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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16. 시한부 (2)
작성일 : 22-01-25 23:54     조회 : 409     추천 : 3     분량 : 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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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유례없이 덥고 건조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상현과 숙희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근래 이렇게 길게 휴양을 간적은 없었다. 연호는 거의 자취생 같은 생활을 하며 은둔해 있었다. 가뜩이나 없는 대인관계는 더욱 단절되어 학원 외에는 아무대도 나가질 않고 집에만 있었다. 늘 피곤에 절어 있었고, 살도 제법 빠져 아파 보이기까지 했다. 방학을 맞아 특강이다 뭐다 더 바쁜 날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온 정신을 사라진 별에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종일 작업실에 처박혀 나오질 않거나, 빠듯한 시간을 쪼개 대전에 내려가곤 했다. 그런 날이면 진오를 포함해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서 서로가 관측한 자료를 공유하거나 의견을 나누며 하루를 다 보내곤 했다.

  연민은 다니는 출판사에서 가을을 맞아 새로 들어가는 프로젝트가 있어 매일같이 퇴근이 늦었다. 집에 돌아오면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2층까지 직접 올라가 오빠의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오빠? 나 왔어. 살아있지?”

 

 연민은 방문을 열어 두 눈으로 오빠를 살피면서 매일같이 물었다.

 

  “응. 왔냐? 수고했다.”

 

 연호는 방학이라 아침에 수업을 시작해서 연민이 퇴근하기 전에는 집에 와있었다.

 

  “같이 저녁 먹게 좀 있다가 부르면 내려와.”

 

  “알았어. 야, 근데 아직은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확인 안 해도 돼. 그만 물어봐.”

 

  “걱정되니까 그러지.”

 

  “괜찮다니까. 난 이렇게 뭔가에 미쳐야 마음이 편안해, 안 그러면 더 아파.”

 

  “아, 시끄러워! 그렇게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진짜 돌 아이 같아.”

 

  “알았어, 알았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자료나 데이터들은 점점 더 쌓여가고 있었다. 연정이 보내온 데이터들이 워낙 방대하고 해상도가 높아 기존의 컴퓨터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또 비용을 들여 업그레이드를 했다.

 

  ‘돈은 대체 언제 모으냐? 지금 가지고 있는 카메라나 망원경, 컴퓨터 부품만 팔아도 어디서 장사할 밑천은 나오겠다!’

 

 연호는 그 어떠한 증거나 가설들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가면서 나름대로 의견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동생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세세한 것까지 다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동생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연민은 자신도 함께 참여하면서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신 그녀는 옆에서 오빠를 더 챙겨 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루라도 속이 더 편했다.

 

  ‘저러다가 진짜 쓰러지면 어떡하지?’

 

 연호는 방학이면 출퇴근 시간이 바뀌어 더 힘들었다. 그에게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중 하나였다. 어느 날은 갑자기 코피를 쏟아 한바탕 난리를 쳐서 연민의 잔소리를 저녁 내내 들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오빠를 챙기면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연민 자신에게 생기고 있었다. 직장 일에 오빠까지, 안팎으로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피곤이 쌓여 몸이 말이 아니었다. 아직 한창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빠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조절하기 힘든 감정의 기복이 자주 생기고, 머리가 깨질듯 아플 때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면 심한 어지러움과 함께 다리가 풀려 서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빠 건강도 걱정이고, 언니나 오빠가 몰두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요즘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왜 이렇게 힘들지?’

 

 그녀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부정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자신도 모르게 더 확신이 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직장생활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출판사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나이도 있고 의욕도 넘쳐서 이제는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이까짓 거, 남들 다 하는 일인데 나라고 못할까.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내야지. 넌 잘 할 수 있어.’

