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실의 분위기는 어디든 같았다. 실내를 온통 지배하며 감싸고도는 침울한 분위기, 그 속에서 조용히 혹은 격하게 슬퍼하는 사람들,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그리고 향이 타들어가는 냄새까지. 친척 어른들이나 지인들의 장례식에 다니면서 지금까지 몇 번을 경험해봤어도 여전히 낯선 광경이었다. 아무리 겪어도 그 암울한 분위기는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여긴가? 상현, 상현이. 아, 여기구나.’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연호를 보며 친구들 모두가 놀라는 표정이었다. 다들 조용히 반기면서도 이럴 때나 얼굴을 본다며 핀잔을 주었다. 한없이 초췌한 모습으로 영안실을 지키고 있던 상현이 연호를 보고 다가왔다. 그가 지키고 있던 처의 초상 앞에는 아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연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답답했다.
“왔냐? 오랜만이다.”
연호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제야 찾아와서 정말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아니야.”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다.”
“괜찮아. 너 원래 그런 거, 다들 아는데, 뭘. 이제부터 자주 보면 되지.”
어차피 우리는 모두 한날, 한시에 죽게 될 운명이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 어떤 미련이나 고통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진짜 최악이잖아. 남의 고통이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도 아니고, 인생의 반쪽을 잃은 친구의 슬픔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세상이 미쳐가니까 너도 이제 막나가는 거냐?’
연호는 절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상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리며 영안실을 나왔다. 그의 처는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1년 정도 투병을 했다고 친구들이 전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잃기에는 우리 모두가 아직 젊은데...’
연호는 혼자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다른 친구들은 서로의 안부나 근황을 물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과 직장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추억들로 밤을 보냈다. 무거운 얘기들은 오가지 않았다.
“야, 연호야. 넌 어떻게 지내냐?”
연호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학창시절의 일들을 친구들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늘어놓으며 재밌어했다. 선화를 만났을 때처럼 신기했다. 모두들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나 마음의 거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연호는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스스럼없이 한때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난 별로 생각나는 게 없는데. 대체 그때 뭘 하고 지낸 거지?’
연호는 친구들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가 혹시 이 친구들을 기만하는 걸까? 친구라는 게 일방적이면 안 되는 거잖아?’
연호는 새벽 2시가 넘어 장례식장을 나왔다. 대부분 일이 있어 돌아갔고, 남아있는 몇몇 친구들도 장례식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걸으며 갈 곳을 생각했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연민이가 집에 없어서 그런가?’
연민에게 가보고 싶었지만, 병원으로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이제 막 초겨울에 들어섰음에도, 바람은 한겨울 소한의 동장군이 쳐들어온 듯 매서웠다. 연호는 옷깃을 여미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차에 올랐다.
‘어딜 가지?’
망설이던 그는 결심이 선 듯,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차를 몰아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시내를 가로질러 곧장 고속도로를 탔고, 강원도로 방향을 돌렸다. 이 땅의 동쪽 끝, 검고 차가운 바다를 향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고속도로는 전세를 내기라도 한 것처럼 한가했다. 겨울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무척 조심스러웠다. 강원도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밖은 더 추워졌는데도, 연호는 오히려 차안에서 식은땀을 흘렀다. 동생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로가 넓어진 곳을 지나던 때였다. 룸미러 속 저 멀리 조그마한 어떤 물체가 어둠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 앞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점점 더 커지며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게 뭐지? 어?”
그것은 뭔가에 쫓기듯 달려오는 동생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리게 주행하고 있었다. 연호는 일단 차를 세워 그녀를 태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차를 완전히 세울 수가 없었다.
“왜 이래, 이거!”
연호는 당황하여 브레이크를 부술 듯이 밟아대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룸미러를 주시했다.
“연민아!”
그녀의 뒤에는 마치 보름달처럼 빛나는 거대한 크기의 물체가 산야를 낀 지평선에 걸쳐 있었다. 그것 역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저건..., 꼭두다!”
