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했던 댕댕이는 온데간데없고.
보름달에 출몰한 늑대인간의 욕정에 잡혀 먹힐 것 같은 공포심에 눈물이 맺혔다.
“…비켜! 비키라고.”
지국장의 망막에 비친 겁먹은 내 모습에 무너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어! 모기다. 감히 누나의 목덜미를 넘봐! 이런 나쁜 모기 같으니라고.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널 가만두지 않겠어!”
요란스럽고 익살스러운 지국장의 몸짓에 어리둥절한 나는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내 목선을 따라 들숨을 들이키며 자신의 얼굴을 비벼댔다.
‘이렇게… 이러면 안 되는데…….’
들숨과 날숨 사이로 일렁이는 지국장의 체향에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마취에 취하듯 머릿속이 뿌해졌다.
정염에 물든 지국장의 입술이 내 목동맥을 탐지하듯, 지그시 누르고 치근거렸다.
내 목선을 따라 느른하게 움직이던 지국장의 입술이 주춤하더니. 헝클어진 내 블라우스 사이로 보이는 쇄골에 각인하듯, 이를 세워 잘근잘근 거리며 농염한 탄식을 내뱉었다.
“으~습…아.”
“앗…으읏…….”
멍해진 뇌를 자극하듯 흘러나오는 내 신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내 가슴골로 점점 내려가는 지국장의 입술 열기에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을수록, 좀먹던 폭언의 기억들이 엄습해왔다.
{시체랑 해도 너보다 낫겠다! 역겹게 불감증 주제에, 더럽게 고고한 척하고 지랄이야. 야씨~퉤}
첫 잠자리에서 모멸감을 주던 호색광인 그 남자의 눈빛과 색정에 깃든 지국장의 눈빛이 겹쳐 보였다.
‘…싫어! 싫다고…….’
공포심에 일그러진 내 눈언저리에 흐르는 내 눈물을 보고, 흠칫 놀란 지국장이 절망한 표정으로 정신차렸다.
“미안해. 내가 미쳤나 봐. 누나한테…내가…미안해. 정말 미안해.”
상남자 행세한답시고, 지국장이 못된 스킨십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괘씸했고. 겁먹고 눈물이나 짜는 나 자신도 한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삼켜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다.
“흐흐흑…….”
“내가 정말 나쁜 놈이니까! 누나 입술 깨물지 말고. 차라리 나 때리고. 욕해! 누나. 정말 미안해. 울지 마. 내가 다~잘못했어.”
좀처럼 멈추지 않는 내 눈물에 안절부절못하던 지국장이 조심스럽게 손길을 내밀어보지만.
순간 흠짓 놀란 나는 그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됐어. 혼자 일어날 수 있어. 애도 아니고.”
애써 상처받은 표정을 숨기듯, 지국장은 뒷짐 쥐고 너스레를 떨었다.
“절대 아기라고 부르지 않을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줘. 누나를 ~너라고 부를게. 누나는 내 여자니까. 누나가 용서해줄 때까지, 손들고 서 있을까?”
“한 번 누나며, 영원한 누나다. 어디서! 기어 올라타고~씨. 졸라맨처럼, 졸라매 버릴까 보다!”
“영원한 누나도 여보가 될 수 있지! 누나의 곁만 지킬 수 있다면, 졸라맨이든 쫄바지맨이든 상관없는데.”
얼토당토않은 지국장의 로맨스 전개에 울컥한 나는 지국장의 급소에 니킥을 살포시 날려줬다.
“악! 으~아.~씁~음.”
지국장은 가시 돋친 절규와 함께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그렇게, 누가 건들래~씨. 햇병아리!’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지국장을 내려보고 있잖니. 조금, 아주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세게 차지 않았는데? 많이 아픈가?… 설마 터지거나 비뇨기과를…….’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지국장의 눈동자에 눈물이 왈칵 맺혀있었다.
“…씁~읍~어후. 괜찮아. 괜찮을 거야. 누나~씁~읍. 조금만, 잠시만…이렇게. 이 자세로 있을게. 미안한데, 다른데 좀 쳐다봐줄래. 누나.”
멋쩍은 미소로 애써 괜찮은 척하는 지국장을 보며, 배알도 없이 웃음이 피식 나왔다.
“진짜, 괜찮아? 나중에, 여친과의 관계적인 관계에서 문제가 되거나. 2세 생성이 곤란해져서, 손해배상 청구한다고 뒷북치지 말고. 내일 비뇨기과에 예약해줄게.”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지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어…어딜 보는 거야~! 아무 문제 없어. 누나 안 봐서 그렇지, 아주 튼튼하고, 건실해. 내 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필사적으로 가린 지국장의 그곳을 실눈으로 흘겼다.
“육안으로 알 수 없으니까. 아쉬운 대로, 내일 피부과로 가자. 쪽팔림은 순간이고, 여자친구와 관계적인 행복은 창창하니까! 내일, 이 누나가 손 붙잡고 가줄게.”
“됐어. 피부과가 비뇨기과잖아. 누굴 바보로 알고. 이~씨! 누나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싫어. 죽어도. 싫어도.”
“그래.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있을까? 네가! 좋으실 대로.”
입술을 실룩거리던 댕댕이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벨트를 푸는 시늉을 했다.
“보여줄게. 누나라면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누나를 사랑하니까. 기대 이상일 거야.”
“야! 이게 미쳤나 봐. 버클에서 손 떼! 뭘 보여줄 게 있다고! 이 난리야. 오지 마. 거기서 말해.”
기겁하는 내가 재미있는지, 지국장은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얼마나 튼실하지. 이참에 누나한테 검증을 받아보면 되겠네! 이 한 몸을 받쳐, 므흣한 홍콩으로 데려다줄게. 누나.”
