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는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별의 문제도, 역시 설명할 수 없는 동생의 문제도 모두 자신의 착각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 십 광년 떨어진 별의 움직임을 우리가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며, 동생의 일도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역시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라진 별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무시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뿐이고, 동생의 병은 시간을 두고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속을 끓이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거야.’
생각은 매일, 매시간 바뀌었다. 조울증 환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변덕을 떨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한발 떨어져 뒤를 돌아보았다.
‘저 놈의 눈 때문에 정신이 또 오락가락 하나보다.’
꽤 심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눈을 감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병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병원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연호는 이 빌어먹을 공간이 주는 우울함과 압박감에 날이 갈수록 지쳐갔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찬 이곳은 멀쩡한 사람조차도 서서히 병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스스로 이겨내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연호는 TV를 틀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우울한 소식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폭설에 관한 얘기였지만, 속보로 전해진 소식 하나가 특히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에 비행기가 추락해 많은 인명사고를 냈다는 소식이었다. 사고는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원인은 아직 불명이라는 앵커의 멘트가 귓속에 꽂혔다.
「이번 사고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 중인 많은 전문가들이 추락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중인 가운데, 적어도 엔진 결함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인공위성의 위성항법시스템, 즉 GPS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관련 속보들은 전 세계로 빠르게 전해졌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재앙이었다. 선박이나 항공기들이 길을 잃고 제멋대로 뒤엉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GPS의 오작동이라고? 이젠...’
연호는 왠지 사고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심한 가위에 눌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꿈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연호의 생각은 온통 한곳으로 향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일 뿐이라던, 그래서 마음을 편히 먹자고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또다시 의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잊으려고 노력했던 그 늙어빠진 꼭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답은 이미 정해져있는 느낌이었다.
TV를 꺼버린 연호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어김없이 연민이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활짝 피어 있기를 바라며 가져다 놓은 수선화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놈의 꽃은 도무지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새로 가져다 놓고, 물을 주며 정성을 들여도 하루를 못 버티고 시들어 버렸다. 전부 다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무의식 속에서라도 동생이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도망갈 때도 없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 이왕이면 우주 전체가 다 날아가 버리도록 아주 강력하게 폭발해 버려라!’
연호는 수선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의료진들이 들어왔다. 오전 회진이었다. 연호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뒤로 물러났다. 회진에는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참여하고 있었다. 밤새 말도 안 되게 쏟아진 눈 때문에 제대로 출근을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상태 잘 체크하고, 음, 언제 또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담당자들은 특별히 신경을 쓰도록.”
“알겠습니다.”
역시 오늘도 그들로부터는 아무런 얘기도 들을 수 없었고, 동생은 변화가 없었다. 말 그대로 아주 잠깐 머물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그들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제기랄!”
연호는 의료진들이 나간 뒤, 문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침대 옆에 앉아 동생의 손을 잡았다. 이제껏 살면서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또래보다 짓 어려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던 그녀,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자신을 더 따랐던 그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몰래 훌쩍이던 그녀, 부모님 앞에서 늘 작아졌던 그녀, 아이들과 가족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던 그녀, 내 동생, 연민이!
“에이, 제기랄!”
연호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는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뛰고 눈앞이 흐려졌다. 이럴 땐 눈에 집중된 감정들을 입으로 풀어 내야만했다. 동생 앞에서 또 민망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얼굴을 묻고 있었다. 밤을 샌 탓인지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또 졸음이오면 잠을 자야하는 불쌍하고도 초라한 인생이여.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참자.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원불멸의 낙원이 눈앞에 펼쳐질 날,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오는 학회를 열기 위한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가까운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학회는 다른 때보다 일정이 좀 더 길게 잡혀있었다. 우리 학회의 주최로 세계의 유명한 학술단체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였다. 그동안은 주로 외국의 단체들을 국내로 초청해서 대회를 열었지만, 이번에는 미국에서 개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규모는 물론이고, 기간도 다른 때보다 더 길게 잡혀있었다. 당연히 진오의 체류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 행사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에번스를 만나기 위해 서둘렀다. 그는 웬일인지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대회를 앞두고 몸이 좋지 않아 참가할 수 없으니, 혹시 시간이 되면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진오는 당황스러웠다. 단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다녀와야지.’
