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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30. 제망부가(祭亡父歌) (1)
작성일 : 22-02-26 02:32     조회 : 360     추천 : 3     분량 : 6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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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야! 얘들아! 어서 일어나라.”

 

 연호는 시끄러운 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누워있었다. 바닥은 따뜻했지만, 실내의 공기는 서늘했고 몹시 건조했다. 머릿속은 텅 비어 얼음처럼 차가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는 깨질 듯 더 아팠다.

 

  “다들 여기서 이러면 못써. 곧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할 텐데, 상주가 이렇게 누워서 자고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조문객?, 상주?’

 

 연호는 고개를 들어 눈을 떴다. 주변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사촌 형들과 동생들 몇몇이 옆에 누워있었다. 거의 입지 않는 검은 양복을 입고, 팔에는 삼베로 된 천에 검은색 두 줄이 그어져 있는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촌들도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주방 같은 곳이 보였고, 많은 음식들과 식기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영안실이 틀림없었다.

 

  “야, 야, 얼른 일어나라. 조문객들 오셨다!”

 

 연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사촌들도 함께 일어나 옷매무새를 챙길 새도 없이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떠밀리듯 몰려갔다. 연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안 어른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정이 흰 소복을 입고 다른 친지들과 함께 바삐 움직이며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꿈인가?’

 

 도대체 잠을 얼마나 잤기에, 몇 년이 그냥 지나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휘청거리던 연호는 사촌들의 부축을 받아 향을 피워놓은 영정 앞에 겨우 설 수 있었다.

 

  ‘아버지?’

 

 연호는 세상에서 가장 침울한 공간의 한 가운데에 놓인 사진 속에서 너무나도 따뜻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고, 다리는 또 후들거렸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무언가를 들고 누군가 다가왔다.

 

  “처남. 이거...”

 

 진오였다. 상주인 연호에게 굴건을 씌워주려고 오는 중이었다. 연호는 사촌들이 그것을 씌워줄 때까지 진오를 잡고 서있었다. 진오가 돌아서려고 하자, 연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잡고 말했다.

 

  “고마워요. 매형.”

 

  “뭐가 고마워. 어서 기운 내야지.”

 

 진오는 연호의 등을 두드렸다. 연호는 진오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고마웠다. 조문객들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문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수없이 절을 하고, 위로의 말을 들었다. 슬프게 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출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 조문객들이 뜸해질 즈음이었다. 연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영안실 한쪽에 마련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나이 든 한 여인이 누워있었고, 옆에는 또래의 여인이 옆에 앉아 누워있는 여인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또 다른 쪽에는 한 여자아이가 세상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연호는 아이를 먼저 알아보았다. 윤지였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연호 왔니? 아이고, 어쩌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네 엄마 좀 잘 달래드려라. 아무리 진정시키려고 해도 통 마음을 못 잡고 이렇게 자꾸만 쓰러지신다.”

 

 연호를 잡고 넋두리를 하고 있는 여인은 다름 아닌 그의 고모였다.

 

  “네?”

 

 엄마라니, 어떻게 엄마가 여기에 있지? 연호는 누워있는 여인이 숙희라는 것을 알고는 얼른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가 틀림없었다. 매형에 이어 엄마까지 살아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기뻤지만, 잠시뿐이었다. 현실에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했다. 고모와 함께 숙희의 팔을 주무르고 있을 때, 누군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모. 엄마 좀 어떠세요?”

 

  “응, 여전히 똑같다. 근데 마침 잘 왔어, 연민아. 고모가 아는 사람들이 곧 온다고 해서 나가봐야 하니까, 네가 좀 엄마 옆에 있을래?”

 

  “네, 걱정 마시고 어서 나가보세요. 제가 있을게요.”

 

  ‘연민이 목소리다!’

 

 연호는 그녀를 돌아보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연민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오빠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오빠, 왜 그래? 오빠까지 정신이 나가면 어떡해? 지금 밖에서 어른들이 찾아. 상주가 자리 지키지 않고 또 어디 갔냐고 그러셔 들. 얼른 나가봐, 얼른!”

 

 연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 동생까지 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픈데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연호의 눈에는 아까부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우는 것이 어색했지만, 도무지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슬프면서도 기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이고, 엄마도 문제지만, 네 오빠부터 챙겨야겠다.”

 

 고모는 방을 나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빠까지 울면 어떡해, 이 바보야! 지금은 오빠가 더 힘을 내야지. 자꾸 약한 모습 보이면 난 어떡하니?”

 

 연민도 주저앉아 함께 울었다. 연호는 눈물을 삼키며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연민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고맙다, 연민아!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거지?”

 

 연민은 뜬금없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그게 왜 궁금해. 정신 차려라, 오빠야!”

 

 연호는 힘주어 일어났다. 갑자기 없던 힘이 절로 솟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맞은 영안실은 내내 어두워지지 않았다. 피곤하고 무기력한 연호는 빛을 피해 어둠 속에서 모든 걸 잊고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입관식이 있으니 참관할 사람을 정해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이 있었다. 가족들은 거기서 또 한 번 무너졌다. 모두들 오열했고, 숙희와 연민은 바닥에 쓰러져 통곡하며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엄마,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연민아,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니!”

