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염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발밑으로 하얀 손이 올라왔다.
“누나….”
내 발목을 붙잡고, 몸을 타고 올라온 수혁은 경멸한 눈빛으로 내 목을 졸랐다.
“혼자 살아서 좋아? 왜 날!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 두고 간 거야. 누나, 나 외롭고. 무서워!”
“으…윽…수혁아…아니야…끄으윽…수…혁.”
“나랑 가자. 같이. 누나~!”
퉁퉁 부은 손으로 내 목을 조르는 수혁의 얼굴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았다.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미안해. 누나가 미안해. 혼자만 살아서, 미안해.’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물방울처럼 덧없이 터져 나갔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내 몸을 보자,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수혁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래. 같이 가자. 살아남은 죄로…아팠어. 너무 아팠어. 너는 믿지 않겠지만. 마음대로 울수가 없었어. 다들 내가 죽기만을 바랐으니까.’
점점 가라앉은 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심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내 귓가에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누나~정신 차려. 나 두고 가지 마. 안 돼! 안 돼! 누나”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따라 손을 뻗었다.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낚아채고, 끌어당기자.
내 몸을 감싸던 칠흑 같은 어둠과 수혁이가 사라졌다.
빛 한줄기가 눈부시게 빛났다.
***
응급실 침대에 임수가 누워있다.
임수의 동공을 열고, 후레쉬를 비친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요?”
“…….”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흐릿하게 보이는 초점을 맞추려 천장을 올려다봤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마른침을 삼키며, 붙은 입을 뗐다.
“…홍…임수.”
“다행이네요. 임수 보호자님, 잠시 이야기를 나눌까요.”
의사의 눈짓에 지국장은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혼자 남겨질 공포심에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지국장은 충혈된 눈으로 내 손을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금방 올게. 걱정하지 마. 누나 두고. 절대, 아무 데도 안 가. 나 믿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지국장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의사 따라 자리를 옮겼다.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에 멀어져가는 지국장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수액을 조절하러 온 간호사가 안심시키듯 너스레를 떨었다.
“부럽네요. 애인가 봐요?”
“네?…동생인데요.”
“아~동생이구나. 순정만화에서 나올법한 남동생 애인이시구나. 환자분 동생분께서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보는 사람이 다~짠했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많이 놀라서, 그랬나 봐요. 다른 분들께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괜찮아요. 응급실에 오시면, 다들 그래요. 오히려 큰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무릎 꿇고, 어찌나 애원하던지. 나도 저런 동생하나 갖고 싶네.”
“네. 누나라서 행복해요.”
간호사가 나가자, 돌아온 지국장이 내 손을 잡았다.
“누나. 살아 줘서, 고마워. 사랑해.”
잠긴 목소리로 애틋하게 고백하는 지국장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났다.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많이 놀랐지?”
“아픈 사람이 뭐가 미안해! 누나 아픈지도 모르고, 전화도 안 받고. 미친X처럼 쏘다닌 내가 미안하지.”
자책하는 지국장의 뺨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통화 안 될 수도 있지. 그래도 달려왔잖아. 그럼 됐지.”
집에 갈 생각에 지국장의 손목시계를 힐끔거리자, 자책하던 댕댕이가 잔소리 모도로 바꿨다.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성 위염과 과로 쓰러졌다고 하니까. 2~3일 병가 내고 입원하자. 누나.”
“야, 내가 중병도 아니고, 병원에서도 위염으로 입원 안 시켜준다. 그냥 집에 가자.”
“그럼, 병가라도 내고 집에서 쉬자. 누나~응. 아니면 휴가를 내던가.”
내 눈에 지국장의 메마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직장인은 마음대로 휴가 내고 병가 낼 수 없어. 하루 더 가면 주말인데. 그때 쉴 면 되지.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배고프지 않아?”
“칫! 누나가 사경을 헤매는데, 목구멍에 밥이 넘어갈 정도로 감심장 아닙니다. 난 괜찮으니까. 누나의 몸이나 신경 써.”
