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녀가 이름 모를 남자의 여자가 되던 날, 난 새롭게 태어나기로 다짐했다. 동네 헬스장을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어차피 대학은 성적으로 구분되는 사회는 아니었다. 외모와 돈. 이 두 가지에만 미친 듯이 내 시간을 투자했다. 이러한 노력의 밑바탕은 사실 오래 전 정우가 남기고 간 말 때문이었다. 이제야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찌질한 놈들은 사랑할 자격도 없다는 것, 사랑을 하고 싶으면 찌질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더는 찌질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개강총회가 있던 날이었다. 내 동기 여학생들은 4학년이 되어 더는 학과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신 처음 보는 후배들이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개강총회에는 여러 세부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복학생 소개 시간이었다. 나까지 다섯. 아니나 다를까, 다들 한껏 꾸미고 왔음이 한눈에 보였다. 복학생들의 로망, 후배와의 로맨스를 펼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녀를 잊기 위해 억지 로맨스를 만들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캠퍼스의 달콤함을 느껴보고는 싶었다.
뒤풀이 장소에서도 난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아 홀짝홀짝 술잔만 비웠다. 다들 새내기 신입생들에게 술을 먹이거나 이상한 짓을 시키느라 여념이 없었고, 난 그게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에 앉은 새내기들은 굉장히 들떠 보였다. ‘오늘은 걸어서 집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하는 표정이었달까.
개강총회 뒤풀이에서 내 무심했던 태도는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후배들을 괴롭히지 않는 젠틀한 선배로 알려지게 된 것. 한 달 넘게 새내기 여학생들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밥을 사달라며 들러붙었고, 복학생 동기들은 비결이 뭐냐며 따지기 일쑤였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난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들떠버렸다.
사실 눈에 든 후배도 한 명 있었다. 흔한 ‘○○대 여신’까진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외모에 성격도 발랄해 보이는 새내기였다. 그런데 웬만한 신입생들은 다 한 번씩 밥을 사달라며 졸라대는데, 이 후배 녀석은 그러질 않았다. 사람 심리가 원래 그런 것인지, 들이대는 여자애들에겐 전혀 관심이 생기질 않고 오직 이 녀석만 눈에 띄었다. 동기 놈들에게 방법을 물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절대 내게 도움이 될 녀석들이 아니었다. 고삼 시절 나보다도 훨씬 찌질한 놈들뿐이었다. 정우 같은 친구가 없다는 게 한이었다. 뭐든 마음 편히 물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없으니, 혼자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난 결국 내가 먼저 들이대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 학년 구분 없이 수강하는 전공 수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괜히 궁금한 게 있는 것처럼 아는 척을 해보았다.
“김진희!”
“네?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왜요?”
첫인사부터 싸늘한 반응. 순간 몇 년 전 정우의 조언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아니다 싶음 과감히 포기하라 했던 그 말. 하지만 재빨리 정우의 목소리를 지워냈다. 난 더는 찌질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수업 때문에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연락처 좀 알려줄래?”
“아…….”
이번엔 심지어 표정이 일그러졌다. 김진희는 기다리는 동기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뭔가 찜찜했지만, 어쨌든 번호는 알아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여겼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오후 시간 내내 메시지 내용을 고민했다. 그녀와 한창 연락을 주고받을 때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마도 설렘이란 감정이었을 거다.
‘김진희? 나 백성현 선배야.’
답장은 한참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5분, 10분. 심지어 30분이 되어도 답은 없었다. 고민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한 번 더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참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한 건데, 혹시 자니?’
보내 놓고 깨달았다. 자는 동안엔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냐고 물어보는 건 대체 생각이 있는 질문인 건가. 이불킥을 네다섯 번 정도 했을까,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김진희였다.
‘안 자는데요. 뭔데요?’
메시지에서도 여전히 냉랭했다. 흔히 말하는 얼음공주 이미지 같았다. 그나저나 뭘 물어봐야 하는지를 생각해놓지 않았음을 깨닫고, 난 또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답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 말이나 막 끄적였다.
‘다른 후배들은 밥 사달라고 하는데, 넌 왜 말이 없니^^’
너무 처음부터 들이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남자답게 질질 끌지 않는 게 더 멋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반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반응이 좀 이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음. ‘ㅋ’을 반복해서 적을 땐 정말 웃겨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가 웃기다는 걸까. 당황스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답을 할 수가 없었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김진희는 메시지를 보냈다. 꽤 긴, 장문의 메시지였다.
