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가 면역을 가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 약 3개월 → 3월 말까지는 마스크 필수로 써야 함
*안전한 곳에서는 꼭 라디오를 켜야 한다. ☆유병섭☆
*동물 좀비는 특히나 조심할 것. 좀비되는 속도가 빠른 것도 문제이나, 급격하게 몸이 썩어감. → 입 안의 독때문이라 판단 …」
집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가.
사람도 좀비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동료를 만들기로 결심해놓고 집에만 있으면, 언제 어떻게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결국 단단히 준비를 하고, 마스크를 끼고 나왔다.
혹시 몰라 가방에 참치 통조림 세 개와 라면 두 봉지, 생수 두 통도 챙겼다.
무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야구방망이 여분도 가방 옆에 잘 묶어서 고정시켰다.
삐리릭-
끼이익-
눈이 와서 그런가 대문을 열자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괜히 불길해서 인상을 확 찌푸리고 문을 닫았다.
이건 불길함을 예고하는 복선같은 게 아니라, 그냥 눈이 와서 녹슨 거다.
다녀와서 기름칠이든 뭐든 좀 해야겠다.
주차장에 눈으로 덮힌 차가 보였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차로 이동하는게 더 위험하다.
아무래도 크기가 크다 보니 좀비들에게 이목도 끌리고, 무엇보다도 미끌어질 수도 있으니까.
차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덤처럼 눈이 쌓인 곳이 보였다.
죽은 좀비가 있는 곳이었다.
붉은 기운은 흰 눈에 전부 덮였다.
잠시 그 곳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녀올게.”
아버지도 이런 이상한 기분이었을까.
아니, 비교할 걸 비교하자.
몸을 돌려 걸음을 내딛었다.
내 목적지는 바로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혹시 모른다.
생존자가 도망 왔을지도 모르고, 좀비가… 있을수도.
차라리 좀비가 있었으면 싶다.
마음이 괴롭다고 해도 좀비를 죽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그리고 계속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정말로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차라리 좀비가 있었으면 했다.
사방이 무방비하게 뻥 뚫린 이 길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다.
사방을 살피며 조심조심 걸었다.
빈집에 가까워지고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붉은색의 수입 픽업트럭이 마당에 세워져 있던 탓이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대충 땀을 훑으며 손에 쥔 야구 방망이를 더욱 꽉 쥐었다.
이왕이면, 이왕이면 제발 좀비여라.
“그아아아아아-”
“읍.”
놀라서 소리지를 뻔했다.
다행히 가까스로 입을 다물어 소리지르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화단에 잠입하는 것 마냥 있던 좀비였다.
그냥 눈덮힌 나무인 줄 알았는데, 눈이 쌓인 좀비였다니.
너무 놀라서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이 와중에 나를 발견한 좀비가 가까이 다가온다.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죽인 좀비처럼 몸이 얼었는지 움직임이 더디다.
붕-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에 망설임이 많이 사라졌다.
아저씨 좀비도 손쉽게 무너져 내렸다.
죽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다시 방망이를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크아아아악!!!”
“이런 씨발?”
퍽-
웬 아줌마 좀비가 집 안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어깨가 뻐근해졌다.
그러나 어깨를 살필 겨를이 없다.
야구 방망이에 쳐맞고 날아간 아줌마 좀비가 곧장 바로 달려들었으니까.
“크아아아악”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빗맞았다.
나보다 키가 작은 아줌마 좀비가 품을 파고 들려한다.
안 돼!
“저리 꺼져!”
본능적으로 발로 아줌마 좀비의 복부를 발로 찼다.
그리고 황급히 방망이를 휘둘러 어깨를 가격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세워 달려든다.
통증을 못 느낀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잠시 멈추는 법도 없다.
쉴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든다.
다리를 못 움직이게 하든가 빨리 죽이는 수밖에 없다.
퍽-
머리를 가격했는데, 역시 머리뼈가 없는것처럼 물렁하다.
좀비가 되면 머리뼈가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약해지는 건가.
“크아아악- 크르륵-”
목을 긁는 이상한 괴음.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
붕-
달려드는 아줌마 좀비에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콱-
“으아아아악!!”
아줌마 좀비를 야구방망이로 거세게 가격하는데, 뒤에서 아저씨 좀비가 어깨를 물었다.
씨발 나 물린 거야?
아니야, 안 물렸어.
침착하자.
아니 물리긴 했는데 패딩이 두꺼워서 흠집조차 안났다.
다행히 패딩 덕에 감염은 안 된 것 같다.