“밥 먹고 와. 그래야 내가 마음 편히 누워있지. 나 괜찮다고. 빨리.”
내 손을 깍지 낀 채로. 지국장은 자신의 심장에 가져대고 부탁했다.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제발 누나 곁에 있게 해줘. 심장 멈출뻔한 나를 위해서. 응~누나.”
애간장이 녹은 지국장의 눈매에 말을 삼켰다.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지국장의 시선에 나도 말없이 그의 볼과 메마른 입술을 매만졌다.
“댕댕아~.”
“안 돼.”
“뭐가 안 돼?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뻔하지. 밥 먹고 오라는 핑계로, 날 떼어놓을 생각을 하시겠지.”
새초롬한 눈으로 원천봉쇄하는 지국장의 농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시도 떨어지기 싫을 만큼, 그렇게 좋냐?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아닌데. 안 좋아하는데.”
“그래요. 그랬어요. 우리 댕댕이.”
지국장은 손 키스를 날리며 개구쟁이처럼 말했다.
“완전 사랑하는데. 온 마음을 다 받쳐! 사랑합니다. 누나~쪽.”
보통 때는 애 취급한다고 머리를 만지는 걸 질색하던 지국장인데. 오늘은 얌전히 내 손길에 자신의 머리를 맡겼다. 마치 칭찬해달라고 조르는 댕댕이처럼.
‘응급실에 실려 오는 것도, 나쁘지 않네.’
지국장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 담긴 내 모습을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있다.”
“응?”
“그렇게 있어.”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지국장의 날렵한 턱선을 내 손등으로 훑으며,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수염 깍아야겠다. 잘생긴 댕댕이 얼굴이 많이 상했다. 속상하게.”
“하룻밤 사이에 못 생길 얼굴이 아닌데. 누나.”
‘네 눈동자에 내가 사랑스럽게 담겨 있어, 좋다. 욕심부릴 자격 없는데… 내 눈동자에 너를 담으면, 너도 행복할까?’
아프면 어린애가 될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로 지국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피곤해 보인다. 내 옆에 누워.”
한숨을 내쉰 지국장은 나를 빤히 보며 읊조렸다.
“다섯 어려서, 누나의 남자가 될 수 없지만. 짐승이 될 수 있는데. 침대에서! 이래도, 괜찮겠어.”
코흘리개 지국장이 남자 행세하는 꼴이 왜 그렇게 보기 싫은지, 내 승부욕을 자극했다.
“인간은 동물이다. 고로 누나도 꼬리가 아홉께 달린 여우가 될 수 있다. 무섭지. 어우~”
너털웃음을 짓던 지국장이 응급실 침대 가림막을 정성스럽게 닫았다.
“그럼, 같은 짐승끼리 한 침에 누워볼까? 기대해. 누나.”
내 침대로 올라탄 지국장은 팔베개로 나를 자신의 가슴팍에 가뒀다.
‘드라마 보면, 편해 보이던데. 댕댕이의 팔베개는 왜 이렇게 딱딱해!’
팔베개한다는 핑계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은 지국장의 왼발이 살며시 내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침대가 좁아서. 누나.”
내 가랑이 사이에 지국장의 허벅지 위살이 닿을 듯 말 듯 천천히 움직였다.
‘어! 이 녀석 봐라. 나도 목덜미를 물 수 있다. 여우의 맛 좀 봐라.’
이에 질세라, 지국장의 목울대에 말없이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목울대의 일렁이는 내 입술 감촉에 술렁이는 지국장의 눈빛에 작열감이 타올랐다.
“하 윽~누나.”
심한 갈증에 타들어 가는 지국장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몰아쉬었다.
“누나…하~씁. 아픈 사람을 두고, 불끈할 수도 없고. 졌어. 졌다고! 항복.”
지국장의 항복선언에 누나의 위엄을 의기양양 뽐내며 놀려댔다.
“응? 갑자기 왜 항복선언?”
“이~씨!~누나. 괴롭히지 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누나를 덮치고 싶어지니까.”
