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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24. 시간의 경계 (2)
작성일 : 22-02-18 16:41     조회 : 370     추천 : 3     분량 : 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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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ve you ever seen the rain?」

 

 졸음을 참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았다. 휴대폰을 차의 오디오와 연결해 그곳에 저장해 놓은 음악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다.

 

  “뭐 이렇게 옛날 노래가 나오지?”

 

 가만히 듣다보니 현실과 딱 맞는 제목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가슴이 답답했다.

 

  “마지막으로 비를 본 게 언제더라?”

 

 눈은 겨우내 지겹도록 봐왔지만, 작년에도 비는 거의 내렸던 기억이 없었다. 연호는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는 중이었다. 간밤에 병실에서 밤을 새운 탓인지 무척 피곤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잠시 동안 망설였다. 평소에도 모르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 그였지만, 별 정보가 뜨지 않아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누구세요?”

 

 연호는 쓸데없는 전화라고 생각하며 끊으려 했다.

 

  “아, 오빠! 나 선화야.”

 

 연호는 뜻밖의 이름과 목소리에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에이!”

 

  “.....”

 

  ‘내가 전화한 게 이렇게 기분이 나쁜가?’

 

 선화는 기분이 상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아, 미안. 커피를 흘려서 그만. 정말 미안해. 근데 웬일이야?”

 

  “그냥, 오빠가 하도 연락이 없길래. 근데 오빠는 내 번호도 저장하지 않았나봐?”

 

  “아니, 얼마 전에 폰을 바꿨는데, 정신이 없어서 번호를 옮기질 못했어. 미안해.”

 

 이유도 없이 가슴이 뛰었다.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혀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근데 어쩐 일이야?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정말 최악이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한숨짓는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동안 많이 바빴나 봐? 내 번호도 잊어버리고, 오빠 번호는 주지도 않고, 내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 정신이 없었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무 미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좀 더 유연하고 설득력 있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알아. 엄마한테 어느 정도 얘기는 들었어. 많이 힘들지, 오빠?”

 

 연호는 그런 개인적인 문제를 선화와의 사이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언제 시간되면 한 번 만날까?”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없다가 이제야 만나자는 말을 하다니! 지금 제정신이야?

 

  “오빠, 여러 가지로 바쁠 텐데, 괜찮겠어?”

 

  “지금은 일이 좀 있어서 지방에 와 있는데, 며칠 있다가 서울에 올라가면 한 번 보자. 올라가서 연락할게.”

 

 바쁜 척은 무슨. 연호는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알았어. 일단 번호 잘 저장해 놓고, 볼 일 보고 올라와요. 그럼 나중에 연락해.”

 

 

  연호는 누나가 일하는 연구원으로 곧장 가려고 했지만,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일찍 강의를 끝내고 집에 와있는 진오와 윤지가 연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마 후, 연정도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자, 자! 처남도 이렇게 왔는데, 오늘은 다 같이 밖에서 먹자.”

 

 윤지는 연호 옆에 바짝 붙어 어디든 함께 다녔다. 연호는 연민의 어렸을 적 모습을 쏙 빼닮은 윤지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오가 말했다.

 

  “처남! 처남도 얼른 결혼해서 요런 예쁜 딸 나야지. 이제 봐라. 좀 더 나이 먹고 애가 생기면 그때는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주변에서 놀린다니까. 애가 아빠를 창피해 하면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빨리 결혼해야지. 어디 몰래 숨겨둔 여자 친구 없어?”

 

 연호는 여전히 윤지를 보면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 연정이 진오에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며 끼어들었다.

 

  “누가 이런 백수한테 관심이 있겠어? 제 앞가림이나 잘 해야지.”

 

 연정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연호는 가족이든 누구든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연정의 돌직구에 또 그러려니 하면서 담담한 연호였지만, 오히려 당황한 것은 진오였다.

 

  “하여간, 당신은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

 

 진오는 연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인생의 선배가 주는 가르침이니 새겨들으라며 말했다.

 

  “처남. 누나를 보고 있으면 앞으로 어떤 여자를 만나야 할지, 딱 답이 나오지?”

 

  “둘 다 시끄러워!”

 

 오랜만에 유쾌한 분위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못 다한 얘기들이 남아 있었다. 먼저 윤지를 재운 후,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맥주와 음료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 지금부터 서로 숨기는 거 없이 다 터놓고 얘기하는 거야? 알았지?”

 

  “뭘 숨기는데? 당신, 뭐 찔리는 거 있어? 우리는 숨기고 그러는 거 없어. 그치 연호야?”

 

 연호는 누나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진오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너무나도 얄미웠다.

 

  “그, 그게 아니잖아. 당신하고 처남이 주장하는, 아니 이제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그 별 말이야. 그거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자는 거지.”

 

 답답한 것은 진오였다. 자기만 빼고 뭔가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남매가 더없이 얄미웠다. 씩씩대는 진오를 보면서 연정이 입을 열었다. 연호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사실, 얼마 전에 에번스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진짜 너무 놀라서 심장이 막 뛰더라고.”

 

 연정은 그때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심각한 표정으로 진오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요즘 바빠서 열어보지 못했던 포털로 메일이 와 있었던 거야. 엊그제 우연히 들어갔다가 확인하게 됐는데, 날짜

 를 보니까 운석이 떨어지기 바로 전날이더라고.”

 

 진오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야? 뭐라고 왔는데?”

 

  “쉿, 목소리 낮춰. 윤지 깨겠어. 잠깐만 기다려.”

 

 연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갔다. 그곳에는 에번스가 보낸 메일의 첨부파일을 미리 프린트해둔 것이 놓여있었다. 꽤 많은 분량의 보고서를 받아든 두 사람은 무슨 유서라도 읽는 듯 진지하고 꼼꼼하게 살폈다.

