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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17인_나를 찾아서
작가 : 범인은바로나
작품등록일 : 2021.12.27

거친 파도를 타고 육지로 오는 순간, 17살 이전의 기억은 사라졌고 대한민국에 없는 사람으로 나오게 된다. 하나씩 사건이 터질수록 환각,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과연 현실일까 나의 깊은 내면에 있는 누군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까.....

 
16인
작성일 : 22-01-07 22:42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1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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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꿀잠에서 깨어났다.

 

 “여기 마지막 역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다행히 내가 타고 온 1호선의 마지막 역이 내가 가려는 장호로 4가 역이었다. 역 승무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4번 출구를 향해 갔다.

 

 계단 밑에 있는 204번의 사물함에 비밀번호 ‘0336’을 입력했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열렸다. 그 안에는 커다란 봉투 하나가 밀봉되어 가방 안에 넣어져 있었다. 그 가방은 작년 생일선물로 내가 혜원이에게 준 가방이었다.

 

 일단 그것을 집어 들어서 지면 위, 밖으로 올라갔다. 근처에 있는 무인모텔로 들어가 방을 잡았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방 안을 뒤졌다. 비자금이 들어있는 통장과 장부, 그리고 카메라 칩 5개가 있었고 내 이름이 써진 편지 봉투도 하나 있었다. 그 편지는 놀랍게도 혜원이 나에게 쓴 편지였다.

 

 「지민이 에게

 안녕? 이렇게 손 편지 써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없어졌을 거야. 너에게 미리 말해야 했는데, 충격을 받아서 말하지 못했어. 나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은 우리 아빠, 박정남이야. 이 세상은 돈으로 움직이고 돈으로 해결되는 곳이라, 범죄를 저질러도 크게 벌을 받지 않는 것 같아. 경찰 중에도 그의 편이 있을 것이고 증거를 보이는 순간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갈 거야. 그래서 네가 여기에 담긴 영상을 세상에 보여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그 개자식한테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해. 그리고 내가 모은 목돈하고 그년이 불법으로 모아둔 돈들도 같이 넣어둘게. 앞으로 너의 삶에 사용하고 나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만남은 비록 짧은 3년여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30년을 같이 산 벗처럼 편하고 좋았던 것 같아. 다음 생에도 친구로 만나, 그때는 인간의 삶을 다 할 때까지 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먼저 저 광활한 파란 하늘 위 우주로 떠날게, 천천히 올라와」

 

 허망한 삶이었다. 자기 죽음 알고 죽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일인가,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에 의한 세상에서의 소멸은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남겨 준 칩을 방구석에 있는 컴퓨터에 연결했고 그것들을 정보의 초공간으로 널리 보내기 시작했다. 1개, 2개, 3개, 4개, 5개, 열어 볼수록 그 안에 들어있는 영상들은 인간들의 잔인무도함을 보여주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보며 웃고 있는 중년이상의 남녀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름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평등과 약한 자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국가는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거짓말 쟁이었다.

 

 그들의 실체를 이곳저곳에 보냈고 허접한 영상 사이트부터 유명 영상 사이트까지 빼지 않고 업로드를 했다.

 

 침울한 시간 속 허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있었으며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아저씨가 준 오래된 담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지도에는 위치와 표식이 들어있었고 밑에 작은 글씨로 경고문이 쓰여 있었다.

 

 『※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집, 그 밑으로 들어갈 것』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도에 있는 큰 섬은 내가 6년 동안 살았던, 나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실제 그곳의 주변에는 또 다른 작은 섬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텅 빈 방의 컴퓨터의 빛만이 이곳을 비추었고 똑딱거리는 벽시계만이 공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공허한 새벽을 보내고 새로운 아침이 찾아왔다. 내가 올린 영상으로 인해 검색어 순위는 정치인, 기업인 등 여러 사람의 이름이 올라갔고 그중에서 혜원의 아버지였던 박정남은 조사 받는 중 도주한 것으로 수배가 떨어졌다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머저리 같은 것들, 저거 하나 관리 못 하나”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갈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나도 이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 두려웠다.

 

 침대 위에 올려진 휴대전화기에서는 형사가 끊임없이 전화했고 무시한 채, 나를 알릴 수 있는 신분증, 전화기, 지갑, 침대 위에 올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으로 무장했고 회색 빌딩 숲 인파에 묻혀 사라졌다.

 

 내가 직접 벌었던 아르바이트 비 전부를 할머니가 필요했던 물건, 좋아했던 것들로 샀고 3시간을 걸쳐 육지의 끝으로 왔다. 그리고 또다시 40분간 배를 타고 나의 고향이자 지도의 표식 근처로 되어있는 섬으로 들어갔다.