너무 놀라 아저씨 좀비 얼굴을 방망이로 사정없이 가격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요란하게 뛴다.
좀비는 안 될 거야, 좀비는 안 돼.
안 된다고!
“크아아아악-!!”
틈을 놓치지 않고 아줌마 좀비가 달려온다.
그리고 내 뒤에는 피를 흘리면서도 느릿하지만 정확하게 나를 노리는 아저씨 좀비가 있다.
패닉에 빠진 내 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집으로 도망가?
뛰어?
도망가?
도망가?
하지만, 씨발 존나 무섭긴 한데, 이래서는 언제….
“언제 구하러 가냐고!!!”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에 잔뜩 힘을 줬다.
그리고 달려오는 아줌마 좀비에게 나도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으아아아악!”
관자놀이를 겨냥해 야구 방망이를 거세게 휘둘렀다.
둔탁한 타격감과 시원한 타격소리와 함께 아줌마 좀비가 넘어졌다.
그 틈을 타 트럭 반대편으로 달렸다.
우선 등을 숨긴 채로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반대편에는 차에 가려진 작은 창고가 있었다.
어느새 달려온 아줌마 좀비에게 방망이를 휘두른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축축하고 케케묵은 냄새가 훅 풍겼다.
지금 냄새가 문제가 아니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한쪽에는 장작이 가득 쌓여 있고, 다른 나무들보다 두껍고 짧은 나무 위에 도끼가 꽂혀 있었다.
저걸로 머리와 몸을 분리하자.
야구 방망이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패기롭게 도끼를 집었다.
그런데 도끼가 안 빠진다.
“크아아아아”
“그어어어-”
둘 다 왔다.
아 씨발. 진짜 씨발 씨발.
욕과 함께 등에 땀이 솟듯이 난다.
빠져라, 제발 빠지라고!
내 바램과는 달리 빠질 기미가 안 보이는 도끼를 포기했다.
가까이 온 좀비들을 상대하려고 야구 방망이를 잡았다.
아줌마 좀비 뒤로 농기구가 보였다.
이름이 곡괭이라고 하던가?
단단한 땅을 팔 때 쓰는 양쪽으로 쇠가 달린 도구.
저거다.
달려오는 아줌마 좀비를 먼저 발로 차 넘어트렸다.
그리고 야구 방망이로 못일어나게 상체를 누르면서 다리를 발로 거세게 밟아 짓뭉갰다.
꽈드득-
다리의 뼈가 잘못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줌마 좀비의 기세는 여전히 매서웠다.
어느새 다가온 아저씨 좀비의 손길을 피한 다음, 야구 방망이로 온 힘을 실어 가격했다.
아줌마 좀비 위로 넘어진 아저씨 좀비 덕에 아줌마 좀비가 일어나질 못한다.
몸이 잘 안 움직여지는 아저씨 좀비는 일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아줌마 좀비의 거센 움직임에 일어나질 못했고.
이 틈을 타 얼른 괭이를 집었다.
그리고 아직 바둥거리는 두 좀비에게 달려갔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저씨 좀비의 머리를 겨냥해 곡괭이를 휘둘렀다.
푸확-
곡괭이는 아주 무거웠고, 무거운만큼 위력도 상당했다.
그대로 아저씨 좀비의 머리가 박살났고, 뇌의 구멍 사이로 무언가 삐죽 나왔다.
동시에 아저씨 좀비의 움직임도 멈췄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예감했는지, 아줌마 좀비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금방이라도 아저씨 좀비를 치우고 일어날 것 같은 아줌마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곡괭이를 다시 하늘로 높이 쳐들고, 아줌마 좀비의 머리를 향해 던지듯 박았다.
푸확-
“크-르르…륵.”
“후욱- 하아… 하-”
핏발이 선 눈에 서서히 생기가 사라져 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감염됐다고 그랬다.
엄마도, 좀비가 된 엄마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죽을까? 아니, 죽었을까?
처참한 두 좀비의 상태에 구역질이 났다.
“우웨에에엑”
이번 건 못참았다.
창고에서 빠르게 나와 차 앞에서 구토를 했다.
하필 든든하게 먹고 와서 내용물이 실하다.
실은, 엄마가 좀비가 됐다는 게 안 믿겼다.
아니 안 믿겼다기보다 현실감이 없었다.
누가 처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생각났다.
「과거는 그립고, 현재는 힘들고, 미래는 두렵다」
부모님과 함께 하던, 평화롭던 과거가 너무나 그립다.
좀비가 된 사람들을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재가 너무 힘들고.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길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내가 과연 살아서 갈 수 있을까 무서워서, 두렵다.
