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천은 갑자기 춤을 췄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 새끼가 미쳤다 싶었다. 뭐 저런 삼류 뽕짝에서 브레이크 댄스가 나오는 걸까? 의상 부터가 에러야. 나풀 거리는 그 양복부터 어떻게 해봐.
“재밌니? 지금 사람이 죽고 그 자리에 복제 인간이 들어 왔다던데?”
“춤은 내 인생의 모토입니다. 크크크크. 전 달 아래 모닥불이예요. 불이 춤추면 그림자도 춤을 추죠.”
“음악 좀 바꿔.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노래가 이거 밖에 없냐?”
설온도. 태쥔아. 임영움. 장민후. 그리고 송가임. 다 한글자씩 틀려. 좀 넣을거면 진짜들을 넣던가?
세상이 복제판이니 음악도 가짜들만 넣냐?
“서나현씨도 저와 같이 춤을 춰 보시죠.”
“시러.”
굳이 발음 똑바로 싫어. 그렇게 말 안할래. 시러.
화면 전환을 해보자. 내 기억을 토대로 여러 가지 분석이 되어 있어. 일단 내 눈에 비춰졌던 10층은 모두 가짜야.
가상현실이었어. 그게...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 세뇌가 되었구나. 그 안에서 기절해 버렸어. 그리고 난 가짜 기억을 가지고 돌아 간 거였어.
“마술입니다. 제가 있었다면 절대 걸려 들지 못했을 겁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왔어.”
“그동안 학교에서의 당신의 행동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딱 봐도 바보 같은 헤죽이었습니다.”
“딱 744대만 맞자. 내가 손에 전기가 팍 올라 온다.”
내가 웃는게 아니다. 내 손에 이글거리는 번개가 증거다. 강해지라 그랬지? 너가 그 연습상대가 되어주지 않을래?
“모든 가능성을 여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윤다예. 그녀를 잡으십시오. 그녀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알아 내셔야 합니다.”
“너가 도와 줘야 해.”
“안타깝지만... 그날 낮에 달이 떠 있지 않을 참이라.”
아. 꼭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안되요. 뭐. 삶이란게 그래. 가난한 너네들 도와 줄게 하고 손 내미는 것들. 믿었다가 피본게 한두번이야? 오죽하면 할머니 병원비를 내가 냈겠냐?
“신이 인간을 창조 했을까? 적어도 인간이 인간을 창조 하는데...”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즉시. 전 내일까지 사슬에 묶여 버릴 겁니다. 천천히 알아가자구요.”
난 오랜만에 술을 마신다. 처음 술을 마셔본건. 2년 전. 햄버거한테 배웠다. 세상의 어떤 미친 새끼든지 한번은... 딱 한번은 호구들에게 잘해줄 때가 있다.
할머니는 동네 잔치에서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셔 일찍 잠드셨던 그날. 난 햄버거에게 소주를 배웠다. 너무 써서 얼굴을 찌푸린 나를 보며 햄버거가 깔깔대며 웃어 댔지. 그래도 난 한병을 기어이 다 마셨네.
“까나페와 와인. 햄과 치즈를 곁들였습니다.”
“치워. 소주에 삼겹살이지.“
“그럼 이건 제가 먹겠습니다.”
나와 퀘스천은 식탁에 마주 앉는다. 한번도 퀘스천이 먹는걸 본 적이 없기에 유심히 지켜 보았다. 그런데 잘만 먹는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 가면에서 입이 생기는 건가?
“제가 한잔 따라 드리죠.”
달빛이 환하다. 보름달이다. 난 그것을 보며 웃었던 것 같다.
“내가 신이었다면. 나부터 죽였을거야. 나처럼 말 안 듣는 인간이 뭐가 예뻐서?”
“신은 인간을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모두 사고를 당하거나. 아니면 인간이 인간의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하죠.”
퀘스천이 내 앞에 샐러드를 놔준다. 삼겹살이 한입크기 쌈으로 되어 있어 먹기 편하다. 야채 많이 먹을게.
“어디서 산 삼겹살이냐? 살살 녹는다.”
“지리산 아래 흑돼지 농장에서 가져 온 겁니다. 제일 살찐 돼지 살을 잘라 왔습니다.”
“웃자는 소리지?”
“그 농장의 주인은 정신지체자들을 부려 먹으면서 돼지 우리 만도 못한 곳에 잠을...”
듣지 말자. 다 따지고 들면 이거 못 먹는다. 어차피 나 이거 다 먹을거야. 굶는게 얼마나 무서운건데. 14살 때 7끼 연속 굶어 보니까 세상이 노래보여.
“이 소주가... 딸꾹. 몇 도냐?”
“45도. 제법 큰 병으로 준비 했는데 그걸 한 병. 기어이 다 마시셨군요.”
“미성년자한테 그런거... 먹여도... 딸꾹!”
“다음엔 더 큰걸로 준비 하겠습니다.”
흐흐흐. 퀘스천의 가면이 계속해 변해. 와. 변화무쌍하다. 나비 그림에 이젠 번개가 우루루... 쾅!
“안녕히 주무십시오. 토요일 밤. 달은 서나현씨께 많은 것을 물을 겁니다.”
