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하얀색 셔츠에 넥타이, 검정바지를 입고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꼭 예식장에 들어가는 신랑을 보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깔끔한 모래바닥에 빛이 반짝반짝 빛이 나며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낡은 가게 하나가 있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낡은 가게지만 나무로 된 분위기 있는 가게였다.
"오~"하며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어서오세요."
감탄하고 있는 여주에게 말했다. 눈은 가게에 가 있었지만 귀는 그 남자아이가 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자아이가 말했다.
"박여주님 이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여주의 귀에 뒤에 있던 창고 문이 닫이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속에서 든 생각은 '가야한다' 였다. 여기 더 있으면 저 남자아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침을 꼴깍 삼켰다.
"자!"
남자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여주는 뒤에 있는 문으로 달렸다. 분명 저기를 통해 이곳으로 왔을 테니까 문이 닫히기 전에 가야한다.
남자아이가 팔목을 잡았다.
"왜 그래? 가지마."
무슨 남자아이 힘이 그렇게 쎈지 팔을 한 번 잡았을 뿐인데 뼈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가지말고 이야기는 듣고 가. 벌써 다 모였다고."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여주는 팔을 뿌리치려고 남자아이를 보고 말했다. 순간 나온 높임말에 자신도 놀랐다. 뒤에는 여전히 자신이 들어온 창고 문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집에 있을 때 보는 창고 문. 아무렇지도 않게 문만 바닥에 서 있었다.
"뭐야,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여기 왔는지. 한번 들어가 보지 않을래?"
"사양할게!"
단호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저 문고리를 잡기만 하면 된다. 그럼 여기서 나갈 수 있었다. 앞을 가로 막은 남자아이가 소리 높여 말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바꾸고 싶은 과거없어? 들어줄게!"
'뭐라는거야,미친거 아니야.' 순간 생각했지만 어린아이라 입 밖으로 말할 순 없었다. 여주는 아이를 지나쳐 창고 문에 손을 댔다. 들어왔을 때와 같이 빛이 여주를 감쌌다.
"잠깐만"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빛이 사라질 때쯤 몸에 뭔가 걸리는 걸 느꼈다.
발을 앞으로 내밀자 쿵!하는 소리와 창고 문 밖으로 상자들과 잡동사니들과 같이 넘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거실과 현관 자신이 사는 집 안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상자들이 널부러져 있다. 테이프도 찢어져 안에 있는 물건들이 삐져나왔다.
'방금 그건 뭐였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얼굴을 창고 안으로 넣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깜깜하고 먼지가 날릴 뿐이다. 또 빛날까봐 겁이 난 여주는 상자들을 창고에 쌓아 올리고는 문을 닫았다.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엄마의 문자였다. 그것보다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벌써 저녁이다. 거실에 있는 벽시계와 비교하니 시간을 가고 있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아니야 아니야 그럼 환각이라도 본건가?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머리에 문제라도 생긴건 아니겠지?"
머리를 잡으며 목소리를 떨었다. 지금까지 어린아이한테 한 번도 화내본 적이 없는데 소리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놀라 소리가 나갔는데 '기분 나쁘진 않았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뒤 늦게 든다. 시원한 냉수를 마시고 진정된 마음을 찾아갈 때 남자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신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 말이 머리속에서 사라질 때쯤 현관 문 소라가 들렸다.
"엄마 왔어"
가만히 앉아있던 여주는 현관으로 가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옆에 있는 창고 문을 슬쩍 보고는 어머니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를 잡았다.
이것 좀 정리해 줄래?"
마트에서 장을 봐 온건지 바구니 안에서 저녁거리가 한 가득이었다.
삼겹살에 채소, 소시지, 만두, 떡, 음료수 꽤 무게가 나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머니는 무거운걸 아무렇지도 않게 드는게 신기하다.
"일하고 오면 힘들지 않아...?
"응?"
앞치마를 머리로 넘기고 끈을 허리 뒤로 묶었다. 집에 와서 쉬지 않고 저녁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커지지 않는 컴퓨터 같았다.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해볼까 아니면 창고 문을 다시 열어볼까 하다 사 가지고 온 우유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거기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면접은 잘 안 된거지... 괜찮아 또 기회가 있을꺼야."
