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시하고 가는 수많은 택시 중 검은 세단의 자동차가 내 앞에 멈췄고 나는 그것을 탔다.
“어디로 갈까요?”
“**동 **아파트로 가주세요”
밤에도 빛이 나 반짝거리는 빌딩을 지나 그 빛에 가려져 있는 우리 집으로 갔다. 얼마 만에 와보는 집인가, 반갑기도 하면서 싫기도 했다. 우편함에는 밀려있는 공과금, 관리비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들어가 있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집으로 향했다.
주인을 잃은 집은 외롭고 처량하게 나를 맞이했고 아수라장이 된 나의 집으로 들어갔다. 물건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고 경찰 관계자뿐만이 아니라 관련 없는 외부의 사람들도 왔는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거실의 선반 위에 있던 할머니와 찍은 액자는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유리 위에 놓여있었다. 사진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선반 밑의 장판이 들렸던 흔적이 보였다. 장판 밑을 들었고 흰색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비밀번호 ‘0336, 장호로 4가 역 4번 출구 204번’이라고 쓰여 있었고 나는 다시 그곳에서 나와 지하철을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지막 열차를 타고 숨겨져 있는 그곳으로 갔다.
사람이 없어 섬뜩했지만, 몸에 피로감이 심하게 느껴져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느낌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피로가 너무 쌓이다 보면 자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 내가 그렇다. 편히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불편함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그래서일까 창문 너머로 보이던 검은 배경이 파란빛이 나는 물속으로 변했고 문 틈새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그 광경에 놀라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저 멀리서 오고 있는 건 빨간 형체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슬에 누군가를 묶어 이곳으로 오는 것 같았다. 나와 가까워질수록 그것에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지민이냐?”
“누구시죠”
“네 원래 아비지, 이것 봐 내가 오랜만에 사냥을 했는데 어떠냐?”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남자는 잔인하게 난도질 되어 있는 시체를 보며 자랑스러워했다.
“신나 보이시네요”
“싸가지없게 말하기는, 나도 속죄하며 이곳에서 23년간 갇혀 살고 있잖아”
나는 시체를 바라보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 사람 누구에요?”
“누구긴, 우리 죽이려는 나쁜 놈이지”
“그러니깐 누구요”
“쌀쌀맞게 굴기는, 너랑 네 친구 죽도록 팬 여자 그년이여”
그 순간 차갑게 식어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의 주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의 주범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죽었어요?”
“당연히 죽었지, 이것들은 어차피 국가의 벌을 받아도 금방 나올 애들이야.”
“그럼 내가 죽인 거에요?”
“내가 죽였지만, 네 몸이 죽였지”
“누구의 계획이었어요?”
“이건 계획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야!”
“혹시, 혜원이 내가 죽인 거 아니죠?”
“우리는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 죽여, 네 친구는 아마 형사 놈이 죽였을 거야”
“베이지색 점퍼 입었던 사람 맞아요?”
“맞아, 그 사람이었어.”
역시 회장의 뒤를 봐주고 있는 그의 편이 맞았다. 더 많은 증거를 찾아내기 전에 우리를 죽인 것이 확실해졌다.
“지금까지 내 주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모두 내가 죽였겠죠?”
“네가 모르게 들었던 사건들 모두, 우리가 저질렀지”
“왜, 내가 이런 일들을 앞으로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그는 한참을 말을 잊지 못했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꾹 참는 게 보였다.
“일단, 내가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마지막 칸에 있던 나를 데리고 중간만큼 갔다. 그곳에는 기괴한 것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잎에 쌓여 위에 깍지 낀 손만 나와 있는 꽃 무덤이 수십 채 있었다.
“이것들은 다 뭐에요?”
“내가 죽기 전에 무자비하게 죽인 사람들이지”
“네?”
“난 수십 명을 죽였던 연쇄살인범이야, 감옥에도 여러 번 가봤지만, 나의 검은 욕망은 고칠 수 없었지.”
그는 무덤 중간으로 가더니 그것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앞에 있는 무덤이, 네 엄마 무덤이다”
“엄마?......”
“왜 그렇게까지 산 거에요?”
“나도 후회하며 살고 있어”
“아니요, 이미 세상에서 소멸한 사람은 다시 볼 수 없거든요. 그래서 당신이 후회를 해봤자 그들의 가족이나 지인한테는 소용이 없어요.”
“미안하구나, 나도 이제 지칠 만큼 지쳤어.”
“당신은 지칠 자격도 없어요. 이곳에서 저 누워있는 시체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속죄하고 또 속죄하세요.”
나는 중간 칸에 연결되어있는 문을 닫았고 잠금장치를 내렸다.
“제발, 여기서 꺼내줘”
유리창 너머로 울부짖은 그의 얼굴이 보였고 그의 뒤로 꽃잎에서 일어나는 시체들이 보였다. 잔인하게 죽였던 그들에게 파묻혀 똑같이 고문당하는 그를 외면 한 채, 연결되어있는 열차의 볼트를 풀어 보이지 않은 깊은 심연 속으로 보냈다. 나는 다시 내가 있었던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