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은 아침 7시 44분, 지난 새벽 5시에 잠든 우리에게는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다. 미동도 없는 그녀의 핸드폰을 잠이 덜 깨어난 채로 봤고, 그것의 주인공은 형사였다.
“여보세요”
“박혜원씨 맞으시죠?”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소리의 그였다.
“혜원이가 지금 자고 있어서 제가 대신 받았어요. 무슨 일 있을까요?”
“아, 친구분이시구나, 혜원씨 남자친구분 오늘 아침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진술하러 잠깐 경찰서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머릿속은 다시 어두워졌다.
“지민 씨 듣고 계시죠? 이따 서에서 봅시다.”
옆에서 몸을 돌려 나의 얼굴을 쳐다보는 혜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또 뭔 일이길래, 그런 표정을 지어?”
“김태형 자기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데"
“뭐?”
순식간에 그녀의 표정은 굳었고, 슬퍼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진술하러 경찰서로 가야 한다고 형사님한테 전화 왔어.”
“그 새끼한테 스토킹 당했을 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으니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린 서둘러 호텔에서 빠져나와 서부 경찰서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택시 안의 혜원의 모습은 그날따라 더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나는 차갑게 식어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마음을 진정 시켜주었다. 그렇게 파랗고 맑은 날씨를 따라 회색빛 진실이 있는 경찰서로 들어갔다.
“여깁니다.”
우리 둘을 보더니 손을 흔드는 형사였다.
“일단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영화에서 보던 거울 유리가 있는 진술 실로 들어갔다. 깜깜한 방에는 오로지 하나의 조명만이 책상을 비추었고 암울한 느낌을 주었다.
“편안하게 앉으시고”
형사와 다른 분이 맞은편에 앉았고 노트북에 우리가 하는 말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감식 결과로 지민 씨의 집에서 무더기로 김태형 씨 지문이 나왔습니다.”
“그날 새벽에 우리 집에 갔다는 건가요?”
“자세한 일은 알려드리지 못하지만 블랙박스 영상에는 정확하게 얼굴이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왜 그 사람 지문이....”
“집안을 다 찾아봤는데 카메라는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 뒤진 흔적이 있었어요.”
형사는 창백한 얼굴로 굳어있는 혜원을 보며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언제부터 스토킹 당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스토킹 당한 건 지민이와 같이 집에 있을 때 알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집착이 좀 심했지만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줄 몰랐어요.”
“아침에 김태형 씨 자택에 다녀왔는데 집안 사방 면에 혜원씨 사진이 붙어있더라고요.”
노트북에 띄워진 사진 한 장은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의 사진부터 일거수일투족 사생활이 담긴 것들이 가득했다.
“이게 다 제 사진이라고요?”
“한 장도 빠짐없이 혜원씨 사진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방 하나는 그쪽 물건을 박물관처럼 전시 해놨더라고요.”
커서를 옆으로 넘기자 경악스러운 장면이 나왔다. 그녀의 양말, 수건, 잠옷, 화장품, 머리카락 등 그녀의 것들로 전시되어있었다.
“김태형 씨하고 얼마 동안 만났었나요?”
“대략 2년 정도 만난 것 같아요”
혜원은 울며 형사에게 말을 했다. 그것을 본 형사는 옆에 있던 휴지를 주었고 그녀는 한참 동안 서럽게 흐느꼈다. 어두운 진술 실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 크게 들릴 뿐 모두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섭기도 하고 감정이 북받쳐서...”
“아닙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무섭고 힘들죠.”
“이번 사건으로 봤을 때, 김태형씨는 박혜원씨를 1년 이상 스토킹과 자택을 무단으로 10차례 이상했던 것으로 나왔습니다.”
“형사님, 그러면 태형이 자살한 거에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다른 분과 눈빛을 주고받고 다시 말을 했다.
“자살은 아니고 타살로 판정되었습니다.”
“네?”
우리는 서로 놀라 크게 소리쳤다.
“이건 두 분만 알고 계세요. 사체가 6호 아줌마 시체의 죽음과 똑같은 패턴이라서 타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김태형 씨와 견원지간인 사람이 있었을까요?”
혜원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그쪽에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네? 회사에 다닌다고요?”
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분 아직 대학생이라고 인적 사항에 뜨던데? 25살 아니에요?”
“예?”
“인산 기독 대학교 3학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27살로 알고 있었고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도 말해 주길래 믿고 있었는데 제대로 뒤통수 맞았군요.”
“사건이 완전히 꼬여버렸네요. 일단 두 분도 당분간은 호텔에서 지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범인이 주변 사람일 수도 있으니 밖에 나갈 때는 혼자서 나가지 마시고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기 혹시 우리 집에서 물건 좀 챙겨 올 수 있나요? 급하게 나와서 중요한 물건들 좀 챙겨오고 싶은데”
“아, 그러면 지금 저하고 같이 가요”
형사의 차를 타고 닭장 같은 아파트에 다시 왔다. 2층 우리 집에는 노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나의 보금자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와 누군가 집을 뒤집은 흔적들로 난장판이었다. 형사는 라텍스 장갑을 주며 지문을 남기지 말라는 당부하며 복도로 나갔다.
“집안 꼴이 진짜 난리도 아니다”
“그러니깐, 빨리 챙길 것만 챙기고 나가야겠다. 너도 챙길 거 있으면 챙겨”
사건이 터져 개인적인 물건을 챙길 시간이 없던 나는 통장, 노트북, 자주 입는 옷가지들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곤 거실 한가운데에 만들어 놓은 모형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공들여 만든 것이라 아쉬움이 있었지만, 상황이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두려 여기저기 찍는데, 이상한 점들을 발견했다.
나는 분명 사람 모형을 두지 않았는데 주택모형 곳곳에 기괴한 모습으로 있었다. 주방 공간에는 목이 잘린 사람 모형이 있었고 2층 공간마다 구석에 있는 사람, 쓰러져 있는 사람, 두 동강 나 있는 사람 등 놓여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냥 그곳에서 나왔다. 어떤 일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는지 알 없었고 찝찝한 기분이 들어 벗어나고 싶었다. 형사님은 우리를 다시 호텔로 데려다주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중간고사 때문에 열심히 다시 하던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