 

 비릿하면서 짭짤한 바다 향기를 맡으며 선착장 앞으로 도착했고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 무겁게 물건을 들고 이 섬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울퉁불퉁하고 평평하지 않은 이 길에서 내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위의 세상으로는 갈 수 없고 누군가의 그림자로만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지구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만 갔다. 녹슨 열린 대문 속 평상 위에는 일하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고 나를 보더니 놀란 눈으로 맞이했다.

 

 “네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내일모레 추석이잖아, 허리는 또 왜 그런데?”

 “아무것도 아냐, 그냥 일하다 보니깐”

 “적당히 좀 하제”

 “아따 뭣을 이렇게 많이 사왔다냐”

 

 말을 돌리며, 내가 사 온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할머니였다. 필요했던 물건과 좋아하는 물건에 좋아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지만, 사고 난 후의 지불에 대한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뭔 돈이 있어서, 요렇게나 많이 가져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직접 다 벌어서 할매 선물 사왔으니깐”

 “오매, 아까워 죽겄고만”

 “아까워하지 말고 빨리빨리 쓰셔, 난 좀 먼저 씻을게. 아 그리고 나 바로 씻고 잘 거니깐 냅 두고”

 “아직 시간이 3시고만 벌써 잘라고?, 밥은 어짤라고 그러냐”

 “밥 생각은 없고 낼 아침에 맛난거나 해줘”

 “가시나 왜 저러나 몰라”

 

 모자, 마스크를 써서 다행히 다친 모습들을 할머니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고 문을 단단히 닫아 잠갔다. 얼룩이 묻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한쪽 머리 부분의 흉터에 입술은 불어 터져있고 온몸에는 피멍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씻지 않아서인지 꼭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씻는 곳은 불편했지만, 마음만큼은 너무 편했고 이 순간만큼은 무거웠던 내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대충 물을 적시고 선반에 놓여 있는 예전 잠옷을 입었다. 고2 생일선물로 할머니가 주신 하얀 순면의 잠옷이었다.

 

 그것에는 이집의 향기가 담겨 있었고 뭔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밖의 상황을 이리저리 살폈다. 마당에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평상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옷가지들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옛날 집이라 창호 문이어서 옆 책장에 놓인 숟가락으로 문을 다시 잠갔다. 예전과 똑같이 바뀐 것 없었지만 할머니의 손길이 보였다.

 

 원래 이곳은 할머니의 아들 부부가 썼던 방이라고 했다. 무슨 일로 죽었는지에 대한 것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들을 많이 그리워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도톰한 이불을 깔고 다시 긴 생각에 빠졌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집에 들어가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집은, 이곳인데 밑으로 가는 곳이 없다. 바닥에 누워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바람에 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낮이었던 하루는 다시 밤이 되었고 지금은 자정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저녁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할머니 방문을 살며시 열었고 주무시고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왔다.

 

 “도대체 밑으로 가는 길이 어디야”

 

 짜증을 내며 바닥에 앉으려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었고 머리에 무언가 생각이 지나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그 밑을 손으로 두드려봤다. 그 옆에 있는 곳과 달리 내가 항상 잠자고 있는 그곳은 안이 비어있는 것처럼 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밑에 깔린 장판을 들춰보았고 역시나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간단하게 짐을 챙겨 나의 진실이 있는 그곳으로 내려갔다. 사방이 어둠에 내려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손전등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이 섬에 6년을 살았지만, 동굴이 있는지 몰랐다. 길 끝에는 작은 나룻배 한척이 밧줄에 묶여있었고 그 옆에는 잠 열쇠로 잠겨진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고 그것은 밖의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었다. 달이 아주 크게 떴지만, 날씨는 최악이었다. 거센 바람 덕에 파도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나를 먹을 것처럼 덤벼들었다.

 

  이곳 섬에서 서쪽으로 일직선으로 가만히 가면 표식이 있는 곳이 나왔다. 나는 동굴에서 나온 그 바닷길을 따라 쭉 갔다. 점점 거세지는 날씨와 바다 덕에 노를 젓는 것도 힘들었고 그냥 배에 몸을 의지했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나아갔고 희미한 불빛 너머에 작은 섬 하나가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노를 있는 힘껏 저어 바다를 억누른 채 향했다. 점점 물이 얕아졌고 낯익은 해변에 배를 정박시켰다.

 

 내가 넘어온 섬의 날씨와 달리 이곳은 평화로운 새벽의 밤이었다. 항상 꿈에서 보던 곳을 직접 보니 환상적이기도 기괴하기도 했다. 주머니에서 다시 손전등을 꺼냈고 하늘에 있는 하얀 집으로 올라갔다.

