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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17. 시한부 (3)
작성일 : 22-01-31 01:32     조회 : 380     추천 : 3     분량 : 7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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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현의 건강은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여름내 실버타운에 머물면서 그곳에 있는 병원을 오가며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 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큰 병원을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꾸만 입안에 상처가 생기고, 잘 낫지도 않는 이유는 몸을 유지하는 어떤 호르몬의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고, 식은땀을 자주 흘리며 피로가 금방 쌓이고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징후이기 때문에 특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중에는 여건이 된다면 하는 일을 그만두고 좀 쉬면서 검사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권고한 의사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어떤 병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서 관리를 하셔야 합니다.”

 

  숙희의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아버지였기 때문에 가족들의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연정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괜히 화를 내며 숙희에게 따졌다.

 

  “엄마는 왜 그런 얘기를 이제 와서 해. 처음부터 같이 알고 대응해야지. 병은 주변에 널리 알리는 거라며?”

 

  “그래서 지금 너희들 모아놓고 얘기하잖아!”

 

 숙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더 일찍 얘기했어야 한다는 거지, 내 말은.”

 

 다들 진정하라며 상현이 끼어들었다.

 

  “아무튼 당분간 검사나 치료에 전념하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거니까, 너희들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래. 이제 너희들한테 다 얘기하고, 또 상의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쨌든 그건 그렇고 이렇게 모두 모였는데, 나가서 식사나 하자.”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라 다른 때 같았으면 더 들뜨고 즐거웠을 것이지만, 다들 음식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여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연정은 특히 더 마음이 급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외식을 마치고 돌아온 연정은 진오와 동생들을 2층으로 불러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다 못한 진오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진정해. 당신 지금 좀 흥분한 것 같아.”

 

  “가만히 있어봐. 생각 좀 정리하게!”

 

 잠시 침묵이 흘렸다. 모두들 눈치를 보면서 그녀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버지에 관한 일이 최우선이라는 걸 명심하고. 특히 너, 연호? 알았어?”

 

 연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왜 나한테 그래. 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봐?”

 

 진오는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동기나 선후배들, 지인의 지인까지 다 뒤져 의사나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이런 문제일수록 빨리 주변에 알려서 조언을 구해야 해. 내가 인맥을 다 동원해서 의사도 알아보고, 병원도 수소문 해볼게.”

 

  “그래, 그런 건 당신이 잘하니까, 얼른 알아봐줘.”

 

 연호와 연민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뭔가 조언을 구할 사람도, 심지어는 벌어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선뜻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눈치만 보면서 연정과 진오가 하자는 데로 따라갈 뿐이었다. 연호는 괜히 짜증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진오와 연호는 1층으로 내려갔고, 연정은 연민을 데리고 연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만 자료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을 뿐, 어디하나 지저분한 곳 없이 깔끔했다. 다만 두꺼운 커튼이 햇빛을 가리고 있어 오후인데도 방은 어두웠다.

 

  “얘는 도대체 이렇게 어두운데서 뭘 하고 지내는 거야? 그나마 깔끔해서 다행이지, 지저분하기까지 했어봐, 으이그!”

 

 연민은 슬그머니 오빠 편을 들면서 변명을 했다.

 

  “다른 때는 환기도 잘 시키고 그러는데, 오늘은 왜 이러고 나왔지?”

 

  “연민아. 아까 아버지가 한 말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런 걸로 기죽지 말고. 지금 네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나나 네 오빠는 나이도 있고, 어쨌든 이쪽 길이 아니잖아. 그리고 어차피 아버지가 일선에서 물러나셔도 실질적인 오너니까, 네가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잘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너한테 기회가 찾아올 거야. 네가 싫으면 그만인 거고. 절대 부담 갖지 마, 알았어?”

 

  “응, 알았어.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연민은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근데, 요즘.....”

 

  “그래, 요즘 왜? 무슨 일 있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봐.”

 

 연민은 직장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적응하기 힘들다는 얘기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몸이 금방 피곤해지면서 자꾸만 식은땀을 흘린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과 함께 심한 어지러움으로 서있기 힘든 경우가 자주 있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뭇거렸고, 눈치 빠른 언니가 행여 알아챌세라 얼른 말을 돌렸다.

