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서빙 알바를 할 때 들었던 말이 여럿 있다. 대다수가 쓸데 없는 말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차였니. 마니. 걔가 이쁘니. 어제 그 새끼는 왜 그랬대? 그중 더욱 쓸데 없는 말을 꼽자면 꼭 유식한척 하는 것들이었다.
라면 1개 면발을 다 모아서 재 보면 40m. 지구에 산소가 1초동안 없어지면 콘크리트 건물들이 다 무너져 내린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이름은 리틀 보이.
그중 제일 황당한 말을 꼽자면. 달빛을 받으면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병이 있다고 한다. 그게 루나 뭐... 어쩌고 저쩌고 라는 병인데. 난 그게 너무 신기 하더라? 그 사람은 밤에 돌아 다니는거 글러 먹었다는 뜻이잖아.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데 빛의 속도로 1.3초 걸린데. 너 알고 있었어?”
“코드 네임 햄버거. 이철승의 집에 다 도착했습니다.”
집 앞에 쓰레기도 제대로 안 치우고... 사는게 참 너처럼 산다.
“여기 올 생각은 한번도 안 했는데... 사는게 내 마음대로 안되네.”
지난번에 내가 얘 이겼을 때가 생각나. 그때 퀘스천이 너의 기억을 어떤 유리 관에 담아서 버렸잖아. 그래서 지난주에 잠깐 눈 마주 쳤을 때. 넌 그날일 하나도 기억 못하더라?
손에 낀 장갑에 금빛 용이 몸부림 친다. 마음도 차분해 진다. 들어 간다. 어차피 문이야 잠궈 놓지도 않았겠지.
“야! 철승아!”
문을 연 순간. 와. 미안해. 내가 괜히 왔네. 왁! 씨. 눈 배렸어. 너 홀딱 벗고 있었구나.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서나현! 너 미쳤냐?”
“왜 우리 옆집 아줌마랑! 아유.”
아줌마가 철승이 몸 뒤로 자신을 가리느라 안달이다. 난 바로 나간다. 잠깐 퀘스천을 바라 본다. 그 자식의 가면이 변해 있었다. 뭔가 난해 했다.
미안한 마음에 햄버거를 사 왔다. 종류별로 사왔다. 먹고 화 풀어. 되게 비싸더라. 멀리 가서 산거야.
와 보니 아줌마는 이미 갔네. 중요한 순간 방해해서 미안해.
“철승아. 이거 다 처먹어. 무슨 햄버거 값이 옛날 통닭 보다 비싸?”
“죽을래? 기껏 천국으로 가나 했더니... 그리고. 뭐? 철승아?”
“그래. 이 인간 말종 새끼야. 반말 까자.”
퀘스천. 너가 모르는 내 비밀 하나 알려줘?
“철승아. 따지고 보면. 너 작은 어머니가 내 사촌누나 잖아. 항렬로 보면 내가 당숙이라던데. 족보가 희안하게 꼬여서,,,”
“밤에 달 보고 미쳤나? 그 말 할려고 여기 왔냐? 이 당숙 새끼야. 존댓말. 똑바로 쓰라 그랬지? 족보는 상관없다고. 싸워서 이기는게 다라고.”
얘는 한번 빡 치면 눈이 돌아가서 문제야. 뭔 말을 못하겠어. 어떨때는 나 보고 사랑한다 그랬다가. 또 어떨땐 철천지 원수야.
내가 이 자식 당숙만 아니었어도 참 인생이 평화로웠을텐데...
“너가 얼마나 숭고한 역사적인 순간을 깼는지 알아? 그리고. 내가 그 얘기 하지 말랬지? 아주 대접 받고 싶어서 혼이 떴어요. 내가 아주 고이 모셔 드릴게. 어이구. 당숙 아재. 오늘 햄버거를 다 사오셨네? 참 고맙네.”
“그런 새끼가. 지난번에 병 깨진걸로 내 목 찌를려고 그랬냐?”
