짓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집을 떠나기 전날 밤, 그의 집 앞 근처에서 하루를 차안에서 보냈고 아침이 되어서야 드디어 그가 차를 타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의 집 앞으로 다가갔다. 커다란 하얀 대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꽤나 높은 담벼락을 자력으로 넘어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나의 눈에는 눈이 쌓인 정원 길과 처량하게 남은 나뭇가지만이 보였다.
그 길을 지나 이번에는 검은 문 앞에 멈춰 섰다. 검은 문은 하얀 대문과는 달리 열쇠를 이용해 여는 문으로 나는 그가 말해준 문 옆에 놓인 화분 밑을 샅샅이 뒤져봤다. 화분 밑에서 열쇠를 찾은 나는 최대한 망설이지 않아 하면서 검은 문을 열었다.
집 안은 방금까지 사람의 온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게 스산했다.
드디어 집에 들어선 난 주저없이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은 그의 성격이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전과는 다르게 방안은 곳곳이 어지럽혀져 있었고 몇 달을 청소하지 않은 먼지만이 구석에 자리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러워진 서재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 방에 들어가는 일만이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현이가 알려준 그림이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단번에 눈에 띄었다. (예전에 지나치듯이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오른쪽 벽면을 한 그림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 앞에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렸다. 그림이 가리고 있던 벽면은 그저 평범한 하얀 벽면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을 나는 양손의 감각을 신중히 집중시켜 벽을 훑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느 한부분이 달칵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서슴없이 그 벽면을 두손가락을 이용해 밀어냈다. 그러자 벽면 안에서는 예상했듯이 버튼이 있었다.
막상 버튼을 누르려고 하니 참고 참아왔던 긴장감이 분출하며 떨려왔다. 이 과정까지 오면서 나는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했지만 이 버튼 너머의 방에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주저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 이상을 주저하면서 멈출 수 없었던 나는 힘껏 버튼을 눌렀다.
끼이익 철컥
옆 벽면에 있던 책장이 왼쪽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두움만이 가득한 그 방의 입구로 이끌리듯이 내 몸을 옮겼다. 어둠안에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핸드폰의 빛에 의지하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1층과 2층 사이 정도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아래로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계단의 턱은 나오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이 곳이 한 공간임을 인지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불을 키는 버튼을 찾아 눌렀다.
달칵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갑작스러운 빛에 의해 감겨졌다. 잠시 후, 나는 조심스럽게 감겨진 눈을 천천히 떴다.
눈이 완전히 떠진 나는 내 앞에 보여지고 있는 이 광경들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나는 한동안을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까먹은 듯이 나의 모든 행동들이 정지되어버렸다.
그 때, 위치추적기가 꽤나 큰 소리를 내며 울려 댔다. 하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을 정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멍 하니 서있던 나는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만은 인지했다. 발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챈 나는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내 들었다.
터벅 터벅
권총이 진동을 일으키는지… 아니면, 내 손이 진동을 일으키는지는 모르게 그저 계단을 향해 총구를 겨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