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0시가 넘으면 난 집 밖으로 출근한다.
퇴근하는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 그녀의 직장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갔고 10시 20분 막차를 타고 같이 왔다. 이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매일 출 퇴근하는 척 1년을 해왔다.
내가 사는 집 건너편의 주택에 사는 그녀는 내가 집에서 관찰하기에 아주 좋았다. 대포 카메라로 이리저리 사생활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항상 기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으로 집에 남자를 데려왔고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것을 24시간 내내 보는 나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찼고 결국 그 남자를 죽이고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수술용 마취제로 잠을 재워 데려온 덕에 그녀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입에 재갈을 물려 놨고 눈을 붕대로 가렸다.
그리고 간의 침대에 눕혀 손목 발목을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고정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손승희,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절한 여자였다. 그때부터 나는 승희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나만의 방법으로 지금까지 그 길을 걸었다.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손에 반응이 오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 느껴보는 촉감에 그녀는 소리를 지르려 애썼지만, 입의 재갈 때문에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었다. 감긴 붕대 밑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그것조차 아름다워 그것을 병에 담아 보관했다.
다섯 달 정도 그녀를 돌봐주었고 승희의 모든 것들을 나는 수집하여 내 방 한 곳에 전시해 두었다. 뿌듯해 하는 마음도 잠시, 점점 그녀의 변한 몸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말라있었던 복부가 팽창해지더니 부풀어갔다. 말로 듣고 눈으로 보기만 했던 생명, 내가 죽였던 남자의 아이가 그녀의 뱃속에 있었다. 또다시 분노로 가득했고 낙태 하는 방법을 찾았지만, 불법으로 시술 하거나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미 약을 먹는 시점은 지났고 병원으로 데려가기엔 내가 위험했다.
아이만은 죽이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애원에 이번 한 번은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임신 상태라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했고 음식을 먹지 못해 팔다리는 거미처럼 말라갔다.
겨우 먹는 것이 보리차였고 그 외의 것이 들어가면 다시 밖으로 토해냈다. 힘겨워하던 그녀가 체리가 먹고 싶다며 나에게 말을 했다. 남편 역할이 맘에 들어, 오랜만에 큰 마트로 향했다.
이것이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골목길을 나서는 찰라, 누군가의 차에 치였고 정신을 잃고 깨어난 곳은 어딘지 모를 방이었다.
그곳은 기괴하게도 나갈 수 있는 문 자체가 없었고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뿐이었다. 시간에 맞춰 아침, 점심, 저녁이 작은 틈에서 들어왔고 이 안에는 변기, 샤워기, 욕조, 세면대, 책상, 책 등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이 갖춰져 있다.
나는 그렇게 이곳에 갇혀 사방의 CCTV로 누군가 훔쳐보는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이곳에서 겨우 살아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