 

 가을에 들어서 전보다 일이 많아졌고, 육체적으로 더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이 정도는 이를 악물고 버틸 수는 있었다. 문제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원래 가지고 있던 대인기피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전 잃어버린 3일의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뚜렷이 떠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어떤 영상을 빠른 배속으로 돌린 것처럼, 알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한 화면들이 치고 빠지듯 머릿속에 수시로 나타나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요즘 같이 다들 힘들고 바쁠 때, 이런 얘기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겨내야 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실패한 인생을 살 수는 없어.’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힘은 점점 부쳐만 갔고, 가슴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실버타운에 머물고 있는 상현과 숙희는 여름 내내 휴양을 가장한, 사실상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병원을 다니며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고 진료를 받았다. 여름이 다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상현은 가족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소식을 전해들은 연정은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 하며 주말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왔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남들보다 자주 모이는 편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버지의 뜻으로 급히 모인 적은 없었다. 왜 모이라고 했는지 언급이 없어 다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오느라 고생했다! 다들 거실로 모여 봐라.”

 

 상현은 뭔가를 결심한 듯, 평소보다는 신중한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렇게 모이라고 해서 다들 좀 놀랐지?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여름에 너희 엄마랑 다른 때보다 오래 내려가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이제 회사에서 손을 떼고 좀 쉬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런 건 아니고 전부터 생각은 했었는데, 너희들 의견은 어떤지 들어보려고 이렇게 모이라고 한 거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

 

 진오가 놀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회사에 뭔 일 생긴 거야? 뭐야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상현의 말에 놀란 것은 연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연호와 연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 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올해 들어서부터는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의결권이 필요할 때만 내가 앞으로 나섰던 거 너희들도 다 알고 있잖아? 이런 결정이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주주로서의 권리만 행사하고, 일선의 모든 업무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이미 나나 엄마의 결심은 섰는데, 그래도 너희들의 의견은 어떤지 듣고 싶다.”

 

 연정은 불만이 많은 듯, 날을 세워 말했다.

 

  “아버지가 어떤 고생을 하면서 이 출판사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 우리가 다 아는데, 여기서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그리고 아직 젊으시고. 암튼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 우리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시는 거잖아. 무슨 문제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건강문제만 아니라면 아직 은퇴는 이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동생들을 돌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야! 너희들은 왜 그러고 있어? 무슨 죄지었니?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의견이 있으면 아무 얘기나 좀 해봐!”

 

 진오는 진정하라며 연정의 팔을 당겼고, 연호와 연민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얘들이 진짜. 연호, 너! 너도 나름 할 말이 있을 거 아냐?”

 

 이럴 때는 아무도 그녀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연호는 주저하다가 연정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누나하고 생각은 같은데,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뭐? 뜸 들이지 좀 말고 얼른 말해!”

 

 연호는 누나의 성화에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은퇴를 늦추시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 연민이도 나름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얘도 출판 일에 익숙해 질 거 아냐. 난 연민이가 아버지를 도와서 같이 일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연민은 자신을 언급하는 오빠의 다리를 주먹으로 치면서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진오는 처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아버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처남이든, 처제든 가족끼리 함께 일하면서 출판사를 지금보다 더 성장시키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만 해도 든든합니다.”

 

  “뭐가 됐든, 지금 은퇴하는 건 너무 일러요, 아버지. 우리들 생각은 대충 들어보셨으니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얘기를 좀 해 보세요.”

 

 이제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던 상현이 무슨 말을 막 하려던 참에 숙희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게 다, 너희 아버지, 건강 때문에 그런 거야. 자세한 건 검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전보다 몸이 안 좋아지신 거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너희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

 

 다들 놀란 표정으로 상현과 숙희를 쳐다보았다.

 

  “어허, 이 사람이, 좀 가만히 있어. 그렇게 앞뒤 없이 얘기하면 애들이 놀라잖아.”

 

 상현이 숙희를 말리며 머쓱해 했다.

 

  “어차피 얘들도 다 알아야 하는데요, 뭘.”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그냥 예방차원에서 좀 쉬겠다는 거야. 출판일도 이제는 할 만큼 해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연민이 생각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너희들 중 누구든 같이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가 왜 하지 않았겠냐? 그런데 봐라. 큰애나 이 서방은 이 쪽 일과 거리가 멀고, 연호 이 녀석은 내가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해. 막내도 뒤늦게나마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쟤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 얼마나 힘들겠어?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어쩔 때는 참 마음이 아프다. 연민이한테까지 이런 문제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구나!”

 

 상현은 시선을 돌렸고, 연민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숙희와 연정은 눈시울을 붉혔고, 연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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