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다녀올게.”
“네.”
소파에 누워 배를 벅벅 긁으며 채널을 돌렸다.
케이블 채널 설치가 되지 않아, 기본 지상파 채널만 나온다.
그리고 지상파 채널들은 하나같이 재미없는 뉴스만 틀어주고 있었다.
따분함에 얼굴을 찌푸리며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문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현관을 힐끔 보았다.
아버지가 복잡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계셨다.
눈이 마주치고 괜히 뻘쭘해서 물었다.
“늦게 오세요?”
“…그래.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목 멘 소리를 냈다.
어쩐지 아버지의 눈가도 붉은 것 같다.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볼까.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지만, 아버지가 한 발 빨랐다.
“…지한아.”
“왜요?”
“….”
아버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말을 기다렸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적막이 흐른다.
빨쭘하던 찰나, 틀어놓은 뉴스로 시선이 갔다.
대통령이 평소답지 않게 격양된 말투로 말을 하고 있던 탓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드디어 물러났습니다. 모두 국민 여러분의 인내와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대통령은 연설 끝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주위는 환호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끝났나봐요.”
좋은 소식에 나도 뉴스를 보며 실실 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보다도 그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대통령 다음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자막에 질병관리청장이라고 든다.
아버지는 말없이 TV를 보셨다.
[폐 주위로 증식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희 질병관리청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인체가 면연력을 갖추게 되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아버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소리에 좌절감이 묻어나는 소리가 섞였다.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는 괴롭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계셨다.
꼭 울분을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걱정이 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아버지, 무슨 일이라도…”
“다녀오마.”
아버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늦겠다며 현관문을 열고 빠르게 나가버렸다.
아버지의 이상한 반응에 문이 닫히고나서도 현관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어 거실창을 황급히 열었다.
아버지의 걸음이 오늘따라 유독 무거워 보인다.
무언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계셔서인가.
뭘 저렇게 챙겨서 어디를 가시려는 걸까.
“아버지!”
“….”
아버지는 내 부름에 멈춰 섰지만, 뒤돌지는 않으셨다.
그러다 끝내 고개를 떨구셨다.
그 모습이 현재 너무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
기분이… 이상하다.
“일찍 오세요.”
“…문 단속 잘하고 있어.”
“아버지. 일찍 오세요.”
“최대한… 일찍 오마.”
아버지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
가는 모습이라도 지켜보려고 거실 창에 섰다.
그러나 한참을 서있는데도 차가 지나가기는커녕, 차에 시동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설마 차도 타고 가지 않으신 건가.
어디를 가시는 거지.
후… 목적지라도 물어봤어야 했나.
일찍 오신다고 했으니, 오시면 꼭 물어봐야겠다.
어디 다녀오셨냐고. 그리고 무슨 일 있으시냐고.
[다음 소식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폭행 사건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으나, 사람을 무는 행위가…]
아버지가 요즘 이상하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하.”
오늘만 벌써 10통 넘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매번 아버지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답답하다.
벌써 2일째다.
다녀오겠다고 나간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게.
경찰에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나.
만에 하나 납치라도 아니, 위험한 일에 휘말리신 건 아니겠지.
안 좋은 상상들을 하며 빠삐x를 계산대에 올렸다.
알바생이 보고 있던 만화책을 소리나게 덮으며 일어나 바코드를 찍는다.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두툼한 볼을 씰룩이면서.
삑-
“1,200원이요.”
“예?”
“1,200원이요 손님.”
무슨 빠삐x가 1,200원이나 해.
마트나 슈퍼였으면 비싸도 700원인데.
도둑놈같은 편의점 물가를 속으로 씹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직접 꽂아주세요.”
알바생이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카드 투입구를 가리킨다.
투입구에 카드를 꽂으며 알바생이 보고 있던 만화책 표지를 보았다.
무슨 만화책을 보고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귀찮아 하나 궁금해서.
「달달한 집」
흠. 저거 아주 명작이지.
저 만화라면 손님을 귀찮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매 순간순간이 스릴만점, 재미만점인데 아마 나 때문에 흐름이 끊겼을 것이다.
드라마로도 나왔던데.
집에 가서 할 것도 없는데, 달달한 집 다시 정주행이나 해야겠다.
“저기요.”
“?”
“카드요.”
“아, 넵. 감사합니다.”
멋쩍게 웃으며 카드를 대충 주머니에 넣었다.
대충 빠삐x 껍질을 반쯤 벗겨서 아이스크림에 돌돌 말았다.
그리고 뚜껑부분을 따서 질겅질겅 씹은 후, 일반 쓰레기에 버렸다.
손에 묻은 물기를 휴지 몇 장을 뽑아 닦으며 빠삐x를 입에 물었다.
달달하면서 진한 빠삐x가 매우 황홀하다.
역시 겨울엔 아이스크림이야.
흡족하게 웃으며 창 밖을 보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쓰고 있지 않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 여럿이 모여 있는 걸 빤히 보았다.
코로나는 정말 끝난 걸까.
대통령까지 나와서 끝났다고 한 거 보면 끝난 것 같긴 한데.
실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집 안에만 박혀 있어서 그런가.
딸랑-
“라면 먹고 가자.”
“아, 학원 가기 싫어. 너 숙제 했냐?”
편의점 안으로 초등학생 세 명이 우루루 들어왔다.
시끌시끌한 아이들의 등장에 알바생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연민의 눈빛을 보내며 편의점을 나왔다.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엄청 춥다.
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 이가 달달달 떨린다.
아, 슬리퍼 말고 운동화 신고 올 걸.
손가락도 발가락도 깨질 것 같다.
얼른 차에 타려고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쾅- 쾅-
“양순경. 너도 물렸어?”
“예…. 정경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안 보이냐. 아오- 살점이 떨어져 나가겠어.”
