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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2-2. 공포.
작성일 : 22-02-05 00:18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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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 마시며 아이들은 정말 잠깐 붙였던 눈을 떴다.

 

  “어때 다들, 몸은 괜찮아?”

 

  방석이 침착한 목소리로 다른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눈 밑이 퀭한 것을 제외하고 다들 특별히 겉에 이상이 없어 보였다.

 

  “왜 그래? 설마, 신호가 왔어?”

 

  불안한 목소리로 송이가 말했고, 그 불안함을 곧바로 잠재우려는 듯이 방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다행히 아직은 아냐. 설령 지금 신호가 온다고 해도, 거리는 충분히 벌린 것 같아. 다들 한 숨도 안 자고 열심히 움직였잖아.”

 

  방석이 격려와 동시에 산 정상까지의 거리를 잠깐 가늠했다.

 

  길어야 20분, 이 험하고 과격한 산길도 이제는 끝이 보였다.

 

  “정상에 오르면 능선을 따라 움직이면 돼. 능선을 따라 움직이는 건, 경사가 급하거나 지형이 험난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다 같이 조금만 힘을 내자.”

 

  그렇게 말하며 방석이 잠시 내려놨던 짐을 어깨에 걸쳤다.

 

  해진 짚신을 새 것으로 갈아 신고, 물을 몇 모금 마셔 목 뒤를 차갑게 적셨다.

 

  “그런데, 아직까지 신호가 없는 게 맞는 건가? 이제 곧 해가 산을 넘을 것 같은데…”

 

  다시 산을 오를 채비를 마친 철수가 이상한 점을 이야기 했다.

 

  “글쎄. 장날이 끝난 다음 날은 조금 늦게 경산의 일이 돌아가니까. 아직 마귀가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그래, 철수야. 선아가 우리를 위해 연기를 내준다고 했으니까, 그걸 믿자.”

 

  방석과 개똥이 철수의 의견을 타일렀다.

 

  하지만, 철수는 여전히 뭔가 미심쩍었다.

 

  그 마귀가 아직도 일꾼들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만큼, 둔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혹시, 선아가…”

 

  선아가 어떻게 된 걸까?

 

  뭔가 잘못된 걸까?

 

  잘못된 게 아니라면, 혹시나 마귀에게 붙지 않았을까?

 

  철수의 속에 이런저런 불안이 섞였다.

 

  하지만, 그것을 구태여 입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

 

  지금은 절대적인 평안이 필요했다.

 

  불안을 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특히나 송이는 선아에 대한 걱정으로 벌써 산을 몇 개는 쌓고도 남을 정도였다.

 

  철수는 송이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서 가자.”

 

  괜한 걱정은 목구멍 뒤로 밀어 넣고, 철수가 기세를 높이며 앞섰다.

 

  다른 아이들도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철수가 앞서가며 보다 안전한 길을 택했고, 뒤를 잇는 아이들은 철수가 손을 댔던 나뭇가지나 툭 튀어나온 바위를 손잡이 삼아 등산했다.

 

  간혹 너무 가파른 길이라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 정상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고된 등산의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가르며 지나갔고 아이들은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가장 체력이 약한 송이가 약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아직도… 신호가 없는 거야?”

 

  뒤이어 철수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도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

 

  이것은 분명 기묘한 일이었다.

 

  “뭔가… 이상이 있던 모양이야.”

 

  이번에는 방석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 않았다.

 

  해는 가장 낮은 산을 넘었다.

 

  이제 새벽이 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아직까지 일꾼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선, 선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설마, 마귀가 이미 우리가 도망친 걸 알고, 선아에게 죄를 물은 건!”

 

  깜짝 놀란 선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개똥이 그 곁에 다가가 휘청이는 선아의 몸을 잡았다.

 

  “괜찮을 거야. 그리고, 아직까지 무슨 변화가 없잖아. 우린 이렇게 여기까지 잘 왔어. 하던대로, 끝까지 탈출을 완수하면 돼.”