느물거리는 지국장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서둘러 도어락의 숫자판을 눌렀다.
현관문 센서 등에 짧아진 그림자가 내 등 뒤로, 지국장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떨어져. 좋은 말 할 때.”
내 타박에도 개의치 않고 지국장은 도어록 해제되는 소리에 장난스럽게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짜증스럽게 몸을 홱 돌린 나는 버릇없는 댕댕이에게 혼내는 눈빛으로 지국장을 째려봤다.
“그놈에 싫은데 좀, 하지 마! 지겨워 죽겠다. 비켜. 또 그 튼실한 곳, 차이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마.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 요즘 초딩도 그렇게 말장난하지 안 해.”
애틋하게 날 쳐다보던 지국장은 긴 한숨을 내뱉듯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렇게라도 해야, 누나 옆에 있을 수 있으니까.… 누나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남자로 안 보이지.”
“…….”
묵묵부답인 나를 보던 지국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 나 좋아해 달라고 조르지 않을게.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줘. 우리 부모처럼, 내 눈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누나.”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한 지국장의 눈빛에 흔들린 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응.”
속 빈 강정 같은 내 대답에 안심한 듯, 지국장은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다.
“미안해. 누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누나의 목덜미에 동의 없이 키스한,”
뒷말이 나올까 봐, 서둘러 내 두 손바닥으로 지국장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만. 거기까지. 다시는 거론하지 마. 됐어. 끝.”
내 쇄골에 각인시킨 지국장의 입술 열기가 재발현 될 것 같아 거북스럽고 화끈거렸다.
입을 막은 내 손을 살포시 내린 지국장은 나긋하게 말했다.
“알았어. 그래도 목…”
내가 눈을 흘기자, 헛기침한 지국장이 마술처럼 짠하고 스카프를 내밀었다.
“너무 휑하니까. 비싼 거 아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매고 다녀. 누나.”
“어… 고마워.”
떨떠름한 내 반응을 예상했는지. 지국장은 순진무구한 미소로, 스카프를 내 목에 매주며 오빠인 양 잔소리했다.
“아무나 문 열어주지 말고. 이쁘다고, 밥 사준다고 하면, 따라가지 말고. 싫어요! 저 애인 있어요! 라고 말하고.”
어이없는 당부에 코웃음을 쳤다.
“이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설사 이쁘다고 한들. 내가 따라갈 나이야? 피곤하다, 그만 들어가자.”
“이러니, 내가 불안하지. 누나의 문제점이 뭐지 알아?”
“하지 마.”
“쯧쯧쯧. 누나가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는 게, 문제야! 누나의 하얀 목덜미는…아~미안.”
“야! 진짜~그만하라고 했다! 목자도 꺼내지 마. 금지어야!”
이제 겨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찰나, 지국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누나 스카프는 꼭 하고 다녀. 며칠, 집에 못 들오니까. 문단속 잘하고. 누가 쫓아와도, 싫어요. 안 돼요. 알지”
‘너나, 내 목덜미를 그만 쳐다봐. 이 변태 댕댕아.’
***
회사 앞으로 나가자, 차량에서 대기하던 운전기사가 내렸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뒷좌석의 문을 열어줬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멋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조용히 뒷좌석에 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네. 아저씨.”
집에서 쫓겨 난지 15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만날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할 말도 없고, 남보다 못한 원수지간인데. 굳이 날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가름할 수 없는 아버지의 체스판에 쫄 노릇 할 생각에 벌써 체기가 돌고, 시야까지 흐리게 보였다.
‘아버지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뭐가 됐든.’
속이 시끄러워 미간을 찌푸린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운전기사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디 가는지, 왜 안 물어보세요? 아가씨.”
“어쩔 수가 없잖아요. 어차피 아저씨나 저나, 아버지의 장기판에 말인데요.”
“네?”
“죄송하지만, 아저씨 눈 좀 감고 있을게요.”
“피곤하시죠. 제가 도착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
“아가씨. 크라운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잠시만요.”
크라운 호텔의 정문 앞에서 차가 멈춰 섰다.
‘왜, 하필이면 크라운 호텔이야! 수혁이가 마지막 생일 파티한 곳이라니… 작정하고 부르셨네.’
씁쓸함에 마른침을 삼킨 나는 안전띠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조심히 운전하시고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둘러 인사하고 뒤돌아서자, 당황한 운전기사가 도어맨에게 귓속말했다.
내선을 돌린 프론트 직원이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홍임수 고객님, 저희 호텔을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제가 안내해도 될까요? 고객님.”
“네. 감사합니다.”
호텔 직원을 부담스러운 환대를 받으며 굳어진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뒤늦게 달려온 총지배인이 숨을 고르며, 진중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안녕하십니까? 크라운 호텔 총지배인 유지환입니다. VVIP 홀에서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자, 미소를 머금은 총지배인이 제지했다.
“이쪽은 일반 객실용입니다. VVIP 전용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VVIP 전용 엘리베이터가 로열층에 멈추자, 복도 옆으로 서 있던 직원들이 도미노처럼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VVIP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임수 고객님.”
‘아~집에 가고 싶다.’
VVIP 전용 홀로 들어가자.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에 홀로 앉은 아버지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 잔을 내려놓은 아버지의 턱짓에 직원들이 90도로 허리 숙이고, 뒷걸음질로 나갔다.
‘칫! 조선시대 왕도 아니고. 진짜~싫다!’
낯 뜨거운 광경에 망부석처럼 굳어진 내 얼굴을 보자, 아버지가 혀를 찼다.
“쯧쯧쯧.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인데… 앉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