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나를 보는 눈이 많아 졌다. 윤다예한테 들이대다 까인 새끼. 이 소문이 없어 질려면 얼마나 있어야 할까?
시선을 받는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네. 뭔 짓거리를 해도 반응이 오잖아.
“야! 오덕수!”
덕수를 보자 마자 달려 들었다. 내가 싸움은 못하지만 오덕수는 이긴다. 애들이 왜 널 피했는지 알아? 너가 꼬리치는 그 뒷배들이 무서워서 였어.
덕수의 배를 걷어 찬다. 주먹으로 코를 치니 피가 흐른다. 하지만 그거 만으로는 모자라. 내 분노를 막을수 없어.
모두가 모여들어 나와 덕수를 지켜 본다. 차마 말리지는 못하겠지? 내가 사납잖아. 그런데 쟤네들 사이에 셔틀 커플이 보였어. 잘못 봤겠지. 이미 죽은 애들 환영까지 보고. 내가 진짜 미쳐가나 보다.
“야. 서... 켁! 나한테 왜 이래!”
“너가 사람 새끼냐?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어디!”
너와 나. 어렸을 때 잠깐 같이 놀았지. 그런데 왜 지금은 넌 이렇게 살고. 난 지금에서야 화를 낼까?
“불쌍한 애들 건드리다 못해 임신까지. 이 개새끼야.”
“그럼 낙태비 없는데 어떻해... 형태가 걔네 다 넘겨 주면. 다 해결해 준 다 그랬단 말이야...”
울먹이지마. 불쌍한 척 하지마. 그러면 동정심이 생기잖아. 에이 진짜!
난 결국 징계실에 들어 왔다. 사유서를 쓴다. 그리고 정학 3일. 경찰을 부르니 마니 했는데 조용히 넘어갔다. 어느 누가 날 좋게 봐줬나 보다.
가방을 챙겨 들었다. 징계 방을 나선다. 내가 가야 할 곳은 하나 뿐이다.
병원은 한산했다. TW에서 개발한 만능 세포. 그것이 실용화 된 직후부터 병원에 환자가 많이 줄었다. 그것 때문에 소송이 걸린 것만 백여건이 넘는다지? 잘 살던 것들이 손가락 빨게 되었으니까 꼴 좋다 해야 하나?
- 다음 뉴스입니다. 내년 TW에서 실행 예정인 인류 질병 해방 프로젝트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기대수명 100세. 노화가 없는 인류...
병원 로비에 놓인 Tv에 모두의 시선이 꽂혀 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고서.
인류의 삶을 바꾼 발명품. 비행기? 냉장고? 에어컨? Tv?
- 이에 의료계는 TW에게 만능 세포 독점권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관련해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한국 의대 외과과장 김순태님. 안녕하세요.
나 좀 먹고 살게 해달라는 우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될 까만은. 그렇다고 병원비를 확 올리는건 좀 그렇잖아.
온갖 생각만 하다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 앞에 도착한다. 할머니가 있는 쪽은 커튼이 쳐져 있다.
돌아선다. 할머니 얼굴을 보면. 나 많이 미안할 것 같다.
“미안해. 철승이형.”
“그래. 돈 100만원 가지고 이렇게 사람 와라. 가라. 이런거. 질색이거든?.”
야. 햄버거. 어제 맞은데는 다 나은거 같아서 마음이 놓여. 수 틀리면 또 때릴거야. 다음엔 뼈도 부술까 하거든.
“에이. 온 몸이 뻐근해. 옷도 다 찢어 졌고. 그런데 기억이 없어.”
“술 좀 적당히 잡숴요. 그러니까 대가리가 빠가가 되지.”
“대드는 솜씨가 늘었다? 꼭 옛날 같애? 싸가지 없는 애 새끼 때려 잡는 기분이 물씬 나. 하나 부터 다시 가르켜야 겠다?”
