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습니다. 성큼 성큼. 날아 가보도록 하죠.”
퀘스천은 폴짝 폴짝 뛰어 다니며 내 신경을 긁는다. 참자. 여기서 화내면 괜히 나만 이상해지지. 퀘스천은 나에게만 보이니까.
어쩌다 생각을 해봤는데. 처음엔 내가 정신 분열이라도 일으켰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야. 안 그러면 내가 먹고 자는 모든 게 설명이 안 돼.
“야. 정신 사납다. 춤 좀 추지마.”
“호호. 달밤은 절 미치게 하죠. 특히 축제에서 만큼은.”
퀘스천이 앞 무대를 소개하듯 고개를 조아린다. 보인다. 정말 축제 같다. 모여서 놀고 있는 애들. 어른들. 가운데 불은 언제 이렇게 크게 지폈는지. 그리고 주변에 조명들도 많아. 마치 야시장 같은 기분이 들어.
언젠가 할머니하고 같이 나들이 나온 그 풍경을 잊지 못해. 마치 다른 세상 같았거든. 밤 공기에 취한채 한참을 돌아 다녔어.
“야. 거기 헤죽이. 너 뭐냐?”
“응? 나?”
“그래. 얼 빼고 있는 너. 뭐냐구. 여기 막 누구나 알고 그런 데가 아닌데?”
“아... 오덕수! 덕수 알아?”
“그 호구 새끼? 여자애들 꽁무니 쫓아 다니는... 크크크크크. 그 새끼 안 보이네? 왔던거 같은데? 걔 따라 왔어?”
“그래. 그랬어.”
“너도 참... 개새낀가 보다. 크크크크.”
나에게 말을 건 이 자식은 참 사납게 생겼다. 그래. 너 싸움 잘할 것 같아.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나이도 다양했다. 술을 마시고 있는 자들. 남들이 보든 말든 사랑을 나누는 커플들이 대부분이다. 몇몇은 팔에 주사를 놓고 있었다.
“처음 왔냐? 아주 티를 내고 다녀요. 참. 좋아. 여기 인도장에 규칙 알려 줄게.”
“인도장? 여기를 그렇게 불러?”
“너 나한테 걸린게 다행인줄 알아. 다른 놈 같으면 그냥 토막이야.”
뭔 토막이 나와? 여기가 무슨 정육점이냐?
“두 가지만 지키면 되. 소란 피우지 말 것. 그리고 누구든 이름을 묻지 말 것. 방금 덕수 이름 부른 것도 잘못인데. 그러면 안되. 여기는 전부 헤죽이. 멀건이. 어버리. 그렇게 부르거든. 난 삐쭉이라 불러.”
그래. 사람이 이름 따라 간다고. 넌 삐쭉거리게 생겼어.
“아. 마지막. 여기 뭐하는데야? 그렇게 물으면 초상난다. 그건 덕수한테 들어서 알지? 여기선 덕수를 발정이라고 불러.”
“우와. 발정이? 그 새끼도 참...”
“나름 성공률이 10%는 되. 여긴 모텔비는 없고. 아무나 만나서 놀고 싶고. 그런 애들 많거든. 너도 그럴려고 온 거 아니야?”
“아... 그냥 왔어.”
“거짓말. 그냥 여기 왜 와?”
삐쭉이가 나에게 다가 온다. 표정이 제법 사나워졌다.
“이름은 안 물어도 목적은 물어. 여자애들 꼬실려면 저기 가. 아무나 대주는 애들 많은데. 술 마실려면 저기 얼음 통에서 꺼내 마시면 되고.”
“넌 여기서 뭐해?”
“난 경매 참가 하러 왔지. 도매상이야.”
내가 더 물으려는 순간. 퀘스천이 급히 속삭인다.
“알았다고 하십시오. 의심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도매상. 그래.”
삐쭉이와 헤어진다. 너무 얼쩡 거리면 들킬까 싶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 여기는 마치 욕망의 해방구 같다. 사랑을 나누면서 날 보고 웃는 여자애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알거 다 안다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느낌이 다르다.
“미친...”
“그만.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절대 티내지 마세요.”
퀘스천이 딱 좋아 할만한 공간이네. 그래 잠깐 서 있어 볼... 헉!
“넌 뭐야? 내 팔을 왜 잡아?”
“이거 맞아봐. 끝내줘. 하나 서비스 할게. 10개 살래?”
어떤 미친 새끼가 내 팔을 잡았어. 주사 놓으려 하네? 쳐낸다. 이 새끼는 헤롱이라 불릴 거야. 하는 짓이 딱 그래.
“천국을 맛 보게 해준다니까? 10개 십만원.”
“저승 맛 좀 볼래? 아주 서늘한 맛인데?”
헤롱이를 잡고 발로 걷어 찬다. 누굴 때려 본적이 별로 없다. 왜? 난 싸움 못했으니까. 그런데 주사 들고 달려 드는 꼴을 보자니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바람이 분다. 가운데 피워진 큰 불도 조금 흔들린다. 그런 시간 사이. 누군가가 무대 위에 선다. 마이크는 없었다. 하지만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자! 여기 계신 분들! 오늘도 인도장에 오신 고객님들이시죠. 반갑습니다. 제가 돌아 왔어요. 춘삼이예요.”
