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눈을 뜨는 것도 무섭고 지겨웠다. 내 손은 쇠사슬에 묶인 채 어느 방에 매달려 있었고 그 앞에는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네요. 아가씨?”
“할머니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할머니라뇨, 유모라고 부르셔야지요.”
“유모?”
“우리 현우 정말 좋아했는데, 왜 그러셨어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현우의 엄마이자, 에덴동산의 유모였다. 나를 어릴 때부터 17살 이전까지 오로지 엄마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요. 제 아들 현우는 이미 죽어 사라졌거든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숨이 막혀왔고 이런 삶을 살아오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아가씨, 이거 하나만 말해줘요. 우리 현우 어디에요? 그것만이라도 알려줘요”
“네?......”
나는 그 동굴 앞에서 그의 복부를 찌르고 난 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이후에 대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6년간 이곳에 박혀 살면서 한 박사님 뒤처리만 했지 내 아들, 남편 시신 찾으려 생각을 못했어요. 설마 내 남편도 아가씨가 죽인 거 아니죠?”
생각해 보니 내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역시 좋은 말로 하면 대답이 나오질 않는 군요.”
유모는 옆에 있던 사냥총을 나에게 겨누며 다시 말을 반복했고 끝내 말을 하지 않은 나에게 총을 쐈다. 날카롭고 뜨거운 총알은 내 옆구리에 박혔고 그곳을 박살 냈다. 하얀 의복에서는 또다시 피가 새어져 나왔고 탁한 공기가 구멍 난 상처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나, 아가씨”
유모는 들고 있던 총을 떨어트림과 동시에 바닥에 같이 힘이 풀린 채 앉아버렸다. 그리고 그 뒤의 문으로 들어오는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한 유다 박사였다.
“유모 이게 무슨 소리야?”
“박사님....제가”
한 박사는 나를 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쇠사슬에 묶인 채 정신을 잃었다.
발작을 일으키며 일어난 곳은 유미의 방이었다. 너덜거리는 나의 배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고 의자에는 5살 정도로 보이는 어떠한 꼬마가 앉아있었다. 여자아이는 나의 얼굴에 뺨을 대었고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이 방에서 나갔다.
에덴동산의 계단에 내려왔고 거실에는 내가 만났던 그들이 보였다. 음식을 나눠먹으며 행복해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있었다. 아이는 내 손을 다시 잡아당겼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계단을 지나 해변으로 내려왔고 그 중심에는 하얀 문 하나가 있었다. 그 앞에서 꼬마는 나에게 무언가 주었고 그것은 해마가 든 병이었다. 그때야 그 꼬마가 유미이자, 나의 어릴 적 모습인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작은 아이가 문을 가리켰고 뒤를 도는 순간 유미는 사라졌다. 또 다시 아무도 없는 이곳에 혼자 남겨졌고 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무서웠지만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거울로 된 방이었다. 그곳에는 나를 제외한 16명의 사람이 있었고 나의 어릴 적 모습인 유미가 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장면이 사방에서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거울에서는 현우의 복부를 찌르는 내가 보였다.
결국에 찾은 나의 진실은 내가 살인범이라는 것이었다. 선과 악을 알면서도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방이 하얗게 변했고 검은색의 문 하나가 보였다. 그것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해변이 다시 나왔으며 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었다.
내 두 손에는 해마가 들어있는 2개의 병이 쥐어져 있었고 나는 이 세계를 다스릴 왕이 되었다. 두 줄로 서 있는 그들 사이로 걸어갔고 정명해 연구원이 나에게 눈웃음을 건넸다.
앞쪽에는 의자 하나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앉게 되었고 그때야 내가 기억 못 한 17년의 미스터가 풀렸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 것처럼 일생이 재생되었으며 그 끝은 참혹하고 비참했다. 눈을 다시 떴을 땐 연구원이 나에게 무언가 주입했고 나는 의자에서 밑으로 떨어져 어둠의 끝으로 떨어졌다.
‘삐비빅, 삐비빅’
기계음 소리와 독한 약품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차렸다. 이곳은 내가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질렀던 지하실이다. 박사는 기계들을 이리저리 보며 무언가 몰두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손에 연결된 링거에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입했다.
