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것이 포유류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연호는 고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그 거대한 크기와 함께 겉보기와는 다른 온순함도, 신비에 쌓인 그들의 생애도 모두 관심의 대상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바다에 나아가 고래를 보거나, 좀 더 여건이 된다면 물속에서 고래와 함께 유영을 해보고 싶다는 꿈들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 연호는 아직까지 그런 바램들을 꼭꼭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선뜻 꺼내놓고 누군가와 함께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꿈들이었다.
“뭐? 고래가 포유류라고?”
어린 연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어류로 알고 있던 고래가 포유류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충격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별이 죽는다는 것에 이어 인생의 두 번째 충격이자 놀라움이었다. 어떻게 고래가 포유류일 수 있는지, 몇 날을 방구석에 처박혀 책을 뒤지며 머리를 싸매던 연호는 그 비밀의 실타래를 하나둘씩 풀어가면서 차츰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하! 고래는 다른 물고기들처럼 알을 낳지 않고 사람처럼 새끼를 낳아 기르기 때문에 포유류로 분류하는구나!’
연호는 그 누구도 가본적 없는 미지의 세계 혹은 감춰진 진실에 처음으로 다가간 사람처럼 무척 흥분하며 기뻐했다.
‘아주 오래 전, 땅 위에서 살았다는 고래의 조상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바다에서 살게 되었을까? 차갑고 어두운 저 대양에서 살아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연호는 비밀에 가려진 고래의 일생에 대해 알고 싶었다. 수천 킬로미터, 깊고 거친 대양을 누비며 유유히 살아가는 고래들의 삶을 동경했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될까?’
누군가를 밀어내고 앞서 나가지 않으면 그 삶은 실패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인간의 삶이 싫었다. 어른이 될수록 꿈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현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일상, 적응할 수 없는 삶의 방식과 무게. 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연호는 적어도 고래들의 삶이 인간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비 소식이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건조한 기후가 오랫동안 지속돼왔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로는 메마른 대지를 충분히 적셔줄 수 없었다. 비가 오는 시간은 매우 짧았고 그 양도 적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물 부족 문제는 식량, 에너지 등의 문제만큼이나 심각했다. 온갖 재난과 재앙으로 지쳐가는 인류를 서서히 옥죄며 파멸로 이끄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건조한 기후는 지구촌 곳곳에 대형화재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미국 서부나 호주, 유럽 등 세계의 도처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산불 등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는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다. 태백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초토화된 태백산과 태백시 일대를 하루라도 빨리 복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지만, 그 피해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복구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나서 힘을 모았지만, 복구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막대한 돈이었고, 그것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재앙들은 지구촌 전체의 경제에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여 부도와 파산을 선언하는 나라들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감정도 그만큼 메말라가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만한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삶의 본질을 갈구하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찾는데 급급했다. 많은 이들이 현실을 외면하며 사이비종교나 맹목적인 이념에 빠져들었고, 빠르게 진화하는 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상이 어수선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종말론에 사람들은 쉽게 현혹되었다. 갖가지 해괴한 사상과 허황된 증거들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종말론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지금 세상의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앙들이 마치 자신들이 신봉하는 교리의 예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으려 했고, 건강한 정신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그럴듯한 말과 교묘하게 조작된 증거에 쉽게 넘어가곤 했다.
『여러분! 지금 행성 X가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충돌로 인해 인류의 절반 이상이 사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예언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이사야서, 누가복음 등을 읽어보십시오. 종말이 있기 전에 반드시 자연재해가 지구 전체를 덮칠 거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행성 충돌에 의한 종말론은 연호조차 관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우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실제로도 지구를 향한 운석이나 소행성 등의 위협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사람들은 생각했고, 다른 종말론보다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연호는 학원에 있을 때 빼고는 종일 옥상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사라진 별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옥상에서 내려와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는 일없이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이리저리 뒹굴고는 있었지만, 그의 손에는 언제나 연정에게서 받은 자료들이 쥐어져 있었다. 읽고 또 읽고, 종이가 닳도록 보고 또 보았다. 많은 복사본을 만들어 놓고 여러 각도로 해석해 보면서 벌써 몇 부를 내다버렸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 자료의 중요한 부분은 보지 않고도 다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 생각은 점점 어떤 결론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초신성’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엔 사라진 별이 이미 초신성의 과정을 거쳐 블랙홀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했었지만, 그랬다면 세상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된 가설이었다. 그래도 초신성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전 단계인 초거성 상태에서 멈춰 있을 가능성도 있나?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지? 초거성은 무슨. 별이 사라진 거잖아, 이 정신 나간 녀석아!’
별들도 사람처럼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을 안 이후로 연호는 별들의 최후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자라면서 수많은 서적을 읽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과 씨름하며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초신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강렬함과 신비함에 이끌려 별과 우주에 대해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고독하면서도 치열한 일생을 살다가 드디어 수명을 다해 사라지는 순간,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렬한 빛과 에너지를 발산하며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별들. 그 모든 과정들이 인간의 생각과 척도로는 미처 다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연호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한탄하며 호기심이고 뭐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오빠, 뭐해?”