철승아. 넌 참 훌륭한 스승이야. 온갖 비겁함. 뻔뻔함. 인간에 대한 경멸. 다 너한테 배웠어. 당숙한테 아주 참 좋은거 가르킨다.
이번엔 장갑 숙련도 레벨 3인가? 전기 발동. 채찍. 다음엔 뭐야?
“좋아. 오늘은 내가 바쁘니까 그냥 운 좋다 생각하고 넘어 갈게. 대신 한가지 묻자. 서나현. 거기 왜 가려는 거야? 그 동네 완전 위험해. 나도 잘 안가.”
“이 동네라고 뭐 안전해? 어차피 내가 걷는 길 밖이 다 저승이야.”
오후 3시 하늘에 달이 떠 있으면 참 좋겠네. 혹시나 세상이 참 어둡다 싶으면 그거 보고 가게.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어. 내가 정말 그날 딱 죽을 운명이었을까? 가끔 이게 현실이 맞는지 궁금해. 이미 죽었는데 헛 것을 보고 있는 거야.
신이 나를 장난 치는 것. 차라리 무작정 먹고 숨만 쉬는 그런 애들. 걔네들은 차라리 나보다 더 행복 할지 모르지. 모르니까. 다 모르니까.
“서나현. 그 말은 재밌다. 길 밖이 다 저승길. 큭큭. 난 오늘만 살잖아. 내일이 뭔 소용 있어? 뭐. 더 이상 내 알바 아니고. 죽기 전에 빚은 갚아라”
아. 저기 달이 보인다. 구름 틈 사이로 잠깐... 그런데 퀘스천. 저 철승이가 흔들고 있는 100만원은 어디서 훔쳤냐? 이번 만큼은 꼭 듣고 싶...
나한테 쪽지를 건네네?
“모른척 가만히 읽기만 하세요. 아주 훌륭한 쇼가 시작될 것이니까.”
달이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퀘스천도 사라진다. 쪽지도 사라졌다. 덕분에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도착하고 보니 의외로 가깝다. 정말 음침한 동네였다. 반쯤 부서진 동네와. 출입 금지라 적힌 현수막. 벽들마다 붉은 낙서들이 가득하다.
“저기 보이지? 3층 건물. 이 동네에서 제일 잘 살던 노인네거야. 자식 놈들이 저거 갖겠다고 난리치다 보상금 나눠 먹고 손 뗐어.”
“남의 집 사정은 왜 그렇게 잘 아신대?”
“나 저기서 가끔 술도 먹고 그랬어. 집 없는 애들은 이불 꺼내서 자고. 청솔고 새끼들이 저기 잡아 먹은 직후 아무도 안 오지. 왜? 작년부터 저기 간 애들치고 살아 돌아 온 애들이 없어. 이 동네 귀신들 우글거리게 생겼지? 난 간다.”
바람이 차가워 진다. 생각보다 빠르게 어두워 졌다. 그리고... 구름이 많다. 오늘 밤. 비가 온다고 그랬다.
어차피 거리에 서 있을수는 없다. 움직이자. 대문은 많이 녹슬어 있다. 군데군데 깨진 창문도 많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 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간다. 얼마 안 되어 비가 내린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 봤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
“비가 많이 오는데? 오늘 괜찮겠어?”
“뭐라도 먹여. 쟤네들. 아주 뼈 밖에 안 보여.”
응? 내가 잠을... 걔네들이다. 아는 얼굴이 몇몇 있다. 하지만 다들 복제 인간이지? 본체들은 모두 죽었다지?
복제 인간 10여명.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애들은 뭐냐? 50명은 넘는 거 같아. 내가 있는 2층까지 올라온다.
난 급히 안쪽으로 숨었다.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대장. 오늘 데려 온 애들은 다들 말랐어. 이래서야 뭘 만들겠냐?”
대장이라 불린 놈은 주형태. 그래. 너 였어.