연호는 그것이 꼭두라는 것을 곧 알아챘다. 그 별은 세상을 조롱하듯 강렬하게 빛을 내며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
연민은 여전히 차를 향해 달려오면서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도무지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세우기는커녕 차는 저절도 속도가 붙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연호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이번엔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 정말!”
꼭두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연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마치 쇠가 자석에 달라붙듯이, 연민은 힘없이 꼭두에게로 끌려가고 있었다. 꼭두는 동생을 납치하려는 게 분명했다. 연호는 더없이 무기력한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었고, 꼭두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저 거지같은 새끼가!’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동생조차 지키지 못하는 너는 지독한 망상에서 헤매는 패배자일 뿐이야.」
연민은 모든 걸 포기한 듯,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있었다. 연호는 동생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 방법으로 차를 돌렸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차를 그대로 회전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전복될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스로 차를 돌린 연호는 미친 듯이 속력을 냈다. 땀은 물처럼 쏟아졌고, 차체는 이미 한계를 넘어 심하게 떨렸다. 그때 갑자기 트럭으로 보이는 큰 차량이 나타나 연호의 차량을 쫓아왔다. 그 트럭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연호를 몰아세웠다. 신경질적으로 상향등을 켜면서 마구 경적을 울려댔다.
“뭐야 저 새끼는 또! 왜 나를 따라서 역주행을 하지?”
연호는 몸을 비틀며 눈을 떴다. 큰 트럭이 급하게 쉼터를 빠져나오는 차를 경계하기 위해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둘러보니 졸음쉼터였다. 잠깐 잠이 든 대다가 꿈까지 꾼 모양이었다.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에이 진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젠 아주 꿈속까지 찾아와서 나를 갖고 노네?’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은땀을 쏟으며 열을 뿜어내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시동을 끈 상태로 30분 정도가 지나자 차안은 마치 냉동실 같았고, 공기마저 얼어버린 듯 뼛속까지 추위가 전해져 온몸을 떨었다. 연호는 얼른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다시 핸들을 잡았다.
도로를 달리며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꿈속의 상황들이 잊히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강릉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을 무렵,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연호는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빠져 나갔다.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가 주문진으로 향했다. 달리면서 어디로 갈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바다보다는 오대산으로 가보자.’
마음을 정한 연호는 주문진으로 가다가 오대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제는 옛길이 되어버린 지방도로 진입했다. 오대산에는 천년고찰 월정사가 있었다. 전에 가족들과 여행을 하며 와봤던 곳이었고, 인상이 깊게 남아 언젠가는 다시 찾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이 길을 따라 그곳에 가려면 해발 천 미터에 가까운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구불거리고 가파른 고개, 그리고 어둠, 안개.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짓이었다. 지금은 전보다 쓰임이 많이 줄어들어 한가한 길이었다. 요즘은 높은 산들을 뚫어서 만든 수많은 터널과 교각들 위로 건설된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했다.
“돌아갈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차를 돌릴 수는 없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는 점점 더 심해졌고 도로는 뱀처럼 구불거렸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좋게 넘길만했지만, 짙게 깔린 밤안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쏟아지는 땀은 긴장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줄이고 눈을 부릅뜬 채 오직 운전에만 집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그의 눈앞에 드디어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였다.
‘어휴, 힘들어. 거리는 얼마 안 되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냐!’