“아, 깜짝이야!”
연호는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방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있던 그는 동생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놀라 물었다.
“평일인데 넌 왜 집에 있냐?”
“오빠, 정신 차려. 지금 몇 신줄 알아? 이러다 진짜 큰일 나!”
연호는 얼른 휴대폰을 보았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연민은 이미 퇴근을 해서 집에 있는 것이었고,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1층으로 내려오지 않는 연호를 찾아 올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컴컴한 방안에서 정신을 놓고 있는 연호를 보며 한참동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방 안은 어두웠고, 공기도 탁했다. 연민은 창문으로 다가가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젖힌 후,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언제 왔냐?”
“오빠야, 진짜 정신 차리자. 요즘 젊은 사람들도 치매에 많이 걸린대.”
“야.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연민은 오빠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오빠가 무슨 흡혈귀야? 컴컴한 곳에서 뭐하는 거야, 대체?”
“피곤해서 좀 잤어.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네.”
“웃기고 있네. 자기는 뭘 자.”
그녀는 오빠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잔소리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문득, 뭔가에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오늘은 회사에서 별 일 없었냐? 혹시 까불거나 널 괴롭히는 놈들 있으면 바로 얘기해라. 이 오빠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너나 잘해. 혼자 있다고 이게 뭐냐?”
연민은 다시 창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는 잘 가셨어?”
상현과 숙희는 낮에 남해안으로 휴양을 떠났다. 반도의 남쪽, 공기가 좋은 곳에 위치한 실버타운을 분양받아 몇 해 전부터 종종 휴양을 위해 찾는 곳이었다. 상현은 출판사의 큰 프로젝트가 있어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고, 그 일을 마무리하면서 몹시 지쳐있었다.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아 다른 때보다 체력적으로도 몇 배는 더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좀 무리를 했다. 몇 해 전, 숙희의 권유로 실버타운을 분양받은 상현은 그곳에 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벌써 한물간 퇴물이 됐나 싶어 기분이 영 별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입안이 자꾸 허물고, 쌓인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으면서 스스로도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별 불만 없이 숙희를 따라나서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 이 오빠가 알아서 다 처리했지.”
“열차도 미리 예매 해놨었고?”
“당연하지. 그런 건 기본이지. 그게 다가 아니야. 이 몸이 직접 서울역까지 바래다드리고, 차 안에서 드실 간식까지 다 챙겨드렸어.”
목에 잔뜩 힘을 주며 거만한 자세로 으스대던 연호는 동생이 어서 칭찬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허세가 더 심한 이유가 뭘까?”
김이 샌 연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여튼, 얘는 좀 나랑 안 맞아. 왜 너랑은 뭔가 자꾸 엇박자가 날까?”
연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안한 연호는 괜히 방안을 서성이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숨기면 내가 모를 줄 알고?”
연호는 무슨 소린가 싶어 하던 일을 멈췄다.
“뭔 소리야? 내가 뭘 숨겨?”
“요즘 오빠의 눈빛이 어떤 줄 알아?”
“왜? 내 눈빛이 어떤데?”
연민은 오빠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저번에 대전 갔을 때, 윤지 재우면서 우연히 언니하고 나누는 얘기를 나도 대충 들었어.”
연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진짜!”
순간 연민은 확 기가 죽어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변명을 잘 못하고 자기표현에 서툴렀다. 아무리 가까운 오빠라도 화를 내고 있으면 아예 입을 닫았다. 연호는 정말로 화가 나있었다. 어릴 적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동생에게 화를 낸 기억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내지르고 말았다. 좀 더 조심하지 못한 자신에게 더 화가 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동생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했다. 후회스러웠다. 순간이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연민은 인상을 쓰며 화를 내는 오빠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몹시 당황하며 울먹였다.
“야, 야. 미안해. 너는 몇 살인데 이런 일로 울려고 그래.”
연민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이럴 때는 잡지 않는 편이 나았다.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연호는 방을 나서는 연민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우리,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풀이 죽어 돌아서는 동생의 뒷모습은 연호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취미를 가지고, 함께 하늘을 관찰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새삼 이렇게 숨길 것도 없었다. 단지 어렵게 구한 직장에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동생이 이런 문제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1시간이 지났다. 연호는 더 이상 동생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연민아. 오빠 배고프다.”
그녀는 대답도 없었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네가 2층으로 올라올래? 올 때 먹을 것 좀 가져와. 진짜 배고프다.”
연호가 조심스럽게 돌아서서 2층으로 다시 올라가려는 순간, 방안에 있던 연민이 소리쳤다.
“흥! 웃기고 있네. 배고프면 오빠가 알아서 챙겨 먹어. 왜 날보고 오라가라야?”
연호는 일단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당연히 내가 내려가야지. 저녁은 내가 알아서 할게. 그냥 라면 끓어먹으면 되지 뭐. 김치 하나 놓고.”
“말하는 거 봐. 진짜 얄미워. 오빠가 동생이었으면 벌써 내손에 죽었다, 죽었어.”
“야. 이제 다 풀린 거지? 그렇게 알고 올라가 있을게. 이따가 보자.”