눈을 질끈 감은 지국장이 팔베개를 빼려고 하자, 내가 그의 팔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어디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며! 어머님과 아버님을 걸고 맹세 해잖아.”
싱긋 웃으며, 나는 다시 팔베개했다.
억울한 표정으로 아랫도리를 힐끔거린 지국장은 낮은 탄식이 내뱉었다.
“으~윽. 나도 한계치가 있다고. ~씁 누나.”
달뜬 호흡을 내뱉은 지국장을 응시하던 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딴소리했다.
“진정한 한계치를 넘어야 상남자지. 파이팅.”
“이런 식으로 앙큼하게 도발하시겠다. 그럼, 나만 당할 수 없지.”
지국장은 내 목선을 따라 달뜬 숨을 내뱉으며, 내 귀를 핥았다.
“야! 미쳤어. 떨어져. 여기 응급실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내 하체의 작열감의 통증을 가라앉혀준 누나를 명의라고 부르겠지. ”
능청스러운 19금 농담에 놀란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도대체, 뭐 하고 다니길래. 순진무구한 내 댕댕이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난 준비됐어요. 그대만 허락해주면, 컴온.”
너스레를 떨면서 점점 다가오는 지국장의 얼굴을 내 손바닥으로 밀어내자. 가소롭다는 듯 지국장이 혀로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핥았다.
“야! 더럽게 뭐 하는 거야. 어딜 핥아. 이 댕댕아.”
“누나의 댕댕이니까. 핥았을 뿐인데. 왜 그래. 누나.”
“미안! 내가 정말 잘 못 했으니까. 너도 하지 마. 우리 지킬 건 지키자.”
말로 주고 되로 받은 나는 지국장에게 싹싹 빌었다.
“싫은데. 야한 누나가 너~무 좋은데. 내 마음을 알지? 누나. 어흥~”
응급실 가림막 커튼이 제치고 들어온 간호사가 비뚜름한 입술로 주의를 줬다.
“아직 동생이지만 여보를 꿈꾸시는 보호자님! 부디 의료진 마음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긴 모텔이 아닙니다.”
간호사의 주의보다 여보라는 단어에 꽂힌 지국장은 헤벨쭉 웃어 보였다.
“풋…감사…죄송합니다. 간호사님. 음~하. 주의하겠습니다. 여보래. 여보.”
민망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개미로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간호사님.”
간호사는 피식 웃으며 이불 속에 빼꼼하게 내민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수거해갔다.
“아셨으면,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주세요.”
지국장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간호사님.”
“보호자님이 수납하고 오실 때까지 환자분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더 불편하시면, 내일 외래로 예약 잡을까요?.”
“아니요. 간호사님. 괜찮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수납하고 올 때니까. 누나 여기서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알았지. 약속해. ”
“알았다고. 빨리 갔다 와.”
지국장이 사라지자, 귀신처럼 나타난 희주가 응급실 가림막 커튼을 쳤다.
“네가 왜 여기에?”
“병문안 온 사람한테 앉아보라는 말도 안 하네. 매정하게.”
“꺼져. 할 말 없으니까.”
“내 앞에서 쓰러졌길래. 이제 좀 명줄이 꿇어지나 했더니. 좀비처럼 살아나네! 언니.”
숨통이 조여오는 가슴 통증에 내 목울대에 핏발이 섰다.
“… 네 앞에서 절대 안 죽을 테니까. 그만 꺼져.”
고양이가 쥐를 몰 듯, 희주가 장난스럽게 떠들었다.
“내가 왜 왔을까? 궁금하지.”
“.......”
끓어오른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말들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뿐이었다.
천불 나게 눈물만 흘러나왔다.
“아까 보고도, 내가 반가운가 봐. 아직까지도 울 정도니! 이렇게 언니가 반겨주니,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지. 내가.”
내 눈언저리를 닦아주려는 징그러운 희주의 손목을 내쳤다.
“ 아~이래서. 언니가 항상 나한테 지는 거야. 너~무 감정적이라서. 고맙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