 

 연정과 연호는 친지들과 함께 숙희와 연민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입관식을 마쳤다. 모두들 탈진한 채 말이 없었다. 무심한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연호는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장례식장의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며 마음 둘 곳을 찾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었다.

 

  ‘이런 데서 무슨 마음 둘 곳을 찾냐!’

 

 휴게실을 지날 때였다. 밤새 불을 밝히며 고인을 추모하는 하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환호성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와! 골인이다!”

 

  ‘무슨 소리야?’

 

 연호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휴게실이나 의자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TV나 휴대폰을 보면서 웅성거렸고, 박수를 쳐가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가까이서 보고는 곧 의문이 풀렸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을 당한 가족들조차 영정 앞에서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또 슬피 울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기의 결과에 대해 궁금해했고, 조문객들은 말할 것도 없이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시청하면서 밤을 새웠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지, 뭐.’

 

 연호는 열흘 전쯤부터 그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면서, 사람들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음을 인정하긴 했지만, 씁쓸함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올 것 같지 않던 새벽이 밤을 뚫고 서서히 밝아 왔다.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들도,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 주던 조문객들도 모두 버티기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얼굴을 드러낸 아침은 흐드러지게 푸르고 맑았다. 풀냄새 가득한 6월의 이토록 찬란한 아침에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연호의 마음을 짓눌렀다. 너무나도 아쉽고 잔인한 초여름이었다. 화장터를 들러 장지로 출발할 운구차와 몇 대의 버스들이 아침 일찍부터 영안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사촌들 몇몇이 관을 들고 영안실을 나와 버스로 관을 옮겼다. 입관을 보지 못한 다른 친지들은 버스 옆에서 흐느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화장터로 가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곤해 지쳐 잠이 들었다. 선두로 달리는 차 안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가던 연호 또한 밀려오는 졸음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리자, 이 미친 녀석아! 네가 지금 졸고 있을 때냐!’

 

 잠을 쫓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뭐든지 해야만 했다. 지난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서까지 스포츠를 보며 열광한다고 씁쓸해 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들도 그깟 졸음조차 이기지 못하고 빌빌거린다는 사실이 한심하기만 했다.

  그토록 맑고 청아했던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구름은 점점 짙게 깔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 온몸이 끈적거렸고, 매우 후덥지근했다. 화장터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호는 아버지를 저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 절차를 밟고 차례를 기다리려야 한다는 현실이 어이가 없었고 기가 막혔다.

 

  “누나.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버지는 평소에도 화장하는 거 싫어하셨잖아?”

 

  “그건 알지만, 집안 어른들이 다 같이 모여서 결정하신 건데 어쩌겠어.”

 

 어차피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아버지를 저 뜨거운 곳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난 연호는 계속 투덜거렸다.

  숙희는 화로에 들어가는 상현의 마지막 길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또 혼절했다. 가족과 친지들 모두 입관식에 이어 또 오열했다. 연정도 연민도 모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통곡하며 슬퍼했다. 연호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 관은 서서히 화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철문이 굳게 닫히며 점화가 시작되었다. 지난 며칠 동안 상주로서 많은 조문객들을 상대하며 정신이 없었던 연호는 가족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화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감정이 복받쳐 올라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상현의 삶이 통째로 사라져 재가 되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딱 한 줌의 재가 되어 단지로 쓸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혹함과 허무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화장터를 출발해 장지에 도착한 오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제대로 의식을 올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준비해 간 큰 천막을 쳤고, 그 안에서 유골이 담긴 단지를 묘지에 묻고는 제를 올리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그냥 해야 할 일을 의무적으로 끝낸 것처럼 모두들 서둘렀고, 각자의 삶을 향해 흩어졌다. 친지들과 조문객들을 보낸 후, 숙희와 가족들은 진오의 의견에 따라 근처 음식점에 모여 간단한 요기를 하려고 했지만, 숙희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곧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다들 수고했어. 처남이 제일 고생했지 뭐.”

 

 진오가 운전을 하며 말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운전석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거나 어디를 움직일 때 타던 7인승 차에는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진오나 연호가 운전을 하고, 그 옆자리는 상현, 그리고 두 번째 열은 숙희와 연정, 연민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열은 운전을 하지 않는 진오나 연호가 윤지와 함께 앉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오늘따라 상현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숙희는 차를 탔을 때부터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연정과 연민이가 양쪽에서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들 말이 없었다. 윤지는 맨 뒷자리에서 연호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잠들어 있었고, 연호는 창밖을 응시하며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마음을 내맡기고 있었다. 비를 좋아했지만, 차가운 땅속에 두고 온 아버지가 걸려 지금은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차츰 내려앉는 먹구름, 그 뒤에 숨은 태양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고작 구름 하나 뚫지 못하고 그 뒤에 숨어 있다니. 하필 이런 날, 이렇게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태양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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