 

  “에번스가 이 고래자리의 별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 참! 연호 네가 이 별에 이름을 붙였다고 했지? 뭐라고 했더라.”

 

 연호는 여전히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꼭두.”

 

 처음 듣는 말에 진오는 또 어이가 없다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꼭두? 그건 또 뭐야?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같이 연구했으면서 나는 왜 모르고 있던 거지? 이거, 이거, 두 사람이 나 몰래 너무 많은 비밀들을 공유하고 있는 거 아냐?”

 

 좀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연호가 말했다.

 

  “별거 아니라서 얘기 안 한 거예요.”

 

 연정은 진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맞다, 꼭두라고 했지! 고래자리의 루이텐 726-8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 이름이 부르기 더 편하기는 하다. 어쨌든 에번스가 메일을 보내고 그 다음 날, 당신하고 만나서 이 자료들을 전해주려고 했던 것 같아. 뭔가 확신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학자로서의 관심을 넘어 어떤 흥분이나 두려움, 비장함 같은 것들이 느껴져.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에번스에게 너무 미안해.”

 

 진오도 에번스를 생각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에 가슴이 아팠다. 젊은 시절부터 연정의 소개로 만나 지금까지 친분을 이어온 그는 타고난 학자였고, 인간성도 좋은 친구였다. 학회 일로 해외에 출장을 갈 때면 늘 오랜 지기처럼 만나 함께 어울리던 그였다. 그런 친구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남기고 혼자만 살아서 나온 것 같아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도망치듯 미국을 떠나왔기 때문에 그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못한 것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그를 괴롭혔다. 어떻게든 미국에 갈 일을 만들어 그가 묻힌 곳을 찾아가려고 계획 중이었지만, 쉽게 시간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매장한 곳이 실제 에번스의 시신을 묻은 곳은 아니었다. 끝내 시신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차가운 돌덩이에 이름만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보고서를 다 읽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연정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많은 가설들을 세우고 나름 깊게 연구를 해보려던 에번스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또 두려웠을지 눈에 선했다. 에번스는 앞으로 수 년 안에 그 고래자리의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거라고 예측했다. 연정과 연호는 놀라지 않았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미 충분히 연구하고 예상한 내용들이었다. 에번스도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혹시라도 희망이 섞인 다른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진오는 그동안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실감하면서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빠져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난 학자로서 뭘 하면서 살아온 거지?”

 

 진오는 계속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다들 이걸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내가 만난 학자들, 그 잘난 양반들도 다 알고 있을 거 아니냐고? 허구한 날 하늘만 보고 있는 인간들인데 그걸 모르겠어? 근데 두 사람은 정말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연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옆에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연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라고 왜 아무렇지도 않겠어?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이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떡해? 다들 알잖아. 모든 게 다 예측이고 예상일 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면서 사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일하고, 가족들 보살피고, 윤지 잘 키우고.....”

 

 연정은 윤지 얘기에 목소리를 떨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연정아.”

 

 진오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옳았다. 그냥 손 놓고 앉아 죽을 날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평소처럼 열심히 살면 그뿐이었다.

 

  “처남. 그나저나 이렇게 계속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 어디 다닐만한데 알아보고는 있어? 내가 좀 알아봐줄까?”

 

  “아니, 괜찮아요.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고 싶어요.”

 

 연정은 벌게진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면서 언성을 높였다.

 

  “야! 너 그 말 한지가 벌써 몇 달째야? 네 동생을 봐서라도 너까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잔소리 말고 얼른 여기저기 알아봐.”

 

 좀 전까지 울먹이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바꾸면서 말하는 누나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연호는 문득 지난겨울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라 연정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옆에 진오가 있어서 차마 말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연정은 뭔가 눈치를 챈 듯, 진오에게 말했다.

 

  “당신, 윤지 한 번 보고와. 잘 자고 있는지.”

 

  “아니, 이 중요한 시점에 왜 그런 걸 날 시키는 거야. 잘 자고 있겠지.”

 

  “걔가 요즘 들어 이불을 막 걷어차고 그런단 말이야. 감기 들어. 그러지 말고 얼른 보고와!”

 

  “으이그, 알았어.”

 

 진오가 윤지의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연호는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그냥 해 본 소리인 것 같기는 한데, 저번에 나한테 강사 그만두고 출판사 쪽에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 그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해 보겠다고 그냥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 얘기였어? 그 얘기라면 저번에 아버지한테 들었어.”

 

  “진짜?”

 

  “그래. 더 이상 생각할게 뭐 있어. 요즘 아버지도 많이 힘드실 텐데, 네가 같이 일하면서 힘이 되어드리면 좋지 않겠냐? 또 학원에서 강의할 거는 아니잖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거야. 또 알아? 네가 거기서 숨은 재능을 발휘할지?”

 

 연호는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아버지가 저번에 건강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하셨다고 했잖아. 근데 막상 그렇게 하고 나니까 뭔가 찜찜하고 불안하셨을 거야. 이왕이면 집안의 누군가가 맡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셨을 지도 모르지. 난 너랑 막내가 같이 아버지를 도와서 출판사를 잘 이끌어나갔으면 소원이 없겠어. 연민이는 반드시 다 털고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미리 그쪽에서 일하고 있으면 연민이가 얼마나 의지가 되고 좋겠어, 그치?”

 

 연민이 다시 일어난다니, 상상만 해도 기쁘고 행복했다.

 

  “야.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일단 출판사 이름이 ‘연’ 이잖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맡아서 하겠어, 안 그래?”

 

 연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누나의 말을 언제나 옳았다. 다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자신의 의지였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가족 모두 병원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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