“어차피 뽑아 낼 수 있는 정수는 다들 한정 되어 있어. 모아 놔봐.”
복제 인간들은 3층으로 올라 간다. 나머지 인간들은 모두 2층과 1층에 대기 중이다. 사람은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웅성거린다. 그건 본능이다. 어느 누구라도 조용히 있는 자들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짜증이 났을까? 하나가 내려와 소리를 지른다.
“아! 조용 안 해? 돈 받았잖아! 쓸데 다 써 놓고. 어디서 계약 위반이야? 누구 하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밖에 번개까지 치니 분위기가 끝내주네. 대다수가 입을 다물지만 꼭 하나 쯤은 나서는 사람 있지.
“어린 노무 새끼가. 어따대고 어른들한테 큰 소리야? 그리고 돈 받아서 다 썼다. 참 고맙다. 그런데 뭐? 와 줬으면 좀 앉을데나 마련하지. 여긴 또 뭐야?”
아니야. 거기 아저씨.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자극 하지마. 그러면 꼭 결과가 안... 와. 순간 이동이냐? 확 다가와서 한 손으로 목을 잡아 올렸어.
그런데 순간 목을 잡은 저 새끼가 확 늙어 버렸네?
“컥! 놔... 놔 주세요.”
“너 나보다 강해? 왜 꼴 같지도 않게 나대?”
“아니... 왜 그러세요...”
“그냥 다 죽이면 우리도 편해. 대장만 아니면 너희들 정말...”
복제인간이 손을 놓는다. 그러자 다시 10대의 모습으로 돌아 간다. 하지만 그 사실보다 폭력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듯 했다.
50명이 아니라 100명이 모여 있어도 하나에게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법. 그건 공포. 혹은 규율. 규율이야 큰 부작용이 없다지만 폭력인 경우 한번은 풀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캬아. 아이고 뻘쭘해라. 아저씨. 미안해. 다들 철승이 새끼한테 못 들었어요? 그 돼지가 뭐라 말 안하던가요?”
“우리한테 햄버거 좀 사주고. 그냥 말만 잘 들으라던데요?”
“그래요. 조용히 하세요. 제발. 우리 시끄러운거 질색이예요.”
규율이 정해졌다. 조용히 해. 지켜야 할게 하나 뿐이면 집중도 잘 되는 법이다. 이제 이 곳에는 빗소리만 들린다.
잠시 후 10명씩 줄을 지어 3층으로 올라 간다. 그리고 내려 오는 자들은 없다.
“저기 윗층에 비명 같은...”
“쉿. 혼나고 싶어?”
“그런데 뭘 하는 거야? 위에서 이 비오는 날에...”
난 이쯤 되어 나온다. 노숙자들이 벗어 놓은 우비를 입었다. 얼굴을 가린다. 곧 노숙자들 사이로 끼어 들어 간다. 지금이 마지막 조다.
“여러분들이 11명. 총 61명이네. 숫자가 하나 늘었나? 몰라 어쨌든. 다들 올라가요. 천천히. 어디 다치시면 안 됩니다.”
앞에 선 사람이 문을 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필사 적으로 안 들어 가려 했지만 억지로 밀어 넣어 진다.
내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여기 벽에 걸려 있는 콩팥. 위. 심장. 눈. 다... 실화다.
“아저씨들. 아줌마들. 여러분들 뇌를 녹일 거예요. 그럼 저기 녹색 관 보이죠? 저기 액들이 가득 차요. 그게 저희가 필요한 거예요. 어차피 여러분들 세상에 미련 없잖아요? 그쵸?”
삶을 포기 한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약간 다른 문제다.
“장기는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게 갑니다. 보람되죠? 마지막 남기는 말이니 뭐니 생략합니다. 대신 고통은 없을 거예요.”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내 손에 장갑... 맞다. 달이 떠 있어야 되. 지금 온 세상이 물바다니까.
헉! 나 어떻해? 하필 내가 제일 앞에 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