그 표지석도 안개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볼 수가 있었다. 그곳에는 휴게소가 있었고, 휴게소임을 알려주는 간판의 조명들만이 빛을 내고 있을 뿐,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연호는 시동을 끄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안개와 까마득한 길. 고작 이런 것 따위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시계를 보았다. 곧 새벽이었다. 뜬눈으로 수없이 맞이한 새벽이었지만, 지금은 방구석에서 맞는 새벽과는 어딘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고개를 내려가 조금만 더 가면 월정사 근방에 있는 전나무 숲이 나오지만, 연호는 조금만 더 있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문득 세상 이렇게 적막한 곳이 또 있나 싶었다. 이곳에서 우주 저편의 소리, 대기의 소리, 아니 천체와 지축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과 함께 뿌연 안개의 낱알들이 차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지금까지 방구석에서 들어왔던 대기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집중하며 애를 쓰던 그의 귀에 지금까지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안개의 소리였다. 원한에 찬 영혼들이 안개 속에서 서로 엉겨 붙어 울부짖는 소리, 소름끼치도록 음울하고 기괴한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지금까지 듣던 대기의 소리가 아니었다. 연호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차를 몰고 고개를 넘어오면서 느꼈던 두려움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재빨리 시동을 걸고 창을 올렸다. 그때였다. 차를 막 출발시키려는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었다. 어두운 밤, 작전을 펼치는 병사들의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는 조명탄, 바로 그 조명탄이 터졌을 때와 아주 비슷한 장면이었다. 바로 유성우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기가 막힌 광경 앞에서 우주의 신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나 기분이 아니었다. 감상은커녕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최근 들어 평소보다 많은 유성이 떨어진다는 소식을 여러 매체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연정이나 진오와도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는 없었다. 재빨리 차를 몰아 휴게소를 나왔다. 유성우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마치 성대한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저것이 만약 지상 어디론가 떨어져 인류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면. 연호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그 쇼가 전혀 신비롭거나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넘어올 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하는 내리막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호는 그 안개속의 정상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에 급히 차를 몰았다. 천 길 낭떠러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겨우 월정사에 도착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하늘은 밤의 장막을 조금씩 걷어내며 푸른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천상의 불꽃놀이도 잠잠해져 있었고, 안개도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맞은편 도로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작은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연호는 그제야 미로를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살아있는 다른 사람을 보니 왠지 더 안심이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나무 숲을 향해 걸었다. 아직은 어두웠고, 안개도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숲속을 걷는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휴대폰을 조명삼아 숲의 입구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었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가족들과 이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 신선함과 감동의 떨림을 끄집어내려 애를 썼다. 숲은 여전했다. 곧게 뻗은 전나무만큼이나 숲길도 곧게 뻗어있었고, 그 숲이 주는 차분함과 그윽한 향기도 그대로였다. 비록 지금은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찾아오긴 했어도 이곳의 모든 것들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변한 것은 연호 자신뿐이었다.
연호는 전나무 숲에 들어가지 못했다.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뿐이었다. 태백에서 있었던 큰불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관광지나 유명한 곳들을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사람들의 출입을 사실상 금하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없는 이른 새벽이라 그깟 안내판쯤이야 무시하고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고민 끝에 결국 발길을 돌렸다.
‘내가 뭔데, 무슨 욕심을 채우겠다고...’
마지막까지 이 땅을 지키고 있는 저 숲과 나무들의 거룩한 의무와 사명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연민이가 깨어나면 함께 찾아와야지.’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박한 행복도 우리 모두가 살아남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진짜 ‘최후의 그날’이 찾아온다면, 꼭두에 의해 이 행성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연호는 거기에서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발걸음도 멈췄다.
‘죽을 때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이곳에 있는 전나무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면 어떨까?’
그는 잠시 동안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연호는 월정사를 빠져나와 다시 서울로 향했다. 혹시나 싶어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 보았다. 장례식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보낸 문자가 몇 통 들어와 있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고, 가족들에게 온 메시지가 없음을 알고는 안도하며 다시 휴대폰을 껐다. 그리고 운전에 집중했다. 아침 햇살과 함께 안개는 모두 사라졌다. 찬란한 빛이 차 표면에 반사되어 유리를 뚫고 들어와 연호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졌지만, 휴게실에서 산 커피를 마시고 껌을 씹어가며 억지로 참고 내달렸다. 일단은 집으로 향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인 후, 동생에게 들렀다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꼭 그만두겠다고 해야지.’
뒷일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연호는 나름 홀가분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늘은 오랜만에 무척이나 맑았다. 그런데 오후쯤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 봐서는 전혀 눈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맑은 날씨였다. 연호는 올 들어 첫 번째로 들려오는 눈 소식이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