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절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 것 알아요. 그래도 하나 빌게요. 지금 이 상황 좀 수습해 주세요.
“뭐? 라면? 서나현. 지금 그런 말이 왜 나와?”
퀘스천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럴 때 너가 도와 줘야지. 밖에는 구름이 많이 걷혀 달이 선명한데. 여기 달빛이 비치는 화장실에 나와 윤다예. 둘.
“아니. 그게 아니고. 너. 복제인간이지?”
“예쁜이들 보니까 감이 오지? 그래. 난 한때 상품 3-41이었어.”
윤다예는 잠깐 밖을 본다. 표정이 슬프다. 뭔가 아련한 느낌까지 준다. 그걸 보자니 나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창문 밖 달은 그 어느때 보다 밝다. 때로는 침묵이. 어둠이. 은은한 빛이 많은 것을 말해 줄 때도 있다.
“우리들은 본체 탓에 아주 이쁘게 태어 났어. 그래서 이리저리 이용 당하다 죽는게 대부분이야.”
“야... 그걸 지금...”“동정심 가지지마. 난 그래도 동화책 속 주인공이었으니까. 누구보다 똑똑 했거든. 힘도 세고. 머리도 좋아. 재밌는거 보여줘?”
윤다예는 몸을 빠르게 움직인다. 순간 윤다예가 3명으로 보인다. 더 빠르게. 5명. 7명? 아니 10명은 되겠다.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면 잔상 남는다.”
“너희들은... 인간 맞아?”
말실수 했다. 이런 말 하려 한게 아닌데... 다행이도 윤다예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글쎄? 우리가 인간일까? 물질적으로는 맞지. 그런데 우리는 죽어서 귀신이 될까? 난 그렇게 묻고 싶어. 궁금해.”
“이 학교에 복제 인간은 몇이나 되?”
“나 제외하면 22명. 주형태가 리더야. 전투 307호. 비밀 하나 더 알려줘?”
어두운 복도에 들어 온 달빛이 더 길어 진 기분이야. 듣기 싫은데 들을 수밖에 없는 이 심정을 누가 알까?
“우리학교 교장도 1년 전에 죽었어. 대체품이야.”
아. 그랬구나. 그래서 교장이 윤다예 한테 쩔쩔 맸구나. 어쩌면 윤다예는 교장을 감시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꼭 서로 감시하는 그런 관계.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그런 관계. 결국엔 위에서 지켜 보는 것들만 이득을 먹어요.
그런데... 잠깐. 머릿속에 뭔가가 확 지나 갔어. 퀘스천이 그랬잖아. 복제 인간들은 빨리 늙는다 그랬지? 그게 단점이라고.
“그럼. 너희들은 지금 다 몇 살이야? 1년 만에 성인이 된다며? 5년도 안되어 다 죽는다던데.”
“어머. 너 제법 많이 알고 있다. 그만 말해주려 했는데? 난 몇 살일거 같니?”
“한... 3살?”
“캬하하. 너 웃긴다. 3살짜리한테 들이댄거야? 신고라도 해야 하나?”
그러네. 내가 지금 3살짜리랑 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난 다른 애들과 결이 달랐어. 똑같은 성분을 넣었는데 왜 자라는건 다른 것들보다 느린건지... 난 17살이야.”
잠깐. TW가 기술을 얻은게 10년도 안되는데? 얘 지금 뭔 소리 해?
“돌연변이. 우리를 만든 모두가 날 그렇게 부르더라. 인간과 똑같은 속도로 자라고. 기대 수명도 100년. 인간 창조 배합율의 장난일까? 들어가야 할 것들 중에 1g만 다르게 들어가도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가 만들어 지기도 해.”
“우리 학교에도 오징어들 많아.”
돌연변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왜 똑같이 만들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나처럼 도태되는 인간은 없었을 거잖아.
“누군데? 너희들을 창조 했다는 그 대단하신 분은?”
“그룹 TW 총수. 이 모든 것의 설계자. 그 자는 30년? 아니. 100년 전부터 모든 것을 준비 해 왔어. 어쩌면 그 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TW 그룹 총수. 강익찬. 세계 부자 순위 6위. 곧 5위 된다던데?
그런데 생각을 좀 해보자. 뭐? 100년? 이걸 믿어야 하나? 참. 머리 속이 어지럽다. 다예를 표정을 보자니 믿어야겠는데. 뭔 말이 현실 감각이 없냐?
“그런데. 왜 한국이래? 미국. 중국. 만만한데 많았을텐데?”
“처음엔 일본이었어. 버블 경제 프라임도 총수가 만들었지. 그런데 그만 뒀대. 교토대지진 때문에. 연구에 좀 더 안전한 곳이 필요 했어. 그래서 제일 가깝고 만만한 한국으로 정해 진거야. 더는 몰라. 자. 질문 그만해. 많이 아는거. 안 좋아.”
윤다예는 날 본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다. 특히 그 눈. 약간 슬픈듯한 그 눈. 엄마가 나 버리고 떠난 그날. 그런 눈으로 날 바라 보며 말했지.
새장 속 새 들이 얼마나 슬픈지 아니?
아빠는 그런 말도 없이 나 3만원 주고 떠났지. 아. 그래도 연락 한번은 했네. 할머니가 나 16살 생일 때 전화를 거셔서. 그때 아빠 대답이 예술이야.
넌 너대로 살아.
“서나현. 무슨 생각해? 얼굴에 달빛이 서렸어. 그 얼굴 제법 매력있다?”
“나 버리고 떠난 부모 생각.”
“나도 하나만 물어볼게. 오늘 나현이 너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알아? 왜 나한테 접근 했어? 그 자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너희 협박해서 돈 벌고 싶어서 그랬다. 왜?”