갑자기 음악이 울린다. 춘삼이는 그에 맟춰 춤을 춘다. 파란 양복이 왜 그리 촌스럽게 보일까? 옆에 퀘스천. 넌 언제 무대 올라갔어? 왜 같이 춤을 추는 건데?
“오늘 거래 되는 건 아주 끝내 주는 거예요. 큭큭큭. 그전에 모두의 댄스 타임. 광란의 춤을!”
나 빼고 다 춤을 추기 시작했어. 나도 얼떨결에 대충 흔들어 본다. 그러니까.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는... 와우. 킹 받네.
다들 미친... 헤롱이 이 새끼는 또 주사 놓을 라구. 죽을라면 너나 죽어.
“그만! 이제부터. 거래 시작합니다. 상품 1번. 나와 주세요!”
춤을 추던 모두가 멈춘다. 바로 무대 위에 사람 하나가 올라 왔다. 말 그대로 돼지. 어떻게 인간이 저리 살 찔 수 있을까 싶은 이였다.
“250kg. 남자. 31세입니다. 비계가 상당합니다.”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든다. 이건 뭐지?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내 안의 느낌이 잘못 된 것이라 생각해줘.
“이 고기를 사가실분? 아. 일부 잘라 가신 다음에 다시 살찌워 온 물건이라는 걸 알아 주시면...”
귀를 막았다. 안 돼. 거짓말이라고 해줘. 여기 모인 사람만 해도 200명은 넘어 보여. 그런데 뭐? 다 뭐하려 왔다고?
어떤 일진 새끼가 그랬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경우는 두가지라고. 먹을게 없거나. 뭐든 다 먹어 봤거나.
“10kg. 천만원.”
“천만원 나왔습니다. 네. 역시 사람은...”
“뇌는 언제 팔아요?”
“그건 비싸요. 크크크. 사지를 잘라 가실 수는 없습니다. 계약 물건 이예요.”
무대 위의 저 돼지는 자기 살이 잘릴 줄도 모르나봐. 벌써 120kg 까지 거래 되었어. 춘삼이가 그만이라 외친다.
바로 무대 위로 어떤 이들이 난입해 저 돼지를 약품으로 기절 시킨다. 돼지가 쓰러지고. 그는 운반 된다.
“거기. 너! 여기서 뭐라 불려요?”
“어어. 어? 나?”
“그래요. 귀 막고. 겁에 질린 너. 처음 왔어요? 에이. 왜 그렇게 떨어? 무대 위에서 노래 한 곡 할래?”
뭔 개소리야?
“뭐라 불리냐고. 말해봐.”
“헤죽이?”
“헤죽이 몇호야? 몇호?”
“아... 그러니까...”
고개를 돌려 본다. 어떻게든 대답을 찾아야 한다. 마침 삐쭉이가 멀리서 보인다.
“삐쭉이 친구. 헤헤.”
“진짜 헤죽이네. 귀엽다. 아유 올라와. 노래 한곡 불러봐. 우리 식구 된 거 환영해.”
난 잡혀 꼼짝없이 올라 간다. 음악이 나온다. 좀 알 것 같은 댄스 곡인데? 아. 기억이 안나.
그때. 퀘스천이 자세를 잡는다. 달빛이 퀘스천에게 쏟아 진다.
“이 무대는 저의 것입니다.”
퀘스천이 춤을 춘다. 노래도 시작했다. 와. 진짜 잘한다. 모두들 넋을 잃고 본다. 끝마치자 박수 소리가 떠나갈 듯 했다.
그때 퀘스천이 급히 나에게 손짓을 한다. 그에게 다가 간 순간. 퀘스천은 사라졌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완벽한 무대 였어요. 어우. 어디 가수 출신이야?”
“아니요. 그게...”
“여기 연예인도 많이 와. 너 헤죽이 744호. 내가 그렇게 붙여 줄게.”
“그 번호는... 아니요. 감사 합니다.”
“앞으로 이런데 올 때 헤죽이 744호라고 해. 춘삼이가 그랬다고 하면. 다들 알아 줄거야. 744호입니다.”
이게 뭐가 좋은 거라고. 진짜. 여기서...
“두번째 상품이 올라 올 예정이었는데. 커플이었어요. 예약 된 물건이었죠. 라이브 쿡킹 할 예정이었는데. 안타깝게 계약 파기를 해버렸죠. 그만 사랑의 도피를... 캬아.”
“사랑의 뭐?”
“헤죽이는 내려 가고. 잘했어요. 박수!”
난 급히 내려 간다. 근처 물어 볼 사람이... 그래. 만만한게 삐쭉이다. 가자. 여러 사람을 밀치고. 또 밀쳐서.
“야. 너 노래 캡짱이야. 댄서 출신 같던데?”
“아니야. 여기 다들 이런거 사러 온 거야?”
“그래. 너도 그럴려고 온 거 아냐? 나중에 마약 맞은 고기 나오면 그거 피해야...”
“라이브 쿠킹이 뭐야?”
“여기 처음 왔댔지? 흐흐. 가르쳐 줄게. 대신 다음에 또 모른다 그러면 안되. 744호. 너. 춘삼이 한테 번호 받는다는게 얼마나 큰 건지 모를 거야.”
“몰라. 그러니까 뭐냐고?”“산채로 뜯어 먹는거.”
난 동공이 커진다. 제법 멀어진 무대가 마치 내 앞에 당겨 오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