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금정벚꽃길을 걷던 임시은은 누군가의 연락을 받았다.
"말해보세요."
"임시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겠지?"
"김혜나 형사......"
"맞아. 인사발령이 났는데, 이서윤 경위는 이젠 경감으로 승진해서 방배경찰서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난 경위가 됬거든."
"그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 사건을 계기로?"
"맞았어! 곧 너희들에게도 변화가 있을 거야."
"어떤 변화일까요?"
"곧 알게 되겠지. 그럼 난 볼일이 있어서 또 연락하자."
금정벚꽃길에서 벗어나 정발산역 호수공원으로 간 임시은은 거기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4월 1일.
오늘은 변화가 있는 날이었다.
1년 전에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크리스틴 펜을 죽을 각오로 보호하고, 그녀를 해치려고 든 사람들을 체포한 이서윤 경감이 방배경찰서로 전출했고, 김혜나 형사는 경위로 승진했어.
물론, 경호업체에도 변화가 있어.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크리스틴 펜을 경호한 업체에 대해서 언론 측이 언급하는 바람에 경호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어.
알아. 또 다시 크리스틴 펜이라는 의뢰인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
하지만 경호원을 우습게 여기면 안 돼. 의뢰인을 경호하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정말로 경호원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거기에 맞는 훈련을 거쳐가야겠지.
"임시은 사장님?"
"미안하지만 경호업체 사장은 따로 있어요."
"하지만 누구의 말로는 경호업체 사장이 되어야 마땅한 사람이 여기 있다고 들었어요."
"누가?"
"경찰이요."
"경찰이 그 말을 했다고?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너가 1년 전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위험에 빠지자 발벗고 나섰다는 사실이라면 경찰이 알고 있지." 벤자민 핀크가 말했다.
"아니, 핀크 씨가 여긴 어떻게?!"
"크리스틴이 그러는데,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아넷을 비롯한 위험인물들 손에 죽었을 것이다고 말이죠."
"그래서?"
"경호업체 사장을 여기서 보니까 기분이 좋네요." 이지윤이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지윤!"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어요."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고? 대체 누가?"
"이번에는 을지로입구 역 근처 호텔에서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어젠다 발표일이 있을 거라고 하네요."
"분명 그 날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위협을 가하려고 들 거야. 다들 사무실에서 자세한 계획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물론이죠."
"핀크 씨는 어서 집으로 가요."
"알겠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해주렴."
3일 후,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어젠다 발표일 경호 업무를 마친 임시은 일행은 호텔 내 카페에서 앉아있는 크리스틴 펜을 만났다.
"크리스틴?"
"시은아! 여기서 다시 보는구나!"
"그런데 뭔가 달라보이는데?"
"그게...... 임신했거든."
"뭐?"
"와! 정말 잘됬네요."
"고마워."
"크리스틴. 그럼 가볼까요?"
"물론이지."
그 때, 의문의 인물이 임시은 일행 근처에 모습을 보였다.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나?"
"아넷? 넌 1년 전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흐흐흐...... 그건 진짜 아넷이 아니야. 내 동생인 애나였으니까."
"뭐라고?!"
"젠장!"
"애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알고는 있기나 할까...... 하긴. 아넷이랑 아넷의 남친이 죽었다고 나왔으니 다들 아넷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겠지."
"그렇게 해서 애나의 이름으로 몰래 빠져나왔어.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식장 테러를 기획했지." 임시은이 말했다.
"뭐, 이렇게 만났으니 이제 남은 건 너하고 크리스틴의 죽음이 있을 뿐이겠지?"
"아니, 틀렸어!"
"뭐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넷이 총으로 김혜나 형사를 겨누자, 김혜나 형사가 아넷의 어깨를 쐈다.
"억! 형사가 어느 틈에......?!"
"지난 번에 말했잖아. 크리스틴 펜이나, 임시은이 위험해지면 내가 나선다는 말을."
"젠장......!"
"한탄할 이유는 없어. 어차피 너는 크리스틴 펜하고, 다른 경호원들을 죽이려고 한 죄목으로 체포될 테니까."
"이런 망할!! 왜 내게 의문의 일기장을 안 주냐고!!"
그렇게 해서 잊은 줄 알았던 아넷은 경찰의 손에 체포되었다.
아넷이 체포된지 2주일 후, 임시은 일행은 다시 한 번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향했다.
"임시은 경호원? 다시 보니까 반갑네요."
"제시카......"
"걱정 마요. 진짜 아넷은 두 번 다시 세상구경 못할 거에요. 가석방이 없는 무기징역을 받았으니까."
"정말 잘됬네요."
"그 말을 할 사람은 저에요. 당신들 덕분에 그런 위험에서 벗어났으니까."
"제시카, 뭐하니?"
"오오, 크리스틴. 임시은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지."
"그래?"
"얼른 가자~!"
임시은 일행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간 그 시각, 김혜나 경위는 임시은이 쓴 쪽지를 읽고 있었다.
"이 쪽지를 읽을 때면 전 지금 제 동료랑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는 결혼식 경호 일을 하고 있을 거에요.
크리스틴 펜을 처음 만났을 당시엔 굉장히 독특했죠.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그 모습 덕에 말이죠.
뭐, 당시엔 경호원과 의뢰인 사이라 사적인 감정으로 임할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 그 감정을 배제한 모습으로 일한 거에요.
걱정할 것이 뭐 있겠어요? 어차피 닥쳐올 일인데.
다음에도 또 봐요. -임시은이 씀."
"경호원이 쓴 쪽지군요."
"맞아.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의뢰인을 경호한 바가 있는 사람이지. 행사장 테러 사건은 언젠가 다시 일어날 거야. 분명해."
"그렇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군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정신 바짝차리고 근무해야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저 세상에 있는 이혜준이 듣고 있었을까?
꽃향기가 그윽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