‘백성현 선배님. 뭘 믿고 그렇게 나대시는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좀 하세요. 선배 고딩 때부터 완전 찌질이였다는 거 다 알아요. 과거 세탁해봤자, 다 티 나는 거 알아요? 학교 선생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셨다면서요~ 그냥 살던 대로 사세요. 그리고 제발 멋있는 척 좀 그만 하시고요. 동기들도 이제 다 알아요. 선배 찌질했던 과거. 그러니 이제 깝치는 거 그만^^’
내가 찌질하게 살았다고 치자.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한 번 찌질하면 영원히 찌질하다는 건가? 난 당황하다 못해 화가 잔뜩 치밀었다.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었고, 대체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따지고 싶었다.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김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세 번쯤 울렸을 때, 김진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너 그딴 얘기 누구한테 들은 거냐? 뭔 헛소린데!”
“…….”
“야, 김진희! 대답 안 해? 너 내가 우습냐?”
“그만 좀 해라, 새꺄.”
김진희가 아니었다.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다. 난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분명 조금 전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은 김진희의 번호였다.
“저, 죄송한데. 제가 김진희 학생 학교 선배인데요. 통화를 좀 하고 싶어서요.”
“내가 누구게?”
전화기 너머에서 김진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날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너야말로 누군지 말해. 나 진짜 더 못 참는다. 너 누구냐? 말해!”
“백성. 나 몰라? 우리 친구잖아.”
백성. 고등학교 이후 날 ‘백성’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정우? 정우가 갑자기 여기서 등장한다고? 그런데 정우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정우의 얇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굵고, 남자다운, 그리고……. 순간 낯익은 얼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너 혹시…….”
“이제 알겠냐? 나 김준수야. 반장! 오랜만이다?”
난 그대로 굳어버렸다. 혀는 물론 정신까지도 마비되어 버린 듯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 뭐야.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네? 너 진희한테 졸라 찝쩍대더라. 진희 내 동생인 건 알았냐?”
김진희는 김준수의 동생이었다. 그랬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아마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날 표현했을 것이 분명했다.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은데. 나 진짜 몇 년간 개고생했거든. 아, 맞다. 근데 그때 분명히 너 피시방에 잡혀 있었다고 들었었거든? 어떻게 신고한 거야? 너 맞아? 너 지금 어디냐?”
무서웠다. 김준수가 정말 날 찾아오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정말 때리거나 그럴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김준수 앞에 서면 무서워서 도망칠 것만 같았다. 아니,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릴지도 몰랐다. 사실 그 이후로 김준수가 내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지만, 다음 날부터, 군대 시절 보다 훨씬 고통스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강의실 복도나 학교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더라도, 후배들은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그리곤 꼭 뒤에서 키득거리거나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같은 복학생 동기들마저도 나와 함께 하는 걸 꺼려했다. 같이 있으면 같은 취급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백성현이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선생님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라는 문장이, ‘백성현이 결혼한 선생님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이 문장은 또 ‘백성현은 결혼한 선생님만 골라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학생이었다’라고 다시 한번 바뀌어 버렸다. 여자를 경험해보지 못해 밤마다 야한 동영상이나 보는 변태남이란 칭호는 덤이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도 끼니를 거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강의만 끝나면 최대한 빨리 학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고등학생 때 정우가 떠난 이후로 ‘냄새 맡는 변태남’이란 소문을 겪어보긴 했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다. 금세 시들어버렸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전까지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나만 보면 질색하며 피하기 일쑤였다. 정말 자살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그때마다 날 붙잡아준 건, 오직 책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소설이란 소설은 다 읽었던 것 같다. 김동리, 황순원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까지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끼고 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도서관 구석진 곳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던 날이었다. 아마 축제 기간이었던 것 같다. 도서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밖에서 청춘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백성.”
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준수가 드디어 숨어 지내던 날 찾아온 것인가 싶어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고, 여차 하면 소리라도 지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놈은 한 번 더 내 이름을 지긋이 불렀다.
“백성, 나야.”