다행히 그가 몸담고 있는 학교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본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는 해도 워낙 넓은 나라이다 보니 웬만한 곳은 어김없이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뭐야, 2시간 거리네. 가깝기는 뭐가 가까워.’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진오는 비행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처제의 일도, 장인, 장모님의 건강도, 모두 마음을 짓누르는 일들뿐이었다. 연정도 걱정이었다. 가족들 앞에서는 강한 척하는 그녀였지만, 돌아서면 언제나 홀로 눈물짓는 그녀였다. 그렇다고 자기 속을 잘 보여주지도 않았기에 더 속상했다.
‘이번에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진오는 부부이기 이전에 학자로서 연정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나름 연구도 해보고, 진지하게 분석을 해보기도 했다. 태양계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거기서 의문이 생겼다.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천문학자들과 학술단체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 문제에 관한 그 어떤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혹시 다들 알고는 있지만 쉬쉬 하는 것인지, 아니면 확신을 가질 수 없어 신중하게 연구를 하고 있는지, 그래서 뭔가 확실해지면 경쟁적으로 학계에 보고하여 유명세를 타려고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에번스는 의문을 가졌고, 나름대로 연구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우리 셋이 의견을 모아서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발전시켜보자고 해야지. 또 모르지. 이 문제가 학계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잖아.’
진오는 온갖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것이었는데도,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의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쏟아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잠이 들긴 했지만, 1시간 정도 비행을 했다는 것도, 엔진 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린다는 것도 모두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안 돼, 좀 더 자야해.’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면서 막 깊은 잠에 빠지려는 순간이었다.
「쿠쿵-」
천지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번개가 치듯 번쩍이는 빛이 창문을 통해 비춰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는 물체들이 구름을 뚫고 들어와 창공에 흩어졌고, 그 빛은 한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의 비명과 탄성 소리가 들렸다. 일부 승객들은 혹시 테러가 아니냐며 두려움에 떨었고, 곧 기내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잠이 달아난 진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라는 기장의 목소리가 기내방송을 통해 계속 흘러나왔고, 승무원들도 분주히 움직이며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을 뚫고 떨어지는 그 밝은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던 진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뭐야?’
그것은 유성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제껏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엄청난 규모의 유성우였다.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타고 없어지는 그런 유성체가 아닌, 그 성스러운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무시무시한 불청객들, 그것은 운석임에 틀림없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들이 바로 진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도착지의 공항이 폐쇄된 관계로 기수를 돌릴 수밖에 없다는 기장의 멘트가 계속 흘러나왔다. 승객들은 모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진오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에번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먹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눈치였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진오는 급히 차를 렌트하여 에번스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피곤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학회도 중요하지 않았다. 뭔가 예감이 좋질 않았다.
‘어디서 차를 빌리지? 저쪽인가?’
그때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진오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긴급뉴스가 전해지는 모니터에는 처참하게 파괴된 한 도시의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장의 기자들은 망연자실하여 말을 잇지 못했고, 스튜디오의 앵커들도 마찬가지였다. 구조대원들과 경찰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구조에 나서는 장면들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실제 구조를 하는 장면은 볼 수가 없었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어보였다. 그곳은 에번스의 집이 있는 도시였고, 그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또한 가까운 곳이었다. 조금 전에 진오가 비행기에서 본 섬광은 운석 덩어리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운석은 그 도시를 덮쳤고, 도시는 폭격기로 공습을 당한 것처럼 폐허가 되어있었다. 운석은 이곳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북부지역에도 떨어졌고, 불행 중 다행히도 그곳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림지대라고 전해졌다.
학술대회는 전격적으로 취소되었다. 진오는 지인들을 모두 동원하여 에번스의 생사를 수소문했다. 학교가 파괴된 것은 물론, 도시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또한 운석이 떨어진 캐나다 북부, 거대한 툰드라 지역의 산림지대는 에번스가 살던 도시처럼 지도상에서 아예 없어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마저 완전히 파괴되었고,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기후 또한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진오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깨닫고는 급히 귀국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이 소식을 접한 연정도 곧바로 진오에게 연락해 귀국을 종용했고, 비상이 걸린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과 분석, 그리고 대책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숙희는 일주일정도를 병원에 누워 있다가 퇴원했다. 좀 더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권고를 뿌리치고 무작정 퇴원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빨리 심신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와 막내딸을 돌봐야한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족들의 권유에 따라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는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것마저 필요 없다고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연정은 대전으로 급히 내려갔다. 운석으로 인한 사고로 인해 관련 전문가들은 무조건 연구원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녀는 연호를 따로 불러 집안일을 부탁했고, 진오가 미국에서 직접 보고 겪었던 일을 전하고 내려갔다.