 

  마귀가 진즉 탈출을 눈치챘다면 금방 개를 풀었을 테였다.

 

  그랬다면, 정상에 닿기도 전에 발목을 잡혔을 것이며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

 

  하지만, 확신은 못했다.

 

  확신은 못하면서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던 개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것은 희미하게 들리는 어떤 소리 때문이었다.

 

  아우우. 아우우. 아우우.

 

  늑대와 같은 산짐승의 울음소리.

 

  하지만, 굉장히 규칙적이고 아주 익숙했다.

 

  그것은 훈련된 사냥개의 울음이었다.

 

  울음은 점차 폭이 넓어졌다.

 

  산 전체에 대대적으로 진동이 퍼졌다. 더 이상 개똥만 그 소리를 알아차리지 않았다.

 

  “혀, 형! 이, 소리는!”

 

  철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질렀다.

 

  소름 끼치는 짐승의 소리는 어느 한 방향에서만 울려 퍼지지 않았다.

 

  사방에 퍼져있었다.

 

  어떤 소리는 약했고, 또 어떤 소리는 강했다.

 

  강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아이들의 근처였다.

 

  지금 아이들이 서있는 이 정상 부근에 벌써 불개 한 마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힘겹게 정상을 오르고 있을 때쯤, 이미 불개들의 추격은 시작된 이후였던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선, 선아가 약속을 안 지켰을 리 없잖아!”

 

  지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공포의 소리에 송이가 혼돈에 휩싸였다.

 

  “이, 이제 어쩌면 좋아! 바로 저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어! 우, 우린 이제 어떡해!”

 

  송이가 철수를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일, 일단 도, 도망쳐야 해…”

 

  마땅한 수가 없었다.

 

  철수는 잠시 쉬기 위해 내려뒀던 무거운 짐을 다시 들었다.

 

  “어, 어쩌자는 거야! 우리가 움직여도, 정말 벗어날 수 있는 거 맞아? 뿔뿔이 흩어져서 우릴 추격하고 있는 거잖아! 우리가 산맥을 따라 움직인다고 그래도, 무조건 그 놈들 중 하나를 마주치게 될 거야!”

 

  송이가 공포를 구체화했다.

 

  그것은 참으로 논리적이었다.

 

  산 곳곳에 흩어진 불개들은 그 상태로 찬찬히 정상까지 추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 전략대로라면, 반드시 불개들 중 어느 한 마리는 아이들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뒤를 잡은 불개는 공명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흩어졌던 다른 불개들은 사냥감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몰려올 것이다.

 

  이 전략은 말 그대로 인간을 상대로 펼치는 사냥 방식이었다.

 

  도망친 노비들을 추격하는 데에도 사냥개는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냥개들 사이에서도 역시 마귀가 학습 시킨 사냥개가 으뜸이었다.

 

  으뜸 중에 으뜸에 서있는 불개들이라면, 그 체계적인 사냥 방식을 얼마나 완벽히 소화해낼지 가늠이 안 됐다.

 

  “괜, 괜찮아…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냐…”

 

  방석도 긴장이 바짝 됐는지 목소리가 뻣뻣했다.

 

  “그럼,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

 

  철수가 눈을 부릅떴고, 방석은 숨을 골랐다.

 

  “뿔뿔이 흩어졌다는 뜻은, 우리의 냄새가 아직 들키지 않았단 뜻이야. 냄새를 맡았다면 다섯 마리 모두 냄새를 따라 올라왔을 거야. 그러니까… 아직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놈들은 몰라.”

 

  “그래서?”

 

  “소리는 다섯 군데에서 들렸어. 그러니까, 우리가 마주치더라도 한 마리.”

 

  방석이 침을 꼴깍 삼켰다.

 

  눈빛에는 공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공포에 떨면서도 방석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한 놈을 만날 때마다, 그 놈을 족치면 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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