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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51구역
작가 : 바스트록
작품등록일 : 2022.1.1

화성. 군인. 그리고 그들. 돌아갈 수 없는 병사들을 엄습하는 미지의 감염체와 그 속에 얽힌 음모. SF 아포칼립스 미스터리.

 
11화 그들은 모두 삶이었다
작성일 : 22-01-02 08:44     조회 : 204     추천 : 0     분량 :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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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런 불운이 또 있을까. 이번에는 진짜로 눈물이 날 뻔했다.

 

 

  결국 우리는 배터리가 다 했을 뿐인 화물용 로버를 황무지에 덩그러니 버려두고 조금 빠르게 걸어야만 했다.

 

 

  우주선이 있는 곳까지는 30km밖에 남지 않았지만 모래폭풍이 다가오는 속도를 감안 하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우주복 덕에 화성이 선사하는 영하의 추위는 문제없이 막을 수 있었지만, 바깥 활동 자체가 익숙지 않은 한수아가 따라올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마주친, 그녀 본인은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주변은 머지않아 거대한 위협이 다가올 장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황량했다. MBS 슈트에서 나오는 불빛이 없다면, 지면은 짙은 암흑만이 깔려 발아래의 붉은 토양조차 보이지 않을 터였다.

 

 

  거기에 몇 발자국을 간격으로 나란히 걷고 있는 동료들마저 사라진다면 이곳은 완벽한 무의 공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버리니, 조금 무서워졌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을 뿐, 화성은 지구의 온기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차가운 죽음의 땅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였는지, 우리는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적적한데, 이야기나 좀 해도 될까?”

 

 

  처음 침묵을 깬 것은 뜻밖에도 최 중위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난 이후로 최 중위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는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적막을 걷어낸 그의 이야기가 더욱 반가웠다.

 

 

  다들 어둠과 침묵에는 질렸다는 듯이 동의하자, 최 중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난 말이야, 내가 잘난 놈인 줄 알았어. 군인도 나를 한껏 부풀리고 싶어서 하게 된 거였고. 그러니, 화성 전출 소식은 나한테 희소식이었지. 처음 패러사이트나 감염자가 발견됐을 때에도 그것들은 나랑은 관계없고, 단지 나는 그것들을 손쉽게 물리치고 치켜세워질 궁리만 했으니까. 뭐, 처음에는 제법 생각대로 됐어.”

 

 

  최 중위는 우주선까지 남은 거리를 잠시 확인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나는 못난 놈이더라. 한 대위가 감염됐을 때,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때 내가 좀 더 빨리 대처했다면, MUIT가 습격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웃음기 싹 빼고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했는데, 나는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린 거지.”

 

 

  처음에는 뜬금없는 최 중위의 이야기를 갸웃거리며 듣던 양준혁도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한수아는 침울한 토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예상컨대, 한 대위의 일에 자신도 책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감염자들의 습격이 있고 며칠 뒤, 하 소령님의 전투소대를 따라서 감염자들을 쫓아 51구역 서쪽의 깊은 협곡까지 도달했을 때. 우린 감염자들의 매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어. 그놈들이 협곡 위에서 지뢰를 들고 떨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거든. 어찌 되었든, 나는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거지. 그곳에서 하 소령님을 데리고 나온다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서. 덕분에 지휘관을 잃은 부대는 그곳에서 전멸했고. 정말 병신이 따로 없지.”

 

 

  그것은 최 중위의 고해였다. 고요한 화성의 밤이 그의 입을 열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의 다음 말에서는 확실히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이야, 난 하 소령님과는 다르게 못난 놈이지만, 다음번에는 기필코 늦지 않겠다. 그러니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지구로 돌아가면 뭐 할지 궁리나 하고 있어라. 뭐 그런 소리지.”

 

 

  그는 우리에게 말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채찍질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자자, 이제 분위기 좀 띄워줄 사람?”

 

 

  그는 이제 후련한 표정이 되어, 이야기의 바톤을 우리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든 것은 양준혁이었다.

 

 

 “제가 이어받습죠.”

 

 

  나는 양준혁이 상관 앞에서 ‘다, 나, 까’를 사용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물론 최 중위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 이거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니까! 반년 전까지만 해도 공장에서 땜질이나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션’에 ‘에일리언’이랑 ‘워킹데드’가 뒤섞인 인생이라니! ”

 

 

 ‘풋….’

 

 

  한수아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했다.