 

 으스스한 작은 숲길에는 콘크리트 블록의 계단길이 있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풀벌레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항상 어렵고 신경질 나는 것 같다. 길었던 끝이 보였고 그곳에는 하얀 집이 보였다. 그 앞에는 넓은 초원, 내가 항상 꿈에서 보던 그 집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하얀색의 큰 집은 멀쩡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누군가 사는 것처럼 작은 불빛 하나가 1층의 창문에서 은은하게 비쳤다. 나는 혹시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 현관 대문을 두드리며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렸다. 역시나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점점 앞으로 향해왔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나를 아는 것처럼 반겨주는 사람은 어떤 할머니였다. 하얀 앞치마에 한 손에는 양초를 든 채 문을 열어주었다.

 

 “저를 아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밖에서 볼 때의 이곳은 세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직접 들어 와보니 그냥 큰 옛날 집이었다. 현관에서는 보이는 계단을 지나 복도로 들어갔고 그 옆에는 주방, 거실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 계세요. 따뜻한 차 드릴게요.”

 “괜찮은데.”

 “비를 맞고 오셨네요? 거실 수납장 보면 갈아입을 옷이 있어요. 꺼내서 갈아입어요.”

 

 그 말만 남긴 채 주방으로 가는 할머니였고 나는 거실 구석에 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5단 수납장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모두 하얀색의 옷이 있었고 내 안에서 만난 하얀 방의 남자가 입고 있던 옷과 일치해 보였다. 바닷물에 찌든 것을 벗고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수납 장위에는 여러 사진과 장식품이 놓여있었는데, 그중 여러 명이 찍힌 단체 사진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내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거의 있었고 제일 가운데 있는 안경 쓴 사람은 첫 번째로 만났던 박사였다.

 

 그 옆에는 작은 소녀가 있었는데 계단 밑에서 봤던 그 사진과 일치 한 것 같았다. 그 사진을 바지 주머니에 몰래 넣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소파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거실로 다시 들어왔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 한 잔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옷을 난로 앞에 말려 둘게요. 나가실 때 다시 입으세요.”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 그 할머니는 총총걸음을 걸으며 벽난로 앞으로 갔다.

 

 “17살 이전의 저를 아시나요?”

 

 잠깐 멈칫하는 할머니는 소름 돋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그 세월을 저하고 같이 살았는데요.”

 “알려주세요. 제가 살았던 삶에 대해”

 

 그녀는 반대편 소파에 앉았고 나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멀리 진실을 알기 위해 왔으니, 말씀해드려야죠. 먼저 차 한 모금 마시고 시작할까요?”

 “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코코아를 마셨고 빨리 할머니가 내 삶의 진실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였다. 차를 마신 순간, 눈앞에서 말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울렸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거실에서 있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제는 알 수 없었다. 이곳이 현실인지, 내 안의 또 다른 공간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오감이 다 느껴졌다. 또다시 내가 눈을 뜬 이곳은 다락방에 꾸며진 소녀의 방이었다. 천창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보였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이 공간과 달리 책상에는 수많은 살인 도구들이 종류별로 놓여있었고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두 동강 난 소의 다리 앞으로 어떠한 남자가 앉아있는 그림이었고 이름은‘고기와 남자의 형상’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누구인지 예상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위에서 바라보며 소리 지르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유모 잘했어!”

 

 기뻐 외치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중고생의 철딱서니 없는 여자아이처럼 보였지만 아직 추측만으로 판단하기엔 일렀다.

 

 “너도 내 안의 사람이니?”

 “아니? 난 네 안의 사람이 아니라, 머리 꼭대기에 있는 여왕이야”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장하는 소녀였다. 아저씨가 말한 그 1인자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중고생의 여자 아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분명 이곳에 해마가 숨겨져 있을 것이고 나를 또 시험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 그림은 네가 그린 거야?”

 “딴소리 하기는, 심심할 때마다 그린 거지”

 

 그녀는 밑의 서랍에서 빨간 병에 담긴 용액을 보여주었다. 뚜껑을 열자 비릿한 냄새가 났다.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자 소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이거 어떤 걸로 만들었는지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고 멀리 떨어졌다.

 

 “이번에 네 친구 죽인, 박 형사 있지?”

 “응”

 “그거 쇠고랑에 매달아 놓고 한 병 짰어, 나 잘했지”

 

 칭찬해 달라는 그녀의 표정은 자신이 한 짓이 대견스럽다는 듯이 말을 했고 나의 대답에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니, 너는 사람 죽이면 좋아?”