“몸은 어때”
“보면 몰라?”
“이곳에 다시 올 줄 몰랐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나를 이곳저곳 흩으며 말하는 박사는 또 다시 약물을 주입했다.
“도대체 뭘 넣는 거야”
“내가 개발한 신약이랄까?, 요즘 사람이 부족했거든.”
“아직도 그렇게 사는구나”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며 사는 이유 알려줘?”
“네 희열 때문에 아니야?”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30%정도 맞는 것 같아, 하지만 나머지 70%는 네 친아버지 최태만 때문이지”
“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을 유괴했고 나의 아내까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죽였어. 난 그 이후에 그 새끼를 찾기 위해 프로파일링까지 하며 노력했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지”
“나는 어디서 데려온 거야?”
“최 태만이 너희 엄마까지 죽였는데 그 시신 속에 네가 있었지. 나는 네 시체를 찾았고 어떻게 든 살려보려고 애를 썼어. 넌 내 덕에 지금까지 살아온 줄 알고 있어.”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한 살인은 뭐야?”
“뭐긴, 최태만처럼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되는 인간들을 데려와 아무도 모르게 죽이는 거지”
“왜 그걸 나에게 시켰어?”
“넌 타고난 사이코패스 지능과 감정 자체가 없었어, 하지만 6년 전에 생겨난 지금의 자아 덕에 넌 감정이 생겨난 거고”
“아버지 복수를 나에게 하는 거구나”
“잘 알고 있네, 네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최태만을 내 앞에 데려오는 것이고 전처럼 무자비하게 죽이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뭔데?”
“네가 떠나고 나서 너에게라도 복수를 못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지금 실행하려고”
나의 끝은 죽음이었을까, 결국은 나도 두 번째 아버지에 의해 죽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나도 이 긴 삶이 지쳐온다.
“수긍하는 건가, 마지막으로 궁금한 거 있어?”
“유모 아들하고 남편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아, 내가 그 이야기를 안 해줬네, 유모 남편이 범죄자들을 데려오는 앞 잡 이었고 6년 전 네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그 이후로 이 섬에 들어오지 않았지.”
“그러면 현우는 어디에 있어”
“네가 가고 난 이후 현우도 그 절벽에서 밀어버렸어. 그 녀석은 너무 착해 빠져서 이 세상과 싸우기에는 접합하지 않았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있는 것이 뇌의 기억공간에 타인의 기억을 집어넣는 거야, 네가 첫 성공 사례고.”
“그냥 나를 죽이지 그랬어,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건데”
“넌 쉽게 죽으면 안 됐어, 내 안의 분노가 너를 보면 네 아비가 떠올라서 괴롭게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지금 너를 죽일 거야. 여기 안에 든 것은 청산가리를 녹인 물인데, 한번 내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보렴”
그가 링거에 투입하려는 순간, 총소리가 났고 연이어 3번 더 났다. 박사는 몸이 그대로 굳은 것처럼 뻣뻣하게 서 있었고 하얀 가운 위에 빨갛게 핀 핏자국이 심장, 명치, 복부의 순서대로 나기 시작했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뒤에서 몸을 벌벌 떨며 울고 있는 유모가 보였다.
“아가씨, 저는 지금까지 누굴 위해서 일을 한 것일까요”
“유모 일단 진정하고 총 내려놔요”
“저는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요.”
불안해 보이는 눈빛은 멸망으로 향했다. 총을 자신의 얼굴로 향하더니 굉음이 터져 나왔고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머리가 박살 난 채 몸을 덜덜 떨며 죽어갔고 옆에 있던 하얀 거즈를 유모의 얼굴에 덮어주었다.
죽음으로 가득한 지하실은 과거 내가 무자비하게 죽였던 살인 현장이자 지옥이었다. 잃어버린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며 비밀 공간의 사다리를 찾아내,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박사의 하얀 가운들로 가득한 옷장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나왔다. 이곳에는 우리들의 사진과 많은 자료로 방에 가득했다.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어떤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고 그것 안에는 수필로 적어진 무언가가 뭉텅이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