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혜원과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며 울고 웃었다. 지금 이 상태로 계속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독여 주며 우리는 밤새 작업에 열중했다.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 5시쯤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나는 또 꿈속에서 누군가 만나게 되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 냄새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은 단단한 철문으로 닫혀있는 3개의 방이 보였고 중심 공간에는 도축 할 때 봤을 만한 쇠 고리와 분쇄기계가 놓여있었다. 천장의 작은 문을 열고 중년의 남성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이제야 왔네?”
그는 빨간 방수 앞치마 주머니에서 중 식도를 꺼내 씻으며 나에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뒤처리 깨끗하게 마무리하라고”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는 그쪽 처음 보는데”
“거참, 어이가 없네.”
바지 뒷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굳게 닫혀있는 첫 번째의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누군가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고 그에게 끌려 나왔다.
중년의 남자는 쇠고랑을 그 누군가의 목덜미에 걸었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제발, 살려주세요.”“이래도 기억 안 나?, 매일 같이했었는데”
서랍에서 눈에 익은 식칼을 꺼내 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것은 내가 이사 왔을 때 봤던 그 식칼이었고 나에게 이상한 것을 먹이려는 여자도 가지고 있던 칼이었다. 떨어져 있는 칼에는 필기체의 알 수 없는 글자가 각인 되어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뜻인데요?”
“속죄, 죄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로 죽어 마땅하다는 거지”
그 칼을 잡고 있는 손의 감촉은 낯설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쇠고랑에 걸려있는 남자의 중요 부위를 향해 난도질했다. 내 안의 감춰졌던 분노로 악을 지르며 애원하는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고 하체가 너덜거릴 때까지 멈추지 못했다.
“이게 너의 실체고, 네가 평생 가져야 하는 직업이지”
그제야 잔혹했던 칼질이 끝이 났고 온몸의 그의 피로 가득했다. 평소라면 이곳에서 도망치거나 거부했을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파도에 밀려오기 이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너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저는 살인범이 맞나요?”
“넌 살인범이 맞아, 세상에 없어져야 하는 인간들을 죽이는 살인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인범인데, 없어져야 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슨 말인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금 이곳은 나의 기억인가요,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꿈인가요?”
“꿈이라니, 이곳은 너의 공간이자 우리와 공존하는 세상이야.”
“이곳에서 나가도 당신들과 한 몸일까요”
“당연하지, 우리는 어디서나 너를 지켜보고 있고 저쪽 세상에서도 함께한단다.”
그는 잔인하게 매달려있는 그를 쇠고랑에서 빼내어 큰 도끼로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몸을 분쇄기계에 넣더니 나오는 살육을 개밥그릇에 옮겨 넣어 두 번째 방과 세 번째 방의 구멍에 넣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너도 이제 곧 진실을 알게 될 테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호스로 빨갛게 물든 바닥을 아무렇지 않게 청소하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준태 삼촌이라고 부르면 되고 나가는 문은 저쪽이야.”
희미한 빛이 보이는 작은 통로 하나가 보였고 나는 그쪽으로 향했다.
“아참, 내가 미리 경고하는데 네 친구 몸 조심해야 한다.”
“친구...혜원이요?”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암튼 그 녀석 옆에 꼭 붙어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온몸에 피가 묻은 채 밝은 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고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끝에는 맑은 하늘과 광활한 바다가 보이는 절벽 끝이었다.
저번 환각에서 봤었던 것 같은 공간이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 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