“진짜 다행이다. 조금만 일찍 도착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러게 말이다. 암튼 네가 고생 좀 해야겠다. 간병인 불렀으니까 매일은 안 가도 돼.”
“알았어.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얼른 내려가.”
연호는 병실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 오대산에서 봤던 것과 같은 유성우야.’
이번엔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규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이건 절대로 우연히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야.’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꼭두가 있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싫든 좋든 우리들을 피안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저 망할 놈의 꼭두!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본성을 드러내겠다 이거지?’
집에 도착한 연정은 먼저 귀국해서 와있는 진오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더 일찍 에번스를 찾아 나섰어도 그 끔찍한 현장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에번스는 어떻게 됐어? 아직 못 찾았대?”
“응. 근데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대. 그 시간에 다른 곳으로 가있었으면 모를까, 시신 수습도 불가능하다고 그러더라고. 경찰에서 신용카드나 휴대폰을 통해서 에번스의 움직임을 추적해 봤는데, 집에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대.”
연정은 예전의 에번스를 기억하며 무척 안타까워했다. 친분도 친분이었지만, 생전에 같은 별을 주목하며 함께 연구하고 싶어 하던 그였기에 더 아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너무 안됐어.”
“정말 참담한 심정이야. 아직 연구할 게 너무 많아서 결혼도 안한 친군데 말이야.”
진오는 미국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연정에게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연정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 운석들이 지구상에 쏟아져 내릴 정도면 분명 어떤 전조가 있다거나 아니면 천체를 관측하는 각국의 감시센터 같은 곳에서 어떤 경고나 통보 같은 것들이 있어야만 했지만, 그런 시스템들이 전혀 돌아가지 않고 갑자기 사고가 났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연정은 우주위험감시센터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호가 생각하는 게 진실일까?’
만약 꼭두에 관한 내용들이 알려진다면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관찰이나 연구 결과들은 모두 추측일 뿐,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연정은 두려웠다. 실체가 없는 적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기만 했다.
연호는 북미지역에 떨어진 운석은 보통 예사로운 전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운석은 분명 꼭두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저 녀석이 자신의 생명을 다해 폭발할까? 우리 모두를 흔적도 없이 다 쓸어버릴까? 그게 진짜 가능한 거야? 이론은 이론일 뿐이지,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녕 아무것도 없을까?’
진오는 연정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꼭두에 관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방학 중에도 학회 소속의 천문대와 학교, 연구실을 오가며 연정을 돕는데 온 열정을 쏟았다. 연호가 그동안 축적해온 자료도 주고받으며 서로의 도움을 구했다. 사실 새로운 것은 거의 없었다. 마치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희미한 상태의 밝기가 예전보다 더 심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래도 세 사람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번 운석 사건으로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거나 알아도 모른척했던 천문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조사에 임할 것이 틀림없었다. 온 천체를 샅샅이 뒤지다보면 반드시 꼭두의 정체를 파악하여 그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고, 뭔가 조치를 취해보려고 난리들을 치겠지만, 결국에는 연호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매일 쏟아내는 의문들,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없는 질문들, 이젠 지긋지긋해. 인간이 이렇게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였던가. 아직은 우리가 그 해답을 알아낼 자격이 안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지금까지 수많은 진실과 수수께끼 같은 명제들을 풀어 온 우리들에게 좀 더 시간을 준다면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 먼 우주, 저 텅 빈 공간 속의 꼭두는 그 기나긴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음이 확실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외면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못내 아쉬운, 그래서 한껏 자신을 불태워 차디찬 우주의 한 구석에서나마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을 남기려는 꼭두는 이제 하나둘씩 그 실체를 우리 앞에 드러내며 서서히 돌아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