“너 내가 생각한 거보다 더 멍청하다. 고작 그거 가지고 목숨을 걸어?”
“걸어. 길가다 부딪쳤다고 칼도 들어. 이 세상이 보통 세상이냐? 부모도 자식 버리는 세상에.”
윤다예는 내 말에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미소가 쓰게 느껴진다.
“맞네. 틀린말 아니네... ”
“뮤지컬하냐? 혼자서 감정의 리액션이 다채롭다?”
“지금 이 학교 대체품들은 날 감시해. 내가 도망 못 가게.”
누군가가 그랬다. 거짓의 약점은 진실이라고. 하지만 난 맞받아 쳤다. 진실의 약점은 현실이다.
“곧 TW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 될 거야. 온 세상이 뒤집어 질걸? 난 그 날을 위해 키워진 실험물이야. 이제 내 몸에서 유전자 채취를 하겠지. 그럼 아무것도 남지 않아. 뇌에서부터 피까지 다 가져갈 테니까.”
“그럼... 도망치면 안되냐? 너 똑똑하잖아.”
“똑똑하니까 가만히 있는 거야. 난 확률 제로에 모든걸 걸지 않아.”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포기? 아니야. 절대 삶을 포기한 눈빛이 아니야. 나 이 눈빛 알아. 도살장에 갇힌 개들 중에도 살고 싶어 악을 쓰는 것들이 있으니까.
“약해 빠졌으면 가만히 숨어 있어. 내가 널 살려 준 거야.”
윤다예는 화장실을 나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 졌다. 그 뒷모습을 한참 봤던 것 같다.
많은 것을 알아 냈어. 그렇지? 퀘스천? 옆에 있는거 알아. 당장 튀어 나와.
“두 분의 대화가 아주 길었군요. 상대를 꼬실만한 시간이죠. 어때요? 성과가 있었나요?”
“물 튀겨. 춤 추지 마. 그리고 꼬셔? 와. 멘트 실화냐?”
“서로 비밀을 공유한 관계. 매력 적이군요. 남의 장단에 놀아 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만들죠.”
“대신 이용 당하기 쉽지. 꼭 칼이 날카로운게 피를 봐야 배우냐?”
“그럼요. 그만한 학습이 없습니다.”
퀘스천. 청소나 마저 하자. 당장 물이나 틀어. 달님아. 여기 좀 잘 비춰봐. 퀘스천이 춤을 춰 대잖냐? 아주 화장실에서 지랄을 떠는데.
밤거리를 걷는다. 곧 겨울이다. 바람이 아주 차다. 덕분에 옆구리가 시리다. 더구나 내 옆에 있는 놈이 마음에 안들어서 더 그런거 같아.
“서나현씨. 낙엽이 흩날리고 있어요. 이런 날에는 집구석에서 연인과 따스한 간식을 먹으며 야동을 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난 너 같은 새끼 때문에 쪽팔려. 날리는 멘트가 지랄이야. 야! 달! 다른 애 좀 보내! 얘가 내 책사라고?”
네. 제 옆에 지나가시는 커플 분. 저 이상해 보이죠? 하늘에 떠 있는 달님한테 물어 보세요. 내가 이상한가. 아니면 세상이 이상한 건가?
퀘스천은 성큼 성큼 밤거리를 걸어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내 식사를 차려 준다. 오늘의 메뉴는 오징어 볶음. 매운 맛에 속이 쓰리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해보죠.”
집의 벽 한편이 거대한 스크린 창으로 변한다. 오늘 나의 행적. 그동안의 상황에 대한 정리가 나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왜 나는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먼저. 돌발상황이었던 것 만큼. 우발적이라 볼 수 있겠군요.”
“대충 정리 하면. 상품 검수라는 이름 아래 복제인간들과 인생 포기한 애들이 거기 본사 10층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끼어 들었다. 혹시나 내가 뭔가를 봤나 싶어 날 창가에 던졌다.”
“네. 바꾸어 말하자면. 그 자리에 복제 인간들이 상품들을 감시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한 복제 인간.”
“비비 꼬지 말고 핵심만. 쫌!”
“복제인간들이 자라는데 1년이면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학교 생활이 가능 하다는 것은... 주입식 교육이 있어서 겠죠.”
“걔네 공부 못하는데?”
“숫자만 셀 줄 알고. 이름만 쓸 줄 알면 됩니다. 일진들은 원래 공부 못한다는 선입견만 있으면 됩니다. 학습 진행 상황 따위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스크린 창 화면이 전환된다. 내 기억 속 복제 인간들의 행태들이 재생 된다. 철저히 내 기억 속이지만 그래도 실제와 그리 다르지 않는다 확신한다.
“하지만 삶의 경험은 다르죠. 17살이라도 앞에서 누군가가 죽는다면 당황할 것입니다. 하물며 2살도 안된 자들이라면...”
스크린창의 화면이 전환된다. 그것은 햄버거... 그 인간 말종 새끼네 집? 아니. 왜 뜬금 없이 거기가 나오나?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일진들이 죽임을 당하고 모두 복제 인간들로 대체 되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돈을 뜯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건 그렇다 쳐요. 갑자기 행동이 바뀌면 의심 받으니까. 그럼 그 돈의 흐름은 어떻게 달라 졌을까?”
일진의 탈을 쓴 복제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인간 말종의 집에서 나오고 있다. 궁금해진다. 얘네 여기 왜 왔지?
“어린 애들은 나쁜 짓을 어른에게 배우기 마련이죠. 특히 아주 훌륭한 스승이 있으니. 직접 찾아 가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것보다 이거 언제 찍었냐?”
“오늘 낮에 이 동네 하늘에 달이 떠 있었습니다. 달이 있는 곳이면. 저도 언제든지 있는 법이죠. 이제 움직이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