 

  “왜 있잖아, 요즘 오빠가 너무 그 일에 몰두해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많이 쓰여. 내가 보기에는 학원에서도 수업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연정은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 녀석 진짜!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도. 지금 내려가서 네 오빠, 얼른 올라오라고 해. 당장!”

 

  “언니, 내가 그랬다고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연민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걱정 하지 마.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그 녀석이 어떻게 하고 있을지, 안 봐도 뻔해.”

 

 연민은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진오와 연호가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언니가 2층으로 와보래.”

 

  “왜? 여기로 오면 되지,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진오가 그 마음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얼른 올라가봐. 늦게 가면 잔소리가 더 많아질 걸?”

 

 연호는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연정은 커튼을 젖히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바깥의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에 들어선 연호는 괜히 눈치를 살피며 그녀 앞에 앉았다.

 

  “야!”

 

 그 순간부터 폭풍과도 같은 연정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듣고 살던 누나의 잔소리, 서른을 절반이나 넘어 듣는 잔소리가 싫을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누군가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구절절 맞는 소리만 골라 하는 그녀에게 맞서는 것은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누나가 말 한대로 잘 할 테니까, 아버지나 어떻게 좀 해봐. 아직 젊으시잖아. 이제야 편하게 노후를 보내실 땐데,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

 

  “그러니까 너는 누나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너까지 괜히 걱정 끼치지 말고. 아버지는 네 매형하고 의논해서, 일단 검사부터 다시 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연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현실이 딱 그랬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이상 기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국가 간의 분쟁과 사람들의 반목,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아버지까지. 이 모든 일들이 우주 저 멀리에서 우리를 기만하며 지켜보고 있는 꼭두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연관 지어 생각지 않으려고 해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사라진 별은 천지가 창조될 때부터 창조주가 미리 설치해 놓은 시한폭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천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피조물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최후의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아, 진짜, 그럴 리가 없잖아!’

 

 진오와 연정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사라진 별의 문제를 바라보았지만, 연호는 달랐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 맘대로 상상하면서 온갖 자료들을 해석하고 있었다. 너무 부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연호의 보고서를 살펴본 연정은 그 엉뚱한 상상력과 신박한 견해에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추어라고해서 절대 얕잡아 볼 수 없는 수준의 보고서는 지친 연정에게 자극제가 됐고, 한 곳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힘을 주었다. 연호는 좀 더 구체적인 관측 결과를 정리해서 조만간 누나와 의논을 해보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과 건강문제로 인해 미뤄두어야만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버지였다. 표현은 없어도 평생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은근한 기대로 살아온 아버지. 기대만큼의 실망감만을 보여준 자신 때문에 저렇게 더 건강을 잃은 건 아닌지, 심한 자책감에 연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꼭두는 곧 사라질 별, 제 주어진 삶을 다한 시한부의 별이다. 그것이 언제 폭발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기가 가까이 다가온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 꼭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우고 또 태워 더 이상 생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고, 곧 초신성이 될 것이다. 그 순간, 격렬히 팽창하는 꼭두는 평소보다 수십억배로 밝아지다가 결국은 생의 정점에서 격렬하게 폭발할 것이다.

  그 순간, 우리와 함께했던 수많은 절망과 희망의 잔해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엄혹한 의식 속에 초속 4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맹렬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그 엄청난 힘은 꼭두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저 무한의 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할 것이고, 우리는 자신이 사라진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 별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빛과 소리, 그리고 영혼마저 흡수해 버리고는 이내 태곳적 고요, 영원한 절멸의 고독, 그리고 온통 암흑뿐인 처절하고도 무심한 공간만이 그곳에 남게 될 것이다.』

 

  “보고서를 쓰라고 했더니, 무슨 서사시를 썼냐? 참 나, 그래도 상상력 하나는 인정!”

 

  “내가 무슨 전문가야? 누나한테 보이는 거니까 내 맘대로 막 쓴 거지,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봐. 자꾸 그러면 나 안 할 거야.”