“피, 피가!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저씨! 가만히 좀 계시라고요! 예?!”
경찰 두 명이 경찰차 앞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좀 더 어린쪽은 손을, 다른 한 명은 팔을.
특히 팔을 보여주는 경찰은 여기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로 심해보였다.
그리고 경찰차 안에는 웬 남자가 이를 들어내며 문에 쾅쾅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어우, 살벌하네.
“경장님. 이 놈 미친 거 아닙니까? 아무리 봐도 술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마, 마약…”
“야. 말 함부로 하지마. 이런 새끼들 지 욕하는 건 귀신같이 듣는다. 나중에 그걸로 물고 늘어져.”
“그래도 경찰서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죽겠다, 죽겠어. 진짜 경찰 씨발 때려치워야지.”
휴- 한숨을 쉬던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훔쳐보다 걸린 것 같아 어색하게 인사하고 차에 탔다.
그리고 왼쪽 사이드미러를 통해 아직 서 있는 경찰들을 보았다.
난동을 부리는 남자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날씨 장난 아니게 추운데 경찰들 고생이 많구나.
남은 아이스크림을 쭉쭉 빨아 먹은 뒤, 쓰레기통으로 쓰는 비닐봉지에 버렸다.
다시 한 번 경찰들을 본 뒤, 차 시동을 걸고 악셀을 밟았다.
이사 온 지 두 달이 살짝 넘었는데도 정이 안 가는 동네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동네로 이사 온 건 아니다.
우리 집은 이 곳에서도 한 참은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니까.
덕분에 주변에 집도 몇 채 없다.
그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집은 걸어서 7분이나 걸렸다.
그리고 그 이웃집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이사 가자.”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이사를 강행했다.
그것도 가본 적도 없는 외진 곳으로.
회사원이신 엄마는 갑자기 무슨 이사냐며 반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에 곧 회사에 사직서를 내셨다. 그리고 인수인계를 마칠 때까지만 다니기로 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운영하던 치킨집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이곳으로 먼저 내려왔다.
아직 회사에 다니는 어머니는 서울에 계셔야 했지만, 묘하게 신나 보이셨다.
나야 뭐 아버지에게 계획이 있겠거니 군말 없이 따라 내려왔다.
사실, 입대를 앞두고 있어 별 생각 없이 아버지 말을 따랐다.
별 생각 없이 왔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이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넓직한 2층집인 것도, 옥상에 커다란 태양광이 설치 돼 있는 것도 폼났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자가용 PPA라 전기를 쓰고도 남아, 팔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그냥 전기를 많이 만들어내구나 하고 지레짐작할 뿐이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넓은 마당이 좋았다.
강아지 여러마리를 키우기 좋은 넓은 마당!
그러나 아버지는 이 넓은 마당에 강아지 대신 커다란 저온창고와 냉동창고를 설치했다.
그래도 공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강아지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않았다.
아무튼 창고들이 설치 되고, 아버지는 어디선가 택배트럭같은 걸 빌려왔다.
그리고선 이것저것 엄청나게 사들이며 집과 창고에 물건들을 쌓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대비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이사를 하고나서 아주 이상해졌다.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였다.
치킨집 하실 때도 부지런하시긴 했지만, 이사 후에는 잠시라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지쳐도 정신력으로라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뭐가 그렇게 아버지를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연락이 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무튼 집 형편도 그렇고, 아버지 상태도 걱정이 돼 한 번은 말렸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매우 수상한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 좀 과한 것 같은데요. 지금 모은 것만 해도 충분…”
“안 돼!!!”
아버지가 나에게 큰 소리를 내는 걸 처음 봤다.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었다.
좀 무섭기까지 했다.
이후로는 아버지를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지켜만 봤다.
곧 지쳐서 그만두시겠지 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저온창고와 냉동창고를 통조림과 냉동심품등으로 가득 채웠다.
창고들을 채우고나서야 한숨 돌리시는 아버지께 용기내서 물었다.
“이런 건 왜 모으시는 거예요?”
“…다 필요해서 그래.”
“슈퍼 하시게요?”
슈퍼라기엔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지만 가볍게 건넨 농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품 뿐만 아니라 2층 방들에는 스포츠 용품을 가득채우셨으니까.
브랜드 상관 없이 스포츠 의류, 운동화 심지어는 야구 방망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들을 모으셨다.
내 농담이 너무 가벼워서일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그 때 괜히 민망했었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차 타고 십분 정도 나가면 대형마트가 바로 나오는데. 이렇게까지 사들일 필요가 있나 해서요.”
“대형마트는… 위험해.”
“대형마트가 위험하다고요?”
“…나중에, 나중에 다 알려주마.”
아버지는 지친 듯이 천천히 몸을 돌리셨다.
그런 아버지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물고 늘어졌어야 했다.
화내시더라도 끈질기게 물어봤어야 했다. 왜 이런 걸 사모으시냐고.
집에 도착하고 거칠게 주차를 한 뒤, 대문을 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해보니 이 집 조금, 아니 많이 수상하다.
단단한 강철로 된 대문은 묵직해서 열고 닫는데 조금 힘을 써야 했다.
그리고 일반 집보다 월등히 높은 담장 위로는 가시철조망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게다가 마당에 냉동창고와 저온창고까지 설치해서 음식을 대량으로 쌓아둔 이유가 뭘까.
순간 2층에 모아둔 스포츠 용품들 중 야구 방망이를 비롯한 것들이 둔기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 멍청한 새끼.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텐데!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후다닥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전화는 꺼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너무나 불안했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실종된 것 같다고 전하기 위해서.
마음 약한 엄마가 충격받고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된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였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
툭-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안내음에 전화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도… 사라진 것 같다.
불안하다.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