“흐으윽….”
난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야.
괜찮아.
괜찮아.
손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눈에서 수도꼭지라도 튼 것 마냥 눈물이 주륵주륵 흐른다.
이 와중에 목까지 탄다.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생수를 꺼내려는데, 아버지의 수첩이 보였다.
「지한이가 잘 견뎌내야 할 텐데. 불안해하지 않게 옆에서 잘 다독여줘야 한다.」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이번에는 무조건 지켜낸다. 우리 가족. 사랑하는 내 가족.」
다시 주먹을 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도 지킨다.
우리 가족, 사랑하는 내 가족, 아버지.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차례 질질 짜고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먼저 차를 둘러봤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바로 벌목도 세 자루였다.
손끝에서 팔꿈치 정도 오는 꽤 긴 길이의 벌목도였다.
날이 좀 뭉툭해 보이기는 하는데, 집에 있는 식칼갈이로 갈면 날카로워지지 않을까?
아무튼 유용해 보이니 벌목도가 든 가방 채로 챙겼다.
기분 좋게 물건을 챙긴 후, 거실창을 통해 집 내부를 보았다.
아무도 없어 보이긴 하는데 혹시 모르니 거실창을 쾅쾅 두드렸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심히 집 안으로 들어가보려다 그냥 가기로 했다.
지금 심적으로 너무 지쳤기도 했고, 곧 어두워질 것 같아서.
***
머리를 대충 말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Tv를 켜려다가 말았다.
성질나서 전원을 뽑아버린 게 엊그제인데 이렇게 습관이 무섭다.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직 남은 캔맥주 하나를 따서 시원하게 마신 후, 다시 소파에 앉았다.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어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갑갑했던 속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집으로 오는 길에 몇 번이고 불안해 뒤를 돌아봤는지 모른다.
죽은 줄 알았던 좀비가 쫓아 오고 있을까봐.
아니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좀비가 달려들까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무서움을 속 안에 숨긴 채, 달렸다.
아, 그만 생각하자.
더 이상 생각했다가는 오늘도 무서워서 잠 못 잘 것 같다.
아버지의 수첩을 다시 펼쳤다.
쭉쭉 읽어내려가는데,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한 곳에서는 꼭 라디오를 켜야 한다. ☆유병섭☆」
도대체 유병섭이랑 무슨 일이 있길래 별표까지 친 걸까.
서울에서 작은 치킨집을 하던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이랑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닐텐데.
유병섭은 아버지의 수첩에 자주 등장했다.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길래 곳곳에 유병섭을 써둔 걸까.
아무튼 라디오를 켜보기로 했다.
핸드폰을 켜서 라디오 앱을 눌렀다.
「라디오를 켜려면 유선 헤드폰을 연결하세요. 헤드폰의 선이 안테나 역할을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떴다가 사라진다.
C타입 헤드폰이나 이어폰 없는데.
혹시나 무선 이어폰을 껴봤는데, 연결 안 된다.
라디오도 안 돼?
젠장. 인터넷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되니 가장 쓸모 없어졌다.
아버지가 꼭 라디오를 켜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했으니, 라디오를 준비해두진 않았을까 싶었다.
우선 거실엔 안 보였다.
혹시나 하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 방 안을 훑었다.
손만한 크기의 라디오가 침대 옆 협탁 위에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채널을 찾기 시작했다.
지지직- 소리가 계속 되다가 한 채널이 잡혔다.
[전라남도입니다. 목포의 xx구 xx마트, xx구 xx마트…]
웬 남자가 지역과 마트 이름을 나열하는게 들렸다.
이게 뭐지 싶어 계속 틀어 놨다.
해남의 마트까지 나열한 목소리가 끝이 났다.
한참이 지나도 잠잠하길래 이제 끝인가 싶어 채널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국방부 장관, 유병섭입니다. 각 지역마다 가장 큰 부지의 대형마트를 거점으로 삼아, 생존자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군대를 보면 안전한 곳에서 위치를 알려 합류하시길 바랍니다. …]
유병섭?
눈이 크게 떠지고, 라디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주의 리라동 에이마트 xx동…]
리라동 에이마트면 차타고 십분 정도 가면 나온다.
걸어가면 사, 오십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아버지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형마트는 위험하다고 하셨고.
하지만 유병섭은 믿어도 되겠지?
그럼 우선 에이마트로 조심히 가보자.
어쩐지 큰 수확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거실로 나가서 남은 맥주를 마시며, 라디오를 계속 켜두었다.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국방부 장관, 유병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