“난. 너네 집안 꼴 뵈기도 싫어. 작은 엄마 년이 사기 치고 토낀게 5년 전이다. 너넨 피를 봐야. 아. 피가 붉었구나. 그런 새끼 들이라고.”
“어이구. 미안하다. 미안해. 그래서 매일 호구처럼 당해 줬잖아.”
나도 처음부터 호구 였는줄 아냐? 너한테 철저히 가스라이팅 당했어. 5년이다. 5년. 가만히 살던 인간도 그렇게 살아봐. 부르면 가고. 가면 맞고. 그리고 또 학교에서는 맞지 말라고 보호 해줘요.
완전 츤데레가 따로 없네.
“그런데 너 취향이 아줌마였어?”
“가라. 내가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너 때문에 다 조졌어. 햄버거는 다 먹을거니까 냅 둬.”
“아니. 나 물어 볼게 있어.”
“그것 때문에 오셨네. 당숙께서. 흐흐. 하긴.”
햄버거... 아니지. 오늘은 철승이. 철승이는 나를 보며 키득대며 웃어 댄다. 웃음은 점점 커진다.
“오늘 너네 할머니 골로 갈 뻔 했다가 겨우 살았다며? 너가 보호자 이름에 나도 적어놔서 연락 왔었어. 그런데 콜라는 빼 먹었냐?”
“햄버거가 비싸서. 그냥 물하고 먹으면... 할머니가 뭐?”
스마트폰을 꺼낸다. 정말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자 2통. 전화 한번.
“조의금 조금이라도 모이면. 반띵 해라. 나도 너네 때문에 인생 망한 새끼야.”
“너 인생 망한게 왜 우리까지 끌어 들여. 자꾸 진짜.”
“아주 크게 보태줬지. 너네 할머니가 나한테 그랬잖아. 더러운 잡종 새끼. 그 말이 아직도 박혀 있어. 그래서 내가 기분이 좋아. 너네 할머니 죽을날만 기다리잖아.”
그래. 햄버거. 너의 할아버지가 미군이었지. 할머니는 양공주였고. 너네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하고 사이가 정말 안 좋았어.
“내가 국가대표 선발전 나가기 전에 너네 할머니를 만나는게 아니었어.”
“너네 할머니 돌아 가셔서 알려 주러 간 거였잖아. 그리고. 누가 유도 포기하래?”
이철승. 철승이형. 햄버거... 너도 인생 참 꼬였다. 나야 내 부모가 그냥 버리고 간거라지만. 작별 인사라도 했지. 넌 눈앞에서 아빠가 자살 했으니까.
엄마 만날려고 유도 한 거였잖아. 잘 되면 돈 많이 번다. 그 말 믿고 시작한거잖아. 나도 마음은 안 좋아. 그땐 너도 좀 착했어.
역시 우리는 서로 싫어하는 사이야.
“나중에 할머니도 사과 했잖아.”
“그래. 나도 너 병신 만들고. 어~ 미안해. 할게. 더 말 섞기도 싫어. 제발 좀 가라. 나 아까까지 기분 진짜 째졌거든?”
“청솔고 일진들. 여기 온 거 알아. 왜 왔대냐?”
이제야 본론을 꺼낸다. 이 말 한마디 하기 위해 무슨 넋두리를 이리 길게 들었던가?
철승이는 나를 보다 피식 웃은 뒤 햄버거를 먹는다. 난 본능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콜라가 있다. 김이 다 빠졌지만 컵에 따라 건네 준다.
“그 새끼들. 동네 노숙자들 좀 데려와 달라더라? 제약 회사 실험이래나? 뭐래나?.”
“제약 실험?”
“내일 한다던데? 띨띨한 것들이 어울리지도 않게 놀아. 이 동네 되도 안하게 나불대는 말들은 내가 다 들으니까.”
대단하다. 무슨 묘기도 아니고. 얼굴이 크다지만. 햄버거를 한입에 처 넣고 씹어 먹는 인간은 처음이다. 왜 유튜브를 안하는지 몰라?
