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천의 말에 난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정하지도 못했다. 너가 말한 저런 것들 중 하나가 살인범이라는 말을 해줘야 되나 싶다.
세상엔 말도 안되는 일이 참 많다. 이 동네가 정말 그런 곳이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모른다. 요즘에도 그런 동네가 있냐고? 그런 동네 찾아보면 없는게 아니다. 바로 우리 동네니까.
버려진 건물 어딘가에는 노숙자들 시체도 발견 되었다지? 여기도 그런식으로 죽은 사람들 포장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저 햄버거 처먹는 돼지 새끼. 길가는 지체 장애인 하나 때려 죽였지? 재미로 말이야. 그래 놓고는 지나가는 차에 내놓고 던져서 사고로 위장했어. 쟤네는 그걸 다들 보는 앞에서 해. 신고 해볼려면 해봐라 그거지. 어차피 망한 인생인데.
그러고보니 쟤네들 세트로 몰려 왔네. 햄버거 하나. 콜라 둘. 프렌치 프라이들까지 총 여섯.
“서나현! 거기 있는거 다 알거든? 나와라.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 더 이상 숨는건 무의미 하다. 그때 퀘스천이 날 잡았다.
“지금부터 당신을 위한 상담을 해보겠습니다. 서나현씨.”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저 사람이 당신 이름을 두 번 불렀습니다.”
안돼. 콜라 하나가 걸어 오고 있어. 그냥 도망이라도 가 볼까? 아니야. 지난달에 쟤네한테 우리 집 위치 들켜 버렸어. 그때는 할머니 입원 이틀 전이라 생 쇼를 해서 넘어 갔는데. 이대로 도망치면. 우리 집은 쟤네 아지트가 될 판이야.
어차피 건물주도 버린 건물이라지만. 그거 마저 잃고 싶지 않아.
“오라고 할 때 와야 피를 안 보지. 꼭 이런걸 말로 하게 만들면 우리가 빡치잖아. 거기서 혼자 뭐하니?”
혼자? 여기 가면 쓴 마술사는 안 보이니? 잠깐 머리끄댕이는 잡지마. 놔.
“놔. 가면 될거 아냐.”
“싸움은 못하는데 성질은 더러운 우리 나현이. 저기 형한테 인사 해야지. 왜? 우리가 후따 넣어 준거 안 고마워? 학교에서 너 조용히 사는거. 우리 덕분이야.”
“알아. 나 다들 안 괴롭히는거.”
“그런데 이 새끼야. 봤으면 머리를 조아리고. 임마. 그냥 굴종의 사냥감적인... 와. 이새끼야.”
아주 유식한척 하려 애쓴다. 너가 그러니까 22살이 되어도 검정고시 하나 못 뚫는거야. 삥 뜯을게 없어서 그 나이 먹고 고딩 삥을 뜯냐?
머리 한 대 더 맞고 저 햄버거 앞으로 끌려 왔다. 남자 셋에 여자 셋. 아주 모여 놀기 딱 좋다.
“야. 나현아. 형 무서워?”
“아니요, 아무것도.”
“그럼 인사는 해야지.”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니도 편찮으시고.”
“아. 그럼 인사 한번 드릴까? 지난번 너네 집에 아무 말도 없이 가서 죄송했는데?”
눈치 깠다. 서로 알거 다 아는 사이에 시간 끌어 봤자 좋을건 없다.
“저희 집 아시잖아요. 비 오면 다음날 쥐새끼 나오는 거. 나 그런 집도 없으면 죽어요.”
“그런 집에 전기가 들어 온 다는 게 참 신기해. 그래도 술 한잔 먹기 좋은데. 종종 들릴게. 너 안 심심하게.”
“그러지 마세요. 나도 지금... 컥!”
햄버거 새끼 진짜... 꼭 발로 차고 본다니까. 누워 있으면 더 맞기 때문이라도 일어나야해.
“서나현씨. 왜 당하고 사시죠?”
“당하고 사는게 아니라. 귀찮은게 싫... 아! 좀 놔!”
또 시작이네. 만만한 놈 하나 잡고 갈구기. 오늘은 또 나냐? 그런데 퀘스천인지. 뭔지. 넌 또 내 옆에서 뭐래는거냐?
“싸워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진짜 내가 미쳤나보다. 이젠 헛게 다 보이네?”
강한 주먹이 내 가슴에 정확히 명중했다. 튕겨져 쓰러진다. 숨이 참 안 쉬어진다. 진짜 내가 살아 있나 보다. 죽었을 때는 고통은 느껴 지지도 않던데?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은 이제 말도 없다. 내가 본 건 다 뭐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죽다 살아 난것조차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내가 내 앞에서 안된다. 못하겠다. 그런거 하지 말랬지? 진짜 미쳤네. 나현이가 미친 기념으로다가 어떻게 해야 하나? 가끔 궁금 했는데. 술병으로 머리 치면 잘 안 깨지잖아. 어떻게 쳐야 깨지는지 한번 해보고 싶어. 그럼 내가 영원히 너네 집 안 찾아 갈게. 약속해.”
햄버거 새끼가 분리수거 통 안에서 소주병을 꺼냈어. 그냥 도망 갈까? 한번 죽었는데 또 죽기는 그렇잖아.
“도와달라 하세요. 그럼 전 당신을 도울거예요.”
“도와줘. 제발.”
나의 말이 끝나자 세상이 멈추었다. 이게 뭔일인가 싶은데 달빛 아래로 높은 단상이 나타났다. 그 위에 퀘스천이 있었다.
“이 동네에서 살아가시는 남녀노소 여러분. 반갑습니다. 마술사. 퀘스천입니다.”