 

  “알았다, 알았어. 네가 가진 상상력을 모두 동원해서 지금처럼 계속 써봐. 절대 비웃지 않고 꼼꼼히 다 볼게.”

 

 

  연호는 한동안 작업실에 출입하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나름 꼭두에 대한 결론을 내린 후로는 그 엄청난 우주의 힘과 법칙에 굴복되어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한낱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이제까지의 관측과 조사도 모두 중단해버렸고,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이 문제로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부터 아버지랑 산에나 다녀볼까?’

 

 한편으로 연호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낯선 감정들이 밀려와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의지였다. 부정과 비관, 염세로 가득했던 머릿속에 긍정과 희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느꼈다.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사라진 별을 보고 나서야, 겨우 멸망의 전조를 엿보고 나서야, 왜 도대체 이제야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인지, 왜 마지막 모퉁이에 서서야 생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인지, 진정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연호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특히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산책도 하고, 소소한 일들을 함께 하면서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있고 싶었다. 상현은 생각보다 더 쇠약해져 있었다. 연호는 가슴이 아팠다. 학창시절,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일어나 동네 뒷산의 약수터에 함께 오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젊은 아들보다 더 왕성한 체력으로 산을 오르던 모습을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면서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작고 약하게 생각된 적이 있었는지, 왜 지금까지 아버지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살았는지 후회스럽기만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지금껏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거나 크게 열정을 쏟은 적이 없었던 연호는 이제야 하루하루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조바심을 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더 다가설까를 처음으로 고민했고, 전에 없던 애정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다. 평소에도 학생들이나 원장으로부터 성격이 차갑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고, 학부모들로부터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등의 불만을 많이 들어온 연호는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강단에 서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뒤늦게 정신을 차려 이제야 돈 좀 벌어보려고 나댄다는 시선으로 그를 보기도 했지만, 연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이 수많은 생명체들의 운명이 한 날, 한 시에 사라질 수 있는지, 가끔씩 억울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연호는 곧 다시 몸과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어차피 그것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동안 너무나도 고치기 힘들었던, 아니 고칠 생각도 없었던 잠자는 습관과의 전쟁도 시작했다. 몽롱하고 눅눅한 새벽을 박차고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려 애를 썼다. 출, 퇴근길에 마주하는 하늘과 거리의 풍경들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여유가 생겨나기도 했다. 실로 오랜만에 주변의 일상들을 눈여겨보게 된 연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느껴져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거리에 늘어선 말라붙은 나무 한그루, 한그루도 모두 소중해 보였다. 심지어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인간들과의 관계, 얽히고설켜 서로가 서로를 짓밟는 인간들의 관계조차도 다르게 보였다.

  어느 날, 연호는 저 먼 허공의 무언가를, 자신의 망상과 그릇된 욕망을 채워줄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던 관측 장비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대신 아버지와 동행하여 오랜만에 카메라를 매고 세상의 풍경을 찍기 위해 나서기도 했고, 오랫동안 말라붙어 있던 붓을 다시 꺼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또 무너졌다.

 

  ‘만일 그 놈의 별이 끝내 초신성이 된다면.....’

 

 그 망상이 현실이 된다면, 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다 받아들어야겠지만, 한 가지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들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자양분인 가족들과 영원히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온갖 엉뚱한 생각을 다 해봤지만, 가족이 등장하는 망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어디에 내세울만한 아들도, 동생도, 오빠도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가엾은 동생은 죽을 때까지 지켜줘야 하는 아픈 존재다. 누나는 부족하고 무지한 나를 저 무한한 우주로 인도해 주는 지혜의 여신이며, 늘 어둠 속에서 헤매는 내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등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주 차가운 듯 보이지만 속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여린 누나를 지켜주는 매형 또한 나의 소중한 가족이며, 조카 윤지는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아이다. 내 잘못된 지식과 판단의 오류로 인해 이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제대로 미쳐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지금까지 꼭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며, 절대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 우주의 거대한 비밀과 법칙은 나 같은 비겁한 은둔자가 알아내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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