어우. 추워. 이놈의 이불은 참 푹신한데 뭔가... 아. 오전이다. 대낮이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퀘스천이 만들었던 모든게 다 사라졌지. 낡은 집에 바람도 못 막는 창문. 원래의 내 삶은 참 구질구질하다.
일요일 오후. 난 거리로 나섰다. 마지막 휴일이 될 수도 있기에 집에 있을수는 없다.
“이집에서 제일 비싼 우동 주세요.”
한 그릇에 만원 넘는 우동을 먹는다. 코인 노래방에 가서 부르고 싶은대로 노래를 부른다. 군것질도 양껏.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걷는다. 계속. 멈추지 않는다.
벌써 밤이다. 내 옆엔 나만 볼 수 있는 존재. 퀘스천이 뛰어 다니며 춤을 추고 있다. 많이 신나 보인다.
“거리가 참 예쁩니다. 커플들이 좋아 하겠어요.”
“그래. 너랑 걷고 있는... 그러게... 진짜 너 몇 살이냐?”
“쓸데없는 더 알아가는건 사양입니다. 서나현씨와 전. 이 정도 관계가 맞습니다.”
“그러네. 헤어질 때도 쿨하게.”
“대신 전 배신하진 않아요.”
난 웃었다. 퀘스천도 웃었던 것 같다. 이 밤... 일요일의 밤. 평생 기억할테다.
“오늘밤은 화이트 와인을 드시죠. 생굴이 좋은 날입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승리를 기원하며.”
건배.
“밤은 짧습니다. 일찍 주무십시오. 그리고 내일 아침에 학교 앞에 달이 떠 있을 겁니다. 그럼 저도 돕겠습니다. 다만. 구름이 달을 가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밤 하늘에 구름이 제법 많다. 구름이 달을 가리냐. 멋어 나느냐에 눈앞의 풍경이 계속 바뀐다. 그래도 내 손에 쥔 와인잔 만은 그대로 남았다. 향기가 좋다. 술에 취하는게 아니라 향기에 취한다.
그러니 밤이 예뻐 보인다.
모든건 내일에 맡긴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멋있어 보이나? 천만에. 그런 거 필요 없거든. 내가 진실에 다가 갈거야.
“제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퀘스천. 내 책사 짓거리 똑바로 해. 나도 너 배신 안 할 거니까. 서로 헤어질 사이니까 쿨하게 배신하지 말자.
생굴에 레몬즙을 가득 담아 먹으니 맛있다. 굴튀김은 너무 바삭해서 한도 없이 넘어 간다.
“할머니를 보고 온다는게 깜빡했어.”
“아직 서나현씨에게 시간은 있어요.”
그 말 한마디가 왜 그리 고마울까?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았다는 것. 그게 이리도 고맙고도 힘들 일일 줄이야.
오늘밤은 좋은 꿈을 꿀 것 같아. 적어도 오늘밤. 하루 만은... 날 건드리지 말아줘. 신 마저도 오늘 밤만은 안돼.
“누가 시간 좀 죽여 버려.”
눈을 뜨는게 싫다. 이제 휴식은 끝났다. 움직일 시간이다. 새벽 4시 50분. 밖엔 구름이 가득하다. 세상이 너무도 어둡다. 하늘에 달조차 보이지 않아.
“피는 붉은 색.”
어제 먹은 와인의 색깔은 달빛 색깔. 교복을 입는다. 퀘스천이 놔 둔 10만원을 챙긴다. 밖으로 나갔다. 뛴다.
스마트폰은 최대 충전이 되어 있다. 오늘은 하루종일 흐림.
“신은 가혹한 시험으로 피조물의 운명을 결정한다.”
알바 하다가 주워 들은 말이야. 앞에 뭔가가 있었던거 같은데... 그냥 이 말로 내 소감을 대신한다.
윤다예. 난 너를 쫓는다. 너의 존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날. 내가 본건 정말로 무엇이었기에 밖으로 던져 졌는지. 진실에 다가 갈거야.
“고기 판 닦으면서 불러 봤는데.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
성큼 성큼 날아가 보자.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야. 저 달은 참 밝기도 하다.
달을 만져 보는 일이 있을까? 있으면. 그 위에다 사과 나무를 심을래?
교문 앞에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와 함께 세상이 조금씩 밝아 오고 있다. 햇살이 내 얼굴에 비치니 웃음이 난다.
기다린다. 내 옆에 학생들이 지나가든 말든 난 기다린다. 그러니 보인다. 윤다예. 난 그제야 움직였다.
“얘기 좀 하자.”
“콧물이나 닦아. 더러워.”
에이. 모양 다 빠지게. 잠깐. 거기서!
“윤다예? 야! 좀 멈춰봐.”
다예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난 처음부터 패를 까기로 했다.
“너 왕언니와 똑같이 생겼더라? 그 이름이 뭐랬더라? 캐나다의... 에이. 까먹었어. 너가 말해봐. 그 본체의 이름이 뭐야?”
윤다예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분명 보였다. 하지만 날 무시하고 들어 가려 한다. 난 뛰어가 윤다예의 팔을 잡았다.
나와 윤다예.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 갔다. 내 눈에 우주가 보인다. 태양계가 확 스쳐 지나갔어. 이게 뭔 일일까?
수성에서 저 멀리 이름 모를 별까지 순식간에 지나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까지 5초. 그동안 다예 넌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어.
우리 둘 사이로 햇살이 비춰져. 아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