 

 

 “뭐 식사는 감자보다도 맛없지만, 그래도 살아만 돌아간다면 제법 재밌는 경험 아니겠어? ‘난 화성인 머리통을 박살 내고 돌아왔다!’ 같은 평생 안줏거리도 생기고, 멋지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지구인에게 기생한) 화성인의 머리통을 박살 낸 것은 다른 의미로 인상적인 경험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사히 지구로 돌아가면 내가 모두 앞으로 맥주 한 잔씩 사지. 아무래도 내가 제일 형님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정말 그 다운 유쾌하고 깔끔한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한수아의 질문에 양준혁은 자신이 스물일곱이라고 밝혔다.

 

 

  이에 최 중위가 자신도 스물일곱이라며 반박했지만 최 중위는 빠른 년생이었기에 결국 자신이 맡 형이라는 양준혁의 주장은 놀랍게도 사실로 판명되었다.

 

 

  여담으로 양준혁이 사회에서 하던 일은, 우주선을 조립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타고 온 우주선도 양준혁이 조립에 일조한 것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만든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온 것이었다!

 

 

  그를 우주선의 옆자리에서 처음 마주한 날, 유난히 절망적이던 그의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자! 다음 이새안!”

 

 

  양준혁이 자기 앞에서 걷던 이새안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저, 저요?”

 

 

 “그래 너!”

 

 

  이새안이 허둥대며 대답하자 양준혁이 닦달하며 그를 재촉했다. 마치 마음 약한 동생과 짓궂은 형을 보는 느낌이라 나와 한수아는 본인들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가장 선두를 걷던 최 중위도 낄낄거렸다.

 

 

  이새안은 결국 양준혁의 등쌀에 못 이기고 머뭇대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이새안은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MUIT에 자원해서 왔어요.”

 

 

  이새안이 오랜 침묵 끝에 말했다.

 

 

  정말 의외의 이야기였다.

 

 

 “나 같은 또라이가 또 있었다니.”

 

 

  최 중위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새안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 천문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서요… 망원경으로만 보던 화성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그… 멋있기도 하고….”

 

 

  이새안의 이야기는 아마 우리 중에 가장 엉뚱하면서도 낭만적인 사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이새안의 소년스러운 외모와 잘 어울리는 꿈이었다. 지금까지는 그가 어리바리하고 여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화성까지 자원해서 찾아온 그가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호오, 멋진 걸.”

 

 

  제 목숨 부지하기 급급한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기에 나는 이런저런 감상을 담아 한 마디로 뱉었다.

 

 

 “감사합니다!”

 

 

  이새안은 화색이 되어 말했다. 정말 알기 쉬운 녀석이다.

 

 

 “우리 어리버리 제법 건실한 놈이었잖아!”

 

 

  양준혁이 다시 한번 이새안의 등짝을 후려치며 떠들었다. 이번에는 이새안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제법 셌나 보다.

 

 

 “다음 차례는 과학자 아가씨, 어때? 화성의 연구자로서 천문학자 꿈나무한테 한마디 해주는 게.”

 

 

 다음 바톤은 한수아에게로 넘어간 듯싶었다.

 

 

 “흠, 그럴까요?”

 

 

  행렬의 가장 뒤에서 걷던 한수아가 말했다.

 

 

 “분명 될 수 있을 거예요 천문학자, 저도 처음에는 아빠 뒤를 따라서 무작정 화성으로 뛰어들었으니까요. 무모한 도전일수록 얻는 것도 많은 법이에요. 그렇죠?”

 

 

  한수아는 소동물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 보였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수아 씨!”

 

 

 “응원할게요.”

 

 

  이야기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헬멧에서 틱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 알갱이가 날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수아가 말을 이었기에 나는 그것에서 집중을 돌렸다.

 

 

 “여러분,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한수아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더니 돌연 화제를 돌리려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의 연장선이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은 아까 로버에서….”

 

 

 그때였다. 모래 알갱이가 틱틱거리는 소리가 점점 둔탁한 소리로 바뀌었다.

 

 

 “잠깐.”

 

 

  최 중위가 한수아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어서 최 중위는 MBS의 팔목 부분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우주선까지의 남은 거리와 시간을 번갈아 가면서 확인하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무슨 문제라도 생겼슴까?”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되자, 양준혁이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모래폭풍이 다가오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졌다. 아쉽지만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야겠어.”

 

 

  나도 한수아가 말하려던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눈앞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 먼저였다.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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