슬며시 고개를 들었을 때 김준수가 아닌 것에 안도하는 건 극히 잠시였고, 오히려 두 배로 놀라고 말았다. 병모였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
뭐랄까. 병모는 여전했다. 여전하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그런 느낌이었다. 난 속삭이듯 병모에게 말했다.
“뭐야. 너 이 학교 다녀? 나랑 같은 학교?”
“응. 난 너 수업할 때도 몇 번 봤었어.”
“그랬구나. 반, 반갑다.”
병모는 내가 혼자란 걸 알고 찾아온 건지, 고등학교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더 적극적이었다. 내 옆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작업이라도 할 기세였다.
“책 읽네. 나도 책 많이 읽어.”
“알지. 너야 뭐 고딩 때부터 그랬었잖아.”
“난 요즘 읽는 것보다 쓰는 데 더 집중하고 있어. 한번 볼래?”
과거에 병모를 밀어낼 수 있었던 건 내 모든 신경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병모를 밀어낼 여유나 기운이 없었다. 몇 년만에 만나서 가장 먼저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병모의 모습은 정말이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친구로서의 예의를 갖춰주기로 했다.
“여기가, 내가 쓴 소설 연재하는 곳이야. 어때?”
“소설을, 연재한다고?”
“응. 조회 수도 꽤 높아.”
은근슬쩍 들여다본 병모의 필명은 ‘불꽃남귀’였다. 그리고 병모는 무협지와 판타지를 연재하고 있었다. 난 궁금하지 않았지만, 괜히 물어봤다.
“근데, 왜 이름이 불꽃남귀야?”
“어? 이거 비밀인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내 신상 노출된단 말야.”
“그, 그래.”
“불꽃 같은 남자 귀신.”
“귀신? 왜 귀신이야?”
“귀신처럼 글 잘 쓰고 싶어서.”
병모는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멀어지고 싶게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학교 안에 아무런 친구도 없고,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임에도, 난 어쩔 수 없이 병모를 다시 밀어내기로 했다.
“병모야, 미안한데 나 지금 알바 가야 해. 연락할게, 나중에 또 보자!”
연락처도 모르는데 연락하겠다니. 병모는 이제 더는 나란 사람을 찾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살면서 내가 먼저 병모를 찾게 될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테니까. 잠시 친구가 생길 뻔도 했지만, 결국 졸업하던 그 순간까지 난 홀로 임용시험 준비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대학 생활을 가득 채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냥 손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단 혼자 책을 읽고 공상하는 시간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일찌감치 임용시험 준비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시험은 쉽지 않았지만. 우리 학과에서 1차 시험 합격 커트라인을 통과한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이 시험은 만만치가 않았다. 물론 내 점수는 가장 높았지만, 의미는 없었다. 학과 교수님들은 점수가 너무 아깝다며 임용시험 재수생활을 권유했지만, 백수로 살 수 없었던 난 집 근처 중학교에서 1년짜리 계약직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이 닳도록 외웠던 전공 이론과 학교 현장의 차이는 간극이 너무 컸다. 이론을 써먹을 일이 없었다. 온종일 중학생들에게 시달리는 건 사실 예상했던 고생이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행정 업무, 그리고 사회생활이란 함정이 숨어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매일 같이 교감에게 불려가 혼이 났다. 결재를 올릴 때 학교에서 정한 틀에 맞게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거나, 선배 교사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핀잔을 듣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퇴근과 동시에 새롭게 공부를 해야했다. 학생들이 보는 인터넷 강의를 뒤적이며 수업 방법을 연구하고, 또 임용시험 준비도 간간이 해나가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지옥 같은 일 년이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다시금 시련을 겪어야 했는데, 학교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나름 시간이 갈수록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교감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첫인상이 별로였으니. 3년을 연이어 준비해도 떨어졌던 임용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사립 학교의 공고문을 뒤졌다. 사립학교 중에는 이론보단 실전 경험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얻어걸리는 곳 한 군데 쯤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교육청 홈페이지 채용공고에서 스크롤을 내리던 중,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추어 버렸다. 내 모교였다. 내 모교에서, 국어 정교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이를 확인한 순간 내 몸속에 붙어 있는 녀석임을 잊고 있었던, 심장의 두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화가 났거나 놀랐을 때의 그것과는 달랐다. 이건, 설렘이었다.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