어머니는 일부러 한가득 장을보고 오신걸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누구지?"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히미하게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 침착하지만 급한 듯 말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엄마 잠시 나갔다 올게, 저녁은 먼저 먹고 있어."
어머니는 지갑을 집어들고는 현관을 뛰어나갔다. 누가 전화한건지 생각하며 현관문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난 것 같은데 큰일이면 어떻하지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한 시간이 지나갈 때쯤 전화가 왔다.
"엄마!"
통화 버튼을 누르자 마자 엄마를 불렀다. 급하게 나간 어머니가 걱정이 되자 어머니의 대답을 듣는게 긴장되었다.
-"아빠가 다쳤다고 하셔서 병원에 잠시 왔어. 접촉사고가 있었나 봐."-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많이 다친거야?"
-"아니, 살짝 붙이친 것 뿐인데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병원에 있을까 하고... 그리고 내일 간단히 검사만 하고 갈게."-
"나도 갈까?"
기분이 우울해진다. 자신은 집에만 있고 부모님이 일하고 돈을 벌어온다. 보통 그 반대가 아닌가,
-"됐어!내일 오전에 갈거니까 밥 챙겨 먹고 있어."-
"네."
작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전화너머로는 여주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안았을 것 같다. 저녁은 냉장고 안에 있는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적당히 나물을 넣고 그추장 반스푼을 넣고 참기름도 조금 넣어 비볐다. 그리고 계란후라이 하나를 올려 다시 한 번 비볐다.
"괜..찮을려나?"
밥을 크게 퍼서 입으로 넣었다. 고개와 눈이 현관을 향했다. '그냥 전화해서 갈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엔 집에 있기로 했다.
여주는 아직 부엌에 있다. 내일 부모님이 오시면 드실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요리가 서툴러서 어려운 건 못하지만 간단한 국과 반찬만 해 놓기로 했다. 일단 김치를 적당히 썰어 냄비에 오일과 살짝 볶고 삼겹살도 넣었다. 고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물과 김치국물도 조금 넣고 간도 했다. 비주얼은 그럴듯 했다.
"뭐 나쁘진 않네."
완성된 찌개 맛을 보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침개 반죽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고 설거지를 하고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좀 쉬자."
어머니는 매일 일도 하고 집안일을 하는데 조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잠들기 전 문 소리가 날까 걱정되긴 했지만 방문을 잠궈놓아 문이 열리더라도 집 안에 방 안에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거긴 어디일까?'
눈이 감기기 전 생각한다. 그 남자아이는 누구일까 거긴 뭘 하는 곳인지 궁금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만화같은데서 보면 문을 통해 다른세계로 가는 내용이 흔이들 있지않은가. 한번 들어가 봤어야 했나. 어쩌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은 가보는건 나쁘지 않겠지.'
다음 날 아침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출근하려는 아버지 목소리도 드라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두 분다 병원에 있지.'
방을 나오자 창고 문에 먼저 눈이 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창고 문에 한발 한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고 안을 슬쩍 훑어보고는데 깜깜한 방 사이로 상자들이 보였다.
"휴"
다 큰 성인이 뭐하는 건지 창피해졌다.
어제 만들어 놓은 김치찌개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간단히 청소기를 밀었다.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지고 온 커피를 책상에 올려두고 전원을 켰다.
띠링
어머니의 문자다.
"아악!!!"
커피가 옷에 쏟아졌다. 잠옷바지와 책상과 키보드에 커피자국이 묻었다.
옷은 갈아입었지만 책상과 키보드는 닫아도 냄새가 올라왔다.
띠링
한 번 더 울렸다.
(점심 때쯤에 갈게, 아빠는 특별히 이상히 없어. 맛있는거 사가지고 갈게)
"다행이다."
다시 일할 곳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데 문 소리가 났다. 시간은 9시가 막 되었을 때였다.
끼이익
문 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여주는 창고 문 앞으로 다가가 크게 심호흡했다. 침을 꿀꺽하고 삼키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자 밝은 빛이 얼굴을 가렸다. 조심스럽게 한발을 문 안으로 내밀었다.어제와 똑같이 빛이 몸을 감싸며 빨려 들어갔다.
두려운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호기심도 있었다.
덜컥하는 문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들어왔다.
나무로 된 바닥과 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와는 다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