아니다. 유튜브 하면 이 동네에 너한테 당한 인간들이 가만 있겠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겠지.
진짜 내가 너를 햄버거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어. 1분도 안 되었는데 햄버거를 3개나 먹어 치웠어.
“이 집 맛있네. 나가서 더 사와. 너 돈으로.”
“돈. 돈. 툭하면 돈.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도 너한테 뭐라 한거잖아.”
“작은 엄마 년이 사기 친거 갚아야지. 안 그러면 나 벌써 이 동네 떴어.”
“그런데 걔네들 어디서 실험한다. 그런 말 없었어?”
“아. 이 말을 들었어. 너네 학교 커플 하나 자살 했다며?”
“응. 그런데?”
난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너네 학교 죽은 커플. 여자가 완전 걸레라며? 이리저리 다 대줬다던데? 너도 했냐?”
심호흡. 한번. 두 번. 참자. 그래... 얘 원래 이래. 그냥 내버려 두면 해야 될 말. 못할 말. 다 뱉어 대는 너에게 뭘 기대할까?
“아. 걔 임신했지? 그거. 오덕수 애라며?”
뭐? 잠깐. 뭐라고? 오덕수?
“지금 뭐라고 그랬냐?”
“오덕수. 그 찐따 새끼. 이리저리 껄떡대다 한 대 맞는 그 새끼 말이야. 오덕수가 몇 달전부터 걔를 노리개로 탁 찍었다잖아. 지속적으로 그 년을... 컥. 안 놔?”
난 햄버거의 멱살을 잡았다. 예전 같으면 절대 할수도 없었을 행동이다.
“말해. 지난번처럼 지져 버리기 전에.”
내 손에 꿈틀대는 황금빛 용이 빛난다. 그와 함께 강한 전기가 올라 왔다. 이 집을 다 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일 걔네들 어디에 있냐?”
“요새 운동하냐? 왜 이렇게 힘이 세졌어?”
“3. 2.”
“저기 재개발지역. 거기 화요일 저녁마다 모이잖아.”
와. 그렇게 겁 먹은 눈빛 처음이다. 넌 세게 나가면 그냥 기는구나. 지워진 기억이 뭔지 보여줘? 그건 맞아 가면서 배워 봐.
오른 손에 전기가 모아 진다. 그런데 촉감이 느껴져. 마침 정전이야. 아니다. 내가 이 건물의 전기를 다 빨아 당기고 있어.
전기들이 날뛰다 하나로 모아 졌어. 마치 살아 날뛰는 채찍 같아.
“서나현씨. 당신의 사악한 마음이 그 장갑의 힘을 조종 하는 군요. 뇌제. 그대가 뇌제로써 이 자에게 위엄을 보이세요. ”
퀘스천. 너 언제 왔냐? 어쨌든. 아주 좋은 조언이야.
햄버거의 멱살을 놓는다. 매를 친다. 전기가 채찍처럼 날아 들어 햄버거의 몸을 찢는다. 한 대 치니 곡소리가 나온다. 두 대를 치니 피가 튄다.
12대를 치니 채찍이 사라 졌다. 나도 좀 지친다. 숨을 몰아 쉬었다.
“이봐. 철승이형?”
마침 다시 전기가 들어오네. 밝아진 지금에서 보니까 정말 내가 너무 했구나 싶다. 온 사방에 피가 다 튀었다.
“내일. 내 말 좀 들어줘. 나도 더 이상 아는 척 안 할게. 그리고... 우리 할머니 아프다고 너무 좋아 하지마. 그래서 때린거니까.”
내 손의 감촉은 지금도 생생해. 이제야 알겠어. 이 장갑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집 밖으로 나간다. 달은 그믐달로 변해가는 중이다. 한참 보고 있었다. 침묵을 꺤건 내 옆에 있는 퀘스천이었다.
“서나현씨. 저자의 상처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치료해 놓겠습니다. 이용해 먹기 좋은 먹이감이 생겼군요.”
“난 햄버거 별로야.”
“밤참은 피자로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