 “어이가 없네, 내가 복수해줬는데 별로야? 더 잔인하게 죽여 줬어야 했나.....”

 

 침대에 돌아앉아 곰곰이 고민하는 소녀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옆으로 갔고 다시 질문을 되물었다.

 

 “네 이름은 뭐니?”

 “한 유미, 유미라고 불러줘”

 “유미야, 너는 왜 사람을 죽이는 거야?”

 “이건 내 본능이자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저주의 병이지”

 “유전?”

 “내 친아빠가 유명 미제사건으로 남은 살인마야, 이름은 최태만”

 “미제사건이라니?”

 “정말 모르는 거야?”

 

 유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고 책장을 뒤지며 노트 하나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스크랩된 신문이 있었는데,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에 관한 신문 기사였고 20여 건이 넘었다. 살인마는 잔인하게 범행을 저지른 후 꽃잎으로 시신을 덮고 깍지 낀 손만을 보이게 했다’라는 문구를 읽었을 때 지하철에서 만난 잔인무도한 사람이 기억났다. 내 표정을 살피던 소녀는 기뻐하며 말을 했다.

 

 “기억났지!”

 “응, 근데 어쩌지? 내 안에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떠나보냈거든.”

 “뭐?! 언제 만난 거야? 내가 허락 안 했는데?”

 

 소녀는 발에 망치라도 달린 듯 쿵쾅거리며 벽 선반 위에 올려진 오래된 전화기 앞으로 갔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쌍욕이 섞인 말들을 하며 니들 죽이러 간다며 협박하며 나무 바닥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냅다 던졌다.

 

 “아휴 씨발것들”

 

 나에게 다시 쿵쾅거리며 왔고 침대에 내리꽂아 위로 올라가 목을 조였다.

 

 “내가 6년이나 현우 그 미친놈 때문에 여기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갇혀 지냈어. 그걸 알고 나한테 이렇게 하는 거야?”

 “이제 그만해”

 

 유미의 눈빛은 소녀의 눈빛이 아닌 살인자의 눈빛이었고 책상 위에 올려진 나이프 하나를 들고 오더니 내 배에 힘껏 찔렀다.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이고 희열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그 전과 같이 이곳에서도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픔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참았다. 역으로 나는 미친 듯이 웃었고 이것에 대한 유미의 반응은 여러 번의 칼질이었다.

 

 “이제야 좀 분이 풀린다, 언니도 생각보다 진짜 미친년이구나?”

 

 흰옷은 빨갛게 물이 들었고 나의 살갗은 너덜거려 배에서 내장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만든 세상의 망상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며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호, 배짱이 대단한걸?”

 

 한 발짝 씩 발걸음을 떼는 나를 보며 의자에 앉아 조롱하는 그녀였다. 온몸에 피로 물든 채 의자에 앉아있는 유미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고 유미를 안아 주었다.

 

 “뭐 하는 거야, 피 다 묻잖아”

 “내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하자”

 

 내가 가진 힘을 껴안는 것에 썼고 그녀는 이 상황에 대해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따뜻하게 대해주면, 내가 살인을 멈출 것 같아?”

 “이제 멈추고 같이 해변으로 나가자”

 

 내 얼굴을 한 손으로 잡더니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유미였다.

 

 “내가 진짜 황당해서 말이야, 언니는 꼭 살인 안 한 것처럼 말한다?”

 “지금까지는 내 의지로 한 것들이 아니야, 내 안의 사람들이 한 거지”

 “아니, 현재 일 말고 과거에 말이야.”

 “과거?”

 “17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고 했지? 내가 그거 하나 알려줄게. 여기 지하에 비밀통로가 하나 있거든, 그길로 네가 좋아하는 현우랑 도망가다가 만들어진 자아가 지금의 언니야.”

 “그런데?”

 “이곳에 있는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들었는데 자아가 스스로 생겨난 건 17년 만에 처음이었어. 그 덕에 이 세계는 혼란이 왔었지. 아무튼 새롭게 나오면서 이전의 기억이 삭제되어버린 거야”

 “현우, 실제로 살아있니?.”

 “진짜 골 때리네, 언니가 곧 나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 동굴 절벽 끝에서 칼로 찌른 거 기억 안 나니?”

 

 이제야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전에 봤던 환상은 망상이 아니라 내가 저질렀던 죽음이었다. 처음 보는 곳과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범죄였다.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살인, 그 짓을 저지른 후 나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 죽음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6년간 이 세계를 숨겨왔다는 것에 대해 고맙고 미안했다. 핏기로 가득한 얼굴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유미는 이런 감정을 영화 보는 것처럼 신기해했다. 그러더니 새끼손가락으로 흐르는 물방울을 만지며 질문을 했다.