그래. 너 마술사였어.
“오늘의 관객 여러분께 소개드리죠. 제가 모시게 된 주인. 서나현씨입니다.”
어디서 박수 소리가 들린다. 나한테도 달빛이 확 비춰 왔다. 어디서 3류풍의 뽕짝 음악도 들려. 야! 안 꺼?
“제가 서나현씨에게 힘을 드려야 겠어요. 이렇게 얻어 터지고 다녀서야. 저 퀘스천이 쪽팔리지 않겠어요?”
“음악 거슬리거든? 어디서 나오는 거냐?”
“그래도 분명히 해둘것이 있습니다. 서나현씨. 전 당신을 모시지만? 존경하진 않아요. 당신을 도울거지만. 감시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멜랑꼴리한 우리 사이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지 않겠어요?”
갑자기 꽃가루가 흩날려. 종이 구나. 정말 싼티 제대로다. 내가 꼴 갖잖은 쇼를 왜... 어우 갑자기 현수막이 펼쳐져.
“세가지입니다. 첫째. 아시다시피 갑작스런 죽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살아야 할 시간만큼 죽었어야 할 누군가가 그 시간을 살게 됩니다. 남은 시간을 살 자에 대한 선택은 달이 정해요.”
무슨 마이크를 입 안에 달았냐? 목소리가 밤 하늘 가득히 울리고 있어. 이 동네 사람들 다 깨우겠네.
“두번째. 연애 상담은 해드리지만. 결국 너 알아서 하세요.”
“너 같으면 나 같은 새끼랑 연애 하겠냐?”
“서나현씨는 잘 생겼습니다. 얼굴에 손을 봐야 할 데가 많지만 말입니다.”
“너 가면 벗어봐. 어떻게 생겼는지나 보게.”
퀘스천이 웃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게걸스럽게 웃어대던 퀘스천은 날 본다.
“세번째. 뭐든 전 도와 드리지만 결정적인 건 직접 하십시오.”
갑자기 단상 뒤에 뭔가가 나타났어. 커텐인가 뭔가를 거두니까... 저건 뭐냐?
“서나현씨가 싸워 볼라면 뭔가가 필요 하겠죠? 이거 어떠세요?”
권투 장갑. 그런데 되게 무거워 보인다? 가만. 옆에 도끼. 칼. 철퇴는 왜 있냐? 뭐가 저리 많어?
“이건 옛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전성기 때 쓰여진 장갑입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캬아. 난 그 말이 참 사랑스러워요.”
“그런 말을 하면서 굳이 춤을 춰야 겠냐?”
“이걸 끼면 당신은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실력을 가져요. 물론 달이 하늘에 떠 있다는 가정아래 말입니다.”
“딴거 없어? 되게 없어 보여.”
내가 없는 놈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야밤에 권투 글러브를 끼고 다녀야 겠냐? 뭉뚱한게 불편해.
“그럼 이런건 어떠세요?”
퀘스천이 막대기 하나를 꺼낸다. 끝 머리에 달린 하트 모양의 보석이 그냥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뾰로롱. 이걸로 잠깐 꼬셔 보세요. 굴욕 영상은 덤으로 찍을수 있습니다.”
“지금 나 열 받으라고 하는 소리지?”
“이건 돈 주고도 못 사요. 남녀 관계없이 딱 14초간 당신에게 반하게 만들 수 있죠. 그 동안 뭔가를 부탁하면 그 말이 최면에 걸린 자의 뇌에 박혀 들어 줄 수 밖에 없답니다. 물론 한 사람당 한번뿐이니 신중해야 하지만... 편견을 버려 봐요. 딱 한번. 달이 베푸는 자비입니다. 하나의 무기. 누구든 원하는 것을 가지지요.”
자비? 딱 한번이라니까 신뢰가 가네.
“달과 게임을 원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 주죠. 당신이 보았던 비행기 조종사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비행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금으로 된 체스판. 향수. 칼. 책. 말하는 석상. 뭐든 말해 봐요. 달은 게임에 진자를 용서 하는 법이 없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 졌네? 춤도 안 추고. 그래. 진지 열매나 깨물 시간인가? 그럼 난 무엇이 필요하지? 적어도 저건 아니야. 무슨 애들이 휘두를만한 마술봉 좀 치워. 핑크빛 하트. 보기 싫거든?
“캬하하하. 전 얼마든지 기다릴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 후 교환. 반품은 곤란합니다. 뭐든 있으니 골라 보세요.”
다시 음악이 떠들썩 하게 울린다. 내 주변에도 싸구려틱한 가판대들이 생겨나고 있다. 별의 별게 다 있다. 가면. 면도날을 씹고 있는 원숭이. 움직이는 그림. 그림 옆에는 주의 사항도 적혀 있네. 사람을 잡아 가두는 그림? 대신 사용자도 그림 안의 사람에게 잡히면 답이 없음?
불을 뿜는 총은 되게 멋있어. 저거 선택할까?
“저건 뭐야? 저 손가락 없는 푸른 장갑은?”
“으음... 그건. 안 쓰는게 좋을거예요. 멋대로 만들어진 것이죠. 신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생물이 봉인 되어 있는... 잠깐.”
연한 하늘빛이 마음에 들어. 금빛 실로 용이 수 놓아져 있는 그 장갑을 잡았어. 솔직히 장갑이 날 부른 기분이야. 용이 움직인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낀다 그러자 온몸이 시원해 지는 기분이야. 내가 잘못 봤을까? 금빛 용이 내 등 뒤에서 나타나 사라졌어.
이제 멈춰 졌던 시계가 움직일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