 

 “언니, 눈에서 나오는 이 방울은 뭐야?”

 

 눈물조차 모르는 이 소녀는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 온 것일까, 사이코패스의 딸일지라도 그 딸은 사이코패스가 아닐 수도 있는데, 이곳에 갇혀 살인자로 살아온 소녀는 감정 자체가 없었다. 그저 살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좋은 것이고 칭찬 받아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쌍했다.

 

 “그건 눈물이라는 것이야, 슬플 때 여기서 나와”

 

 나는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유미의 눈을 만졌고 흐르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도 흐르고 싶은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해?”

 

 순진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다시 꽉 껴안았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지만 이대로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뒤로 보이는 책상에서 작은 나이프를 들어 유미의 등을 여러 차례 찔렀다. 그녀의 입에서는 빨간 피가 나왔고 이것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만졌다.

 

 “이게 아프다는 건가?”

 “아픈 것이 느껴져? 네가 지금까지 살인한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이야.”

 “아버지가 말해줬는데, 내가 죽였던 그들은 세상에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라고 했고 잔인하게 죽을 때마다 칭찬을 해줘서 기분이 좋았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기분이었어”

 “아버지?”

 “나의 또 다른 아버지, 한 유다 박사님이야.”“안경 쓴 그 사람인가, 이곳에 존재하니?”

 “아니, 나도 아버지 본 지 꽤 오래되었어. 아마 그 집에 그대로 계실 거야”

 “하얀 집?”

 “언니는 하얀 집이라고 하는구나, 이곳의 이름은 에덴동산이라고 해”

 

 무자비하게 살인이 일어나는 곳이 천지창조가 일어난 그곳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껴안았던 그녀의 허리를 느슨하게 풀었고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꾼 자세로 굳어갔다.

 

 “유미야, 내가 죽으면 여기에 갇힌 사람들 모두 사라질 수 있을까?”

 “언니는 절대 못 죽어, 박사님이 죽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로 우리를 만들었거든.”

 “그 박사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아?”

 “나도 그거는 잘 몰라, 그냥 우리의 임무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야.”

 

 한 유다 박사는 무엇을 위해, 나를 만들었고 이 사람들을 내 안에 가둬놓았을까 의문점이 들었다.

 

 “너무 힘들다, 이제”

 

 고통에 의해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감겼다 떴다 반복했다. 앞에 앉아있는 유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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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상자 속의 16인_한유미 2022 / 1 / 14 261 0 802   
34 상자 속의 15인_최태만 2022 / 1 / 14 249 0 942   
33 상자 속의 14인_강동남 2022 / 1 / 14 269 0 1276   
32 상자 속의 13인_정명해 2022 / 1 / 14 255 0 1335   
31 상자 속의 12인_강현우 2022 / 1 / 14 272 0 1097   
30 상자 속의 11인_김소현 2022 / 1 / 14 288 0 812   
29 상자 속의 10인_전형원 2022 / 1 / 14 260 0 1724   
28 상자 속의 9인_양준태 2022 / 1 / 14 258 0 706   
27 상자 속의 8인_유기준 2022 / 1 / 14 251 0 1475   
26 상자 속의 7인_서채원 2022 / 1 / 14 268 0 1816   
25 상자 속의 6인_유기현 2022 / 1 / 14 263 0 1750   
24 상자 속의 5인_조미연 2022 / 1 / 14 272 0 1871   
23 상자 속의 4인_김영대 2022 / 1 / 14 252 0 1488   
22 상자 속의 3인_김나연 2022 / 1 / 14 238 0 1661   
21 상자 속의 2인_강기영 2022 / 1 / 14 261 0 1177   
20 상자 속의 1인_한유다 2022 / 1 / 7 274 0 3382   
19 17인 2022 / 1 / 7 250 0 4043   
18 16인 2022 / 1 / 7 258 0 10008   
17 15인 2022 / 1 / 7 281 0 2308   
16 14인 2022 / 1 / 3 257 0 4237   
15 13인 2022 / 1 / 3 246 0 2778   
14 12인 2022 / 1 / 3 265 0 3366   
13 11인 2022 / 1 / 3 260 0 3061   
12 10인 2022 / 1 / 2 252 0 4606   
11 9인 2022 / 1 / 2 258 0 1920   
10 8인 2022 / 1 / 2 262 0 3022   
9 7인 2022 / 1 / 2 263 0 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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